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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진학한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의 ‘성적 올리는 악바리 공부법’

“태어난 천재가 아니라면 만들어진 천재가 되자는 각오로 도전했어요”

■ 기획·김유림 기자 ■ 글·조득진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4.09.10 15:39:00

지난 4월 MIT와 하버드대에서 동시에 합격통지서를 받아 화제가 된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는 실력은 물론 외모까지도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하버드대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금나나를 만나 그만의 독특한 학습법에 관해 들었다.
하버드대 진학한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의 ‘성적 올리는 악바리 공부법’

경북대 의예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02년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금나나(21). 당시 언론은 그를 미모와 지성을 함께 갖춘 미스코리아로 평가했다. 흔히 미스코리아 경력을 방송이나 연예계 진출의 발판쯤으로 생각하는 풍토 속에서 과학고를 졸업하고 의대에 재학 중인, 장래 꿈이 외과의사인 미스코리아의 탄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는 미스코리아 대회를 비롯한 각종 미인대회에 대해 성의 상품화라는 비난이 거셀 때였어요. 여성계를 중심으로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죠. 그래서 처음엔 출전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미스코리아 대회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부각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참가하게 됐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봄, 그는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으로 화제가 됐다. 바로 세계 최고의 수재들만 다닌다는 미국의 명문대학인 MIT와 하버드대에 동시 합격한 것. 지난해 여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와 5개월간 준비한 뒤 이루어낸 성과였다.
“2002년 대회가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 분위기 속에 치러져 지상파 방송사들이 중계를 하지 않았고, 또 저 스스로도 방송 출연 등 대외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서 제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어요. 오히려 하버드대 합격 이후 뉴스와 방송에 나오면서 많이들 알아보시더라고요.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아 마음껏 진로를 고민할 수 있었다고 할까요.”
지난해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 후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은 욕심 생겨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이라는 미스코리아의 영예에 졸업만 하면 의사로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그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하버드대 진학을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는 늘 자신을 긴장하게 하고, 그 긴장을 즐긴다고 한다.
그가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하고 추진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여름 파나마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였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위한 영어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직접 대회에 참가한 후 더욱 구체화되었다고.
“국제무대에 서보니 한국의 위상이 아직도 너무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했던 사람으로서 한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릴 책임감도 느꼈어요. 특히 대회가 끝나고 둘러본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학생들 모습을 보며 더 큰 물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디자이너, 원어민 영어교사 등을 동반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일본 대표와 달리 달랑 혼자 옷가방을 메고 떠나야 했던 그. ‘외부적인 조건이 안 되면 말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회 출전을 앞두고 영어 인터뷰 준비를 위해 대구의 한 유학원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유학원의 문을 여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원장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았는데 단어 50개를 외워 오라 해서 숙제를 해가면 다음날은 60개, 그 다음날은 70개를 내주는 거예요. 마치 ‘똑똑한 미스코리아라고? 그래, 네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생각으로 저를 혹사시키는 듯했죠. 그러나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어느 순간 영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어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는 ‘최고의 인격과 인간성, 세련된 대화술을 갖춘 사람을 칭하는 ‘미스 퍼스낼리티’ 상을 받았다. 인터뷰 강훈련 덕분에 인터뷰 심사에서 72개 국가 참가자 중 최고점수인 9.80을 받기도 했다.

하버드대 진학한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의 ‘성적 올리는 악바리 공부법’

세계적인 외과의사가 되기로 목표를 수정한 금나나. 그는 8월말 미국으로 떠났다.


상을 받기는 했지만 파나마에서 열린 2003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그에게 충격이었다고 한다. 세계무대라는 높은 장벽과 자기 자신의 한계에 대해 깨닫게 된 것. 그에겐 애국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껏 내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너무 좁은 세계에서만 살았구나, 외과의사가 꿈인데 이왕이면 세계 최고의 외과의사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이왕이면 아이비리그, 그 중에서도 최고라는 하버드대에 도전해보자는 각오를 갖게 됐죠.”
귀국하자마자 5개월에 걸친 그의 불도저식 공부가 시작됐다. 경북대 의대를 그만두고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가 무서운 집중력으로 공부에 전력 질주한 것. 그리고 지난 4월, 그는 MIT와 하버드대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아냈다. 당시 그의 몸무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62kg으로 돌아가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 다시 겪게 된 공부 스트레스가 남겨준 흔적이었죠. 공부하느라 찐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얼마 전부터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해 원래의 몸무게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려서부터 제 취미가 달리기거든요. 요즘도 하루 세 시간 이상씩 달리고 있어요.”
성적 밑바닥 맴돌아 원형탈모증·폭식증에 시달린 고교시절
언뜻 들으면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한 젊은 여성의 순탄한 성공스토리 같지만 그에게도 원형탈모증과 폭식증에 시달렸던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경북 영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포항의 경북과학고로 진학한 초기 시절 그의 학교성적은 바닥을 맴돌았다. 각 도시의 중학교에서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이 다 모인 학교이다 보니, 경쟁이 만만찮았던 것.
“여기서 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원형탈모증과 폭식증에 걸렸어요. 그래도 악에 받쳐 열심히 했더니 한 학기 만에 학교생활에 적응이 됐고, 성적도 상위권으로 오르더군요. 원형탈모증세는 그때 사라졌지만, 폭식증은 오래갔어요. 172cm의 키에 허리는 30인치, 몸무게는 62kg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늦가을에 수시모집으로 경북대 의예과에 합격한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체육교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1백 일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날씬하고 예뻐져서 대학생활도 재미있게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교 신입생이 된 후 한 달쯤 지난 2002년 3월에 1백 일 다이어트가 끝났어요. 석 달 만에 10kg을 뺐죠. 몸이 날씬해지니까 자신감도 생겨 아버지의 권유로 내친김에 미스코리아에 도전하게 됐어요.”
그에게는 대학입시에 관한 아픈 경험이 있다. 당시 대학 입시는 수능의 비중을 크게 낮추고, 대신 내신과 논술의 비율을 높인 상태였다. 이 때문에 과학고·외고 등 특목고 학생들이 무더기로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쳐 대학에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역시 과학고 시절 초기 밑바닥을 맴돌았던 학교성적 때문에 내신에서 불리해 경시대회란 경시대회는 모두 참가했다. 가산점을 받으면 불이익이 적을 것으로 판단한 것.
“하지만 결국 불리한 내신 덕분에 서울대, 연대, 고대 등의 수시모집에서 모두 떨어졌어요. 그나마 특목고 특별전형이 따로 있던 경북대에서만 합격통지서를 받았죠. 속이 무척 상했지만 국립대에 들어가 부모님께 등록금 걱정 덜어드린 것으로 위안을 삼았어요.”
그리고 대학 입학 후 우연히 참가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됐고, 그 덕분에 세계 대회에 참가하면서 그동안 잠들어 있던 자신의 열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하버드대 진학한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의 ‘성적 올리는 악바리 공부법’

그는 자신을 이끌어온 것은 욕심과 체력이라고 한다. 항상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체육교사인 아버지가 물려주신 건강한 체력이 자신이 해왔던 저돌적인 도전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
“학창시절엔 아이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특히 과학고 시절 주변엔 수재·천재 소리를 듣는 아이들뿐이었죠. 하지만 평범한 두뇌는 제게 ‘노력’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었어요. 100m 달리기를 날마다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칼 루이스가 되는 건 아니지만 이전보다는 잘 달리게 되잖아요. 그게 바로 노력의 묘미인 것 같아요.”
태어난 천재가 아니라면 만들어진 천재가 되자는 것이 그의 결심. 그 결심을 뒷받침해준 것은 ‘방목형’ 교육을 펼친 부모의 힘이었다.
“아이를 자유롭게 방목하여 키우겠다는 어머니의 철학 덕분에 집안 벽지는 일찌감치 저희들의 도화지였어요. 그림과 낙서, 전화메모,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으면 그에 대한 엄마 아빠의 응답으로 채워졌어요. 그때 부모님과 저희 남매들 사이에 강한 신뢰가 생긴 것 같아요.”
그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학원에 갈 것을 강요하거나 무엇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가고 싶다고 하면 무엇이든 다 배울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한다. 다섯 살 때 안짱다리 교정을 위해 아버지 손에 이끌려 무용학원에 보내진 것을 제외하고 서예나 피아노, 그 외 모든 것은 그가 먼저 원해서 배우게 된 것이었다.
“8월 말에 미국으로 떠나요. 벌써 룸메이트가 정해졌는데 중국인 친구와 미국인 친구라고 하더군요. 이번 기회에 영어, 중국어 확실하게 배워두려고요.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데 쓰기가 자신이 없어 1년 정도는 고생할 것 같지만 그 고생도 기대돼요.”
그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당당한 말솜씨, 솔직한 성격,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에 놀랐다.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우리를 두 번 놀라게 한 금나나. 그가 또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여성동아 2004년 9월 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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