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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으로 또다시 세계인의 주목받은 김기덕

■ 기획·최호열 기자 ■ 글·김순희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10.04 17:22:00

올해 초 베를린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수상한 데 이어 최근 베니스영화제에서도 ‘빈집’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아버지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취직했다 무작정 프랑스로 떠나 그림을 그리며 살았던 그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으로 또다시 세계인의 주목받은 김기덕

지난 2월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 9월12일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쥔 김기덕 감독(44). 같은 해에 세계 3대 국제영화제 가운데 두 곳에서 수상을 한 그에 대해 세계 영화계가 놀라움과 함께 찬사를 보내고 있다. 베니스영화제 중반에 상영된 후 언론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빈집’은 10억여 원으로 제작된 저예산 영화로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집에 갇혀 사는 여자와 빈집만 골라 다니며 기거하는 한 남자의 사랑과 고독을 다룬 작품이다.
김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를 만든 스태프들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인생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을 했는데, 그가 말한 ‘과거의 삶’은 그가 만든 영화들과 궤적을 같이한다.
60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배워 공장장이 돼라. 그게 출세하는 길이다”라는 말을 듣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공장에 취직했다. 그만큼 아버지의 결정은 절대명령이었는데 그에게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였다고 한다. 완고한 절대군주 같았던 아버지 앞에서 그는 문을 여닫는 것조차도 망설였고 밥 한 숟가락 넘기는 것도 불편했다는 것. 아버지는 “남에게 절대로 폐 끼치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말고, 술 먹지 말라”는 말도 했는데, 그는 지금까지 그 ‘명령’을 지키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가 아버지를 피해 달아난 최초의 도피처는 해병대였다. 해병대가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서 아버지한테 당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자원한 것. 그렇지만 김 감독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11편의 영화 중 여섯 번째 작품인 ‘수취인불명’의 지흠과 그의 아버지는 바로 김 감독 부자의 자화상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직도 6월25일이 되면 수십 년째 국무총리에게 ‘6·25 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총알을 맞았고 아직까지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산다. 이제라도 보상을 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지만 ‘근거 없다’는 답신만 날아온다고 한다. 이런 독특한 아버지의 삶이 ‘수취인불명’의 모티브를 제공했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끊임없이 보상을 요구하고 거기서 받은 상처와 분노를 자식들에게 푸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현실이 슬프다고 고백했다.
해병대에서 전역한 후 학력에 대한 열등감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90년 초. 그는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부랑자들이 웅크리고 있는 센 강가에서 파리의 첫날밤을 보낸 그는 ‘야생동물’ 같은 동구권과 아랍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알 수 없는 동질감에 그들과 친구가 됐다. 그들은 그가 프랑스인들과 싸울 때 그의 편이 돼주었고 대가 없이 그가 일할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들을 따라 지중해 쪽의 남프랑스로 간 그는 그곳에 화실을 얻어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 그리기는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한테 낙서한다고 종아리를 1백 대씩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남프랑스의 철 지난 해안 마을에 작은 방을 얻어 그린 그림을 배낭에 짊어지고 유럽 10여 개 나라를 돌며 도시 광장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감상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으로 또다시 세계인의 주목받은 김기덕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겨준 ‘빈집’의 남·녀주인공 이승연, 재희와 함께.


그는 프랑스에 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한 여성과 93년 결혼해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다. 그는 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아내에게 자신의 영화에 담긴 가학적인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영화와 ‘관계’를 맺은 것은 95년 ‘무단횡단’이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을 차지하면서. 1천5백만원의 상금을 안겨준 ‘무단횡단’은 주인공 남자가 폐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항생제 투약으로 몸에 털이 하나도 없는 남자는 어느 날 가출을 해서 ‘막사는’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주인공 남자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누군가를 죽여주기를 바라고 그는 어렵게 여자의 부탁을 들어준다. 하지만 여자는 계속 남자의 위치를 경찰에 알리고 결국 둘은 바닷가까지 쫓기다 군인들에게 사살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제작사의 사정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 무렵 그는 한강대교를 걸어서 건너다니며 ‘다리’ 아래 모여 사는 부랑자들을 자주 목격했다. 그리고 우연히 자살했거나 자살을 포기한 사람들이 한강철교 교각에 써놓은 일종의 ‘유서’ 같은 낙서들을 읽게 되었다. 이것이 데뷔작 ‘악어’ (96년)의 탄생 배경이 됐다. ‘악어’는 한강다리 밑에 기거하면서 자살한 사람의 시체를 숨겨두었다가 유족에게 넘겨주고 받은 돈으로 살아가는 용패(조재현)의 삶과 죽음을 그린 영화다.
‘악어’ 이후 8년 동안 10편의 영화를 만든 김 감독. 그는 가진 것도, 아는 것도, 배운 것도 없다는 열등감을 어떻게든 극복해보고자 몸부림을 쳤고 결국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됐다.
미국과 독일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자서전 같은 영화다. 그래서 배우도 ‘김기덕’ 자신이다. 그는 ‘봄…’을 시작하면서 ‘미칠 수 있다면 미쳐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떤 경지에 오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추상과 구상의 경계 위에 서 있는 혼란스러운 존재라고 평한다.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고백한다. 내 영화는 정말 슬픈 영화라고. 진짜 아름다운 영화라고. 진짜 지독한 영화라고.”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들어선 김기덕 감독. ‘좋아하거나’ 아니면 ‘싫어하거나’로 선명하게 양분되는 국내의 평가에 대해 그는 “이번 수상을 통해 내 영화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걷히고 좀더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여성동아 2004년 10월 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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