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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남자가 사는법

영화 인생 20주년 맞는 배우 박중훈이 처음 공개한 ‘나의 사랑, 나의 영화, 나의 아버지…’

“영화를 가장 좋아하기에 영화를 보다가 죽는 것이 바람입니다”

■ 글·구미화 기자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도서출판 선배가 후배에게 제공

입력 2005.01.10 17:06:00

영화배우 박중훈. 85년 영화 ‘깜보’의 주인공으로 데뷔한 그가 올해로 배우 인생 20주년을 맞는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재수 끝에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충무로에 발을 내딛은 지 꼬박 20년의 세월이 흐른 것. 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아버지로부터 배우로 인정받기까지 박중훈이 고백한 나의 영화, 나의 아버지.
영화 인생 20주년 맞는 배우 박중훈이 처음 공개한 ‘나의 사랑, 나의 영화, 나의 아버지…’

‘새내기’라는 말은 누구나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특히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의 경우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일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부푼 가슴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올해로 배우 생활 20년째를 맞는 영화배우 박중훈(39)도 꼭 20년 전 그랬다.
동국대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뒤 재수 끝에 중앙대 연극영화과 85학번이 된 박중훈은 학교보다 충무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손바닥만하게 오린 종이에 이름과 주소, 집 전화번호를 볼펜으로 적은 자필명함을 들고 충무로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니던 그는 영화 ‘깜보’ 오디션에 참여했다가 떨어진 뒤 “아무 일이라도 하겠다”며 영화사 사무실에 눌러앉았다. 그를 반기기는커녕 기다려주는 사람 하나 없었지만 그는 매일 영화사에 출근했고,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직원들을 위해 국수집에서 단무지를 얻어 오고, 사무실 여직원의 은행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으며 6개월 넘게 궂은일을 도맡아했다. 그러면서도 싫은 소리는커녕 특유의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다. 사무실 직원들이 춤을 추라면 춤을 췄고, 영화 속 대사들도 곧잘 받아서 흉내를 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이황림 감독은 “한번 찍어보자”며 그를 영화 ‘깜보’의 주연 배우로 캐스팅했다. 85년, 박중훈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전 성격상 좀더 새로운 것을 찾기를 좋아해요. 익숙한 것들을 반복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죠. 그 당시 저는 무척 다급했어요. 배우가 되겠다고 고집을 피워 연극영화과에 입학을 했는데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잘못하면 배우는 고사하고 택시 운전을 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무엇인가 제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박중훈은 중학교 때부터 장래희망으로 배우 이외의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타고난 언변과 남다른 끼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오락부장을 도맡았던 그는 누구를 만나도 항상 배우가 되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우 외에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물론 배우라는 게 지금처럼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연예인이었겠죠. 재수할 때는 가명을 써서 밤무대 가수도 했고,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적도 있어요. 그러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얻게 된 거죠. 그래서 주변에서는 제가 연예인이 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유명해지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배우의 길 반대했던 아버지, 연극영화과 합격하자 1년간 겸상 안 해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연예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막내인 그를 비롯한 삼형제가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에 다니길 바랐다고 한다. 때문에 그가 고등학교 시절 연극부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로부터 심하게 매를 맞았다고. 학창시절 참고서 외에는 어떤 책도 용납하지 않았을 정도로 엄했던 아버지는 그가 연극영화과에 합격하자 “가라는 대학은 안 가고 왜 학원을 갔냐”며 불호령을 내렸고, 1년 넘게 그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님은 영화라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분이에요. 자수성가하신 분이라 더욱 그랬을 거예요. 어렵게 공부해서 공무원으로 이사관(일반직 2급 공무원)까지 지내시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셨겠어요. 자식들을 무척 엄하게 대하셨죠. 공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으셨거든요.”

영화 인생 20주년 맞는 배우 박중훈이 처음 공개한 ‘나의 사랑, 나의 영화, 나의 아버지…’

하지만 그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식의 고집을 꺾지 못한 아버지는 “이왕 연극영화과에 갔으니 그럼 교수가 돼라”고 했지만 그는 교수가 될 생각이었으면 연극영화과에 지원하지도 않았을 거라며 계속해서 충무로를 맴돌았다. 아버지가 그의 꿈을 인정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뒤다. 그가 몇 편의 영화를 찍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아들이 그토록 매달리는 영화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깜보’로 데뷔한 후 87년에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받았는데, 그 당시 아버님의 친구분이 백상예술대상 사회봉사상을 타셨어요. 아마도 그때부터 아버지께서 ‘우리 아들이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 뒤로 제 영화가 개봉하면 아이들 목소리로 극장에 전화하셔서 남은 표가 있냐고 물어보시고, 없다고 하면 매진됐다며 좋아하시곤 했죠. 또 제가 뉴욕대학을 졸업할 때도 무척 좋아하셨고요.”
그는 “아버지는 항상 어려운 분이셨고,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마음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매사에 열심히’ ‘행동은 정정당당하게’를 가훈으로 정한 아버지의 가르침은 그가 영화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박중훈은 90년 최진실과 호흡을 맞춘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인기 절정에 올랐을 때 미련 없이 미국 유학을 떠났다. 3년간 미국에 머물며 뉴욕대 대학원에서 연극교육학을 전공한 것.
“연예인에게 몇 년의 공백은 영원한 공백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냐”고 묻자 그는 “나름대로 재투자가 필요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고. 그는 “만약 유학을 다녀온 뒤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냥 있었어도 안 되지 않았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만하면 배우로 생활하는 데 문제될 게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소모되는 듯한 느낌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그는 ‘언젠가는 한국 배우 중에 영어로 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과감히 미국행을 택했다고.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재충전한 에너지를 영화에 유감없이 쏟아 부었다. 93년 개봉 당시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 ‘투캅스’가 바로 그것. 박중훈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중 ‘투캅스’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그에게 할리우드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작품이다. ‘양들의 침묵’을 연출한 조너선 드미 감독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그가 선보인 연기에 매료돼 ‘찰리의 진실’에 그를 캐스팅한 것. ‘언젠가 한국 배우 중에 영어로 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던 그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찰리의 진실’에서 주연 배우는 아니었지만 한 걸음씩 그 세계를 알아간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하나씩 진행을 하다보면 좀더 넓은 인맥을 갖게 되고, 더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또 이런 기회를 통해서 한국 배우들의 가능성을 전해줄 수도 있고요. 특히 요즘은 한국 영화나 한국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훨씬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중훈은 최근 또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미국에 다녀왔다. ‘찰리의 진실’에서 호흡을 맞춘 조너선 드미 감독의 새 영화에 출연할 예정인 것. ‘비빔밥’이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백인 미녀 변호사와 사랑에 빠지는 한국식당의 웨이터를 연기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조금 더 논의가 진행된 뒤에 얘기하고 싶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다만 성룡, 주윤발 등 할리우드에 진출한 동양 배우들에게 각인된 ‘발차기’ 혹은 ‘쌍권총’의 이미지가 아닌 한 인간의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갈망이 있다고 한다.

어려울 때 가장 가까이서 지켜준 아내가 지금의 나를 만든 원동력

박중훈은 미국 유학 중 만난 재일교포 3세 윤순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연애할 당시만 해도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던 아내는 결혼 후 한국어학당을 다녀 지금은 한국말을 썩 잘한다고 한다. 그는 가족들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아내에 대한 고마움만은 숨기지 않았다.
“아내는 제가 어려울 때 가장 가까이서 절 지켜준 사람이에요. 지금 제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사람이죠.”

영화 인생 20주년 맞는 배우 박중훈이 처음 공개한 ‘나의 사랑, 나의 영화, 나의 아버지…’

올해로 데뷔 20년째를 맞는 박중훈은 앞으로도 지난 20년처럼 영화에 몰두하며 살겠다고 한다.


그는 2003년 월간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다시 결혼한다면 이런 여배우와 하고 싶다는 타입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시 결혼한다면 아무래도 지금 살고 있는 사람과는 다른 스타일, 그러니까 지금 마누라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겠냐”고 반문하면서도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유인즉 아내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제가 (영화 ‘마누라 죽이기’ 촬영 중에 터진) 대마초사건으로 전재산을 잃고 고작 몇십만원 남았던 시절이 있거든요. 막막하던 시절부터 시작해 제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저를 떠나지 않고 수많은 위기 속에서 보여준 이 사람의 신의를 제가 저버리면 안 되죠. 전 그녀가 떠나지 않는다면 제가 먼저 등을 돌리고 싶지는 않아요.”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되는 박중훈은 인생의 꼭 절반을 영화에 바쳤다. 그에게 “나머지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 것 같냐”고 묻자 담담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제 영화 인생은 꼭 상승곡선만은 아니었어요. 왔다 갔다 하는, 좋고 나쁜 순간들의 반복이었다고 할 수 있죠. 지금 전 반 정도 살았는데 앞으로도 이런 자세,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겠죠. 한번도 쉬웠던 적은 없으니까요. 전 영화를 가장 좋아하고, 영화를 보다가 죽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요즘은 그가 충무로를 헤매며 배우의 꿈을 키우던 20년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배우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인생의 선배로서, 선배 연기자로서 그는 “배우가 되려면 운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운이란 것은 기본기가 갖추어진 사람, 즉 그 운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뿐”이라며 “화려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때로 더러운 뿌리도 만져야 하고, 거름도 줘야 하며 썩은 부분을 갈아내야 하듯 힘겨운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연예인이나 배우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환상을 갖는 건 나쁘지 않다”고 덧붙였다. 환상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곳이 바로 연예계이기 때문이라고.
스크린에서 배우 박중훈을 만나는 건 올 여름 영화 ‘천군’을 통해서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 로케이션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 촬영 중 얼굴 부상을 당하기도 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았다. 그는 “청년시절 무과에 낙방해 좌절하고 있는 모습부터 영화가 시작된다”며 “지금까지 알려진 영웅 이순신의 모습과는 다른 인간적인 이순신을 그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다가도 가속도가 붙었다 싶으면 작전타임을 갖는 등 적절히 속도 조절을 하며 배우의 꿈을 실현한 박중훈. 그는 최근 출간된 ‘파로학번이 공오학번에게’에서 대학 새내기가 된 후배들을 위해 20년 전 꿈을 위해 투자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책에는 박중훈 외에 의학전문기자 홍혜걸, 작곡가 김형석, 영화감독 한지승, 성형외과 전문의 홍진주 등 85년 대학에 입학해 지금은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14명의 인사들이 20년간 터득한 ‘꿈을 실현하는 노하우’가 담겨 있다.

여성동아 2005년 1월 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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