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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이혼 위기 극복하고 부부사랑 되찾기까지…’

“세상이 떠들썩하게 별거 소동 치렀지만 이젠 가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 의상협찬·MCM 라우렐 세인트 에띠엔느 ■ 장소협찬·이아(Oia, 02-546-5060) ■ 헤어&메이크업·이가자 헤어비스

입력 2005.01.03 10:17:00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15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이혜영.
98년 이후 언론과의 만남을 피해왔던 그가 6년 만에 처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 중이던 2001년 이혼소송을 벌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가 별거에 얽힌 속사정과 남편과 재결합해 다시 행복을 되찾기까지의 과정, 새롭게 출발하는 연기자로서 각오 등을 속속들이 털어놓았다.
이혜영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이혼 위기 극복하고 부부사랑 되찾기까지…’

KBS미니시리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소지섭의 생모 오들희로 출연한 이혜영(43)은 3년 만의 연기 복귀, 15년 만의 드라마 출연임에도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왕년의 톱스타로 고상한 척하지만 10분만 이야기하면 경박함이 드러나는, 그러나 강한 모성애를 지닌 오들희는 시청자들이 얄미워하면서도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드는 개성 강한 인물이다.
드라마가 절정을 향해 치닫던 12월 중순,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이혜영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인터뷰에 정식으로 응한 것은 2년간 파리에 머물다 귀국해 연극 ‘눈물의 여왕’에 출연한 98년 이후 6년여 만. 그는 새벽부터 촬영을 한 탓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드라마의 성공이 만족스러운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라 힘들어요. 긴장을 해서인지 감기를 달고 살고 있어요. 나을 듯하면서도 안 낫고, 쉽게 떨어지질 않네요. 그래서 힘들지만 정말 흡족해요.”
그의 드라마 출연은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15년 전, 드라마 ‘역사는 흐른다’에 출연하던 중 스스로 중도하차한 후 영화와 연극만을 고집해왔기 때문이다.
“느낌이 좋았어요. 배역도 마음에 들었고요. 사람들은 저보고 작품을 까다롭게 고른다고 하는데 전 ‘이거다’ 싶으면 빨리 결정하는 편이에요.”
마흔세 살인 그에게 극중 50세인 오들희 역은 모험이라면 모험일 수 있다. 한번 나이 든 역할을 하면 그 이미지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 연기자들은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젊은 역할을 선호한다.
“맞아요. 극중 나이가 50세예요. 보톡스를 맞아서 젊어 보인다는 설정이었죠(웃음). 그런 우려도 없지는 않았지만 제가 걱정했던 건 그것보다도 ‘나쁜 여자’ 이미지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거였어요. 제가 처음 생각했던 오들희보다 작가나 연출가가 좀더 얄미운 오들희를 요구했거든요. 그래야 극적 재미가 있으니까요. 솔직히 처음엔 그렇게 가는 게 두렵기도 했어요.”
그는 현재 우려했던 대로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고 있지만 그만큼 오들희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칭찬이기에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시집식구들조차 오들희가 더 욕을 먹어야 한다며 격려를 할 정도라고.
함께 연기한 소지섭과 임수정에 대한 느낌은 어떨까.
“(임)수정이가 출연한 영화 두 편을 다 보았는데, 참 특이한 매력을 가진 후배에요. 그리고 (소)지섭이는, 현장에서 보면 제 가슴이 두근거리고…(웃음).”
소지섭은 촬영장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극중 배역인 ‘무혁’의 이미지가 묻어나올 정도로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가가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보여요. 자기에게 딱 맞는 역을 하고 있는 거죠. 하긴 엄마를 잘 만났지 뭐. 엄마가 눈물 쏙쏙 빼주니까 시청자들의 동정을 한 몸에 받고 있잖아요. 엄마가 제대로 못했어봐, 그런 동정 받을 수 있나(웃음).”

이혜영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이혼 위기 극복하고 부부사랑 되찾기까지…’

그는 81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 역으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 생활 24년째를 맞는다. ‘가스펠’ ‘카바레’ ‘빠담빠담빠담’ ‘사의 찬미’ ‘로미오 20’ ‘님의 침묵’ ‘문제적 인간 연산’ 등 뮤지컬과 연극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영화에서도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했다. 83년 ‘김마리라는 부인’을 시작으로 ‘티켓’ ‘땡볕’ ‘겨울나그네’ ‘성공시대’ 등을 통해 도도하면서도 관능적인 섹시함으로 남성 팬들을 사로잡았는가 하면 90년대 들어서는 ‘남부군’ ‘명자 아끼꼬 쏘냐’ ‘화엄경’ ‘헤어드레서’ 등을 통해 이전의 여배우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상을 창조해냈다. 또한 91년 SBS 개국 당시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사 프로그램인 ‘뉴스쇼’ 앵커로 발탁돼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96년 갑자기 연기자 생활을 접고 홀연히 프랑스 파리로 떠난 그는 2년 만에 연극 ‘눈물의 여왕’으로 복귀했지만 예전과 같은 연기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0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와 2001년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에 출연한 것이 전부.
“전에는 연기를 하는 게 즐겁지 않았어요. 배우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스스로 즐겁지 않은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절망감에 빠져 96년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파리로 떠나기도 했죠. 그런데 이번엔 연기를 하면서 즐거웠어요. 앞으로도 즐겁게 하려고 해요.”
언제부터 연기가 즐겁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묻자 그는 “오들희를 하면서부터”라고 답했다.
“역할이 잘 어울리고, 즐겁게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정말 저 스스로도 연기를 하면서 즐거웠죠. 이런 기분이 들기는 처음이에요. 신앙심이 저를 변화시켰기 때문인 것 같아요. 교회를 다닌 지는 7~8년 되었는데, 지금처럼 신앙심이 깊어진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 일’이란 2001년 있었던 남편과의 별거와 이혼소송을 말한다. 그와 남편 김씨(50)는 파리에서 만나 아이를 먼저 낳고 뒤늦게 결혼한 사연을 가지고 있어 당시 두 사람의 별거와 이혼소송은 더 의아하게 생각됐다.
“구차하게 변명을 하자면 부부싸움을 크게 한 거예요. 그때 남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영화 촬영을 끝내면 돌아올 거라고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그렇게 됐어요. 그 생각 하면 자존심이 상해요(웃음).”
2001년 5월, 딸 하연이(8)를 데리고 집을 나온 그는 정말 이혼을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혼 절차를 밟으며 한편으론 남편이 아이를 뺏어가지 않을까 경계하고 긴장하며 살았는데, 6개월 정도 지나자 우려했던 대로 남편이 하연이가 다니던 미술학원을 찾아가 아이를 데려가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아이에 대한 보고픔 때문에 남편에게 ‘앞으로 잘하겠다’는 각서 받고 재결합
“그 후 한 달 반을 혼자 살았는데, 못살겠더라고요. 오로지 하연이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하연이마저 없으니까 세상이 너무 삭막했어요. 사랑할 사람이 다 사라진 거잖아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사랑을 해야겠다. 그럼 누굴 사랑할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 대상이 남편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을 다시 사랑하기로 했죠(웃음).”

이혜영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이혼 위기 극복하고 부부사랑 되찾기까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할 만큼 미워했던 남편을 다시 사랑할 생각을 했냐고 묻자 그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 전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가능하게 하잖아요” 하고 답했다.
“사랑이 남아 있으니까 미운 감정도 들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갈등의 원인이 남편이 아니었고요.”
그러면 당시 갈등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처음엔 “다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그 일을 다시 꺼낼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동안 제가 기자들을 만나지 않은 이유는 우리 부부의 일이 기사화될 때마다 서로 오해를 불러일으켜 나중엔 걷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부부가 살면서 있을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거든요.”
그는 갈등의 원인에 대해 조심스럽게 “살아온 환경이 다른 데서 오는 차이를 서로 이해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확실히 좋아졌어요. 그런데 누가 변했냐면 제가 변했어요. 남편도 안 변하고, 시어머니도 안 변했죠. 전에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안 돼 그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견디고 못 견디고를 떠나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오히려 지금은 제가 시어머니와 똑같이 되어가고 있죠(웃음).”
예를 들어 남편은 하연이가 어디 가서 뭘 만지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걸 싫어해 하연이는 넘어질 때도 손에 더러운 것이 묻으면 혼날까봐 손바닥을 땅에 짚지 않고 넘어질 정도라고 한다. 전에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남편이 그렇게 말하니까 맞는 말이야’ 하고 생각을 한다고.
당시 언론에서 보도했던 시어머니와의 갈등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전에는 시장갈 자유도 없었어요. 시어머니가 춘천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서 모든 것을 다 갖다 먹게 하셨거든요. 달걀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며 직접 닭을 기르시고, 심지어 그곳 물이 좋다며 주말마다 길어다 먹게 하셨어요. 그땐 정말 숨이 막히는 것 같았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건데 왜 그러시나’ 하는 불만이 쌓였죠.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챙겨주니까 고마운 거잖아요. 생각하기 나름인 거죠. 지금은 ‘어머니가 옳으세요’ 해요.”
재미있는 것이 그는 이혼 준비를 하면서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재판에 유리하도록 ‘엄마로서의 권리를 무시당했던 사례’를 정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인 사례를 쓰다가 ‘시어머니가 이렇게 안 해주시면 내가 배우로 일하면서 살림하고 엄마와 아내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어머니가 그렇게 해준 걸 고마워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남편이 아이를 데려간 직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일부러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가 한 호텔 사우나에 들렀는데, 옆에서 아줌마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어요. 아주머니 한 분이 친구들에게 반지를 보여주며 ‘나 이거 하면서 우리 시어머니도 해드렸다’고 하는데, 문득 ‘아, 나도 저 며느리처럼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고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저를 며느리로 금방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자꾸 미운 마음이 쌓였던 것 같아요.”
결국 그는 남편이 다시 찾아와 ‘앞으로 잘 하겠다’는 각서까지 쓰며 재결합하자고 설득하자 ‘이때다’ 싶어 못 이기는 척 슬며시 남편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아이 없이는 하루도 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혜영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이혼 위기 극복하고 부부사랑 되찾기까지…’

오들희 역을 통해 연기의 즐거움을 한껏 느꼈다는 이혜영.


“제가 남편에게 그래요. 다음에 집 나갈 땐 절대 아이는 안 데리고 나간다고. 그러면 남편도 지지 않고 ‘네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다시는 안 찾는다’고 해요.”
이혜영이 하연이가 없는 한 달 반 동안 아이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을 때 시집에서는 하연이가 하도 엄마 보고 싶다며 떼를 써서 가족회의를 열어 엄마에게 보내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제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하연이를 데리고 이혼하는 거였는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웃음).”
당시 남편이 쓴 각서 내용이 뭐였냐고 묻자 그는 “7~8개 정도 쓴 것 같은데 생각도 안 난다. 지금은 각서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첫 번째만 기억이 나는데 ‘내가 때가 되어 자유롭게 일을 할 때 반대하지 않고 박수치며 환영하고 격려한다’였어요. 남편도 이후로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이번에 드라마 할 때는 격려도 해주고….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물론 처음부터 달라진 건 아니었다. 그가 교회에 나가고, 둘째를 임신하면서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2003년 7월에 태어난 아들 원이가 복덩이에요. 진짜 사랑의 결실인 셈이죠. 전에는 두 번이나 둘째를 갖는 데 실패했는데 재결합 후 원이를 갖게 됐으니까요.”
둘째 기저귀 갈아주고 책 읽어주는 자상한 아빠로 변한 남편
남편과 시어머니는 그가 배우로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집안일에만 충실하길 바랐던 것. 그래서 그는 하연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4시엔 무조건 집 앞에서 하연이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배우 일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를 찍을 때 집을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재결합 후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시집의 태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가 교회 성가대원이 되니 시어머니가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성가대 활동을 하려면 금요일 저녁에 연습을 해야 하고, 일요일에도 아침 일찍 나가 준비를 해야 했죠. 전에는 저녁에 밖에 나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성가 연습 때문에 가능하게 된 거예요. 하루 종일 제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하연이도 엄마가 저녁에 외출하는 것에 익숙해지고요. 심지어 시어머니는 제가 배우로 바깥일을 하는 건 전혀 인정을 안 하시다가 성가대 활동을 한다니까 힘들다며 입주가정부를 구해주셨어요. 저에겐 교회가 막혔던 숨통을 틔어준 생명수인 셈이죠.”
그가 배우라는 걸 남편이 몰랐냐고 묻자 “파리에서 만나 사귈 때 배우라는 건 알았지만 다시 복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자기를 떠나서 뭘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원래 대학교수였던 남편은 사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어요. 인베스트먼트뱅커(투자상담가)라고 하는데 전 그게 뭔지도 몰라요. 사업 때문에 국제전화하는 걸 옆에서 들으면 상상할 수 없는 돈이 왔다 갔다 하는데, 전 그 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웃음).”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내친김에 흉도 보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파리에서 보았던 그 남자가 아니었어요. 파리에서는 여행도 함께 다니며,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 있게 와인도 마시곤 했는데 한국에선 집에서 김치말이 해먹고, 동치미에 두부랑 얼음 넣어 찬밥 말아 먹는 걸 좋아해요. 그러면서 자기는 이게 체질이래요. 파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먹고 살았나 몰라(웃음).”

이혜영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이혼 위기 극복하고 부부사랑 되찾기까지…’

“지금은 부부금실이 좋은 것 같다”고 하자 환하게 웃으며 “그럼요. 지금은 정말 행복해요” 한다.
그는 드라마가 끝나면 무엇보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과 24시간을 같이 있다가 요즘 촬영 때문에 떨어져 있으니까 눈에 밟힌다는 것.
“여행을 가고 싶은데 원이가 아직 17개월밖에 안 돼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전에 하연이 데리고 필리핀에 갔다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다시 갈 엄두가 안 나거든요. 아이들이 너무 좋지만 솔직히 귀찮을 때도 있어요. 어떤 땐 정말 아이들 없는 곳에서 이틀만 자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전 하연이 낳고 나서 8년 동안 밤에 제대로 잔 적이 없어요. 자다가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물을 떠다주거나, 뭐든 해줘야 했죠. 지금도 하연이는 자다가도 새벽에 일어나 자기랑 자자고 와요. 그래서 밤에 원이 방에서 자다 하연이 방에서 자다 그러죠.”
그는 하연이는 7개월까지, 둘째 원이는 백일까지 모유를 먹였다. 원이를 임신했을 때 76kg까지 몸무게가 늘었는데 모유 수유 덕분에 백일 만에 10kg이 저절로 빠졌다고 한다. 그는 이유식도 직접 만들어 먹였다고 한다.
“특별한 건 없고 밥에다 여러 가지 야채를 넣어 죽처럼 끓여서 먹였어요. 그래서인지 원이는 지금 17개월밖에 안 됐는데도 동치미국물도 잘 마시고, 매운 떡볶이도 잘 먹어요. 안 먹는 게 없어요.”
조금만 더 크면 아들 키우기가 더 힘들 거라고 하자 “벌써부터 하루 종일 방망이를 휘두르고 다녀 힘들다”고 하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는 원이를 낳고 남편의 변한 모습에 가장 놀랐다고 한다. 50줄에 접어든 사람이 직접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먹이는 것은 물론, 요즘은 바쁜 그를 대신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는 것. 하연이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한다.
“남편이 웃으면서 ‘내 나이에 이렇게 하는 사람 없다’고 해요. 전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래서인지 하연이는 엄마하고만 자는데 반해 원이는 엄마에게 “빠이빠이” 하며 곧잘 아빠 손을 잡고 자기 방으로 자러 간다고.
하연이가 엄마의 끼를 닮았냐고 묻자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많이 수줍어하는 편이라고.
“하겠다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 솔직히 배우가 되길 바라지 않아요. 배우란 게 너무 힘들거든요. 아이들 아빠는 배우가 되는 걸 싫어해요. 지금은 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보다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이제는 가정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요”
이혜영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이혼 위기 극복하고 부부사랑 되찾기까지…’

이혜영은 “셋째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겠다”고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는 “정말 연기를 하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피도 눈물도 없이’를 할 때도 그걸 계기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원이를 임신하면서 그럴 수 없었어요. 이젠 배역의 비중을 떠나 연기를 하고 싶어요.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누구의 엄마보다는 좀더 냉정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는 엄마가 되어서인지 드라마가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연극이나 영화처럼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 아이들 키우면서 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연극에 대한 욕심은 없냐고 하자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연극은 그 힘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공연 몇 달 전부터 집을 떠나 무대에서 살아야 하거든요. 보헤미안의 삶 같아요. 사실 전에는 연극을 할 때 어미 아비도 없는 자식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게 조금은 없어진 거 같아요. 아이들이 우선이니까요. 가정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 제 자신에 매우 만족하고 있고요.”
인터뷰를 마친 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던 그가 싱긋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셋째 소식이 있으면 알려드릴 테니 기다리고 계세요.”

여성동아 2005년 1월 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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