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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외길 인생

암 투병하면서도 범죄와의 전쟁 멈추지 않는 영원한 ‘수사반장’ 최중락

글·최호열 기자 / 사진·김용해 기자

2005. 07. 14

추억의 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최중락 에스원 고문. 77세의 고령으로 지난 2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았으면서도 경찰청 수사연구관으로, 경비보안업체 에스원 고문으로 여전히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그의 외길인생을 들어보았다.

암 투병하면서도 범죄와의 전쟁 멈추지 않는 영원한 ‘수사반장’ 최중락

아직도많은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추억의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탤런트 최불암이 열연한 강력계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 최중락씨(77). 그는 40여 년 동안 1천3백여 명의 강력범을 체포, 범죄자들 사이에서는 한 번 걸리면 꼭 잡고야마는 악명 높은(⑦) ‘찰거머리 형사’로 통했던 수사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희수를 맞은 지금도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역’ 형사다. 90년 정년퇴임 후 15년째 민간 경비보안업체인 에스원에서 고문으로 일하며 범죄 예방에 힘쓰고 있는 것. 또한 경찰청 수사연구관으로 위촉돼 지금까지도 강력사건 수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요즘도 새벽 6시면 경찰청 수사연구관실로 출근해 밤새 발생한 전국의 강력사건 보고서를 살펴봐요. 그리고 아침 8시쯤 다시 에스원으로 출근해 근무하고 있어요. 큰 사건이 있으면 현장에 가서 담당 형사들에게 조언도 해주고,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 대책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주요 일과죠. 때론 수사하던 사건이 미궁에 빠져 고민하는 후배들이 제 조언을 듣기 위해 찾아오기도 하고요.”
그는 에스원뿐 아니라 삼성그룹 전체를 통틀어 18만 명이 넘는 임직원 중에서 최고령이다. 평생 ‘경찰은 경찰다워야 한다, 강력계 형사는 강력계 형사다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았다는 그는 “아직도 몸과 마음은 현역”이라며 경찰청장이 발행한 수사연구관 신분증을 자랑처럼 꺼내보였다.
“40년 10개월 동안 경찰생활을 하면서 서장 한 번 못해보고 만년 과장으로만 있었지만 아직도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고마워요. 제가 선택을 잘한 것 같아요. 평생 강력계 형사로 일선에서 뛰면서 도둑을 쫓고 치안을 담당했는데, 이곳에서 하는 일도 그와 연관이 많으니까요.”
에스원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하고 활기가 넘쳐 보였다. 건강 비결이 뭐냐고 묻자 다른 것 없이 무조건 하루에 1만 보 이상 걷는 것이라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시간만 나면 걷는다는 것.
그는 10년 전 임파선암 진단을 받고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했고 지난해 7월, 임파선암 재발 판정을 받았다. 76세 고령의 몸으로 암 수술을 받고 지난 2월까지 총 6회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기는커녕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해 있던 열흘 동안만 휴가를 냈을 뿐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대휴 한 번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오전에 항암치료를 받고 오후에 근무해 회사에선 그가 항암치료 중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엄청 힘들었죠. 암도, 항암치료의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정신력을 가지고 버틴 거죠. 암 환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살려는 의지만 있으면 암은 이길 수 있다는 거예요. 전 별다른 식이요법도 안 했어요.”
암 투병조차 범죄와의 전쟁을 하듯 신념을 갖고 밀어붙인 셈이다.

오전에 항암치료 받고 오후에 근무할 정도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

반면 그는 범죄자들 사이에서 ‘큰형님’으로 통할 정도로 진한 인간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범죄자들을 거두고,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 단적으로 그는 지금까지 2백50건 이상 주례를 섰는데 이 가운데 1백여 건이 그의 손으로 체포했던 범죄자들의 주례였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지금도 자식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사람도 여럿 있다고.

암 투병하면서도 범죄와의 전쟁 멈추지 않는 영원한 ‘수사반장’ 최중락

“경찰생활을 시작한 것은 약자 편에서 봉사한다는 사명감에서였어요. 범죄자들도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죠. 그들이 새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면 눈물이 날 때가 많아요. 그들이 다시 범죄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요. 무엇보다 범죄자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사라져야 하고요.”
그는 한때 대도 조세형을 에스원에 취직시켜주기도 했다. 하지만 조세형은 그의 믿음을 배신했다. 비단 조세형뿐 아니라 많은 범죄자들이 그렇게 그를 배신했던 모양이다. 그는 더 이상 범죄자를 취업시켜주지 않는다고 했다.
“취업을 시켜주면 나올 때 꼭 도둑질을 하고 나와 저를 곤란하게 만들어요. 사기를 치기도 하고요. 저도 사기 많이 당했어요(웃음). 차라리 그냥 돈 대주는 게 나아요. 몇 달 전에도 제가 체포한 적이 있는 전과자가 찾아왔어요. 일흔이 다 된 사람인데 노숙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중국 보따리장사를 하겠다고 하기에 사정이 딱해 2백만 원을 빌려줬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되나봐요. 다행히 아직 원금을 까먹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에 따르면 현재 국가경찰이 9만3천 명이고 민간경호원이 11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가경찰이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느라 놓치는 부분을 민간경호원들이 맡고 있는 셈인데, 개인이 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치안서비스를 도와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특히 갈수록 강력범죄가 늘고, 절도 또한 그치질 않고 있는 요즘에는 민간 경비업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는 민간 경비업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죄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흔한 범죄가 빈집털이, 주택 강도인데 현장에 가보면 90%가 문단속을 제대로 안 해서 생긴 거예요. 문단속만 잘 해도 90% 이상 범죄가 예방이 되는 거죠. 굳게 닫혀 있는 문과 창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는 범죄자는 거의 없어요. 도둑도 사람이라 잡히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범행을 저지르거든요.”
그는 특히 집을 비우고 피서 등 가족여행을 떠나는 일이 많은 여름철을 맞아 문단속에 더욱 신경을 써주길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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