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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행복이 가득한 집

3천5백평 고택(古宅) 지키며 유유자적 사는 강기욱·김진미 가족

“바쁜 현대인의 삶 포기하고 마음 풍요롭게 살아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사진·김순희‘자유기고가’

입력 2004.11.11 10:29:00

3천5백평이나 되는 시골의 대저택에서 살고 있는 강기욱·김진미 부부. 번잡한 도시의 삶 대신 고택을 관리하며 마음의 풍요를 느끼고 산다는 강씨 가족의 수채화 같은 삶을 들여다보았다.
3천5백평 고택(古宅) 지키며 유유자적 사는 강기욱·김진미 가족

평범한 직장인이 대도시에 20평형대 아파트를 마련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0년.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내집 마련을 위해 긴 시간 허리띠를 졸라맨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닌 적이 없는 강기욱씨(43)는 ‘집 걱정’ 없이 3천5백평이나 되는 넓은 저택에서 유유자적 살고 있다.
매일아침 알람소리 대신 맑은 새소리에 눈을 뜬다는 그는 초등학생인 두 딸 자연이(9)와 해인이(7)가 등교하면 아내와 함께 차 한 잔을 마시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책을 읽고 싶으면 서재로, 음악이 듣고 싶으면 대청마루에 눕는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수목이 우거진 정원을 거닐며 사색을 즐기기도 한다.
강씨는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장 상사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무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벌어놓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짜로 고택에서 살며 집을 관리해주는 대가로 매달 50만원을 받아 생활한다.
“한 달에 50만원이면 네 식구가 사는 데 크게 부족하지 않아요. 김치와 푸성귀, 쌀 등 주식은 30분 남짓 떨어져 있는 (전남) 영광의 본가에서 가져다 먹죠. 시골이라 아이들 사교육비도 필요 없고요. 10년 된 중고차 유지비와 겨울철 난방비가 지출의 큰 몫을 차지하죠.”
대학 때 전공(법학)과는 무관한 다산 정약용의 사상에 푹 빠졌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다산학연구원’에서 무보수로 7년 동안 다산사상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다산학연구원이던 93년 우리 문화와 다산 사상을 좋아하는 김진미씨(37)를 만나 결혼했다. 그의 재산목록 1호는 아내다.
“결혼할 때 남자의 직장과 연봉 등을 따지는 게 기본인데 아내는 정반대였죠. 서로 사랑하고 주어진 여건에 충실히 살면 된다는 주의였어요. 서로 추구하는 가치관이 같으니까 남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결혼의 조건을 무시할 수 있었던 거죠.”
그가 사는 곳은 전남 장성 ‘너브실’이라 불리는 광곡마을이다. 이 동네는 행주 기씨의 집성촌으로 스승이던 퇴계 이황과 8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상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고봉 기대승(1527~72)의 후손 5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강씨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너브실에서 가장 큰 고택으로 고봉의 13대 후손인 기세훈 변호사(90)가 소유주다.
고봉의 6대 후손인 기언복이 숙종 때 터를 잡은 이래 3백년의 역사를 이어온 이 집터는 안채가 정남향으로, 고풍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는 사랑채가 서향으로 앉아 있다. 강씨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95년 1월로, 올해 10년째다.
“이 집 후손들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어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한옥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세 망가지거든요. 다산학연구원 시절 ‘고봉학술원’ 이사장인 기세훈 변호사와 인연이 닿아 이 집에 들어와 살겠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하더라고요.”
집안 구석구석엔 우리의 것을 좋아하는 강씨 부부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거실 겸 안방으로 사용하는 방 벽면에 환한 미소를 짓는 하회탈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로 고가구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방 가운데 있는 소나무로 만든 다탁이 눈길을 끈다.
“(다탁이) 가끔은 책상이 되기도 하고 식탁 역할을 대신하기도 해요. 소나무 원목을 그늘에서 5~6개월 말린 다음 여러 번 니스 칠을 하죠. 다탁 하나 만드는 데 7개월쯤 걸려요. 이게 취미는 아닌데 집에 어울리는 가구를 찾다가 직접 만들게 됐어요. 다탁 두 개를 나란히 붙여 그 위에 두꺼운 요를 깔았더니 침대가 되더라고요.”

3천5백평 고택(古宅) 지키며 유유자적 사는 강기욱·김진미 가족

강기욱씨가 직접 만든 다탁 침대에서 담소를 나누는 가족들. 뒤로 그가 만든 책장이 보인다.


안채의 전용 면적은 23평. 주방과 두개의 방,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서재가 있다. 소나무 원통을 두 뼘 남짓한 길이로 잘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사이에 나무판을 얹어 만든 책장에는 기성제품이 흉내낼 수 없는 기품이 스며 있다.
“책이 많아서 어떻게 하면 좁은 공간에 많은 책을 수납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만들었을 뿐인데 보는 사람들마다 탐을 내요(웃음). 책을 읽다가 서재에서 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도 큰 즐거움 중에 하나죠.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이 즐거움을 몰라요.”

한동안은 낙오된 듯한 느낌 떨치지 못해 마음고생
너른 마당엔 계절마다 갖가지 꽃과 풀이 자란다. 마당 한켠에 자리잡은 조그만 연못에는 금붕어 5~6마리가 노닌다. 뒤뜰에는 지나가는 바람이 댓잎에 머물다 가고, 담장 너머에 자리잡은 정자가 정겨움을 더한다. 두 딸이 못난이 등이라 이름 지은 ‘석등’과 노랗고 빨간 맨드라미꽃, 이제 막 가을 옷을 입기 시작한 은행나무와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등 정원수가 빼곡히 자리잡은 넓은 마당이 보는 이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낮에는 대개 집을 돌보면서 시간을 보내요. 봄·여름에는 일주일에 두어 번 풀을 뽑아줘야 되는데 보통 서너 시간이 걸리죠. 여름에 일주일만 풀을 안 뽑아도 발목까지 자라거든요. 나머지 시간에는 ‘고봉사상’을 연구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어요. 퇴계 이황이 한국의 칸트라면 고봉 선생은 한국의 니체라 할 수 있거든요.”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이 집에 ‘마음’을 정착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열등감 극복이었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낙오된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 5남3녀 중 넷째 아들인 그의 ‘선택’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와 형제들의 반대가 가장 심했죠. 이 집에 들어온 후 3년간은 많이 외로웠고 때때로 불안했어요.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때마다 가장 큰 힘이 됐던 건 아내였죠.”
아내 김씨가 말을 거든다.
“결혼한 이후 집 걱정 없이 사는 건 분명 행운이죠. 남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십여 년 동안 고생고생하는데 우리는 그 시간에 서로를 사랑하며 마음 편히 보냈잖아요. 살고 싶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 수 있어 노후에도 집 걱정은 없어요. 가끔 남에게 베풀 만큼 넉넉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남편이 절 사랑하고 건강한 두 아이가 있으니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해요.”
강씨 부부는 자녀교육에 자연보다 더 위대한 스승은 없다고 믿는다. 두 아이가 방과 후 서너 개의 학원을 돌아다니며 지친 몸과 마음으로 살기를 원치 않는 것.
“제도교육에 순응해 시쳇말로 사회적으로 출세하는 걸 원치 않아요. 유아교육 이론 중에 10세 이전에 자연과 더불어 성장하면 성인이 된 후에 그 어떤 어려움과 역경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해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보고 느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요.”
올해 초 둘째 딸 해인이가 유치원 졸업기념 동시집 ‘봄이란다’를 출간했다. 시가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조차 가르치지 않았지만 자연에서 보고 느낀 점을 옮겨놓은 해인이의 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시가 됐다.
“둘째가 여섯 살과 일곱 살 때 쓴 글을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 실었어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이 스승이라는 사실에 백번 공감하면서 살아요. 아내와 저는 아이들을 인위적으로 가르치지 않아요.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큰 가르침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3천5백평 고택(古宅) 지키며 유유자적 사는 강기욱·김진미 가족

고택에 살면서 아이들은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고 아내 김진미씨는 다기와 찻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도시의 아이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민들레꽃의 ‘하루’를 자연이와 해인이는 자연 속에서 배웠다. 두 아이는 집 앞에 유유히 흐르는 황룡강을 산책하며 낮달을 만나고 해가 질 무렵 노을을 만난다.
‘가지 위에/ 하나/ 반짝이는 것이/ 샛별이라네. 밤에만/ 눈을 뜨는데/ 어떻게 하루 종일/ 볼 수 있는가. 마음으로/ 본다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네.’ (해인이가 쓴 시 ‘샛별’의 전문)
해인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이렇게 표현했다.
‘눈 내리는/ 하늘에는/ 꽃향기가 피어오르고. 바람부는/ 창가에는/ 숲향기가/ 피어오르고. 봄이 오는/ 산속에는/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우리집 풍경’ 전문)

자연에서 보고 느낀 점을 옮겨놓은 아이들의 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시
“이곳에 살다 보니 시심이 저절로 생겨난 거지요. 요즘에는 대안학교 설립을 적극 검토하고 있어요. 제 아이들을 제도권 교육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게 대안학교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죠. 집 앞의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옛날 사립대학의 구실을 했던 월봉서원과 기씨 가문의 전용 서당으로 사용됐던 귀후재 등이 있어요. 우리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이곳을 대안학교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고 고민중이에요.”
그는 사랑채의 방 두 개를 손님용으로 비워놓았다. 문화유적을 답사하기 위해 방문하는 ‘객’을 위한 배려다. 그의 취미는 우리 문화유산 널리 알리기. 매달 한 번씩 무등문화기행단의 유적지답사 안내를 맡고 있다.
3천5백평 고택(古宅) 지키며 유유자적 사는 강기욱·김진미 가족

“너도나도 해외관광을 떠나는 세태가 참 안타까워요. 우리 땅에도 배워야 하고 찾아야 할 곳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것을 백안시하고 외국으로만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답사 안내를 시작했어요.”
강씨 못지않게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아내 김씨는 여러 종류의 다기와 다구, 찻잔 등을 모으는 것이 취미다.
“비 오는 날 기왓장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차 한 잔 마실 때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는 행복한 여인이 돼요. 이 집에 이사 와서 유리창을 전부 투명유리로 바꿨어요. 철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입는 정원을 내다보고 싶어서였죠. 이 집에 살면서 얻은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간의 사랑과 행복이에요.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잖아요.”
재물은 많지 않지만 마음이 누구보다도 부자라는 강기욱·김진미 부부. 자연과 더불어 살며 네 식구가 누리는 호사를 바쁜 도시인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바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을 땐 언제든지 애일당에서 쉬고 가라”고 권한다. 그들 부부의 마음 씀씀이 또한 인심 좋은 우리네 조상을 닮아 있었다.

여성동아 2004년 11월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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