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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우리 아이 지켜내기

최영희 위원장이 말하는 아동 성폭력 실태 & 대처법

“아이에게 누구와 어디까지 신체접촉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려주는 게 중요해요”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김형우 기자

입력 2006.04.04 13:22:00

지난 2월 발생한 초등학생 성추행 살해사건은 자녀를 키우는 모든 부모를 경악케 했다.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성폭력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아이를 어떻게 지켜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청소년 지킴이’로 불리는 청소년위원회 최영희 위원장을 만났다.
최영희 위원장이 말하는 아동 성폭력 실태 & 대처법

최영희 위원장은 최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 여념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딸을 낳아 키우는 부모들은 매일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다. 예상치 못한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발생한 서울 용산 초등학생 성추행 살해사건은 온 국민에게 충격을 던졌다. 더욱이 소녀를 처참하게 살해한 용의자가 미성년자 강제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람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 사건을 보며 누구보다 안타까워한 사람은 바로 청소년위원회 최영희 위원장(56)이다. 청소년위원회는 지난해 5월 청소년보호위원회와 문화관광부 청소년국을 통합해 국무총리 직속기구로 출범한 청소년정책 총괄기구다. 최 위원장은 청소년위원회 통합의 산파 역할을 하며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2001년부터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주도한 그는 ‘청소년 인권문제의 대모’로 불린다. 1970~80년대 여성근로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싸워온 그는 90년대부터 청소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95년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를 열고 국내 처음으로 아동·청소년 성상담소를 개설하며 그는 ‘청소년 지킴이’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3월3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3층 청소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만난 최영희 위원장은 초등학생 성추행 살인사건에 대해 비통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렇듯 끔찍한 범죄를 막기 위해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 강화를 주장했지만, 지금껏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용의자가 재범을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 조치가 있었다면 이 사건을 미리 막을 수도 있었는데…. 무력감마저 느낍니다. 현행 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성범죄자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쉬워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성보호법이 더욱 강화돼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성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4배 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자는 일반 성범죄자에 비해 재범률이 1.5배 정도 더 높다고. 최 위원장은 “아동 대상 성범죄자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소아기호증 등 정신적인 문제를 지닌 사람만이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성적으로 좌절의 경험이 있는 남성이 가장 연약한 아동에게 권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자신의 성충동을 이기지 못한 남성이, 증언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어린아이를 성폭행하면 자신의 범죄가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최영희 위원장이 말하는 아동 성폭력 실태 & 대처법

성인 성폭행과 달리, 아동 성폭행은 주로 대낮에 행해진다고 한다. 범행 장소도 으슥한 곳이 아닌 피해 아동의 집이나 가해자의 집이 많다고. 또한 12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강간이나 강제 추행은 면식범 소행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위험에서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성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최 위원장은 설명한다.
“성폭력 예방 교육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누구라도 네 몸을 만지면 싫다고 해’라며 막연하게 가르치기보다는 ‘누군가가 네 머리나 손을 잡는 것은 네가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네 잠지, 엉덩이를 만지는 것은 나쁜 일이니까 싫다고 말해!’ 식으로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 거죠. 신체접촉을 누구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한계를 명확히 알려줌으로써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게 됩니다.

또 아이를 맡겨야 할 경우 아는 사람이라도 단둘이서 장시간 함께 있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오빠와 잘 놀고 있어. 화장실은 혼자 갈 수 있지? 아무리 오빠라도 벗은 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야’ 등으로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게 하거나, 경비실에 열쇠를 맡겨놓고 아이에게 찾아가라고 하는 등의 행위는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행위니까요.”

“성범죄자에 대한 고소기간과 공소시효를 철폐하는 방안 추진할 것”
최영희 위원장이 말하는 아동 성폭력 실태 & 대처법

최영희 위원장은 “아이가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가해자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최 위원장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 공개를 주도하며 수많은 가슴 아픈 사연을 목격했다. 네 살 된 여아를 성폭행한 뒤 토막 살해한 사건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엽기적인 범죄도 상당수였다. 하지만 피해 아동 부모들이 쉬쉬하고 넘어가는 바람에 묻혀버린 게 많았다. 최 위원장은 성폭행당한 딸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리던 한 아버지의 절규를 잊지 못한다.
“초등학교 1학년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후, 절대 아빠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빠가 자신의 곁에 없으면, 또 어떤 나쁜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거죠. 아이는 아빠가 잠시라도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였어요. 정신적 상처가 얼마나 크면 그랬을까요. 아동 성폭력은 온 가족에게 크나큰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성범죄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미미했다. 2001년 8월 제 1차 신상 공개 이후 지금까지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 4천6백24명 중 3천 명 내외가 집행유예나 벌금형만 받고 풀려났기 때문. 최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성추행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며 “성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초등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가 한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성교육을 실시해야겠다’고 말했죠.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제게 피해 여학생의 신상을 알려달라고 요구하잖아요. 평소 행실이 어떤지 알아봐야 한다면서요. 초등학생에게 행실 운운하는 교장 선생님의 태도에 저는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이 몰상식한 성개념을 갖고 있습니다.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적반하장 격으로 ‘어떻게 네가 얼굴을 들고 다니느냐’며 피해자를 협박할 정도니까요. 성에 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성범죄는 쉽게 근절되지 않습니다.”
아동 성폭력의 가해자 중 가족의 비율이 높다는 것도 큰 문제다. 심지어 청소년위원회의 신상 공개 심의대상이 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 3천8백93건 중 약 10%(3백90건)가 친아버지(1백91건), 의붓아버지(1백42건), 어머니의 동거인(57건)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경우 가족들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피해 아동의 후유증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아버지에 의한 성폭력인 경우 어머니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아이의 피해를 방치하거나 묵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가해자인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자신을 구해주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아동에게 더욱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가족 내에서의 성폭력은 가장 극심한 피해를 낳습니다.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아동을 즉시 가해자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 성폭력상담소에 이를 신고하고 아이를 보호시설로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합니다.”
최 위원장은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성범죄자 신상 공개제도를 강화할 방침이다.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경우 초범도 사진과 주소 등 세부 신상정보를 공개해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아동·청소년이 건전하게 자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을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긴다.
“성범죄자에 대한 고소기간 및 공소시효를 철폐하는 방안을 관련 부처와 협의해 추진할 생각입니다. 또 청소년 대상 모든 성범죄자는 청소년 관련 교육기관 등에 5년간 취업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할 계획입니다. 무시무시한 성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우리 아이 성폭력으로부터 지키기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제안하는 ‘아동 성폭력 대처 지침’

▼ 평소 아이와 성에 관해 자유롭게 대화하라
아이가 자위를 하거나 이성친구에게 관심을 가질 때, 부모가 키스나 포옹하는 것을 자녀가 봤을 때 자연스럽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다. 일상 속에서 부모와 성에 관한 대화를 꾸준히 나눴다면, 아이가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편한 마음으로 부모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건강한 성에 대해 조언해줄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는 믿음을 아이에게 심어줘야 한다.

▼ 아무리 친한 어른에게도 “싫다”고 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동 성폭력은 낯선 사람보다는 알고 지내던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통계에 따르면 지인이 가해자인 경우가 90% 이상이다. 그중에서도 친부가 60%를 차지한다. 아무리 친한 어른이더라도, 심지어 아빠일지라도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거부 의사를 밝히라고 가르친다. 성폭력 가해자와의 약속은 깨뜨려도 되는 것임을 아이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 위험한 상황에서의 대처방법을 다양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싫어요”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조건 심하게 저항하다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죽을 때까지 저항하는 것보다 위기를 넘기는 지혜를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가해자가 흉기로 위협할 때, 우선은 그 사람의 말을 듣는 척하는 것이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이다. 의사표현도 중요하지만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 부모에게 누구와 어디에 가는지 알리고 외출하도록 당부해야 한다
아이가 아무리 친한 사람과 외출한다고 해도, 부모에게 꼭 행선지를 알리고 가도록 해야 한다. 이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고, 주변인들에게는 ‘이 아이가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 자녀의 작은 말에도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야 한다
성폭력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가해자의 협박이나 죄책감, 수치심 때문에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수 있다. “학원 가기 싫어” “그 오빠 싫어” “오빠랑 단둘이 있는 거 싫어”라는 표현들을 그냥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작은 호소의 목소리를 놓치면 성폭력 피해가 장기화될 위험이 있다.

▼ 아이가 성폭력을 당했다면, 신속하고 침착하고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 아이가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될 때, 아이 앞에서 결코 분노의 감정을 표출해선 안 된다. 아이를 야단치는 것은 더욱 금물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신이 뭔가 큰 잘못을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며 아이를 안심시키고, 가해자에게 전적으로 잘못이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전문 상담기관을 통해 의료지원, 법적지원, 상담지원 등을 받는 것이 좋다.

▼ 성폭력은 피해자의 예방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등의 안전사고는 예방이 가능하겠지만, 성범죄는 피해자의 개인적인 예방을 통해 방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발생되는 폭력의 문제다. 가정과 교육기관, 사회가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교육과 양성 평등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성폭력은 잠재적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적극적으로 노력할 때 근절될 수 있다.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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