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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designer #interview

쇼는 계속된다

EDITOR 안미은 기자

2018. 06. 21

테일러링으로 패션, 사진, 아트워크를 표현하는 패션 브랜드 부리(Bourie) 조은혜 디자이너와의 의기투합 인터뷰.

3월에 진행된 헤라 서울패션위크를 끝낸 뒤 어떻게 지내고 있나. 

패션위크는 ‘쇼’와 ‘비즈니스’가 함께 진행된다. 저마다 세일즈 부스를 차려놓고 세계 각지 바이어들과 미팅 강행군을 이어간다. 쇼가 끝나면 보통 한 달 정도 쉬는 게 관례인데, 이번에는 일주일 만에 바로 프리오더를 진행했다. 이왕 하는 거 속도감 있게 몰아붙여서 해보자는 팀원들과의 의기투합으로. 

부리 론칭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것 같다. 

그렇다. 2014년 부리를 론칭하고 매 시즌 국내외 쇼를 ‘해내고’ 있으니까. 나 같은 경우는 게을러서 쇼를 한다. 정해진 쇼가 없으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 거다. 몇 년 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가방 라인인 세컨드 라벨 ‘푀뜨레 빠흐 부리’를 론칭했고, 2016 헤라 서울리스타어워드에서 신진 디자이너상을 수상했으며, 국내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쇼룸(MC2)을 운영해왔다. 최근엔 호주와 한국의 패션 콜래보레이션 프로젝트인 ‘AKF(Australia-Korea Foundation Emerging Designer Program)’ 디자이너로 선정돼 더 바빠질 예정이다.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일을 ‘즐길’ 여유가 없겠다. 

지난 시즌이 딱 그랬다.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질문이 크게 다가왔다. 패션업계 선배들은 그런 얘기를 하기에는 이르다고, 3년만 더 해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나는 당장 답을 찾고 싶었다. 자꾸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뭔지 조목조목 적어보기까지 했다. 

그래서 답은 찾았나. 

이번 헤라 서울패션위크 컬렉션에 답이 들어 있다(웃음). 패션은 더없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마냥 판타지일 수는 없는 세계다. 결국 세일즈와 연결돼야 하니까. 디자이너가 좋아하는 컬러라고 컬렉션 전체 의상을 블랙으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제약들을 모두 털어버렸다. 마음 가는 대로 디자인하고 연출했다. 7백에서 1천 석 정도 되는 DDP 좌석을 모두 채워야 한다는 두려운 요소도 없앴다. 스몰 웨딩처럼 4백 명 정도만 초대해 소규모로 쇼를 진행했다. 옷이 잘 보이도록 좌석과 무대는 최대한 가깝게 배치했다. ‘이렇게 막 해도 쇼가 되는구나’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 이번 2018 F/W 컬렉션에 대해 말해달라. 

‘무슈(monsieur, 아저씨)’와 ‘갸르손느(garconne, 소년 같은 소녀)’라는 테마로 진행했다. 어디에도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소녀를 뮤즈로 한다. 부드러운 선과 작별하고 각진 실루엣으로 중성적인 무드를 더했다. 마치 아빠 재킷을 걸친 것처럼. 테일러 슈트를 메인으로 스티치 패딩 재킷, 페이크 퍼 코트 등 개성 강한 아우터들도 등장한다. 음악은 아주 거칠다. 모델들에게는 정형화된 워킹이 아닌, 각자의 개성대로 불량스럽게 걸어줄 것을 요청했다. 



부리 고유의 장인적 소재와 남다른 실루엣이 돋보인 컬렉션이었다. 이 모든 패턴을 하우스에서 직접 디자인한다는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어떻게 보면 패턴이 좋아서 패션을 하는 거다. 선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 개개인마다 필체가 다른 것처럼, 하나의 선을 그려도 모두 다른 선을 그린다. 심지어 자를 대고 일자로 그어보라고 해도 그 선에서 느껴지는 텐션감이 다르다. 그런 개성 있는 선들이 모여 면이 되고 옷이 되는 과정이 즐겁다. ‘똑같은 재킷인데 부리는 뭔가 달라’ 하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브랜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은혜 디자이너는 다른 것 같다. 생명체를 대하듯 한다. 

정확하다. 사실 나는 패션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부리를 위해 포기하는 게 참 많다. ‘이젠 그만해야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이미 부리는 자생력을 가지고 있더라. 내가 만들고 이끌어가는 브랜드지만 함부로 권력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이화여대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더라. 무엇이 패션으로 이끌었나.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해왔다. 음대를 졸업해서 유학을 다녀온 뒤 공연 기획사에서 일하는 것. 내게는 당연한 삶의 공식 같은 거였다. 그런데 22살에 미국 뉴욕으로 연수를 가면서 패션 세계에 눈을 떠버렸다. 옷을 보는 게 너무 좋아서 거의 쇼핑몰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 번은 아픈 몸을 이끌고 갔다가 백화점에서 쓰러진 적이 있다. 그걸 본 지인이 너는 패션을 해야겠다고 하더라.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이 두렵기는 했지만 간절한 마음이 더 컸다. 결국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에 있는 디자인 스쿨 ‘사디’에 들어갔다. 건국대학교 근처에 비어 있는 슈퍼를 월세로 계약해 밤낮으로 아트워크 작업을 했다. 패턴을 뜨고 소재 개발을 하고, 때때로 조명이나 가구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 간단한 커피와 디저트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웠던 사디 생활을 마치고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패턴을 공부했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가 패션에 어떤 영향을 줬나. 

하나의 브랜드를 운영하려면 디자인만 잘해서는 안 된다. 룩북과 영상 같은 비주얼 디렉팅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매 시즌 치르는 컬렉션 쇼를 위해 무대 감각과 음악적 감각까지 부지런히 익혀둬야 한다. 쇼룸에 바이어를 초대할 때는 인테리어와 케이터링을 일일이 신경 써 준비하고. 하다못해 공문 한 장을 만들더라도 공을 들여야 한다. 내가 하는 모든 게 부리로 해석되기 때문에. 

영감은 어디에서 받나. 

‘사람’에게서 가장 큰 자극을 받는다. 만약 당신이 30살이라면 30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람인 거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말투와 억양, 자주 하는 습관 같은 데서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게 내게는 하나의 패키지처럼 다가온다. 영감의 소스가 꼭 실존하는 인물일 필요는 없다. 영화나 사진, 그림, 책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괜찮다. 때론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섞어 나만의 뮤즈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럼 부리에는 조은혜 디자이너가 만난 수백·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웃음). 부리 이름도 그런 의미에서 따왔다. 부유할 부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부리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풍부했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앞으로 부리는 어떤 변화를 꿈꾸나. 

글쎄.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다. 이미 생명력을 가진 브랜드니까. 내 손을 떠난 기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부리가 큰 주목을 받거나 탁 튀어 오르길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대중들 뒤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수다스럽지 않고 묵묵히 내실 있는 브랜드였으면 한다. 부리 옷들이 좋은 주인을 찾아가면 가장 좋겠고. 우리 브랜드 쇼핑백을 가지고 나갔을 때 창피하지 않길 바란다면 큰 욕심일까? 

응원하겠다. 인터뷰에 앞서 얘기 들었겠지만 이건 지목 인터뷰다. 다음 인터뷰이를 추천해본다면. 

뮌서울의 한현민 디자이너. 나처럼 테일러링을 하는 친구다. 사진을 전공해서 그런지 아트워크 같은 비주얼 감각이 뛰어나다. 남성복이라 분야는 다르지만 큰 자극제가 된다.

#부리 #조은혜디자이너


조은혜 디자이너가 이끄는 부리는 고유의 테일러링을 통해 패션이나 사진, 영상, 아트워크 등을 표현하는 패션 브랜드다. 하나의 아이템에 공존하는 모순된 디테일들이 주는 키치한 감성을 추구한다.


사진 김도균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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