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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파문 후 가수로 제 2의 인생 시작한 배인순

“재벌 부인보다 ‘하고 싶은 일’ 하며 밝게 사는 삶이 여자로서 훨씬 행복해요”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7.12 13:33:00

지난 2003년 말, 전 남편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과의 결혼생활을 소재로 한 자전소설을 펴내며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펄시스터즈 멤버 배인순씨. 1년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나이를 잊은 듯 젊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는 12월에 열 예정인 콘서트를 위해 요즘 탭댄스, 힙합 등을 배우는 데 열중하고 있다는 그가 가수활동을 재개한 요즘 생활과 질곡의 시간을 건너온 중년 여자로서 깨달은 생의 지혜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자서전 파문 후 가수로 제 2의 인생 시작한 배인순

강남의한 탭댄스 학원. 중년 여성이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젊은 강사의 구령에 맞춰 땀에 흠뻑 젖은 채 스텝을 밟고 있다. 60~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자매 가수 펄시스터즈의 언니이자 2003년 말, 전 남편인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과의 결혼생활을 소재로 한 자전소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잔’을 펴내 큰 파문을 일으킨 배인순씨(57)다.
유연한 동작과 군살 없는 몸매가 50대 후반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탭슈즈로 연습장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둔탁하지 않고 경쾌하다. 강사에 따르면 이 정도 소리가 나려면 젊은 사람들도 8개월 이상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는 배운 지 이제 4개월밖에 안되었다며 배우는 속도가 무척 빠른 편이라고 한다. 강사의 칭찬에 배씨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펄시스터즈 시절 미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컴투더 캬바레’라는 곡을 부르며 탭댄스를 춘 적이 있어요. 그때 두 달 정도 연습을 했죠. 그러고 보니 벌써 30년도 넘었네요. 다시 탭댄스를 배우니까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군살 하나 없는 날씬한 몸을 드러내고 화려하게 춤을 추는 모습이 그 옛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흑백화면 속 펄시스터즈의 섹시한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가 배우는 것은 탭댄스만이 아니다. 탱고 학원에 다니는가 하면 힙합에도 빠져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스텝을 밟아보라고 하자 힙합 기본동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힙합이 그렇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요즘 원타임이나 드렁큰타이거 같은 젊은 힙합 뮤지션들이 많잖아요. 그런 후배들과 꼭 한 번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러려면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연습을 해야죠(웃음).”

아직도 연락 끊고 있는 장남, 언젠가 엄마를 이해하리라 믿어

그는 힙합을 가르치는 강사가 지금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한다.
“그 강사가 하는 말이 처음엔 그냥 주책없는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리듬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대요. 원래 춤은 느낌인데, 그 느낌을 스스로 자연스런 리듬으로 만들어내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환갑 가까운 아줌마가 리듬을 제대로 타니까 놀랄 수밖에요. 절더러 뭐하는 분이냐고 묻기에 아직 말 안 했어요. 나중에 이야기할 거예요(웃음).”
그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1년 6개월 전, 자전소설을 펴내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때 이야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친다. 겨우 아문 상처를 다시 덧내고 싶지 않다는 것.
“그 책을 펴낸 것을 계기로 많은 게 달라졌어요. 우선 남자 팬들이 멀어져갔어요. 물론 저를 이해하는 분들도 많지만 펄시스터즈에 대한 환상이 깨져서 그런 거 같아요. 대신 여자 팬들은 늘어났어요. 여자들만의 어떤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제가 행복해졌다는 거예요.”
그는 아이들 문제를 제외하고는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한다.

자서전 파문 후 가수로 제 2의 인생 시작한 배인순

“우선 몸이 건강해졌어요. 결혼생활 내내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위장염을 심하게 앓았어요. 밥을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을 정도였죠. 신경도 극도로 예민했고요. 또 감기에 한 번 걸리면 두 달씩 마른기침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어요. 너무 고통스러워 마약이라도 하고 싶었을 정도였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아프다고 해도 누구 하나 귀 기울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남편과 시집식구들로부터는 철저히 소외되었고 아이들은 사내아이들이라 ‘딸이라도 있었으면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로웠다고 했다.
“이제는 외롭지 않아요. 비록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또 사람들이 제 노래에 환호를 보내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감기는 물론 그 심하던 신경성 위장염도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이 사라지면서 마음도 편해져 얼굴이 밝아졌다는 것.
그의 변화를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동생 배인숙씨. 언니의 고통을 오랫동안 안타깝게 지켜보며 같이 가슴앓이를 했던 동생은 이제 밝고 명랑하게 사는 언니를 보며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말을 곧잘 한다고 한다.
“동생에게 너무 미안하죠. 그런데 아직까지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어요. 그런 말을 할 수도 없는 심정이었으니까요.”
물론 지금의 행복을 되찾기까지 힘든 과정이 있었다. 특히 98년 이혼한 후 5년 동안은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노래를 포기하고 꾸린 가정과 아이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남은 것은 막내아들 하나뿐. 그는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만 전념을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눈물 쏟은 일도 많았을 텐데 그는 지난 일이라며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자서전 파문 후 가수로 제 2의 인생 시작한 배인순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게 어떤 일이든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는 진리예요. 이혼 전에는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아이들과 한집에서 사는 게 제일 행복했어요. 현재 저 자신은 행복하지만 아이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그 심정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죠.”
그는 자전소설 파문 이후 장남과는 연락을 끊고 산다고 한다. 아직도 엄마에 대한 원망이 큰 것 같다고.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어요. 설령 영원히 그때가 오지 않아도 할 수 없는 거고요. 다만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다행히 아이들끼리는 서로 연락하고 자주 만나는 것 같아 고마워요.”
장남과 관계가 그 정도로 소원해졌다면 자전소설을 통해 결혼생활을 폭로한 게 후회가 되지 않을까.
“책을 내기 전, 저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한 상태였어요. 책이 나올 때까지도 그 분노가 다 풀리지 않아 책을 낸 걸 후회하지 않았어요. 더구나 책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다 토해내고 나니까 저는 정말 건강해졌어요. 그런데 대신 아들은 큰 상처를 입은 모양이에요. 그땐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알겠더라고요. 다시 한 번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는 걸 느꼈죠. 물론 제가 그 책을 내지 않았다면 아이는 고통을 겪지 않았겠지만 저는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을 거예요. 아들이 언젠가는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주기만 바랄 뿐이죠.”



자서전 파문 후 가수로 제 2의 인생 시작한 배인순

그는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항상 평탄하게 살 수만은 없다는 걸 일찍 깨우쳐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며 씁쓸히 웃었다.
그는 자전소설을 펴낸 데 이어 지난해 3월, 30년 만에 새 앨범 ‘커피 한잔과 나의 노래’를 발표하며 가수로 복귀했다. 새 앨범은 비록 5천여 장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만족한다고 했다. 다시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가 노래를 다시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2002년 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앨범 준비를 하며 작곡가 신중현을 찾아갔다고 한다. 펄시스터즈와 신중현은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다. 펄시스터즈의 히트곡 대부분이 그의 작품이었던 것. 그런데 신중현은 그가 복귀하는 걸 만류했다고 한다.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무대 만들기 위해 준비 중

“펄시스터즈는 우리 가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여성 듀오인데 섣불리 복귀하면 그 신화가 깨질 수 있다며 우려를 하시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은 원래 저희 데뷔 앨범을 끝으로 이민을 떠날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흑백텔레비전 시대에, 그것도 텔레비전이 몇 집 건너 한 대씩 있던 그 시절에 사람들이 저희들에게 열광을 한 거예요. 결국 선생님은 펄시스터즈 때문에 이민을 포기했을 정도니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요.”
신중현의 반대에도 그는 가수 복귀를 강행했다. 그만큼 그에게 노래는 절실했다.
“그 후 아직까지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하고 있어요. 요즘 다른 작업에 바쁘신 것 같아요. 선생님도 한가해지고, 저도 가수로서 좀 더 자리를 잡으면 그때 다시 찾아뵈려고요.”
그에게 솔로가 아닌 동생과 함께 온전한 펄시스터즈로 다시 활동할 계획은 없냐고 묻자 아직 동생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생이 그동안 미국에 살다가 지난해 영구귀국했어요. 그동안은 아이들 키우느라 노래는 생각도 안 했다고 하더군요. 올해 막내를 대학에 보내고 이제 한숨 돌렸다고 하는데, 아직 자신이 없대요. 당분간은 저 혼자 해야죠.”
앨범을 발표한 후 한동안 TV와 라디오에도 활발하게 출연했던 그는 이내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방송이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진행되다보니까 들러리를 서는 것 같아 실망도 되고 좌절감도 들었던 것.
“그러던 차에 새로운 공간을 발견했어요. 바로 콘서트 무대였죠. 공연 무대에 서면 관객들 호응이 참 높아요. 특히 여자들의 호응이 많아요. 제가 아픔을 딛고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같은 여자로서 공감을 느껴 격려해주는 것 같아요.”
특히 지난해 11월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추억의 낭만 콘서트’에 출연했을 때는 관객들 반응이 너무 좋아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KBS ‘7080 콘서트’도 잊을 수 없는 무대였어요. 저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분들이 관객으로 오니까 한분 한분이 언니, 오빠, 동생들 같았어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 들어 다시 무대에 서니까 관객이 또 다른 의미의 가족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소중할 수 없어요. 또한 리허설을 하는데 가수 박미경이 저를 꼭 안으며 ‘우리 엄마가 목숨 걸고 좋아했었다고 꼭 전해드리래요’ 하는데 갑자기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은 바로 박미경 어머니처럼 수십 년을 변함없이 사랑해준 분들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자서전 파문 후 가수로 제 2의 인생 시작한 배인순

배인순씨는 젊은 힙합 뮤지션들과 한 무대에 서서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힙합음악을 선보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젊은 세대에는 ‘아, 저 나이에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나도 늙으면 저렇게 할 거야’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그래서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탭댄스와 힙합, 탱고를 배우는 것도 바로 이런 콘서트를 만들기 위한 준비라고 한다.
“12월에 열 예정인 첫 콘서트는 ‘추억과 여자’를 테마로 잡았어요. 제가 여자로 살면서 여러 가지 행복과 아픔이 있었기에 꼭 한 번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아팠던 것이 자랑도 아니고 당당함도 될 수 없지만 제가 아팠던 경험이 개인적인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사람, 지금 겪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 길을 가고 싶어요.”
그는 벌써부터 시간이 없다고 엄살이다. 춤 연습을 하는 사이사이 운동도 해야 하고 밤에는 가게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관객과 하나 되는 무대를 만들 생각을 하니 즐겁다는 그는 콘서트를 기획하면서 비로소 인생을 다시 출발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의 자전소설 출간과 같은 시기에 재벌가로 시집갔던 탤런트 고현정도 이혼을 했다. 이로 인해 세인들에게 재벌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고현정의 이혼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고 했다.
“재벌이라도 집집마다 가풍이 다르기 때문에 그 속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고현정이 ‘잘했다’ ‘잘못했다’ 말할 수 없어요. 물론 구속된 삶보다는 자기의 삶을 찾는 게 중요한데 재벌가라고 다 며느리가 구속을 당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저 같은 경우는 좀 더 일찍 결정을 해야 했던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에요.”
그는 재벌가와 결혼을 하고 안 하고가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탭댄스와 힙합 배우며 12월 콘서트 준비

“신데렐라가 되든 평범하게 살든 인간의 삶은 다 똑같아요. 제가 그 두 가지 삶을 다 살아보니까 오히려 작은 것에 만족을 느끼면서 사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저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부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서로의 재능을 뒷받침해주고 격려해주는 생활을 하고 싶어요.”
“지금 그러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자 “아직 결혼을 안 한 아들이 둘이나 있고, 지금은 나 하고 싶은 일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는 주부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누구나 뭔가 하고 싶은 꿈이 있잖아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나는 왜 저렇게 되지 않나’ 한탄하고 남편에게 불만을 쏟기보다는 조금씩이라도 자기를 가꾸고 개발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다보면 반드시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와요. 문제는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기회는 그냥 지나쳐요. 저를 보세요. 그 많은 절망 속에서도 노력하니까 이렇게 다시 시작하잖아요.”
톱스타에서 재벌 부인으로, 이혼녀로 파란만장한 삶을 헤쳐온 그는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살아 있으면 끝난 것이 아니더군요.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하는 말로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

여성동아 2005년 7월 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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