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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 & 건강한 이혼방법’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중인 김영희씨가 들려주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5.01.03 16:21:00

8년째 서울가정법원 이혼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70%의 높은 이혼조정 성공률을 보이고 있는 김영희씨. 자신도 젊은 시절 1년 중 3백60일은 이혼을 꿈꾸며 살았다는 그가 1만 쌍이 넘는 이혼부부를 조정하며 깨달은 이혼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와 건강한 이혼방법에 대해 들려주었다.
‘이혼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 & 건강한 이혼방법’

하루4백여 쌍 이혼, 이혼율 세계 2위…. 그야말로 ‘가정 위기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혼을 예방하는 지혜와 건강한 이혼을 위한 노하우를 담은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가장 첨예한 이혼 갈등의 현장인 서울가정법원에서 8년째 이혼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희씨(62)가 펴낸 ‘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이 그것. 김씨를 만나 이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혼에는 협의이혼과 조정이혼, 재판이혼이 있어요. 협의이혼은 말 그대로 합의해서 이혼하는 것이고 이혼 의사 외에도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권 등 이혼조건에 대한 합의가 안 되면 재판을 해야 하는데 정식 재판에 가기 전에 조정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어요. 거기서 조정이 이뤄지면 조정이혼이 되는 것이고, 조정이 안 되면 정식 재판에 회부되는 거죠. 드라마 ‘사랑과 전쟁’이 조정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보면 돼요. 드라마에서 신구씨와 정애리씨가 하는 일이 조정위원의 역할이죠.”
하지만 드라마와 달리 실제 조정은 한 명의 조정위원이 짧은 시간 안에 조정을 해야 한다. 더구나 이미 이혼 당사자들이 자기들끼리 합의하지 못할 만큼 갈등의 골이 깊은 상태라 양쪽 모두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정을 하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20~30%만이 조정에 합의할 뿐 대부분은 정식 재판으로 간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그런 속에서도 김씨는 평균 70%라는 국내에서는 유례 없이 높은 이혼조정 성공률을 기록해 2003년 법원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그가 설득해 이혼소송을 취하하고 다시 잘 살겠다고 돌아간 부부도 10여 쌍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법률지식이 해박한 법조인도, 학식이 높은 대학교수나 학자도 아니다. 신문기자 출신의 남편을 둔 평범한 전업주부로 나이 들어 여성단체에서 인권·여성지위향상운동에 참여한 게 전부다. 그러다 97년 당시 윤관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조정위원을 하게 되었다고.
“조정위원은 양쪽 당사자 모두 억울한 부분이나 지나치게 손해 보는 부분이 없도록 해야 조정에 성공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법률가나 학자보다 오히려 세상 풍파를 많이 겪은 시장 노점상 할머니가 더 뛰어난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제가 높은 성공률을 보인 이유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도 1년 중 3백60일은 이혼을 생각할 만큼 힘들게 결혼생활을 한 경험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만큼 그들을 잘 설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년 중 3백60일은 이혼 생각할 만큼 힘들었던 결혼생활
그는 대학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던 기차에서 만난 대학생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은’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달콤한 꿈이 아니라 처절한 현실이었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10년 동안 남편 월급봉투를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어요.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죠. 기자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술꾼이었거든요. 월급도 술값으로 다 나갔겠죠. 정말 쌀이 떨어져 밥을 굶은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집 식구들이 밥은 먹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알지를 못했어요. 정말 마음으로는 백만 번도 더 이혼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김씨는 남편에게 왜 외박을 했는지, 돈은 다 어디에 썼는지 다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으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남편의 거짓말을 믿는 어리석은 여자가 되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혼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 & 건강한 이혼방법’

“전 남편 와이셔츠 단추 하나가 달랑거리면 제 자존심이 달랑거리는 것 같아 싫었어요. 또 사흘 이상 안 들어오면 양복과 와이셔츠를 챙겨 신문사로 찾아갔어요. 남편이 추레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집에서 마누라가 뭘 하냐’며 저를 욕할 거 아니에요.”
남편이 십수 년을 몸담았던 신문사를 그만두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표를 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뜬금없이 “오랜만에 제주도 여행이나 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속상한 남편에게 ‘왜 사표를 냈느냐’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거냐’ 하는 이야기를 해보았자 마음만 더 상하잖아요. 아이가 밖에서 얻어맞고 왔을 때는 무조건 아이 편이 되어주어야지 ‘왜 바보같이 맞고 왔냐’며 쥐어박으면 더 큰 상처를 받는 법이잖아요.”
그렇다고 그가 답답하게 참고만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는 참고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참는 것은 참는 것일 뿐 언젠가 갈등이 터질 수밖에 없다는 것. 불행히도 대개의 부부들은 갈등이 터지는 날이 이혼하는 날이 된다고 한다.
“참고 산다는 게 ‘용서하고 넘어간다’가 아니라 ‘대화를 안 하겠다’는 부정적 의지의 표현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대화 단절은 부부 사이에 위기가 왔다는 뜻이죠. 대화를 자주 하는 부부에게 위기는 없어요.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대화를 하다 더 싸워요. 그건 대화의 방법,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죠.”
그는 남편이 지어준 자신의 별명이 ‘차 한잔’이라고 했다.
“남편이 화를 낼 때 전 절대 맞서지 않아요. 상대가 화를 낼 때 맞서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거든요. 대신 사람들은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화를 냈던 걸 후회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럴 즈음에 조용히 ‘차 한잔 하자’고 해요.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섭섭한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서로 존경하며 살자’고 부탁해요. 그리고 ‘오늘 저녁은 뭘 먹지?’ 하고 화제를 돌려요. 그래도 남편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다 알아듣게 되어 있어요. 잔소리는 1분을 넘기면 안 돼요. 잔소리가 길어지면 또 싸움밖에 안 되거든요.”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 생각한다면 재혼했다 생각하고 그냥 살면 어떨까 싶어
김씨는 97년 처음 이혼조정을 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이혼사유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시집과의 갈등으로 인한 이혼은 많이 줄어든 반면 성격 차이, 배우자의 부정, 경제 문제로 인한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특히 젊은 층에서 이혼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우려했다.
“한 젊은 여성이 이혼소송을 했는데, 소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특별한 이혼사유가 없어요. ‘왜 이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사랑하지 않으니까,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으니까 헤어지려고 한다’면서 오히려 저에게 ‘인간에게는 누구나 행복추구권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더군요.”
또한 아이 양육권도 갖지 않겠다고 해서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엄마가 키우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자 “왜 아이를 저 혼자만 키워야 하죠? 지금까지 제가 키웠으니까 이제부터 남자도 키워봐야죠” 하더라고.
“결혼은 왕자와 공주의 만남이 아니라 시종과 시녀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서로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위기가 생기는 거예요.”

‘이혼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 & 건강한 이혼방법’

그는 조정을 하면서 많은 부부들이 조금만 더 일찍 상담을 받았더라면 이혼까지 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며 위기의 부부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이전에도 이혼에 대한 책은 여럿 나와 있다. 대부분 당당하게 이혼하라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혼을 해서 좋을 것 같으면 저도 진작 했죠. 이혼 후 행복하다면 정말 적극 권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혼 후의 길은 가시밭길이에요. 이혼한 사람들의 80%가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해요. 경제 문제를 빼더라도 50%가 이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답해요. 재혼을 한 후에도 살다보면 가슴앓이를 할 때가 많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처음 결혼한 남자와 서로 개선해가면서 사는 게 자신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이혼에 대해서도 색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남편, 아내라는 기득권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어요. ‘내 남편이니까’ ‘내 아내니까’ 하고 쉽게 대해요. 그런 배우자만 보다 그렇지 않은 이성을 만났을 때 마음이 동하는 걸 어떻게 막겠어요. 배우자가 외도를 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밖에서 취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는 여자 혹은 남자로서의 매력이 하나도 없으면서 배우자가 자신만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생각이라고 했다.
“남편이 미국 특파원으로 발령이 나서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느낀 게 참 속옷시장이 발달해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곳 주부들은 홈웨어에 신경을 많이 써요. 우리나라는 반대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외출복에는 신경을 쓰고 투자도 많이 하면서 남편을 위한 침실 패션엔 신경을 안 써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어요.”
또한 부정을 저지른 배우자가 더럽게 느껴져서 헤어진다는 사람에게 “이혼 후에 평생 혼자 살 거냐”고 반문하고 싶다고 했다.
“대부분 재혼을 생각하는데 어차피 상대도 숫총각, 숫처녀가 아닌 경우가 많잖아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재혼해서 하고 싶은 말 못하고 마음고생하면서 사는 것보다, 재혼한 셈치고 지금 배우자를 용서하고 그냥 사는 건 어떨까 싶어요.”
그는 배우자가 외도를 한 데 내 잘못은 없는지 돌이켜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몇 달 전에 환갑이 넘은 부부의 이혼조정을 한 일이 있었는데, 이혼사유가 할머니의 외도였어요. 춤선생과 바람이 났다는 거였죠. 처음엔 소장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이 드신 할머니였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그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남편이 전혀 사랑을 주지 않으니까 사랑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거예요. 사랑은 나이가 없는 거잖아요. 부부 성생활이 원만하지 못하면 그게 원인이 되어 다른 갈등이 증폭되기도 해요. 바람을 피우게 되고….”
반면 그가 이혼을 하라고 권하는 경우도 있다. 가정폭력, 의처증, 의부증, 마약중독, 알코올의존증, 도박중독 등이 그것. 쉽게 고쳐질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사는 게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면 이혼을 해야겠지만 절대 감정이 앞서 서두르지 말고 이혼 후를 대비하며 차근차근 준비하라고 충고했다. 그래야 이혼 후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우선 경제적인 준비를 철저히 하고 이혼을 하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이혼 후 경제적인 고통을 겪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언뜻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이혼하며 여성이 받는 위자료와 재산분할 금액을 합쳐 3천만원을 넘기 힘들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이혼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 & 건강한 이혼방법’

김씨는 이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건강한 이혼을 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하라고 조언했다.


여자들이 입으로만 이혼을 이야기하는 사이 남자들은 재산을 빼돌려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억원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남자가 이를 담보로 은행이나 지인으로부터 돈을 빌려 감춰버리면 여자는 이혼소송을 해도 한푼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해놓고 법정에선 “주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준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남자들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따라서 이혼하려면 미리 집을 공동명의로 해놓고, 배우자가 숨겨놓은 재산이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또한 이혼을 하더라도 상대방과의 감정을 객관화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흔히 협의이혼에 실패해 조정단계까지 오면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다. 하지만 서로 증오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남남이 되면 사랑도 없지만 증오도 없어야 해요. 외국에선 대부분 헤어진 다음에도 친구처럼 지내요. 문제가 생기면 서로 전화로 상담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증오하며 헤어지잖아요. 그러면 자기만 더 불행해질 뿐이고, 특히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뿐이에요. 이혼하기 전 마음의 정리까지 하는 자세가 중요해요.”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암에 걸리기 전에 암을 조심하듯이 건강한 부부도 건강할 때 이혼을 예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소리 없이 온다’는 거예요. 조기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죠. 부부 위기도 마찬가지예요. 이혼법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한탄해요. 부부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불만스러운 것을 서로 공유하고 고치려 노력해야 해요. 처음부터 백점짜리 상대가 어디 있나요? 결국 부부란 51점짜리 상대를 만나 백점짜리 배우자로 서로 키워가며 사는 것임을 잊어선 안 돼요.”
그는 책의 수익금 전액을 이혼으로 인한 결손가정 아이들과 매 맞는 여성들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성동아 2005년 1월 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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