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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소설로 세상 읽기

결혼 제도의 위선, 무너진 성 다룬 소설집 펴낸 작가 고은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륜, 혹시 그 안에 당신의 모습도 있지 않나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조득진‘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10.11 11:18:00

정장을 한 채 단정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세상. 하지만 그 이면의 추한 모습을 폭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 소설가 고은주가 등단 후 처음으로 소설집을 내놓았다. 표제작 ‘칵테일 슈가’ 등 여덟 편에는 ‘불륜과 바람난’ 세상 앞에서 무너지는 부부와 사회를 다루었는데, 읽다보면 내 자신의 모습을 만나는 듯 불편하기도 하다.
결혼 제도의 위선, 무너진 성 다룬 소설집 펴낸 작가 고은주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출판계에 신선한 화제를 몰고 온 책이 있다. 각종 언론에서 앞 다퉈 소개하는가 하면 출간 즉시 2쇄 인쇄에 들어갔을 정도로 독자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고은주(37)의 소설집 ‘칵테일 슈가’가 그것. 고은주는 MBC 아나운서 출신으로 95년 단편 ‘떠오르는 섬’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다.
등단 이후 각종 문예지에 꾸준히 발표했던 작품들을 모은 소설집 ‘칵테일 슈가’에는 불륜을 다룬 ‘칵테일 슈가’ ‘조각무늬 그림’ ‘너의 목소리’와 세상의 유혹 앞에 무너지는 성을 다룬 ‘유리’ ‘너, 유리’ 등 중·단편 8편이 담겨 있다. 전작 ‘유리바다’ 등을 통해 현대 문명의 모던한 공간에 사는 인물들의 ‘쿨한 척’하는 일상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던 작가는 이번엔 ‘불륜’이라는 화두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불륜은 너무나 일상적이 되어 이미 식상한 소재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거리고 유혹과 두려움의 대상인 것 같아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남들의 불륜을 몰래 들여다보면서 꿈꾸는 것에 만족했다면 이젠 직접 그 대열에 합류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어쩌면 독자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통해 요즘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소설집은 모두 여덟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모두 결혼과 남녀관계 등에서 비롯된 갈등과 현대인의 불안정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가의 글은 일단 잘 읽힌다. 화려한 문장으로 멋을 부리기보다는 깔끔하고 간결한 문체로 세상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표제작 ‘칵테일 슈가’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남녀간의 불륜 행각을 그렸다. 야외 결혼식장에서 짜릿한 섹스를 나눈, 미끈한 구두와 향수를 좋아하는 여자는 남자의 대학시절 연인. 그러나 결혼관이 달랐던 남녀는 각자 가정을 갖고 있으면서 지금 밀회 중이다. 여자는 “이거, 모양이 느낌표를 닮았지? 느낌표의 달콤함만 즐겨봐. 심각한 물음표는 만들지 말고”라는 말과 함께 ‘칵테일 슈가’를 남자에게 건넨다.
남자의 아내 역시 남편 몰래 옛 남자를 만난다. 아내의 옛 남자는 인디고 넥타이를 즐겨 맨다. 인디고 넥타이는 연둣빛 스카프의 여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연둣빛 스카프는 유부남 소설가와 사귀는 중이고, 소설가의 아내는 채팅에서 만난 닉네임 탈보를 대낮에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칵테일 슈가는 불륜의 흐름에 따라 탈보의 손에까지 전해진 상태다. 탈보는 와인바의 이혼녀 마담을 상대로 ‘작업’ 중인데, 정작 마담은 우유부단한 은행원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칵테일 슈가는 은행원에게 옮겨지고 은행원은 “이거, 모양이 느낌표를 닮았지?” 하는 똑같은 말을 남기며 아내에게 건네준다. 그 아내가 바로 맨 처음 등장한 향수의 여인이다.
“칵테일 슈가는 얼음사탕 조각이 나무 막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으로, 취향에 따라 커피에 녹여 먹도록 만든 설탕이에요. 한 업체의 시제품인 칵테일 슈가가 불륜 대상들에게 차례로 건네지다 본래 주인에게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 만연한 불륜의 보편적 모습을 풍자하고 싶었어요.”
한마디로 요즘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온갖 불륜의 유형을 집대성한 것. 하지만 칵테일 슈가가 불륜 상대를 따라 이동할 때 작가의 시선은 그 칵테일 슈가를 따라갈 뿐,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이거, 모양이 느낌표를 닮았지? 느낌표의 달콤함만 즐겨봐. 심각한 물음표는 만들지 말고” 하는 말처럼 그리 심각한 어조도 아니다. 하지만 연속되는 불륜 속에서 때때로 표출되는 ‘결혼의 피곤함’은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불륜은 달콤하고 편리하지만 덧없이 녹아버리는 칵테일 슈가와 같다고 봐요. 몸은 섞지만 덧없는 관계, 피상적이고 이기적인 남녀관계를 말하죠. 그래서 정부에게, 아내에게, 애인에게 이어지다 마침내 출발점으로 돌아온 칵테일 슈가를 통해 ‘세상엔 달콤한 위로가 넘쳐나는데 우리 삶은 왜 이리 씁쓸한 걸까’라는 물음표를 던져본 작품이에요.”

결혼 제도의 위선, 무너진 성 다룬 소설집 펴낸 작가 고은주

작가 고은주는 자신의 첫 소설집 ‘칵테일 슈가’에서 불륜과 섹스로 붕괴되는 가정과 사회를 특유의 깔끔하고 담담한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선 섹스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세밀한 묘사나 자극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사람들 간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고 야한 상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의도적이며 상업적’이라는 의혹도 생긴다.
“사실 성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어요. 하지만 정상적인 결혼관계가 아닌 불륜을 다룬 이야기인데 어떻게 섹스가 빠질 수 있겠어요. 감정적인 교류가 아닌 육체적인 유희에 불과한 관계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장면이기도 하죠. 장사꾼이 수박을 잘라 가장 잘 익은 면을 보여주듯 소설도 일상의 가장 극적인 부분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이혼하고 나랑 살 수 있어?” 질문 앞에 입 다무는 남자들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진 위선, 일탈적인 성문제는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된다. ‘조각무늬 그림’은 완벽한 가정을 꿈꾸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는 여자를 통해 대부분의 남자들이 갖고 있는 가정에 대한 생각은 그저 불완전한 조각 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잠들고 싶다’의 남자 주인공은 부인이 자신과 정반대 성향이라는 점에 이끌려 결혼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어느 날 밤 잠자는 아내의 목을 조르려 한다. ‘떠오르는 섬’의 ‘나’는 모험적인 레포츠에 관심 있는 점에 끌려 의사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결혼 자체가 모험이 되고 만다. 남편은 잡아놓은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 속물일 뿐이다.
“성적인 방종과 가벼움을 지닌 소설 속 인물들은 마치 개성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오히려 획일적이죠. 그들에게 결혼은 일종의 이벤트이고, 사랑은 설탕 같은 순간적인 달콤함에 불과해요. ‘칵테일 슈가’에서는 와인바의 마담이 손님들의 사랑 고백 앞에 ‘그럼 이혼하고 나랑 살 수 있어?’ 하고 물으면 모든 남자들이 입을 다물어버리죠. 달콤한 설탕은 맛보고 싶지만 그 설탕이 붙어 있는 막대기를 감당하지는 못하는 거죠.”
작가가 꼬집고자 한 것은 결혼제도가 아니라 바로 결혼 후에도 뻔뻔하게 애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불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고, 또 애인 하나쯤 있는 것이 능력인 듯 여겨지는 이 사회에 일침을 놓고 싶었던 것이다.
“꿈꾸기 때문에 그 꿈에 대한 잘못을 되짚어보자는 것이죠. 사실 ‘쿨’한 관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 관계가 다시 돌아와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의 아내가, 나의 남편이 그 불륜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죠.”
작가는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쿨’할 수 없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쿨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사기라는 것.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일단 관계가 형성되면 사람들 사이에선 욕심과 집착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쿨하다고 믿으며 불륜의 고리를 놓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불현듯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 쓰고파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바로 글을 쓴다는 것이 두려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아나운서 출신의 소설가’라는 식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수식어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결혼 제도의 위선, 무너진 성 다룬 소설집 펴낸 작가 고은주

작가는 그저 독자에게 물음표를 던질 뿐이다. 물음표를 받아들고 어떤 느낌표로 생각을 정리할 것인지는 독자의 몫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아닌 척한 적도 있었죠(웃음). 그런데 요즘 KBS의 ‘TV 책을 말한다’를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이 또한 내게 주어진 재주인데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반적으로 요즘 작가들 가운데 직장생활 경험 없는 분들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저는 한 가지 더 경험을 한 셈이니까요.”
스물여섯에 결혼해 현재 결혼생활 10년이 넘은 주부 소설가. 두 딸을 둔 그에게 결혼생활은 어떨까.
“저라고 결혼생활이 뭐 다를 거 있나요? 남들이 고민하고 힘겨워하는 만큼, 또는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만큼, 꼭 그만큼의 높이와 깊이죠. 결혼은 ‘칵테일 슈가’와 비슷해요. 처음엔 달콤하고 부드럽지만 나중엔 슈가의 막대만 남게 되죠. 남은 그 막대를 부여잡고 사는 그때부터가 진짜 결혼생활이에요. 계속 달콤한 설탕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결혼에 대한 환상인 셈이에요. 오히려 처음부터 이 결혼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것 같아요.”
소설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틀에 박힌 세상의 흐름을 벗어나기 위한 것.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나오면 이혼 100% 찬성률이 나올 만한 구조를 가진 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 중에 너 있지 않니? 그렇게 살고 싶니?’ 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앞으로도 불현듯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가족’이라는 아주 익숙한 테두리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기발한 상상력보다는 삶에 밀착된 이야기를 써 나가려고요.”
그는 사람들이 유리를 통해 건너편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듯이 자신의 소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독자들이 언뜻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

여성동아 2004년 10월 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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