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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즐거운 인생

매주 수요일 밤이면 트럼펫 연주자로 변신하는 치과의사 유달준

■ 기획·김유림 기자 ■ 글·장옥경 ■ 사진·박해윤 기자

2004. 11. 11

‘트럼펫 부는 치과의사’로 유명한 유달준 박사. 그는 40대 후반의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치의학은 물론 트럼펫 연주실력까지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치과의사 겸 트럼펫 연주자로 살아가는 그의 남다른 삶.

매주 수요일 밤이면 트럼펫 연주자로 변신하는 치과의사 유달준

수요일 밤이면 유달준 박사(55)는 어김없이 논현동 가구거리에 자리한 재즈 바 본(born)을 찾는다. 트럼펫 연주를 위해 무대에 오르는 그는 전문 트럼펫 연주자 못지않은 솜씨로 고정 팬까지 확보하고 있다. 국내 임플란트(인공치아) 시술의 권위자이기도 한 그는 트럼펫 연주를 통해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트럼펫이야말로 그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라고 말한다.
“서울사대부고 1학년 때 트럼펫을 처음 잡았어요. 당시 사대부고 밴드부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는데, 밴드부 활동을 하면서 금관악기의 매력이 흠뻑 빠졌죠. 밴드부라면 죄다 깡패로 여기던 시대였지만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트럼펫을 열심히 불었어요.”
공부 잘하는 모범생 아들이 공부를 등한시하고 ‘딴따라’처럼 악기에 빠져 살자 부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2학년 때 밴드부 악장까지 맡으며 성적이 떨어지자 부모의 반대는 더욱 거셌다. 그 후 그는 공부와 트럼펫을 둘 다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알람을 새벽 4시에 맞춰놓고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악착같이 공부했다고 한다.
“밴드부 악장이던 제가 서울대 치대에 합격하자 주위에서는 모두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 축하해줬어요. 덕분에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됐죠.”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트럼펫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서울대 최초로 덴탈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연주 활동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트럼펫 연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더욱 커졌고 결국 트럼펫 연주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됐다. 뉴욕대 치대 임플란트과에 재학 중이던 40대 후반에 줄리어드 음대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 칼 알바로부터 트럼펫 레슨을 받은 것. 그는 세계적인 연주가로부터 사사하며 정교하게 실력을 다졌다고 한다.
매주 수요일 밤이면 트럼펫 연주자로 변신하는 치과의사 유달준

“뉴욕대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오디션을 봐서 당당히 합격을 했는데 그땐 정말 뛸 듯이 기뻤어요. 고등학교 때는 음표만 보고 트럼펫을 불었고, 대학교 때도 정기 연주회를 끊임없이 갖긴 했지만, 아마추어 수준을 넘지는 못했거든요. 그런데 취미로 시작한 것이 어느 정도 인정받을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게 너무 기뻤어요.”

트럼펫은 마음을 달래주고 피로를 풀어주는 애인
귀국해서도 ‘젤로소 윈드 앙상블’의 수석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했던 그는 재작년 ‘소누스 금관 5중주’ 멤버로 프로로 데뷔했다. 그는 요즘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미혼모시설이나 교도소 등 소외받는 이웃을 찾아가 트럼펫 연주를 하고 있다.
유달준 박사는 임플란트시술 국내 1호. 임플란트는 치아가 빠진 부분 턱뼈에 타이타늄이나 타이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인공치근을 이식해 뼈와 엉겨 붙게 해 고정시킨 후 인공치아를 심는 시술로, 음식을 씹을 때 본래 자신의 치아와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가 임플란트 공부를 위해 미국유학길에 오른 것은 95년.
“환자들을 치료하면 할수록 제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플란트가 국내에 도입된 지 얼마 안돼, 임플란트에 대한 부작용만 부각되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임플란트에 대해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미국유학을 강행했어요.”

매주 수요일 밤이면 트럼펫 연주자로 변신하는 치과의사 유달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트럼펫을 잡은 유달준 박사는 일주일에 한번씩 재즈 바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그는 뉴욕의 콜롬비아 치대 치주과에서 1년 동안 공부를 마친 뒤 뉴욕대 치대 임플란트과로 옮겨 재입학을 했다. 나이 들어 시작한 공부라 쉽지 않았지만 그는 젊은 학생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독하게 유학 생활을 했다. 레지던트 2년을 마친 후엔 임상교수로 발탁되어 1년간 뉴욕대에 더 머물렀다. 그는 여유자금을 가지고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지만, 한국에 IMF가 닥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다.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를 포함한 전 가족의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지난 99년에 귀국한 그는 다시 병원을 개업했고,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는 전 국가대표 축구 감독인 히딩크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환자와 의사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알고 보니 히딩크 감독이 드럼을 잘 치더라고요. 저는 트럼펫을 부니까 자연히 음악 얘기로 관심이 모아졌고 그러면서 부쩍 가까워졌어요.”
트럼펫을 ‘마음을 달래고 피로를 풀어주는 애인’이라고 말하는 그. 그의 가족은 때로 작은 음악회를 여는데 이때 아들은 그와 함께 트럼펫을, 딸은 클라리넷을, 아내는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인생은 치열하면서도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좋아하는 일과 취미가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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