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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상어 문신을 새기고 다시 돌아온 문단의 고요한 킬러 박범신

“문신 새긴 후 교수직도 그만두고 글쓰기에만 매달렸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12.01 11:11:00

3년 만에 연작소설 ‘빈방’을 펴낸 소설가 박범신. 청년의 감수성을 그대로 간직한 유려한 문체로 독자들을 또다시 사로잡은 그가 지난해 교수직을 그만둔 후 팔에 상어 문신을 하고 삭발을 하며 자신에게 변화를 준 이유와 여전히 뜨거운 문학열정을 들려주었다.
몸에 상어 문신을 새기고 다시 돌아온 문단의 고요한 킬러 박범신

상어를 잡으러 갔다. 바다의 무법자 식인 상어가 아니다. 쉰여덟 남자의 육체를 유영하는 푸른 상어를 만나러 지난 11월12일 소설가 박범신씨(58)의 집을 찾았다.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그의 집은 기하학적 무늬의 하얀 대문부터 정갈한 인상을 풍겼다. 화단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은 삭풍에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누군가 섬세하게 보살핀 손길이 역력했다. 그가 직접 나뭇조각을 모아 화분을 만들고 애써 가꾼 흔적이다.
북악산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그의 서재가 있었다. 빼곡이 책이 꽂힌 책장에서는 그가 직접 깎은 사슴 모양의 목공예 작품도 눈길을 끌었는데 요즘 그는 이곳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육필 원고를 쓴다.
이런 그가 몸에 상어 문신을 새기고 헬스클럽에서 근육 단련에 힘쓴다고 하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지난해 겨울 아내랑 하와이로 여행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상어 문신을 새겼어요. 평소 재규어나 표범처럼 가장 역동적인 맹수를 새기고 싶었는데 그런 것은 없었어요. 서 있는 사슴이 있긴 했는데 작은 크기로 하기에는 상어가 훨씬 역동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참을 만했지만 문신 새길 때 좀 아프더군요. 문신을 자주 새기는 사람들 심리에는 마조히즘이 깔려 있답니다. 자기 가학성 심리인데 뭔가 학대를 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죠.”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행동을 보고 가족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무도 놀라지 않았어요. 평소 제가 특별히 엽기적인 일을 벌이는 편은 아니지만 가족들은 제가 문신을 한 것쯤은 전혀 돌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딸이 ‘멋있다’고 하데요.”
상어 문신을 보여달라는 막무가내의 요청이 수차례 있은 후에야 그는 멋쩍은 미소를 띠며 주섬주섬 왼쪽 팔소매를 걷어 올렸다. 마치 작살이 관통하듯 길이 10cm 남짓한 상어 문신이 그의 탄탄한 팔뚝에 사선을 긋고 있었다. 불꽃 모양의 꼬리지느러미가 날렵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일까. 순간 그가 소설가라기보다는 ‘킬러’에 더 가깝게 보였다.
“어떻게 보면 소설가는 ‘킬러’에 가까워요. 킬러는 생전 처음 가는 집을 방문해도 몇 초 만에 그 집의 구조를 꿰뚫는 눈을 가지고 있죠. 살인을 끝낸 후 안전한 퇴로를 확보해야 되니까요. 그만큼 소설가는 리얼리즘을 획득해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실제 그는 영화 속의 ‘킬러’들을 좋아하고 ‘내가 킬러가 되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것도 고요한 느낌의 킬러를 선호하고 ‘레옹’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지적인 그의 이미지에 상어 문신이 묘하게 잘 어울렸는데 그는 사진 촬영만큼은 한사코 거절했다. “양아치처럼 보이기 싫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설가와 문신. 어쩌면 파격 중의 파격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그에게는 엄숙주의나 권위주의가 없다는 증거 같기도 했다. 그가 ‘청년작가’로 불리는 이유도 이런 자유로움에서 비롯된 모양이다.
그렇다고 괜한 심심풀이로 그가 문신을 새긴 것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 있어 상어 문신을 새기는 행위는 ‘글쓰기’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일심(一心)’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상어 문신을 새긴 후부터 지금까지 그에겐 크고 작은 변화가 많았다. 우선 지난 13년 동안 몸담아온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직을 그만 두었다.

몸에 상어 문신을 새기고 다시 돌아온 문단의 고요한 킬러 박범신

레옹처럼 킬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는 박범신.


“아직 6~7년 정도 정년이 남아 있긴 한데 그냥 작가만 하고 살려고요. 나이가 드니까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필요한 상상력도 자꾸 떨어지는 것 같고 초조해요. 보통 작가들이 교수가 되면 글이 안 써진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저는 그걸 깼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글이 잘 안 써져요. 그래서 자유롭게 글을 쓰려고 교수직을 그만뒀는데 쓸쓸한 마음에 자꾸 술만 마시게 되네요(웃음).”

문신 새기고 삭발까지 한 채 대중목욕탕 들어가니 모두 피해
그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만의 작업 공간 ‘한터산방’도 정리했다. 그리고 삭발을 감행했다. 곧장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 들어가 넉 달 남짓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글쓰기에만 매달렸다.
“혼자 떨어져 있어 외로우니까 원주 시내에 있는 대중목욕탕에 가끔 다녔어요. 제가 눈썹이 짙어서 그리 순한 인상은 아니거든요. 게다가 삭발까지 하고 팔에 문신이 새겨져 있으니까 사람들이 저를 조폭으로 착각했나봐요. 대중탕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아무도 접근을 안 하더라고요(웃음).”
구도자의 심정으로 삭발을 했건만 해프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운전하다보면 일방통행 도로를 잘못 진입해 들어갈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나이 들었다고 해서 젊은 사람들이 양보하는 일은 절대 없거든요. 그런데 차창 밖으로 고개 내밀고 인상 한번 쓰면 다 양보해요(웃음). 그때 이상한 희열을 느끼면서 ‘폭력성도 중독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가지 웃지 못할 일을 겪기도 했지만 올 한 해는 그에게 ‘흘러다니는 시기’였다고 한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혼자 여행을 다녔어요. 그리스에도 가고 제주도, 변산반도, 백령도, 영일만 등 여러 곳을 돌아다녔죠. 우리나라 전국 바닷가는 다 돌아다닌 것 같아요. 집에는 뜨내기처럼 하루 이틀 머물다가 또 짐을 싸서 떠나길 반복했어요. 교수직을 그만두고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전화도 받아야 되고 우유 값도 줘야 되고 텔레비전도 봐야 돼서 정신이 없었는데 혼자 여행 다니면서 외로우니까 글이 써지더군요.”
그가 최근 펴낸 연작소설 ‘빈방’은 이렇게 길에서 시작돼 길에서 끝을 맺은 소설이다.
“‘빈방’에 함께 묶인 여섯 편의 연작소설은 아이를 밸 수 없는 자들의 쓸쓸하고 참혹한 퍼포먼스를 꼼꼼히 기록한 것이에요. 첫 번째 작품 ‘별똥별’을 쓴 것이 90년대 말이었으니까 지난 5~6년 동안 저는 이 연작소설의 큰 주제라 할 수 있는 ‘불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었나봐요.”
그는 지난 93년 한 일간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던 중 돌연 절필을 선언한 경험이 있다. 장편소설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수요일은 모차르트를 듣는다’ 등의 소설을 통해 왕성한 창작의 희열을 경험했다면 93년 이후로 3년 동안은 불임의 시기가 이어졌다.
“그때 삶의 경쟁에서 해방되고 싶어 절필했어요. 거품 같은 경쟁의 트럭에서 내려와 자연을 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그래도 처음 6개월 정도는 ‘상처’만 생각났어요. 1년 남짓한 기간은 소외감 때문에 힘들었고요. 그러더니 정신의 ‘독기’가 서서히 빠지면서 제 본성이 살아나더라고요. 오히려 절필기간을 거치면서 자유로움, 행복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할까요.”

바쁘지 않으면 소외된다는 두려움 있어 그간 일 중독자처럼 살아와
이때 그는 용인에 머물면서 감자, 고구마, 고추, 호박, 오이, 방울토마토 등 20가지가 넘는 야채 농사를 직접 지었다. 1백70평 밭에 야채 농사를 짓자니 비라도 한번 오면 하루 종일 풀베기가 큰일이었다.
“여름에 장마가 끝나고 나면 야채밭 반, 풀밭 반이었어요. 풀베기가 힘들어서 며칠 일손을 놓으면 야채보다 풀이 더 많이 자라죠. 한번은 고구마를 심어놓고 제가 고구마 심은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겨울날 한밤중에 혼자 누워 있는데 심어둔 고구마 생각이 나는 겁니다. 곧장 밭으로 달려가 달밤에 체조하듯 정신없이 고구마를 캤죠.”

몸에 상어 문신을 새기고 다시 돌아온 문단의 고요한 킬러 박범신

박범신은 최근 불임을 소재로 한 연작소설 ‘빈방’을 펴냈다.


당시 그가 캐낸 고구마가 한 가마니 분량이 됐는데 땅 속에서 썩지 않고 온전히 보관된 고구마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밭에 야생초가 번성하단 핑계로 가꾸던 작물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것은 고구마뿐이 아니다. 방울토마토도 심어놓고 잊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짐짓 농사꾼인 양 감자씨 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감자를 아무렇게나 밭에 심는다고 싹이 나는 게 아니에요. 감자씨에도 눈이 있고 똥구멍이 있어요. 눈을 중심으로 감자를 비스듬히 잘라서 싹이 날 눈이 위로 오도록 묻어야 해요. 열매를 많이 맺게 하기 위해선 감자꽃도 수시로 따줘야 됩니다. 어느 해는 복합비료를 너무 많이 줘서 감자 농사를 완전히 망친 경우도 있었지요.”
‘빈방’을 보면 이때의 농사 경험이 행간에 잘 드러나 있는데 ‘별’에 대한 깊이 있는 그의 관찰도 소설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밤마다 용인 굴암산 숲 속을 헤매고 다녔어요. 한 고개 두 고개 넘어 날이 샐 때까지 걸어서 어머니 산소가 있는 곳까지 산을 넘곤 했죠. 어떤 별들은 하얗고 어떤 건 불그스름했고 어떤 건 창백한 푸른빛이었어요. 새벽녘까지 골짜기 풀숲에 누워 오래오래 별들을 쳐다봤어요. 불멸의 이미지 때문에 별이 좋아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그 별은 불면의 밤을 보낸 자만이 만날 수 있는 슬픈 광채다. 느긋하게 수태를 준비하면서도 불임의 공포로 고통받았을 작가의 초상이 연상됐다. ‘인기작가’라는 이름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일 중독자처럼 살아왔다는 그. 바쁘지 않으면 소외된다는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이 다 그래요. 인생을 달구지처럼 여유 있게 살아야 하는데 모두들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으니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거죠.”
‘달구지 속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 가운데 하나였을까. 그는 난생 처음 헬스클럽에도 다녔다고 한다. “알통 좀 보여 주세요”하고 말했더니 그가 정색을 한다.
“알통이 어디 있어요. 헬스클럽 두 달 다니다 말았어요. 항간에 ‘몸짱’ 됐다는 소문이 도는 모양인데 그렇게까지 운동해서 오래 살고 싶지 않아요. 산도 혼자 가니까 쓸쓸하고, 나이 먹느라 자꾸 쓸쓸해지고 그래서 괜한 짓 해본 거죠.”
한때 ‘영원한 청년작가’를 꿈꾸었고 실제 ‘오래된 청년작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 박범신. 몇년 후면 환갑에 이르는 그가 “이제 작가라는 이름 앞에 그 어떤 관용어도 필요 없다”고 내건 말이 일종의 선전포고처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상어가 먹잇감의 숨통을 단박에 짓누르듯, 그도 고요한 가운데 노련한 솜씨로 독자들의 감수성을 순식간에 포박할 수 있는 악명 높은 ‘킬러’로 건재하길 소망해본다.

여성동아 2004년 12월 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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