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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사연

급우에게 폭행당해 숨진 홍군 부모 참담한 심경 고백

“다시는 제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기획·강지남 기자 / 글·김순희‘자유기고가’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5.11.01 16:16:00

지난 10월1일 부산의 한 중학교 교실에서 남학생이 급우에게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부모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고 “상황이 이래서야 어떻게 맘 놓고 자식을 학교에 보내겠냐”며 불안에 떨고 있다.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학생의 부모 홍권식·김영희씨가 참담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급우에게 폭행당해 숨진 홍군 부모  참담한 심경 고백

옛말에‘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홍권식(47)·김영희(47)씨 부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14)을 가슴에 묻었다.
지난 10월1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고 현관에 서서 “엄마, 아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아들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사고소식은 남편보다 제가 먼저 들었어요. 학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들이 다쳐서 병원 응급실에 갔다고 했어요. 응급실로 뛰어가 아들 이름을 불렀는데 아들은 대답은커녕 의식조차 없는 상태였어요. 안되겠다 싶어서 남편에게 병원으로 오라고 전화를 걸었어요. 얼마나 다쳤는지, 얼마나 위독한지는 차마 말할 수 없었어요. 어휴, 불쌍한 내 아들….”
김씨가 사고 직후 상황을 설명하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당시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부산에서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홍군은 교실에서 급우에게 폭행을 당한 후 사경을 헤매다 10월5일 오전 숨을 거뒀다.
사고 직후부터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한 김씨의 몸무게는 현재 겨우 40kg 남짓. 김씨는 “내 얼굴은 사진 찍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면서 “아들이 ‘엄마’ 하고 부르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그 아이는 아내와 제게 보석 같은 존재였어요. 자식 소중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우리 부부에게 아들은 전부나 다름없었어요. 저나 아내나 ‘아들 때문에 산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을 정도니까요. 일찍 떠났지만, 엄마 아빠에게 많은 걸 주고 간 아이예요.”
홍군의 아버지 홍권식씨는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 곁을 빨리 떠나려고 그랬던 것 같다”고 독백하듯 말했다.

친구와 함께 책을 읽다 책장을 먼저 넘긴 일이 끔찍한 사건의 발단이 돼
급우에게 폭행당해 숨진 홍군 부모  참담한 심경 고백

홍군의 폭행치사 사건을 기록한 서류.


경찰조사 결과 ‘중학생 폭행치사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다. 다음은 가해자 최군(14)이 경찰에 밝힌 사건경위다.
홍군과 최군은 쉬는 시간에 학급문고에 비치된 책을 함께 읽었다. 홍군이 먼저 책장을 넘기자 최군이 “책 내용을 다 파악했냐”고 물었고 홍군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최군은 “내가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문제를 낼 테니 맞혀봐라. 만약 틀리면 그때마다 군밤 한 대를 맞는다”고 했다는 것.
최군이 낸 문제를 모두 틀린 홍군은 최군에게 꿀밤 다섯 대를 맞았고 자존심이 상한 홍군은 최군과 함께 읽던 책을 집어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던진 책이 최군 어깨를 스쳤고 이에 화가 난 최군은 벌떡 일어나 홍군의 가슴과 턱을 가격했다. 또 최군은 교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홍군을 향해 의자를 던지고 홍군의 가슴과 머리를 짓밟았다고 한다.
“아내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상당히 다급했어요. 병원 가는 길에 ‘제발 머리만 다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어요. 병원에 도착해 아들 눈부터 살펴봤는데 이미 동공이 확장된 상태더군요. 응급실에 있는 보건교사에게 ‘경찰에 신고했냐’고 물었더니 ‘조금만 있으면 아이가 괜찮아질 테니까 그때 전화하겠다’고 하더군요. 아이 상태가 심상치 않은데도 학교 측은 경찰신고를 외면한 거죠. 그래서 제가 직접 112에 신고했습니다.”

급우에게 폭행당해 숨진 홍군 부모  참담한 심경 고백

아직 정리되지 않은 홍군의 책상


의료진은 홍권식씨에게 아들의 상태가 심각해 뇌수술을 받는다 해도 정상인이 될 수 없다고 소견을 밝혔다. 홍씨는 “식물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살게만 해달라”고 의료진에게 애원했다고 한다.
“의료진이 아들을 ‘그냥 보내주자’고 했어요.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기고 면회시간에 저 대신 아들의 친구들을 중환자실에 들여보냈어요. 친구들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아들 친구들에게 ‘빨리 일어나서 학교에 같이 다니자’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CT촬영 결과 홍군은 뇌에서 출혈이 심했고, 특히 폐의 3분의 1가량이 파열된 상태였다고 한다.
홍군이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홍씨는 문득 아들이 기적처럼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홍씨는 ‘내일 학교에 가려면 교복을 다려놔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중환자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향했다고 한다.
“아내 대신 아들 교복을 정성껏 다렸어요. 마음속으로 제발 이 옷을 입고 다시 학교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씩씩하게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어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빌었어요. 아들이 깨어나야 아들을 때린 최군도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되뇌었어요. 하지만 이제 아들은 어디에도 없어요. 아들이 얼마나 공포에 시달렸을지, 인간적인 모멸감은 또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아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가슴이 찢어지기는 부인 김씨도 마찬가지.
“아들이 이승에 미련을 두지 않도록 훌훌 떠나보내야겠지만 아직도 남편과 저는 아이를 놓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군대 간 큰아들만 아니었으면 아들 뒤를 따라 죽고 싶은 심정이에요.”
홍씨 부부는 아들 학교 측의 처사에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학교 측이 홍씨에게 밝힌 최군의 폭력은 꿀밤 다섯 대와 홍군의 가슴을 한번 때린 게 전부였다는 것. 홍씨 부부는 이 점이 가장 섭섭하다고 한다. 홍씨는 “학교 측은 이 사건을 단순한 폭행사건 정도로 축소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며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8년째 용돈 아껴 무의탁 노인 도운 심성 고운 아들
급우에게 폭행당해 숨진 홍군 부모  참담한 심경 고백

무의탁노인에게 매달 1만원씩 보낸 홍군의 통장.


엄마 김영희씨가 홍군의 방에서 낡은 은행통장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통장에는 매달 1만원씩 자동이체된 내역이 찍혀 있었는데, 8년 동안 무의탁 노인에게 매달 자신의 용돈에서 1만원씩 보낸 것이라고 했다. 홍군의 용돈은 초등학생 때는 3만원, 중학교 1학년 때는 4만원,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는 5만원이었다고 한다.
“자기 쓰기에도 부족했을 텐데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양로원에 살고 있는 무의탁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보냈어요. 저희는 그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부부가 아들이 하던 일을 하려고 해요. 그게 아들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홍군은 착한 아이였다. 일곱 살 차이가 나는 형의 큰 옷을 물려 입으면서도 싫은 내색 한번 안 하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맞벌이하는 부모를 위해 집안일도 곧잘 도왔다고 한다. 엄마 아빠가 서로 언쟁을 벌일 때면 옆에 다가와 “아빠, 숨 한번 크게 내쉬어봐”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화가 났더라도 잠시 생각할 여유를 가지라는 것. 김영희씨는 “아들 덕분에 집안에 웃음이 넘쳐흘렀다. 지금도 집안 어디에선가 놀고 있을 것만 같다”며 울먹였다.
“아들은 저희 기억 속 모든 곳에 자리 잡고 있어요. 아들 손을 잡고 갔던 유치원, 초·중학교 입학식, 운동회, 소풍…. 제 가슴과 온몸은 그 아이의 기억으로 생생한데 이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먼 곳에 있어요. 손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신기루가 돼버렸네요.”

급우에게 폭행당해 숨진 홍군 부모  참담한 심경 고백

인터뷰 내내 애써 의연함을 잃지 않은 홍권식씨. 그의 부인 김영희씨는 사진촬영은 거절했다.


홍씨가 가해학생인 최군의 부모와 얼굴을 마주한 것은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이 지나서였다. 최군 부모가 병원에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흥분하면 절대 안 된다”고 수없이 마음을 가다듬었다. 최군 부모는 홍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제가 최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어요. 그때 심정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가해학생 부모나 저희나 모두 참담한 심정이었지요. 아이의 숨이 멎은 후 최군 큰아버지가 영안실에 찾아오고 장례식이 끝난 후 최군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지만 만나지 않았어요. 화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홍군과 최군은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사고가 나기 한 달 전까지 최군은 홍씨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살았다고 한다. 홍씨는 “아들에게 지난 여름방학 때 최군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까 저희 집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어요. 하지만 저나 아들 모두 최군과 다른 아이들이 자주 놀러오는 걸 못마땅해했어요. 하지만 아들이 ‘오지 말라고 하면 행패를 부려서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준다’고 하더라고요.”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쯤 홍씨 부부가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홍군이 현관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고 한다. 최군을 비롯한 급우 몇 명이 홍군 집을 찾아왔는데 홍군이 문을 열어주지 않자 집 앞에서 행패를 부리다 돌아갔다는 것.
“남들은 아들과 최군이 친하게 지낸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들이 어쩔 수 없이 최군과 어울리는 척했던 것 같아요.”
홍군이 중환자실에 있을 당시 면회를 온 학교 친구들은 이 학교 교장선생님과 홍씨에게 “최군이 우리 학교 2학년 중 짱”이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모두 다 용서할 겁니다. 그래야 제 아들이 좋은 데 가지 않겠어요”
김영희씨는 아직 몸과 마음을 추스리지 못했지만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 매일 아침마다 절에 가서 백팔배를 올리고 있다.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며 오직 아들이 좋은 세상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것. 홍권식씨는 “그런 아내를 보고 모두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홍씨는 아들을 먼저 보냈지만 애써 눈물을 감췄다. 자신마저 눈물을 보이면 아내와 가족들이 더 힘들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홍씨는 “내 인생은 없어졌다”고 말하면서도 인터뷰 내내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아들 잃고 힘들어하는 아내 앞에서 눈물 보일 수 없어 참고 또 참고 있어요. 지금까지 눈물을 꾹 참고 있지만…. 아내에게 49재 마치고 나면 처갓집 식구들과 한 이틀 보내라고 했어요. 아내가 ‘어디를 갈 거냐’고 묻데요. 혼자 아무도 모르게 산속에 가서 실컷 울고 오겠다고 했어요. 미친 듯이 울고 싶어요. 사랑하는 아들 이름을 부르면서….”
아들에게 “너는 우리 생에 있어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말을 직접 해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는 홍씨 부부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학교폭력 근절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한다. 홍씨는 아들이 정부가 지정한 의무교육을 받다 교실에서 벌어진 폭행으로 사망했음에도 교육당국은 사과의 뜻을 전달하기는커녕 홍씨의 대책마련 촉구에 탁상공론만 벌이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홍씨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119 구급차를 기다리기보다 곧바로 출동할 수 있는 응급차량의 확보, 퇴직 경찰관이 학교에 상주하는 스쿨폴리스 제도의 확대, 학교폭력 전문상담원 제도 등이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침에 밝게 웃으며 학교에 간 아들이 차가운 주검으로 되돌아왔을 때의 심경은 세상 그 어떤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고 토로하는 황씨 부부. 이들의 아픔이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학부모와 학교, 그리고 교육당국이 최선을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최군은 지난 10월7일 구속수감됐으며 그의 부모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여성동아 2005년 11월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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