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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고백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성폭행 피해’ 인정받은 스물두살 여대생 김씨

‘그간 겪은 말못할 고통 & 소송의 전말’

■ 글·구미화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5.03.02 15:56:00

지난 연말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경찰에서 가혹 수사를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폭행 피해자 인권 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 20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지 3년 만에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 화제다. 지검, 고검, 대검의 불기소 처분에 굴하지 않고 3년간 법정투쟁을 계속해 마침내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그를 만났다.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성폭행 피해’ 인정받은 스물두살 여대생 김씨

지난1월13일 김모씨(22)는 미성년자이던 2001년 당했던 성폭행 피해를 뒤늦게 인정받았다. 인천지법 민사4단독 양정일 판사는 2001년 말 이모씨(25)가 김씨를 성폭행해 정신적인 고통을 준 사실이 인정된다며 김씨에게 피해 보상금으로 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김씨와 이성관계로 사귀면서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나 김씨의 성폭력 상담기록 등에 부합하지 않고 피고가 원고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이 제한적이어서 합의에 따른 성관계로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의 범행으로 원고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했을 뿐 아니라 이후 수사과정에서 받은 고통으로 기억을 일시 상실하는 등 피해를 입은 만큼 금전으로나마 위로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2001년 말 이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고소했으나 2002년 10월 인천지검이 이를 무혐의 처분했고, 2003년 서울고검에서도 항고가 기각됐다. 김씨는 그해 10월 대검에 재항고했으나 기각되자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각되자 민사소송을 해 마침내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한 여성이 3년여간의 긴 법정투쟁 끝에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뒤집고 피해 사실을 인정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성계에선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남발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고 높이 평가했지만 성폭행 사건에 대한 그릇된 통념 때문인지 인터넷에는 “그 여자 참 독하다”는 식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지난 1월 말 만난 김씨는 앳되어 보이는 20대 초반의 평범한 여성이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말하듯 독해서가 아니에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한 사람이 진실을 갈망하는 힘이 얼마나 큰가를 처음 알았어요. 그런 일을 당한 여성이 어떤 기분일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저는 무너졌던 저 자신을 곧추세우고 싶었고, 패배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송을 계속한 거예요. 그리고 저 혼자가 아니라 저를 믿고 도와주신 여러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요. 진실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승소 판결은 3천만원을 능가하는 가치가 있죠. 판결문에 담긴 진실의 가치는 1억원이 넘는다고 생각해요.”
마법의 지우개가 있다면 김씨가 인생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싶은 끔찍한 사건은 그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1년 12월26일 발생했다. 컴퓨터에 서툴렀던 그는 2000년 초, 주위에서 “채팅이 컴퓨터 실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 채팅을 시작했다가 이씨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시점부터 사고가 발생한 날까지 2년여의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른 터라 수사·재판 과정에서 “강제로 관계를 맺은 것이 맞냐”는 추궁을 받았지만 김씨는 가해자를 직접 만난 건 두 차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 채팅의 폐해가 많이 알려지지 않을 때였어요. 그 사람은 카이스트에 다녀 컴퓨터를 잘한다고 했죠. 그래서 소식을 주고받던 중에 그 사람이 군에 입대했고 허리가 아파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탈영하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그 즈음 제가 자원봉사를 하던 병원에서 만난 한 아이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 마음이 아팠는데 그 사람도 몸이 아프다며 힘들어하니까 삶에 대한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희망을 줄 수 있는 책들을 보내 줬어요. 그런데 그게 덜미가 돼서….”
군 헌병대에서 조사받고 실신, 한 달간 입원 치료받아
가해자는 김씨와 99년 말부터 사귀었다고 주장했지만 김씨는 그 사람을 딱 두 번 만났다고 한다. 사건이 있기 며칠 전, 가해자가 책을 돌려주겠다면서 만나자고 해 나갔는데 총 4권 중 한 권만 주면서 며칠 뒤에 다시 만나 나머지 책을 주겠다고 한 것. 그리고 두 번째 만난 날 책을 집에 두고 왔다면서 김씨를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한 것이다.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성폭행 피해’ 인정받은 스물두살 여대생 김씨

김씨는 평소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냈지만 악몽 같은 사건을 바로 알릴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성폭력상담소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는데 상담원이 그를 안심시키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준 덕분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바로 병원에 가 증거를 보존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사흘 후 상대가 군인이라 군 헌병대에 고소를 했는데 그것이 그에게 더욱 처참한 고통을 안겨주고 말았다.
“사고가 난 뒤 거식증과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그런데 군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는 것이 더 고통스러웠어요. 제 얘기를 담당 수사관뿐 아니라 주위의 다른 헌병들도 다 들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오가며 제 산부인과 기록 등을 들춰봐 수치심을 느끼게 했거든요. 수사관이 ‘피의자 집이 잘 사는 것 같냐’며 사건 자체와 무관한 질문들을 계속해 절 피해자가 아닌 돈을 노리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느꼈을 때는 구토가 났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쓰러졌는데 엄마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대바늘로 찔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대요.”
실신한 상태로 경희의료원 응급실로 옮겨진 그는 의식이 돌아온 다음 가위에 눌리며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렸고,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으로 한 달여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수사관이 밤낮 가리지 않고 휴대전화로 전화를 계속해서 조사를 받으러 나올 것을 종용, 그는 결국 2002년 1월30일 환자복을 입은 채로 병원에서 6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한창 대학입시를 걱정하고,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를 나이에 그는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고, 보호받아야 할 곳에서 오히려 상처를 입으며 끝내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자살을 하려고 병원 옥상에 올라간 적이 있어요. 제가 막 열아홉 살이 됐을 때인데… 눈이 막 내리더라고요.”
고통스러운 기억까지도 비교적 침착하게 이야기하던 그는 생을 마감하려 했던 순간을 되새기던 중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긴 한숨으로 마음을 다잡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뛰어내리려던 찰나에 저 아래를 내려다 보니 문득 지금 죽어 버리면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인생은 지금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지금 여기서 삶을 마감하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를 ‘걔 인생은 거기까지였다. 절망했고, 패배자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여기서 훌쩍 뛰어내리면 나 하나 바라보고 사신 부모님이 그 많은 짐을 다 떠안아야 하는데…. 그 순간엔 오로지 저와 어머니만 생각했어요.”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그에게 시련은 계속됐다. 찬란한 봄, 그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가해자와 대질 조사를 받았고, 수사관 입에서는 ‘화간’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왔다. 그가 부분 기억상실증으로 사건의 정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헌병대는 사건을 인천지검으로 송치했다. 가해자가 군에서 제대해 민간인 신분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의 분위기도 헌병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인천지검에서 처음 조사를 받던 날 실신을 하고 말았다.
“인천지검에서 처음 만난 수사계장은 헌병대에서 넘겨받은 조서만 보고 저더러 ‘무고 사범’이라고 하셨어요. 성폭행을 당한 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바로 무고죄잖아요. 전 진실을 밝히고 싶어 고소를 했는데 오히려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너희는 불장난을 한거다’ ‘거짓말탐지기를 해보아서 거짓말을 한 걸로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니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져 실신을 했어요.”
담당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공부나 열심히 해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라”고 했다고 한다. 검사는 “그 사람을 기소하더라도 네가 기억을 잃어버렸고, 사귀었다는 증거로 스티커 사진까지 있기 때문에 (재판에서 이길) 자신이 없다”고 했다고.
“가해자는 계속해서 저랑 사귀었다고 주장했고, 그 증거로 저랑 찍은 거라며 스티커 사진을 내놓았어요. 그런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선명도가 떨어지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 사람과 스티커 사진을 찍은 적이 없고, 사진 속 얼굴이 저인지 확인도 안 되는데 검찰에서 자꾸 ‘사진 속 얼굴이 네가 맞지 않냐’고 추궁하니까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밀어붙이지 말고, 과학적인 수사를 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누가 감히 검찰에 거짓 증거를 내놓겠냐’고 하더라고요.”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성폭행 피해’ 인정받은 스물두살 여대생 김씨

김씨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진실을 갈망하는 힘이 얼마나 큰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2002년 10월에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고, 그는 항고할 생각을 접었다. 수사 과정이 고통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하나같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를 만류했기 때문. 그런데 그 무렵 그는 우연히 ‘청소년 지킴이’로 활동해온 강지원 변호사가 검사 생활을 정리하고 퇴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강지원 변호사와 어머니의 절대적인 믿음으로 소송 계속해
“오랫동안 검찰에 몸담으신 분이 퇴임하시면서 검찰에 대해 쓴소리를 하셨다는 기사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어리고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용기가 났던 것 같아요. 제 사건을 맡아 주실지, 수임료는 얼마나 될지, 이런 생각은 전혀 안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강지원 변호사와 마주하자 그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동행한 어머니가 대신 사정을 얘기했고 강 변호사가 선뜻 사건을 맡아 주겠다고 말을 했다고.
고검에 항고한 뒤에는 강 변호사가 검찰 조사에 동행해준 덕분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실신한 뒤 기억을 잃어버려 곤란을 겪었던 그는 고검에서부터는 사건 정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는데 사고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나 마침내 피의자가 칼을 들고 위협했던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 그러나 지검, 고검에 이어 대검에서도 재항고가 기각됐고, 헌법재판소에 낸 헌법소원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의 변론을 맡았던 강지원 변호사는 “헌병대와 인천지검에서의 초동수사가 잘못돼 피해자가 기억을 되찾은 뒤에도 고검, 대검에서 피해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내놓은 스티커 사진도 김씨의 피해 사실을 인정받는 데 걸림돌이 됐다. 김씨는 고검에 항고하며 스티커 사진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정밀 조사해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 결과가 애매하게 나온 것.
“스티커 사진이 합성인지 여부와 사진 속 인물과 제가 동일인인지를 확인해 달라고 했는데 전자만 확인해 줬어요. 그런데 그 결과마저도 ‘합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사진이 빛에 많이 노출되어서 정교하게 작업했을 경우 합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애매한 것이었어요.”
김씨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질 때마다 잠을 못 이루고, 어쩌다 간신히 눈을 붙이면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저는 진실을 밝히고 싶어서 어렵게 얘기를 했는데 국가가 제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까 내가 왜 이런 사람들한테 고소를 했을까 하며 후회한 적도 많아요. 억울함과 답답함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혼자서 아픔을 참아내며 용기 있게 맞서려고 했는데 그 용기를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절망했죠.”
높은 벽 앞에서 주저앉을 때마다 그는 좋은 음악을 듣고,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으면서 희망을 얻었다고 한다. 또 병원 자원봉사 시절 백혈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 아이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혼자 서울역 광장에 나가 몇 시간씩 오도카니 앉아 있기도 한 그는 하루하루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노숙자들을 지켜보며 그들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은 자신이 이런 일로 힘들어하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하지만 그는 “사람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다 보니 그렇게 마음을 잡고 돌아왔다가도 다음 날 또 절망하기도 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순간순간을 어떻게 견뎌왔나 싶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님께서 힘을 많이 주셨어요.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송을 계속하자고 하셔서 포기할 수 없었죠. O.J 심슨 사건을 예로 드시면서 형사소송에서는 기소가 안 됐지만 민사소송에서는 살해된 전처 동거남의 가족들이 손해배상을 받았다면서 민사소송을 해보자고 하셔서 2003년 12월부터 민사소송을 준비했어요.”
그로부터 1년여 만인 지난 1월13일, 마침내 민사소송에서 승소하자 그와 그의 가족은 3년간의 긴장이 일시에 풀어지면서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몸을 추스르고 나자 그는 다시 어깨가 무거워졌다고.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성폭행 피해’ 인정받은 스물두살 여대생 김씨

“고검에 갈 때 강 변호사님이 그러셨어요. ‘내가 자네를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 세상에 환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요. 판결문을 받았을 때 이제 공이 제게 넘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과분한 은혜를 어떻게 갚아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더라고요. 강 변호사님은 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는 와중에도 저에 대한 믿음과 지지를 한 번도 놓지 않으셨거든요. 저희 어머니 역시 절대적으로 제 말을 믿어주셨어요. 승소한 날 ‘내 자식을 믿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결과가 나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들의 믿음이 양정일 판사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책에선가 진실은 메아리가 되어서 언젠가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들어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인간에 대한 사랑 펼칠 수 있는 직업 가질 생각
그는 지난 3년이 자신의 인생 전부나 마찬가지며 또 모든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기 위한 시간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나와 얼굴을 가린 채 울먹이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건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번 사건에서 이겨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받는다면 다른 피해 여성들도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어요. 주변의 많은 분들이 제게 줬던 용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다짐했거든요.”
그는 이번 판결이 검찰이 성폭행 사건에 대해 무혐의를 남발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고, 성폭행 사건을 보다 유연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검사님들이 성폭행 사건을 수사할 때 자신이 하는 일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 거라는 걸, 그리고 피해자들이 왜 고소를 했는가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고소를 했을 때는 진실을 인정받고, 상처를 치유받고 싶다는 의미거든요.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릴 적부터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김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 남들보다 2년 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이번 소송을 겪으며 꿈을 바꿨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꺼려 했지만 법학과와는 전혀 다른 분야라 다시 수능시험을 준비할 생각이라고만 귀띔했다.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는데 이번 일로 법을 집행하는 집단의 제도와 장치가 인간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법의 본 이념과 목적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다른 직업을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정말 운이 좋아서 승소를 했지만 제가 만약 저와 같은 피해자가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제도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인간에 대한 이해를 펼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생각이에요. 정말 따뜻한 마음 하나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건 참 신바람 나는 일이잖아요(웃음).”
일찍 철이 들어버린 그는 “사람이면 누구나 고난에 부닥치고, 그것을 얼마나 잘 이겨내는가에 따라 남은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을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펼쳐가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그늘이 걷힌 건 아니다. 그는 요즘도 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어디선가 가해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고.
“큰 벽은 하나 넘었지만 성폭력 피해자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닐 텐데 앞으로 여러 문제에 직면할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누군가와 교제를 하게 된다면,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때마다 이 사실을 먼저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먼저 알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이 많아요. 저는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인데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한다는 자체가 슬프고 답답하죠.”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따뜻한 마음과 절망이 다가왔을 때 좌절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승소한 제가 잘 살아야 다른 분들에게도 큰 희망이 될 것 같아요. 제가 그랬듯 자신의 인생이 시궁창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이겨내셨으면 좋겠어요.”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성폭행 피해’ 인정받은 스물두살 여대생 김씨

김씨는 성폭행 사건 자체도 끔찍했지만 군 헌병대와 인천지검에서 조사받을 당시 두 번이나 실신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호소했다. 지난 연말에는 밀양 고교생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중생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인권을 침해당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김씨가 3년여의 법정투쟁 끝에 진실을 인정받도록 한 일등공신이자 현재 밀양 성폭행 사건 피해자를 무료 변론하고 있는 강지원 변호사는 “성폭행 사건 조사과정에서 불필요한 질문, 피해자를 의심하는 태도,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되는 수사, 대질심문 등이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가해자와 나란히 앉아 조사를 받을 때 피해자는 가해자와 동등한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고통스러워한다”고 전했다.
경찰, 검찰, 법원에서 똑같은 진술 되풀이하는 고통 줄일 수 있는 제도 있어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사과정에서 당하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보호 장치들은 꾸준히 마련돼 왔다. 그러나 일선 수사기관에서 여러 이유를 들어 그대로 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 우선 성폭력 피해자는 ‘여경조사청구권제’에 의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조사받을 수 있도록 여경이 수사하거나 수사과정에 입회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경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과 검찰, 법원에서 똑같은 진술을 되풀이하면서 입는 정신적 충격이나 수치심을 줄이기 위한 ‘증거보전신청제’도 마련되어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에서 피해자들에게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다. 증거보전신청제는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 건강 등 이유로 법정에서 증언하기 어려울 때 수사기관으로 판사를 불러 한 번만 진술하고 이 진술서가 법원에서 증거로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제도. 지난해 3월 개정된 성폭력특별법에 따르면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성폭력 사건에선 경찰, 검찰뿐 아니라 피해자가 직접 증거보전을 신청할 수 있고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정신장애인일 경우 영상물을 이용한 증거보전을 원칙으로 규정했다. 증거보전신청제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은 증거보전을 위해서는 피해자와 판사, 수사 담당자 등이 같은 시간에 한장소에서 만나 진술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 경찰, 검찰은 담당하는 사건이 많은데다 자신들의 고유 영역인 수사에 판사가 개입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 일어난 일련의 성폭력 사건을 통해 수사 관행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지원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지침들이 만들어졌으나 일선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였는데 최근 밀양 성폭행 사건 등으로 피해자 인권 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된 이후 검·경찰의 성폭행 수사 방식이 많이 개선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밀양여중생 성폭행 사건 이후 경찰청장은 성폭력 피해자 인권 침해 방지대책을 내놓았다. △앞으로 성폭력 피해자 수사 시 피해자의 요청 여부와 상관없이 여경이 조사하도록 하고 △가족 등 신뢰하는 관계자를 입회시킨 후 조사토록 하며 △진술녹화가 의무화돼 있는 13세 미만 아동이나 장애인 이외에도 성폭력 피해자는 진술녹화제도와 증거보전신청제도를 적극 활용해 반복조사로 인한 피해자의 심적 부담 및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분리수사 원칙을 지켜 ‘범인 식별실’을 이용하고 △‘피해자 서포터’를 양성해 성폭력 범죄 발생 시 초기부터 서포터를 지정, 피해자 접촉 창구를 단일화하고 신변보호, 상담, 정보제공 등 피해자 보호의 중심축 역할을 하도록 한다는 것.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성폭행 피해’ 인정받은 스물두살 여대생 김씨

강지원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에 귀기울일 수 있도록 검·경찰에 대한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서도 지난 연말 현재 17개 청에 설치돼 있는 성폭력 피해 아동·여성 전용조사실을 전국 검찰청에 확대 설치, 피해자들이 편안한 환경에서 조사받을 수 있도록 하고 가급적 여성 검사가 전담 조사토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조건을 강화해야
그러나 강지원 변호사는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인 만큼 성폭행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여성이 전담토록 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단순히 여성 경찰·검사·판사를 배치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진술을 새겨들을 수 있는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여성의전화 정춘숙 부회장은 “성폭력 사건의 명예훼손이나 무고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게 만들고 오히려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 담당자들이 성폭력을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로 보지 않고, ‘여자가 먼저 꼬리를 쳤을 것’ ‘화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다”며 “그렇다 보니 어떤 꼬투리 하나만 있으면 피해자가 순식간에 가해자로 전락해 버린다”고 말했다. 성폭력에 대한 수사관들의 그릇된 통념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는 조사를 받는 단계부터 범죄자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게 된다는 것. 김씨 역시 “헌병대와 검찰에서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무고 사범으로 몰릴 때 왜 고소를 했을까 후회를 했다”며 “성폭행 피해 여성은 수사과정에서 내가 왜 고소를 했나 한번쯤 후회하게 되는 상황을 겪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피해 여성의 진술에 대해서는 칼날을 세우고 무고 사범으로 몰아가면서 가해자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너무나 관대하다”며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높은 위치에 서게 됨을 꼬집었다.
정춘숙 부회장은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는 성폭력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성폭력을 ‘강간과 추행의 죄’가 아닌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의 죄’로 바꿔야 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죄로 역고소하는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검사나 판사가 성폭력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 넘게 검사 생활을 한 강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 자체가 워낙 파렴치하기 때문에 가해자가 범죄 사실을 선선히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더욱이 “그 피해자가 어린이나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일 경우 더욱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며 수사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그것은 검찰과 경찰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고, 어렵지만 범죄 사실을 입증해 냈을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며 검·경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해줄 것을 당부했다.


여성동아 2005년 3월 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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