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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 떠나며 방송 활동 중단한 개그맨 김정식

“미국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가족의 소중함 깨닫고 돌아왔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5.01.31 16:34:00

‘밥풀떼기’로 많은 사랑을 받다가 98년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며 방송을 중단한 개그맨 김정식이 지난해 9월부터 장애인 인터넷방송 ‘사랑의 소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를 만나 미국 유학시절 이야기와 애틋한 가족에 대한 사랑, 장애인들과 함께하며 더욱 행복해진 요즘 생활을 들어보았다.
98년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 떠나며 방송 활동 중단한 개그맨 김정식

“무소식이희소식이라잖아요. 그동안 저 이혼 안 하고 잘 살고 있었어요(웃음).”
98년 갑자기 방송 활동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던 ‘밥풀떼기’ 김정식(46)이 장애인 인터넷방송 ‘사랑의 소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뉴욕에서 영화기획 및 제작에 관한 공부를 마치고 2002년 돌아온 후 영화와 광고기획 일을 하다 지난해 9월부터 ‘사랑의 소리’에서 무료 봉사하고 있는 것. 그는 본부장으로 방송에 관한 모든 일을 이끌어가는 동시에 ‘김정식의 세상 속 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며 장애인들의 ‘신문고 역할’까지 하고 있다.
청담동 ‘사랑의 소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밝고 행복해 보였다. 자막기나 자동송출기 등 제대로 된 방송장비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신이 난다고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더 불편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일 때문에 꼬박 밤을 새우기 일쑤지만 그는 “‘사랑의 소리’가 모든 일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사람을 비롯해 뭐든지 깊이 알면 실망하게 되는데, ‘사랑의 소리’는 알면 알수록 오히려 깊이 빠져들게 된다는 것.
그는 방송국 일로 바쁜 와중에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또한 난치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작은 영화도 기획중이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느라 2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지만 끄떡없다고 한다.
“체력은 타고난 거 같아요. 어머니 말로는 아버지가 씨름선수였다는데,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가봐요. 오히려 저보다는 하루 종일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더 걱정이죠. 그래서 얼마 전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해 드렸어요.”
그는 현재 어머니와 단둘이 안산에서 살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인 딸 슬기(고3), 아들 용기(고2)와 함께 그의 아내 이미혜씨(42)도 미국에 남아 있기 때문. 아내는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81년 KBS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그는 당초 어머니 약값을 벌기 위해 코미디언이란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활동하는 동안 돈과 명예에 연연했다는 것.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머니는 자식들 키우느라 하숙도 치고 연안 부두 길바닥에서 회 장사도 했다고 한다. 회의 싱싱함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얼음을 만져야 했던 어머니는 여름에도 손이 동상에 걸려 있었다고.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하셔서 나이 드신 후에 몸이 안 좋았어요. 특히 류머티스 관절염이 심했죠. 근데 그 류머티스 관절염 약값이 굉장히 비싸요. 약값을 벌기 위해 통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KBS 코미디언 시험에 합격했어요.”
아이들의 행복 위해 미국 유학 결정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그는 그렇게 코미디언이 됐고, 그 후 인기를 얻으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무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95년 KBS에서 선배 코미디언들이 설 수 있는 마지막 무대였던 ‘명랑극장’이 폐지되었다.
“저를 포함해 그 당시 잘 나가던 젊은 코미디언 몇몇이 밥줄 끊긴 선배님들을 돕기 위해 방송출연을 거부하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보니까 약속했던 동료들이 다 TV에 나오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난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생각하다 결국 ‘혼자라도 해야겠다’ 싶어 은퇴 선언을 했죠.”

98년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 떠나며 방송 활동 중단한 개그맨 김정식

김정식은 장애인 인터넷 방송 ‘사랑의 소리’에서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의리를 생명으로 여기던 그는 “선배들과 함께 설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기기 전까지는 코미디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 2~3년간 줄곧 사회자로만 일하다 98년 그것마저 그만두고 유학을 떠났다. 그는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코미디 프로에 출연하지 않고 있는데 언젠가 다시 선후배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가 생기면 ‘지나가는 행인1’ 역할로라도 꼭 출연하고 싶다고.
그가 모든 방송을 접고 유학을 떠난 것은 가족 때문. 자신이 일을 하는 건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인데 오히려 일 때문에 가족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 어린이날 여기저기 행사를 다니느라고 정작 자신의 아이들과는 한 번도 놀아준 적이 없고, 코미디언으로서 자신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로 인해 아이들이 받는 상처도 커졌기 때문이다.
“한창 인기 있을 당시 아들과 같이 길을 가는데, 동네 꼬마들이 저를 보더니 ‘어, 밥풀떼기 김정식이다’ 그러는 거예요. 전 괜찮은데, 아들은 속상했는지 그 아이를 들이받더라고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선배들이 ‘니 아빠가 김정식이라며? 그럼 너도 웃겨봐’ 하는 등 시달림을 받았나봐요. 그럴 때마다 자기 방에 들어가 몰래 우는 아이를 보면서 이건 아니구나 싶었죠.”
그래서 그는 가족의 행복과 평소에 관심이 많던 영화 공부를 위해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유학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가 갑자기 자신의 손바닥을 펴 보였는데, 손끝에 전부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미국에서 이렇게 손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세탁소나 도넛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고, 밤새 장거리 트럭운전도 했어요. 한국에 살 땐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대신 돈으로 충족시켜줬는데, 미국에선 반대였어요. 덕분에 늘 여유 있게만 살던 아이들이 돈의 귀중함을 알게 됐죠.”
그는 정치인인 장인에게 혹시라도 누가 될까봐 미국에 갈 때 거의 빈손으로 갔다고 한다. 그래도 미국에서 사는 동안 온 가족이 정말 행복했다고.
“미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신호등 앞에서 아내랑 뽀뽀를 했어요. 한국에선 사람들 시선 때문에 못했거든요(웃음).”
아내와 둘만의 결혼식 올리고 살다 6년 만에 사위로 인정받아
미국에 있는 아내 얘기를 하자 그의 눈에서 빛이 났다. 그는 아직도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방송국 선배가 여자친구를 만난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그 자리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어요. 아내도 자기 친구를 따라왔던 거예요.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정말 후광이 막 비치는 것 같았어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보자마자 ‘우리 결혼 할래요?’ 그랬죠(웃음). 아내는 처음에 ‘이 사람이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어이없어했는데, 그 뒤 몇 번 만나 차도 마시고 하면서 제가 괜찮게 생각됐나봐요.”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두 사람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그는 신문을 보고서야 이씨가 당시 서울대 음대에 재학 중인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이고 이씨의 아버지 이경재씨는 증권회사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경재씨는 그후 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아내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몇 번 만나서 차나 마신 정도였는데 너무 난리를 치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오기도 생겼어요. 사실, 그때 전 독신주의였거든요. 어머니 몸이 안 좋아 결혼은 생각도 안 했는데, 꼭 아내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맘이 들더라고요.”

98년 가족과 함께 미국 유학 떠나며 방송 활동 중단한 개그맨 김정식

‘밥풀떼기’로 인기를 모을 당시의 김정식 모습.


그도 그였지만, 아내도 대단했다고 한다. 가족의 반대가 심하자 집을 나와 몇 달 동안 그의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것. 그 바람에 그는 자기 집에서 잠을 못 자고 동료 코미디언인 장두석의 집에서 신세를 져야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86년, 친한 친구와 동료 몇 명만 불러놓고 서울의 한 호텔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 뒤 딸 슬기와 아들 용기를 낳고 살다가 6년이 지난 92년에야 비로소 처가의 허락을 받고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가 장인 이씨에게 사위로 인정을 받게 된 건,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취약지역에 출마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씨를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됐다.
“하루는 밤에 잠을 자는데, 여섯 살 된 딸아이가 ‘기호 2번 이경재’ 하고 잠꼬대를 하는 거예요. 아내가 저 모르게 아이까지 데리고 선거사무실에 갔다 왔다는 걸 알고 처음엔 화가 났지만, 그런 아내가 안쓰럽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장인어른의 선거사무실을 찾아갔어요. 한쪽 구석에서 봉투를 붙이고 있던 아내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그의 선거운동 참여로 이경재씨의 인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거운동을 하던 중, 직계가족이 아닌 그가 이씨의 명함을 돌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오히려 그 사건이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그의 수갑 찬 모습이 나가자 유권자들 사이에 동정론이 일기 시작한 것.
“얼마 뒤 풀려 나와 다시 선거운동을 하다 선거사무실 계단에서 장인어른과 딱 마주쳤어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요. 그날따라 주위에 사람들도 많았는데, 장인어른이 갑자기 제 손을 잡더니 ‘여러분 제 맏사위입니다’ 하시는 거예요. 왈칵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선거가 끝나고 아내에게 당선 소식을 들은 그가 케이크와 샴페인을 사들고 사무실에 갔는데, 다들 취해 선관위로 당선 증서를 받으러 가는 장인을 보필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함께 가게 됐고, 당선 증서를 받고 단둘이 돌아오는 길에 장인으로부터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진심으로 대하면 그 마음은 언제고 전해지는 법”이라고 말하는 김정식. 그의 진실한 마음이 장인에게 전해졌듯이 소외된 장애인들을 위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세상에 전해지길 바란다.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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