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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 인생 고백

드라마 ‘하늘이시여’로 안방극장 데뷔한 뮤지컬 스타 박해미

“극심한 고통 끝에 이혼, 8세 연하 남편과 재혼해 행복 되찾고 뮤지컬 배우로 성공하기까지 남모르는 아픔…”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11. 01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여주인공의 계모로 등장해 개성 연기를 펼치고 있는 뮤지컬 배우 박해미. 그가 극심한 고통 끝에 이혼 후 8세 연하의 황민씨를 만나 행복을 되찾기까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드라마 ‘하늘이시여’로 안방극장 데뷔한 뮤지컬 스타 박해미

지난해 최고의 화제를 몰고온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여주인공 도나로 열연해 박수갈채를 받은 박해미(41)가 최근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여주인공 자경(윤정희)의 계모 배득이로 등장해 개성 연기를 펼쳐 눈길을 끈다.
“‘맘마미아’가 끝나고 곧바로 ‘브로드웨이 42번가’ ‘메노포즈’에 출연했어요. ‘메노포즈’는 지금도 지방 순회공연을 하고 있고요. 10월25일부터는 한 달 동안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카르멘’을 공연해요. 거기에 경기대에 강의 나가고, 드라마 촬영도 하려니 정신이 없네요.”
그의 드라마 출연은 이번이 처음. 그는 드라마 극본을 쓴 임성한 작가가 직접 그를 지목했다는 말을 듣고 작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첫 드라마 출연이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고. 물론 차근차근 대사를 외우고 동작을 연구한 후에 연기를 하는 연극과 달리 짧은 시간에 대본을 분석하고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뭔가 부족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색다른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그는 시청자들로부터 “정말 못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역이다. 악역 이미지로 고정될 수도 있는데 걱정이 안 되냐고 묻자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뮤지컬 무대에서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 그런 생각 전혀 안 했는데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착한 역은 재미없잖아요. 시놉시스를 보니까 배득이에 대한 설명 중 ‘암적인 존재’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친근감이 느껴졌어요. 어렸을 때 하도 말썽을 부려 엄마가 절 야단칠 때 제일 많이 하던 말이었거든요(웃음). 단순한 악역이면 제가 출연하지도 않았겠죠.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배득이는 그럴 만한 사연을 가진 여자예요. 시청자들 중에 절더러 밉지 않은 악역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제가 연기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듯 그는 자신감에 차 있고,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솔직하다. 심지어 여자라면 숨기고 싶을 법한 자신의 과거, 잘못된 만남에서 이어진 고통스러웠던 지난 결혼생활과 이혼 사연, 방황의 시간을 얼마 전 출간한 자전에세이 ‘맘마미아, 도나의 노래’에 낱낱이 털어놓았다.

며칠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백발이 될 정도로 정신적 고통이 극에 달해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야 제가 이뤄야 할 많은 꿈들을 향해 보다 홀가분하게 달려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주변에선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고 말렸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생의 질곡을 겪은 것이고 잘 극복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살던 그에게 아픔이 닥친 것은 대학 4학년 때. 그는 에세이에서 ‘모든 불행은 한 남자에게서 시작되었다. 어쩌면 그 남자의 불행도 나로부터 시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들이 만나면 서로가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할퀴고 만다. 둘 중 한 사람만 온전하게 남기는 힘들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뿐이다’고 털어놓았다.
어느 날 학교를 나서는데 한 남자가 다짜고짜 ‘단체 미팅을 한번 하자’며 말을 걸어왔다. ‘싫다’며 아무리 도망을 가도 그 남자는 집요하게 따라붙었고 도저히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아 한번 만나주었는데, 그 한번이 화근이었다. 그는 한번의 잘못된 만남으로 깜깜한 어둠의 터널로 들어서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인생에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 존재하는 법이고, 자신은 그러한 불가항력의 시간을 견디고 헤쳐나왔다고 말한다.
불행한 인연으로 시작된 결혼은 그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친정엄마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그는 자존심과 오기, 그리고 아이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결국 5년여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이혼하며 오직 하나 아이만을 원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법은 시집의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하늘이시여’로 안방극장 데뷔한 뮤지컬 스타 박해미

“이혼을 결심하고 캐나다에 있는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도와달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놀라서 달려오셨는데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너 머리가 왜 이러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제야 거울을 보니까 며칠 사이에 제 머리가 하얗게 백발이 됐더라고요. 정신적 고통이 극에 달하면 백발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정말 그렇게 된 거죠.”
그렇게 센 머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때부터 그는 검게 염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린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도 저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은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에세이를 내기 전까지 전 남편의 이름만 들어도 힘들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깊었지만 이젠 연민이 느껴진다고 했다. 책을 쓰며 마음의 응어리를 털어버린 것. 그래서일까, 그는 담담하게 “전 남편이 나를 정말 사랑했고 나름대로 헌신했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다며 사랑의 표현방법이 잘못된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혼하며 헤어진 큰아이 잘 키워준 아이 고모에게 고마울 뿐”
이혼 후 친정 엄마를 따라 캐나다로 간 그는 한동안 몸도 마음도 한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해가 질 무렵이면 마음 한구석이 뭉근하게 아파왔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고.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지만 두고 온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다 깨면 아이 얼굴이 아른거리고,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온통 ‘아이가 밥은 먹었을까’ ‘엄마를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고.
이혼 후 그의 상처를 보듬어준 것은 뮤지컬 무대였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무렵 현대극단에서 세계 20개국을 순회 공연하는 ‘장보고의 꿈’ 출연 제안을 해왔다. 그는 ‘나중에 아이가 나를 찾아왔을 때 떳떳한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사는 엄마, 정열적인 배우 박해미로 거듭나자’고 다짐하며 무대에 섰고, 몸과 마음을 다해 몰두했다. 그러면서 삶의 의욕을 차츰 되찾게 됐다.
드라마 ‘하늘이시여’로 안방극장 데뷔한 뮤지컬 스타 박해미

그러던 중, 그의 모습에 반한 남자가 나타났다. 8세 연하인 황민씨(33)였다. 캐나다 교포로 잠시 한국에 왔던 황씨는 박해미가 공연하는 일인극 ‘각시품바’를 보러왔다가 그의 매력에 빠져 캐나다로 돌아간 지 일주일 만에 가방을 싸들고 그의 집을 찾아왔다. 그렇게 해서 5년 가까이 두 사람은 동거하다시피 했지만 박해미는 황씨의 구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첫 결혼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이었다.
“때론 저 스스로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구박하는데도 묵묵히 내 비난을 받아주었어요. 차를 타고 가다 싸움이 격해져 신촌에서 그를 내리게 한 적도 여러 번 있어요. 그런데도 일산에 있는 우리 집까지 밤새 걸어서 왔어요. 집에서 쫓겨나 지하보도에서 자다가 아침에 제 전화를 받고 기뻐서 들어온 적도 있고요(웃음).”
이렇듯 애정공세를 퍼붓는 황씨에게 결국 마음의 문을 연 그는 임신을 계기로 2000년 결혼식을 올렸다.
“한동안 풀어주었더니 요즘 점점 목소리가 커져요(웃음). 그래도 정말 잘하죠. 얼마 전에도 캐나다에 사는 남편 친구들이 한국에 왔어요. 제가 밤 10시쯤 귀가했더니 그때까지 아이를 보고 있다가 친구들 만나러 나가겠대요. 그래서 아이 씻기고 재운 후에 가라고 했죠. 그러니까 열심히 씻기고, 아이를 재우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하는 거예요. 그게 귀여워서 ‘수고했으니 그만 가보라’고 했어요.”
남편의 아이에 대한 사랑은 정말 끔찍하다고 한다. 주말엔 무조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잠깐 놀아주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몸을 던져 논다고. 그래서 아이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드라마 ‘하늘이시여’로 안방극장 데뷔한 뮤지컬 스타 박해미

박해미는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위한 일에 동참하고 싶다고 했다.


“저는 그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유치원 선생은 지금 여섯 살인 아들이 글자를 모른다며 학습부진이라고 걱정하는데 그러면 어때요. 공부보다는 많이 놀고 많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틈만 나면 아이에게 뭔가 보여주기 위해 집을 나서요.”
연일 계속되는 공연으로 지칠 때도 많지만 그는 기꺼이 아이를 위해 휴식시간을 포기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아이의 즐거운 웃음에 피로가 씻긴다”는 그는 뮤지컬 연습 후에는 다른 약속을 하지 않고 집으로 달려갈 뿐 아니라 꼭 참석해야 할 뒤풀이 자리가 있으면 아이를 데리고 간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이젠 아이를 안 데리고 나타나면 서운해할 정도라고.
“제가 가는 곳에 항상 아이랑 남편이 따라오니까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별책부록이랑 사은품’이라고 불러요(웃음).”
그의 행복한 웃음 뒤로 언뜻 그늘이 보인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이 때문이다. 그는 이혼 후 한동안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 두어 번 찾아갔지만 더는 만나지 못한 채 간간이 아이 소식을 들으며 눈물만 흘렸다고.
그는 최근 용기를 내서 큰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찾아가 8년 만에 다시 아들을 만났다고 한다.
“아이를 만나러 가면서 ‘아이가 아무리 나를 냉대하더라도 감수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저를 보곤 마치 얼마 전에도 만났던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엄마 웬일이야? 그새 예뻐졌는데. 왜 뮤지컬에선 멋진 역할을 하는데 텔레비전에선 못된 역할을 해’ 하는 거예요.”
박해미는 아들을 보지 못했지만 아이는 그가 하는 뮤지컬도 보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엄마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하지만 뮤지컬을 보러 왔으면서도 엄마를 부르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갔을 아이 심정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너 엄마 안 보고 싶었냐고 하니까 ‘보고는 싶었는데, 식구들에게 미안해서 그런 말을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고모가 결혼도 안 하고 자기를 잘 키워줬다고 해요. 씩씩하고 밝게 자라게 해준 아이 고모에게 정말 감사해요.”



내년엔 자신이 제작한 뮤지컬 무대에 남편과 함께 오를 계획
그는 2000년 뮤지컬을 제작하다 수억원의 빚을 져 그걸 갚느라 지난해 말까지 허리가 휘청했다고 한다. 이제 빚을 다 갚았으니 내년에 새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며 또한 그때 무대에 올리지 못한 뮤지컬을 내년에 꼭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I do I do’라는 작품인데, 한 부부가 결혼식을 올릴 때부터 늙어서 마지막 여행을 떠날 때까지의 이야기예요. 아주 좋은 작품이라 꼭 올리고 싶어요.”
그는 자신이 직접 출연할 예정인데 특별 이벤트로 남편 황민씨를 한두 번 정도 남편 역할로 출연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황민씨는 이미 그가 출연했던 뮤지컬에 찬조출연한 적이 있을 정도로 배우로서의 끼가 많다고.
“요즘 드는 생각이 40세에 물이 오르는구나 싶어요. 물론 젊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좌절을 딛고 일어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어요. 제 이야기가 저와 비슷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으면 좋겠어요.”
그는 “고통과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이 시작”이라는 말을 즐겨한다고 한다. 그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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