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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타의 진솔한 모습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생활 공개한 영화배우 한석규

“촬영 끝내고 집에 들어서다 ‘아빠’ 하고 달려오는 아이들 안을 때 가장 행복해요”

기획·최호열 기자 / 글·전상희‘스포츠조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5. 08. 02

오랜만에 코미디 영화로 팬들을 만날 예정인 영화배우 한석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영화 촬영장에서 기자를 만나 알려지지 않은 가정생활과 진한 가족사랑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생활 공개한 영화배우 한석규

영화배우한석규(41)가 95년 스크린 데뷔작인 ‘닥터 봉’ 이후 10년 만에 코미디에 도전한다. 9월 초 개봉 예정인 영화 ‘미스터 주부 퀴즈왕’이 그것. 그는 극중에서 경제권을 쥔 아내에게 꽉 잡혀서 사는 남자 전업주부 역을 맡았는데, 아내(신은경)의 적금을 날린 뒤 그 돈을 채워넣기 위해 TV ‘주부 퀴즈쇼’에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아울러 전업주부로서의 고생담이 리얼하게 펼쳐진다고.
연기파 배우로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던 그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인 셈이다. 전작 ‘그때 그 사람들’ ‘주홍글씨’ ‘이중간첩’ 등 사회성 짙은 작품에서 벼린 칼처럼, 그 끝이 팽팽하게 살아 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엔 사정없이 망가지고 풀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작품의 흐름을 많이 타는 편”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촬영장에서 만난 한석규는 이전 영화 촬영 때와는 달리 여유가 넘치는 듯 스스럼없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기로 소문난 그였기에 뜻밖이었다.
영화에서 커리어우먼인 아내를 대신해 가사를 책임진 한석규는 트레이닝복과 앞치마가 기본 의상이다. 검은색 똑떨어지는 정장 차림의 CF 속 모습과는 180도 다르다. 솥뚜껑 운전은 기본이고, 어머니(김수미)와 수다를 떨면서 김장을 담그고, 멸치를 다듬는다. 누워서 TV 보는 아내에게 과일을 깎아 바치기도 하는 등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하루해가 짧다.
평범한(?) 남자배우라면 꽤나 NG를 냈을 법한 장면들인데 그는 능숙하게 칼을 휘둘렀다. 설익은 연기를 예상했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실생활에서 쌓은 노하우를 발휘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

“지난해까지 아이들과 한방에서 자며 정 쌓아”
“제가 4형제 중 막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깨너머로 기본기를 익혔죠.”
“웬만한 요리는 자신 있다”고 말하는 그는 기본적인 찌개류는 물론이고 김장도 담글 줄 안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가 집에서 부엌 출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결혼 전에 갈고닦은 요리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좀처럼 없다고. 촬영이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아내가 그냥 다 알아서 하더라고요. 설거지도 절대 시키지 않던데요.”
그래도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아이들 목욕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의 아이들을 목욕시키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을텐데, 오랜 기간 단련한 결과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긴 덕분에 이젠 척척 해치운다고 말한다. 그 외에 못질을 하거나 집에 손볼 일이 있으면 직접 망치를 들고 나선다고.
KBS 성우 출신 임명주씨(39)와 96년 결혼, 1남2녀를 두고 있는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며 지극한 사랑을 표현했다. ‘미스터 주부 퀴즈왕’을 선택하게 된 데는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던 욕심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생활 공개한 영화배우 한석규

96년 결혼한 한석규, 임명주 부부.


“‘텔미 썸딩’ 이후 이런 영화를 기다려왔는데, 인연이 닿지 않았어요. 우리 영화를 보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12세 관람가’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에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가족들을 촬영장에 마음껏 초대할 수 있는 것도 이번 영화가 그에게 가져다준 재미 중 하나. 이전에도 촬영현장에 아이들을 부른 적이 있긴 했지만 이번 영화처럼 아이들이 봐도 부담 없는 장면들을 찾기는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이 촬영장을 찾은 날이 하필 그가 여장을 하고 촬영하는 날이었다며 “스타킹 신고 짙게 화장을 한 아빠의 모습이 낯설었는지 첫째는 울고 둘째는 도망갔다”고 말하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일곱 살, 다섯 살인 두 딸과 세 살배기 막내아들을 둔 한석규는 4형제 중 막내인 자신도, 역시 5남매 중 막내인 아내도 자식 욕심이 많다고 했다. “아들 욕심 때문에 셋을 낳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절대 아니다. 결혼할 때부터 최소 셋은 낳자고 뜻을 모았었다”는 그는 촬영 끝내고 집에 들어설 때마다 “아빠” 하고 달려오는 아이들을 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도 아이들과 모두 한방에서 잠을 자는 등 그의 가족사랑은 남다르다.
“새벽에 막내 녀석이 우는 바람에 잠을 깨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가족들이 부대끼면서 함께 정을 쌓아야 한다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에요.”
이런 그도 촬영이 있을 때는 하루 평균 한 갑 반 정도 담배를 피우는데, 집에서는 ‘흡연구역’을 지정받았다고 한다. 아이들 피해서, 아내 눈치 보며 담배를 피우기는 다른 아빠들과 다를 바 없다고.
한석규는 가급적 겨울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촬영 스케줄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지난해에도 ‘주홍글씨’와 ‘그때 그 사람들’의 홍보가 끝난 뒤 호주로 장기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는 그는 올해도 겨울 휴가를 위해 ‘미스터 주부 퀴즈왕’ 촬영을 7월 안에 끝내고, 곧바로 9월부터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생활 공개한 영화배우 한석규

내년에 학부형이 되는 그는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하자”는 입장이다.
“아내나 저나 천천히 가자는 주의예요. 굳이 어렸을 때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뜻을 모았죠.”



“내 아이가 연기자 돼 내 작품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상상하면 기분 좋아요”

10여 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기 때문일까. 그는 결혼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지만 크게 부부싸움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함께 한 세월이 오래된 만큼 서로의 장단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큰 소리 낼 일이 없다는 이야기다.
“KBS 성우 시절 만난 아내와는 허물없는 친구 같은 사이예요. 결혼 전에도 함께 보낸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서로의 가족사를 다 꿰고 있죠. 서로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따질 필요가 없으니까 문제가 생겨도 이해하고 넘어가요. 굳이 따진다면 아내가 참는 편이에요.”
그는 부부가 둘 다 여러 집이 함께 모여 놀러 다니기를 좋아해 촬영이 없을 때는 처조카나 친조카들을 떼로 몰고 다니면서 등산도 하고 극장에도 간다고 한다. 가족 모임 때마다 10여 명의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그의 몫. 조카들에게 유독 인기가 좋은 까닭에 가족 모임에선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전담하게 된다고 한다.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생활 공개한 영화배우 한석규

오랜만에 가족영화에 출연한 한석규는 “촬영장을 찾은 아이들이 여장한 아빠를 보고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고 말하며 웃었다.


“고3인 큰 조카부터 저희 집 세 살배기까지 한데 모아놓고 일렬로 세워놓으면 볼만합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조카들 부탁을 선뜻 들어준다. “가족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간다”는 그는 지난 5월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의 부탁으로 서울서원초등학교 일일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장래 희망이 연예인이라는 아이들로부터 “성공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열심히 하다 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닥터봉’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 등 무수히 많은 흥행 영화들을 만들어내면서 한국영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는 “아이들 중 누군가가 연기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떡하겠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을 했다. 세 아이 중에 누군가 한 명쯤은 꼭 연기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가끔 저의 뒤를 이어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아이가 제 작품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등을 상상해봐요. 그러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죠.”
“더 나아가 몇 대에 걸쳐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면 좋겠다”고 말할 만큼 한석규는 자기 직업에 강한 애정을 나타냈다. “연기자는 참 좋은 직업이에요. 인생을 걸어볼 만한 일이죠” 하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그의 연기 열정이 왜 세월의 강을 건너면서 더욱 깊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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