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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기대되는 변신

코믹 연기에 도전하는 뮤지컬 배우 이태원

기획·송화선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출판사진팀

2005. 10. 10

뮤지컬 ‘명성황후’의 헤로인 이태원이 우아한 황후의 옷을 벗고 수녀로 거듭난다. 명랑한 수녀들이 등장하는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를 통해 코믹 연기에 도전하는 것. 이태원을 만나 새 작품에 임하는 각오와 지난해 4월 결혼한 네 살 연하 남편과의 알콩달콩 결혼생활에 대해 들어보았다.

코믹 연기에 도전하는 뮤지컬 배우 이태원

지난 9월13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1층 연습실에서는 코믹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 연습이 한창이었다. 땀 흘리며 연기에 몰두해 있는 배우들 가운데 한눈에 들어온 이는 뮤지컬 ‘명성황후’의 주인공 이태원(39). 그는 10월1일부터 충무아트홀 무대에 오르는 ‘넌센스 잼보리’서 원장 수녀 윌헬름 역을 맡아 막바지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윌헬름은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 극의 분위기를 띄우는 비중 있는 배역.
‘배우 이태원’ 하면 뮤지컬 ‘명성황후’ 속 비운의 국모만 떠올리는 이들에게 그의 코믹 연기는 놀라운 변신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최근 잇달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9월 초에는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퓨전 뮤지컬 ‘나! 심청’에서 전생에 ‘폼페이 창녀’였던 심청 어머니 역할을 맡아 하드록을 부르고 침대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연기까지 펼쳤다.
“너무 파격적인가요? 하지만 97년 ‘명성황후’를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다른 걸 하나도 못했거든요. 록에 코믹 연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몸은 힘들지만 참 재미있어요.”
이태원은 미국 줄리아드 음악학교와 피바디 음대 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한 성악가 출신 배우. 지난 95년 우연히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의 티엥 왕비 역 오디션에 참가한 뒤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됐다. 이 오디션에 합격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하면서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이다. 그는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다 97년 우리 뮤지컬 ‘명성황후’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면서 명성황후 역을 맡게 됐다.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가 우리나라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브로드웨이 공연의 주역을 맡길 배우를 현지에서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날 밤 무작정 서울로 전화를 걸었죠. 연출가 윤호진씨에게 저를 소개하고 명성황후 역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해서 이태원은 브로드웨이 ‘명성황후’의 주연이 됐고, 황후 역으로 6백여 회나 세계 무대에 섰다.
“언제부턴가 제가 명성황후인지, 명성황후가 저인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배역에 몰입하게 됐어요. 명성황후로 무대 위에 서는 건 늘 저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죠. 하지만 이젠 또 다른 도전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새로운 것이 좋거든요. 성악가에서 뮤지컬 배우로,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왕과 나’의 티엥 왕비에서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헤로인으로 계속 변신한 것처럼, 낯설고 어려워 보이는 세상으로 또 한번 뛰어들어보는 거죠.”
코믹 연기에 도전하는 뮤지컬 배우 이태원

99년 ‘페임’의 심사위원과 오디션 참가자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이태원·방정식 부부.


사랑에 있어서도 이태원은 용감했다. 지난해 4월 네 살 연하이며 후배 뮤지컬 배우인 방정식씨(35)와 결혼한 것. 두 사람은 99년 뮤지컬 ‘페임’의 오디션에서 심사위원과 오디션 참가자로 처음 만났고 그 후 이태원이 ‘페임’의 노래 지도를 맡으며 자연스레 친해졌다고 한다. 연인 사이로 발전한 건 공연이 끝난 뒤부터다.
“남편은 솔직하고 남자답고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저를 많이 위해주고요. 다른 게 더 필요한가요? 여자는 자기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났을 때 가장 행복한 거 같아요.”
남편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태원의 얼굴에는 한가득 웃음이 피어났다. 시어머니와도 함께 살고 있다는 그는 “남들은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솔직히 말하면 결혼해서 지금까지 설거지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일하느라 힘들다고 어머니가 숟가락 하나 만지지 못하게 하신다”며 각별한 시어머니 사랑을 자랑했다.

코믹 연기에 도전하는 뮤지컬 배우 이태원

이태원은 이혼의 아픔을 겪은 적이 있다고 한다. 줄리아드 음대 졸업을 앞두고 동기생들에 비해 자신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점점 성악에 대한 흥미를 잃어갈 무렵 돌파구로 선택한 결혼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때는 얼른 대학 졸업하고 결혼해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결혼이 제 부족한 재능에 대한 불만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줄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한 번의 실패를 통해 그는 결혼생활이 늘 평탄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며, 무엇보다도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지금의 안정감과 행복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한번의 실패 뒤에 얻은 행복,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이태원은 지난 3월부터 명지대 공연예술과 교수로 대학 강단에도 서고 있는데 얼마 전 한의원에 갔더니 한의사가 ‘맥이 잡히지 않는다’며 ‘몸이 너무 피곤한 상태니 푹 쉬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쓰러질 듯 피곤해하다가도 무대에만 서면 펄펄 날아 동료 배우들에게 ‘독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그는 이번 작품도 최선을 다해 멋지게 끝낼 것이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명성황후’를 공연하다 1막을 끝낸 뒤 무대 뒤에서 쓰러진 적이 있는데 막간 휴식 15분 사이에 응급처치만 받고 무사히 공연을 마쳤어요. 그 후 공연기간 내내 매일 아침 침을 맞고 수시로 부황을 뜨며 무대에 섰죠(웃음). 하지만 관객들은 아무도 제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어요. 무대에만 서면 평소와 다름없이 연기할 수 있었거든요.”
무대 위에서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순간이 너무 행복해 언제나 새로운 힘이 샘솟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태원은 “앞으로도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배우로 살다 더 나이가 들면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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