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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특별한 가족

세계 31개국 여행하며 사물놀이 공연 펼치고 돌아온 ‘공새미’가족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마치 코리아타운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김형우 기자

2005. 02. 11

아빠는 18년간 다니던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아이들은 학교를 휴학한 후 3백4일간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온 가족이 있다. 배낭을 메고 ‘보는’ 여행뿐 아니라 세계인에게 한국의 사물놀이를 ‘보여주는’ 여행을 하고 돌아온 공새미 가족을 만났다.

세계 31개국 여행하며 사물놀이 공연 펼치고 돌아온 ‘공새미’가족

3백4일동안 인도, 콜롬비아, 탄자니아, 미국, 영국을 비롯해 세계 31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가족이 있다. 가족 사물놀이팀 ‘공새미’가 그 주인공으로 이들은 세계를 돌며 ‘보는 여행’만 한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 북과 장구를 들고 길거리에서 사물놀이를 공연하며 ‘보여주는 여행’ ‘들려주는 여행’을 해 눈길을 끈다. 지난 12월 말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 가족을 만났다.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집 한 채를 남겨주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고 싶었어요.”
‘공새미’의 구성원은 아빠 김영기(45·북), 엄마 강성미(43·장구), 큰딸 김민정(17·꽹과리), 아들 김민수(14·징), 막내딸 김현정(7·장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빠는 세계여행을 기획하고 이끌었지만 사물놀이의 리더는 큰딸 민정이다. 민수는 징소리만큼이나 묵직한 가족구성원의 무게중심이 됐고, 늦둥이 현정이는 사물놀이 공연 끝에 아리랑 어깨춤을 추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화동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말솜씨가 뛰어난 엄마는 대외적인 업무를 담당하며 세계 여행 내내 환상의 팀워크를 이루었다.
“공새미는 남편의 고향인 제주도 애월읍에 있는 샘물 이름이에요. 퐁퐁 솟는 샘물처럼 가족간의 사랑이 영원히 마르지 않고, 저희 가족이 생명수처럼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가족애와 이타적 사랑을 다지기 위해 가족 모두가 북채와 장구채를 손에 쥔 것은 2001년 6월. 이미 3년 넘게 사물놀이 실력을 다져온 민정이가 선생이 되어 가족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쳤다. 2002년부터는 지하철 예술무대, 장애인 복지시설을 돌며 기량을 탄탄하게 다져갔다.
“가족들이 사물놀이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 남편이 세계여행을 제안했어요. 취미로 시작했지만 ‘세계일주를 하면서 뭔가 우리 것을 확실히 보여주자’는 각오로 더욱 열심히 사물놀이 연습을 하게 됐어요.”
2004년 2월28일, 세계여행이 시작됐다. 이들이 인천공항을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은 인도. 막내 현정이를 제외한 가족이 한 사람당 짊어진 짐 무게만 25kg이 넘었다. 장구와 북 등 악기 하나의 무게만 해도 3~5kg이 넘었으니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는 여행’을 하기도 전에 짐에 짓눌려 쓰러질 판이었다.
킬리만자로 정상 오른 게 가장 기억에 남아
그래도 인도 거리에서 사물놀이 옷자락을 정성스레 여미고 첫 공연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만큼 길거리 공연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인도에서 처음 거리공연을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인도에서는 거리공연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죠. 기가 팍 죽었어요. 그날로 인도에서의 거리공연은 포기했어요. 대신 델리대학교 한국 기숙사 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사물놀이 공연을 했는데 큰 호응을 얻었어요.”
인도에서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3년 넘게 별러온 길거리 사물놀이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중국과 아프리카 대륙에도 사물놀이 가락이 울려 퍼지게 했고 우리 타악에 열광하는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됐다. 이렇게 세계여행 도중 펼친 1백여 회의 사물놀이 공연 가운데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곳은 영국이었다고 한다.
“유럽에서 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돈을 주는데, 특히 영국 사람들이 그랬어요. 길거리 공연을 40분 정도 하는데 그때마다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 정도가 들어왔어요. 만일 돈벌이 목적으로 사물놀이 공연을 했다면 큰돈을 벌었을 거예요.”
민정이가 엄마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저희가 영국에서 모은 돈만 2천 파운드(약 3백88만원)가 넘었어요. 그 돈으로 도버 해협을 건넜죠(웃음).”

세계 31개국 여행하며 사물놀이 공연 펼치고 돌아온 ‘공새미’가족

공새미 가족은 세계 어느 곳이든 풍물놀이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듯 가족은 무슨 ‘공범자’처럼 서로를 마주 보며 다정스레 웃는다.
터키 공연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추억거리라고 한다. 터키 사람들로부터 고향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는 ‘정’을 느꼈다고.
“길거리 공연을 했는데 수백 명이 몰려왔어요. 그런데 경찰들이 많이 오더라고요. 공연을 금지시키려는 줄 알았더니 교통정리를 해주면서 구경을 했어요. 저희 먹으라고 음료수도 사주고, 심지어 숙소까지 따라와 캔 음료를 손에 쥐여준 할아버지도 있었어요. 그날 저녁 공연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정말 신나했어요.”
민정이는 멕시코에서의 공연을 으뜸으로 꼽았다.
“멕시코 초·중·고등학교 초청을 받아 공연했는데 학생들이 아주 좋아해서 하루 세 번씩 3일 동안 아홉 번이나 공연을 했어요. 하루는 제 생일이었는데 학생들이 강당에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어요. 그리고 생일축하로 안아주는 게 풍습이라며 학생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저를 한번씩 안아주는데, 하도 안아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나중엔 볼이 얼얼하더라고요.”
이렇게 1주일에 3일은 ‘보여주는 여행’을 하고 나머지 3일은 ‘보는 여행’을 했다는 공새미 가족. 보는 여행 가운데 가족들이 으뜸으로 뽑은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 킬리만자로에 오른 것이라고 한다.
평소 김영기씨는 킬리만자로 최고봉인 키보(5,895m)에 올라 태극기를 꽂고 가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목청껏 부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식구들은 아빠의 소원성취를 위해 킬리만자로에 가긴 했지만 모두 킬리만자로에 오를 수는 없었다. 민정이만 정상에 올랐다고.
“아빠가 세운 세계여행 목표의 50%가 킬리만자로 완주였어요. 회사 다닐 때 별명이 ‘조용필’일 정도로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를 좋아하셨죠. 그런데 고산병 때문에 아빠랑 민수는 중도에 포기하고 저만 정상에 올라 아빠 대신 노래를 불렀어요(웃음).”
엄마와 현정이는 아예 오를 엄두를 못 냈고 아빠와 민정이, 민수가 킬리만자로 등반을 시도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민정이가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모두 얼굴이 퉁퉁 붓고 산발을 한데다 지팡이까지 짚고 있어 거의 ‘폐인 가족’ 수준이었다고. 민정이는 더구나 눈에 다래끼까지 나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고산병으로 죽은 사람 없다는 말만 믿고 쓰러지고 탈진하면서도 정상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힘들었지만 하얀 눈이 보이니까 힘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세계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부모님께 정말 감사해요. 휴학을 해서 친구들보다 한 학년 처지게 됐지만 학교에서 못 느낀 것을 여행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누구를 만나건, 무슨 일을 하건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어요.”
온 가족이 단칸방에 산다고 해도 세계여행 기분 내며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남미 대륙을 여행할 때는 한국에서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 때문에 가족 모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 김영기씨 아버지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진 것.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뇌수술까지 한 상태였는데 형제나 친척들이 우리 가족의 여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알리지 않고 있었어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동남아로 여행을 계속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12월27일 시드니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세계 31개국 여행하며 사물놀이 공연 펼치고 돌아온 ‘공새미’가족

그런데 묘하게도 김영기씨 부친의 교통사고가 ‘불행’이 아닌 공새미 가족을 살린 ‘행운’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12월26일 동남아시아 지진 해일이 발생한 것.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 소식을 들은 가족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남아시아 지진 해일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주변 이웃과 친척들도 ‘조상이 불러들였다’면서 모두 놀라셨어요.”
현재 공새미 가족은 제주도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고 있다. 간혹 막내 현정이는 여행 기분을 못 버리고 “코리아타운에 온 것 같다”는 말을 해 가족들의 웃음을 자아낸다고 한다.
“여행 다녀보니까 우리나라 자연이 가장 예쁘고 좋아요. 근데 아직도 여행하는 기분이에요.”
강씨는 서울 집을 2억원에 전세 주고 그 중 1억원을 세계여행하면서 썼지만 아까운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갈 예정인데 남은 돈으로 전셋집을 구하기도 힘들어요. 그래도 걱정은 안 돼요. 여행하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 모두 한 방에서 지냈는데 호흡이 척척 맞아 참 좋았어요. 서울에서 단칸방을 얻어 산다고 해도 여행하는 기분 내며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엄마의 의견에 아이들도 공감하는 눈치다. 세계여행을 하는 동안 10cm의 키가 커버린 민수는 ‘가족간의 대화’를 이번 여행의 성과로 꼽았다.
“아빠가 회사 다니고 저희가 학교에 다닐 때는 대화할 시간이 없었는데 여행하면서 한 방을 쓰고 매일 같이 다니니까 이야기할 게 아주 많았고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됐어요. 가족과 같이 있는 게 참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김영기씨도 세계여행을 위해 18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자신감에 앞으로 펼쳐질 인생 후반전을 멋지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세계여행 위해 3년 전부터 온 가족이 착실하게 준비
공새미 가족은 어떻게 해서 세계여행을 시도하게 됐고 또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을까.
“저희 가족은 3년간 철저히 여행을 준비했어요. 남편이 처음 세계여행을 제의한 후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매달 세계여행을 주제로 가족회의를 했어요.”
평소 강씨는 ‘학교 교육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학원조차 보내지 않는 소신파. 대신 아이들의 체험 학습을 중시했다.
“영어, 수학만 남편이 직접 가르치고 나머지는 스스로 공부하게 했어요. 시간이 날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 박물관을 돌아보고 감상문을 쓰게 했죠.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아이들이 각자 ‘대륙별’로 공부하게 하고 리포트를 써보도록 했어요.”
엄마는 아시아, 민정이는 유럽, 민수는 미국을 포함한 남아메리카를 맡아 도서관에서 합숙하듯이 대륙별 지리와 문화를 공부했다. 고혈압이 있는 아빠는 꾸준히 마라톤을 하면서 체력을 다졌고 영어, 일어 외에 중국어와 스페인어 공부에도 열중했다.
이미 세계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온 가족이 만나 다양한 체험담을 들었고, 성공적인 사물놀이 공연을 위해 국악인 김덕수씨도 만나보았다.

세계 31개국 여행하며 사물놀이 공연 펼치고 돌아온 ‘공새미’가족

“처음 세계여행을 가겠다고 결정하고는 두려움이 컸어요. 그런데 여행자들의 경험담을 들어보게 되니까 용기가 생겼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모두들 한결같이 ‘모든 게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 말라’는 격려를 해주시더군요.”
무엇보다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은 것은 부부와 아이들 모두 적극적으로 여행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남편 혼자 여행을 주도했다면 어려움이 많았을 거예요. 가족 모두가 여행을 고민하면서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에 단결력이 생겼고요. 아무리 무거운 짐도 각자 짐은 아이들에게 책임지도록 했어요. 특히 민정이가 현정이까지 돌보면서 몇 사람 몫을 거뜬히 해냈죠. 그 덕분에 여행이 끝날 때쯤 민정이 체중이 10kg이나 빠졌어요.”
‘우리 문화를 알린다’는 자긍심도 세계여행을 끝까지 마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사물놀이 공연을 하지 않으면서 여행만 했다면 아마 외화를 낭비한다는 죄책감 때문에라도 얼마 못 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거예요. 저희 공연을 보며 눈가를 촉촉이 적시는 해외 교민들을 보면 힘들다가도 새로운 힘이 막 생기더라고요.”
공새미 가족 구성원의 공통된 ‘습관’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가족 모두 연간 계획, 월간 계획, 하루 계획 등을 세우고 그날그날의 일을 기록하며 평가와 반성을 하죠. 시간의 효율성보다는 얼마나 의미 있게 시간을 보냈느냐를 점검하는데 좋아요. 이렇게 몇 년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면 인생이 의도하는 방향대로 흘러가게 돼 있어요. 저는 4년 전부터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고 부인과 아이들에게도 이 방법을 익히게 했지요.”
그래서일까. 김씨는 인터넷에 공새미 가족 홈페이지(www. gongsaemi.com)를 직접 만들어놓고 여행 도중 노트북을 이용해 여행일기를 쓰고 공연 사진도 올려놓았다. 이쯤 되면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가족이 아닐까.
“공새미 가족의 이름만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살면서 건강한 가족문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가족애의 사회화라고 할까요. 앞으로도 소외된 이웃들에게 샘물 같은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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