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끊임없는 구애를 받아온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49)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까. 최근 실시된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강 전 장관은 부동의 1위를 달리며 식지 않은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여성 최초의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강효리’라 불리기도 했던 그의 행보는 여전히 세인의 관심사다. 더욱이 “정치는 절대 하지 않겠다”던 그의 태도가 다소 변화한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1월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일식집 ‘스시꼬’에서 강 전 장관은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인재발굴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김혁규 의원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김 의원이 지난해 말부터 여러 번 만남을 요청한 끝에 마련된 자리였다. 짙은 회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나타난 강 전 장관은 김 의원과 1시간 30분간 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강 전 장관은 서울시장에 출마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고, “저는 정치적 탤런트(재능)가 없다”며 완곡하게 사양하면서도 “인생이란 게 운명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법무부 장관이 될지도 전혀 몰랐는데….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인생의 로드맵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가지 상황을 검토해 생각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절대로 안 나가겠다”에서 “생각을 해보겠다”는 쪽으로 그의 반응이 달라지면서, ‘강 전 장관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솔솔 불거져나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강 전 장관을 둘러싼 다양한 소문은 그의 출마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겼다. 강 전 장관이 대표변호사로 근무하는 법무법인 지평이 2월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건물로 이사할 예정으로 알려지면서 “서울시장 출마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또 강 전 장관이 법조계 측근들에게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한편, 강 전 장관의 몇몇 측근은 그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내젓는다.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 법무부에서 일하며 강 전 장관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검사는 “그분의 성품은 정치와는 맞지 않는다”며 ‘서울시장 출마설’에 의문을 내비쳤다.
“지난해 12월30일, 강 전 장관을 모시고 전 법무부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11월 말 참여정부의 여성인권대사로서 동남아국가를 여행했던 이야기,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문화와 예술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셨죠. 정치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통찰력이 뛰어난 강 전 장관은 한번 일을 시작하면 깊숙이 몰입하는 스타일입니다. 특히 사람을 보는 직관이 뛰어난데 상대방이 진실한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가려냅니다. 그분은 ‘겉도는 인간관계’를 혐오하고, 지인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해요. 그런 분이 속내를 감추고 ‘겉도는 인간관계’를 지향해야 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할 리 없죠.
김혁규 의원께 ‘생각해보겠다’고 답한 것도 웃어른에 대한 강 전 장관의 예의였다고 들었습니다. 어른이 그렇게 간곡히 부탁하시는데, 그 앞에서 딱 잘라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1월 중순, 강 전 장관을 만난 한 측근도 “강 전 장관이 언론과 정치권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피곤한 상태로 보였다”고 전했다. 몸살 기운을 호소하며,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버리더라는 것.
“강 전 장관은 정치에 관한 생각이 전혀 없는데, 옆에서 지나치게 흔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강 전 장관이 ‘제 모든 행동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부담스러워요. 어느 누구를 만나는 것조차 사람들의 입에 늘 오르내리고…. 전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하고 털어놓더군요.”
1 네팔 고산마을인 감차를 찾은 강금실 전 장관. 2 강 전 장관은 압둘 아지즈 방글라데시 교육부 차관(오른쪽)을 만나 아시아 여성 학대 금지에 대한 방글라데시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다. 3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시내 빈민촌에 위치한 모자보건센터를 방문한 강 전 장관. 사진·동아일보 사회부 정효진 기자 제공
하지만, 1~2주 차이로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강 전 장관은 “정치적 재능이 없다”며 정치권의 러브콜에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그를 끌어내기 위해 열린우리당이 사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강 전 장관과 경기여고, 서울대 법대 동기인 열린우리당의 조배숙 의원이 “(강 전 장관이) 출마하도록 적극 권유하겠다”고 나섰다. “지금 (강)금실이가 자신의 지지도가 제일 높은데 끝까지 안 나갔다가 ‘열린우리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면 어떡하나’라고 걱정하고 있다”는 조배숙 의원의 전언은 강 전 장관의 복잡한 심사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김근태 의원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판이 잘 안 되면 당신과 같이 강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언제쯤 답을 줄 거냐”며 강 전 장관을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김 의원은 1월18일 한 인터뷰에서 “(강 전 장관이) 책임감을 느끼며 서울시장 출마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주변의 출마 권유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강 전 장관은 언론과 일체 접촉을 피하며, 며칠간 사무실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 전 장관이 “설 전후에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하면서 그의 거취에 정치권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대사관 의전 과감히 생략한 채 동남아 곳곳 돌아다니며 한국 자원봉사자들 격려해
법무부 장관 퇴임 후, 그는 정치권의 구애를 뒤로 한 채 영향력 있는 여성 지도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는 ‘개인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며 억압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강 전 장관의 공적인 신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소장 신기욱 박사)가 주최한 ‘아시아 리더십 포럼’의 강연자로 초청돼 ‘한국에서의 여성리더십의 부상’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 강연에서 한국의 조직사회를 ‘보이즈 네트워크’라 규정하며, “오랜 남존여비의 역사를 지녀온 한국사회에서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남녀 상호간에 관용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녀평등의 기본정신을 근간으로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자 여성의 리더십을 향상시키는 길이라고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는 참여정부의 여성인권대사로서 지난해 11월23일부터 10일간 아시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를 순방하기도 했다. 남아시아 여성의 인권이 침해받고 있는 현장을 찾아 그들을 위로한 것. 이 인권여행에서 강 전 장관은 종교, 빈곤, 폭력, 전쟁, 재해의 굴레 속에서 ‘여성’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재난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 같다. 여성이 제2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 여성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요청한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이 인권여행에서 대사관 의전을 과감히 생략했을뿐더러 현지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을 직접 방문하기 위해 3~4시간씩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길 원하는 그의 소탈한 성품이 그대로 반영된 된 것. 이 인권여행에 동행했던 한 기자는 강 전 장관에 대해 “상당히 합리적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따뜻한 분이었다. 여행 중에도 한식당이나 격식있는 레스토랑보다 현지식당을 찾아다녔다”고 전했다.
변호사로서 강 전 장관의 행보도 늘 언론의 관심사였다. 법무부 장관 퇴임 후 법무법인 지평으로 돌아온 그는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어 화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의 공동변호인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그냥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려놓는 수준이 아니라,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상고이유서를 제출할 때 여러 가지 조언까지 했다. 비록 강 전 장관의 ‘조승수 의원 구하기’는 실패했지만 민주노동당 쪽도 그의 노력에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강 전 장관이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 지평은 오는 3월 중국 상하이에 사무소 개설을 앞두고 있다. 최근 상하이 인민 정부에 지사 설립 신청서를 제출해 이르면 올 3월부터 영업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것. 지평 상하이 지사는 중국 부동산개발 프로젝트와 관련된 법률자문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강 전 장관은 대표변호사로서 이 프로젝트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너무 즐거워 죄송하다”며 2004년 7월 장관직에서 물러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영원한 자유인’을 꿈꾸는 그가 다시 서울시장이란 타이틀로 국민 앞에 설까. 거침없고, 영민하며, 아름다운 여성 지도자가 또 한 번 ‘이 세상을 흔들어주기를’ 대중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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