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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가족이 사는 법

전기도 전화도 없는 산골에서 5남매 키우며 사는 김용희·김명식 부부의 특별한 삶

“도시와 문명을 버리고 자연이 주는 여유와 풍요로운 삶을 얻었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정은 ■ 사진제공·도서출판 샨티

2004. 09. 10

7년 전, 5남매를 데리고 서울을 떠나 전기와 전화도 없고 자동차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사는 김용희·김명식 부부. 문명 대신에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고, 학교 지식이 아닌 자연이 주는 지혜를 공부하며 산다는 이들 가족의 삶.

전기도 전화도 없는 산골에서 5남매 키우며 사는 김용희·김명식 부부의 특별한 삶

7년 전 산으로 들어가 촛불로 밤을 밝히고 장작을 때 음식을 해먹으며 살고 있는 김씨 가족.


강원도 화천군 노동리, 마을로부터 한 시간쯤 떨어진 선이골이라는 골짜기에 외딴집 한 채가 있다. 자동차도 갈 수 없을 만큼 경사가 심하고 높은 그곳에 부부와 다섯 아이들이 산다. 그 집엔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고 우체부도 찾지 않는다. 전기가 없으니 당연히 가전제품도 없다. 승용차나 경운기도 없어 마을까지 가는 방법은 오로지 걷는 것뿐이다.
이들 가족을 만나기 위해 대략의 약도만 들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초행길이라 이리저리 헤매는 사이에 그러잖아도 산속의 짧은 해는 자취를 감춰버렸고, 타고 가던 낡은 지프마저 웅덩이에 빠져버렸다. 랜턴도 없이 달빛에 의지해 걸어 올라가야 했다. 깊은 산속이라 기온이 서늘한데도 이마엔 땀이 맺혔고, 도저히 사람 사는 집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길을 가자니 슬며시 겁도 났다. 얼마나 올랐을까, 저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달빛에 산등성이와 집의 외형이 드러났다.
이 밤에 달빛에 의지해 찾아온 손님을 보고 김용희씨(44) 내외는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그다지 크게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하긴, 가겠다고 미리 연락할 방법이 없는 곳이라 누군가 찾아오는 일은 늘 ‘불쑥’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이들 다섯은 낮에 입고 놀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서로 뒤엉켜 잠을 자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놓인 난로에서는 장작이 타고 있고, 한쪽에선 무말랭이가 꾸덕꾸덕 말라갔다. 남편 김명식씨(60)는 “멀리서 찾아온 귀한 손님”이라며 촛불을 평소보다 한 개 더 밝혀주었고, 김용희씨는 주방으로 가서 고소한 밤죽을 만들어 내왔다.
“여기는 밤나무가 엄청 많아요. 여기 온 첫해 가을엔 애들하고 숲을 샅샅이 뒤지면서 신나게 밤을 주워댔는데 열흘째 되던 날 아침에 청설모 몇 마리가 나무에 오르내리면서 소리를 막 지르더라고요. ‘우리의 욕심에 화가 났나보다, 그만 줍자’ 생각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날에 보니까 고구마밭과 옥수수밭이 쑥대밭이 되어 있는 거예요. 밤새 멧돼지가 내려와 뒤집고 간 건데 청설모들이 멧돼지를 시켜 우리를 혼내주는 것 같았어요.”
이들 가족은 한 해 두 해 지내면서 동물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갔고, 농사를 지으며 식물과 화해하는 법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 이야기며 옛날 살아온 이야기, 농사 이야기 등을 나누는 사이 밤은 더욱 깊어 각자 자리에 누웠다.
“자, 이제 촛불 끕니다.”
훅! 하고 촛불을 끄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 짙은 어둠, 깊은 고요…. 이것을 언제 맛보았던가. 형광등 불을 꺼도 창문 새로 들어오는 불빛과 형광 시계 불빛, 충전기에 꽂힌 휴대전화 불빛,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 시계 초침 소리,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들리는 자동차 소리, 취객의 고함소리…. 도시는 깊은 밤에도 고요 속에 머물 권리를 늘 앗아가고 있지 않은가.
김용희씨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인적 드문 이 선이골의 밤이 주는 평화와 쉼이 떨릴 만큼 좋아서 전기 들이는 일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고하는 노을빛 인사, 해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마무리하기 위해 빨라지는 가족들의 하루맺음 동작들, 서서히 내리는 어둠과 이슬, 하나 둘 나타나서 반짝이며 인사하는 별들, 감청색 하늘에 드러나는 산등성이의 선, 어둠 중에 빛나는 촛불, 하늘 품에 안겨 꾸는 꿈…. 전깃불이 없으니 자연 그대로 흘러가는 것에 삶을 맡겨야 하고, 맡김으로 해서 얻게 되는 이 축복을 매일 밤 느끼고 확인하며 그들은 행복해 한다.

전기도 전화도 없는 산골에서 5남매 키우며 사는 김용희·김명식 부부의 특별한 삶

‘아침맞이’를 하고 있는 김씨 가족들. 이들은 하루를 계획하고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김용희씨는 10년간 서울 봉천동에서 약국을 운영했다. 약국은 동네 사람들로 늘 붐볐지만 그들 가족은 결코 부유하지 못했다. 약을 팔기보다는 약 대신 쓸 수 있는 민간요법을 알려주기에 바빴고, 아프기 전에 미리 건강을 챙기도록 도왔으니 약국은 이미 약을 파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고향집에 가면 아버지는 “사기꾼 왔냐? 진짜 약사는 밥을 굶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며 딸이 양심적인 약사가 되길 바라셨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김용희씨는 이웃의 친구가 되고, 상담자가 되고, 건강에 관한 강연자가 되어 있었지만 IMF 금융대란이 닥치면서 가난한 이웃들이 쓰러지고 자살하고 가정이 파탄 나는 ‘큰 병’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 엄청난 병에 다섯 평도 안 되는 약국이, 더구나 줄줄이 아이가 다섯이나 딸린 약사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첫애 선목이도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 제멋대로였고, 연년생 주목이와 일목이, 화목이는 약국으로 나가는 내 발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칭얼대고, 그때 막내 원목이를 임신하고 있던 상태라 배는 점점 불러오고…. 대학과 사회단체에 강의를 나가던 남편이 바깥일을 최대한 줄여가며 집안일을 도왔지만 지쳐갔어요.”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쁘고 지친 서울의 삶. 거기에다 하루 스물네 시간 한 순간도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 뿌연 하늘, 물건 하나를 사도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쓰레기…, 김용희씨 내외는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떠나는 것! 김씨 부부는 98년 4월, 이곳으로 들어왔다.
주위 사람들은 “당신들은 농촌에 대해, 농사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말렸다. 그러나 이들 내외의 답은 간단했다. “우리 역시 두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이런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그렇게 떠난 뒤에 이들 가족이 얻은 것은 쓰레기와 소음의 해결만이 아니었다. 온 식구가 아침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여유, 달빛과 별빛뿐인 어둠이 주는 깊은 휴식, 하늘이 차려주신 건강한 밥상 앞에서 “밥은 하늘이고 땅이며, 밥은 밥이어야 함”을 되뇔 수 있는 마음, 동식물과 화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의 터득, 이웃들(비록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과의 진정한 만남, 아이들의 늘어가는 이야기 솜씨와 상상력, 또 풍부한 놀이, 가공 식품이나 화학 약품에서 벗어나면서 되찾게 된 건강, 생일이면 들국화와 쑥을 넣어 축하목욕을 하고 쑥개떡 파티를 여는 재미까지 얻었다.
직접 손으로 빨래를 하고, 마을에라도 한번 다녀올라치면 최소한 두세 시간은 걸어야 하고, 경운기나 소 한 마리 없이 농사를 짓느라 온몸을 써야 하는 이들 가족은 불을 때서 밥을 짓고, 땔감을 해서 난방을 해야 하지만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인들보다 훨씬 여유롭다. ‘빈곤’이 아닌 ‘청빈’, ‘비루’가 아닌 ‘검소’를 향해 있는 이들의 삶은 참 풍요롭다.

자연에 순응하며 삶의 고마움 깨달아
열다섯 살인 큰아이 선목이부터 여덟 살인 막내 원목이까지 아이들 다섯 모두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숫자에 불과해지기 쉬운 도시의 학교와는 달리 부모와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을 삶으로 체득해가며 자기 존재를 오늘도 확인해간다.
출근할 필요가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전기가 없으니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 그래서 각자의 생활에 집중할 수 있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의 얼굴에 시선을 줄 수 있다.

전기도 전화도 없는 산골에서 5남매 키우며 사는 김용희·김명식 부부의 특별한 삶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자연과 가족 공동체 속에서 삶의 지혜와 지식을 배운다.


하루 중 이들 가족이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때는 ‘아침맞이’ 시간이다. 일찍 일어났건 늦게 일어났건, 그날이 무슨 날이건 온 가족이 일어나 청소하고 아침 체조하고 식사 준비를 마치면 아침맞이를 한다.
돌아가며 진행을 맡는데 막내 원목이도 네 살 때부터 진행을 맡았다. 좀 더디고 서툴러도 가족들은 진행자의 말을 가로채지 않고 기다릴 줄 안다. 아침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뒤 간단하게 묵상을 하고 아버지 김명식씨가 새벽에 일어나 촛불 밑에서 읽고 쓰고 명상으로 준비한 ‘말씀’을 10분가량 듣는다. 가족의 소망을 담은 기도를 하고, 마지막으로 신라 말 최치원 선생이 묘향산 석벽에 새겼다는 ‘천부경’을 진행자의 선창에 따라 온 가족이 읊는다.
“동틀 무렵 새소리 들어봤어요? 정말 아름다워요. 아침의 들풀은 또 얼마나 맑고 선명한데요. 새도 들풀도 이렇게 아침을 아름답고 경건하게 맞는데 나는 수십 년을 아침조차 없이 지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숲 속을 산책하며 아침맞이를 하기도 했고, 어떤 땐 농작물을 돌아보며 아침맞이를 하기도 했다. 봄나물이 한창 돋기 시작할 땐 먹을거리도 준비할 겸 봄나물을 뜯으며 해맞이를 하기도 했고, 어떤 땐 마당에서 새들의 날갯짓을 흉내내며 온 가족이 해맞이 춤을 추기도 했다. 날마다 거저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온 가족이 고마워하고 그날의 하루 살림을 계획하며 이웃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이들은 선이골에 들어와서 이렇게 잃었던 아침을 되찾았다.
아침맞이를 끝내면 식사를 한다. 막내 원목이가 설거지며 식사 준비를 척척 잘하기에 “원목이가 어머니 일을 많이 도와주네요” 했더니 김용희씨는 말한다.
“쟤가 내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아직 어리니까 내가 쟤를 돕는 거죠.”
아이들 한둘만 낳아도 아이 시중을 드느라 바쁜 여느 엄마들과는 달리 김용희씨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지금은 큰아이 선목이가 누구보다 가마솥밥을 잘한다. 안친 쌀의 양에 따라, 때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날씨와 잡곡 종류에 따라 불의 세기와 시간대를 척척 조절해서 가장 맛있는 밥을 해낸다. 나물을 캐고, 감자를 삶고, 구멍난 양말을 꿰매고, 땔감을 하고, 청소며 톱질이며 망치질이며 빨래 등 웬만한 일들을 아이들이 제 손으로 해낸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각자의 논밭이 따로 있어 제 힘으로 농사도 짓는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이들은 잠시 휴식을 취한다. 누군가 맘 내키면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농사철엔 부지런히 땀 흘려 일하고, 3·8 오일장이 열릴 때면 장터에 나가기도 한다. 뒷산으로 동식물도감을 들고 공부를 하러 나서기도 하고, 겨울이면 땔감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하루해가 저물면 모두들 방으로 들어와 촛불 밑에 모여 앉아 편지나 일기를 쓰는데 어머니 김용희씨의 일기를 토대로 얼마 전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가 출간되자 아이들은 더욱 열심히 일기를 쓴다고. 가끔은 아이들 스스로 마련한 공연을 보면서 가족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한다.
놀듯이 공부하고 공부하듯이 살아가는 아이들
선이골 가족에겐 공부 아닌 것이 없다. 스스로 만든 가족 단위의 학교인 ‘하늘평화학교’에서 가족 모두가 공부하는 삶을 산다. 아이들이 글을 배우기 전엔 주로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을 보며 내외는 아이들 손가락 힘을 가늠하고 글자 공부시킬 시기를 정하기도 했다.
김용희씨는 동서고금을 막론해 가장 명쾌하고 오묘한 언어인 숫자의 세계를 아이들이 깊게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수학공부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또 이들은 고려가요나 시조, 가사, 김소월의 시 등을 즐겨 읊고, ‘농어촌속담사전’ ‘동물속담사전’ ‘제주도속담사전’ ‘강원도민요집’ 등을 읽으면서 우리말의 맛과 얼을 서로 나눈다. 한문 공부도 열심히 한다.

전기도 전화도 없는 산골에서 5남매 키우며 사는 김용희·김명식 부부의 특별한 삶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연을 통한 공부다. 선이골의 자연은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교과서요 동무이며 삶의 터전이다. 아침저녁으로 보여주는 빛과 어둠의 세계, 계절의 변화, 새와 벌레, 풀과 나무, 비와 눈, 홍수, 가뭄… 이 모두가 교과서인 셈이다.
농사짓는 것도 공부다. 24절기를 중심으로 한 태양력, 태음력을 정리한 것을 해마다 되풀이해서 공책에 쓰고 왼다. “조팝꽃과 싸리꽃이 피면 무슨 씨앗이든 뿌려도 괜찮다. 복사꽃이 지기 전에 들깨모를 부어라. 밤꽃이나 산초꽃이 피기 시작하면 장마가 온다” 등등. 씨앗들을 갈무리하면서 작물의 성질과 가꾸는 법도 배운다.
몸에 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자연요법과 약초, 생리학에 대해 공부를 하는데, 지난 여름 선목이가 독사에 물렸을 때도 숯물과 지렁이 요법만으로 살아났다. 아이들은 벌에 쏘였을 때나 불에 뎄을 때, 긁혔을 때 된장이나 식초, 간장, 약초 들을 이용해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꿰고 있다.
하루해가 지고 나면 어머니 김용희씨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나중에 책을 통해, 혹은 박물관 견학을 통해 다시 학습되기도 한다. 막내를 빼고 나머지 넷은 모두 사내지만 바느질도 이들에겐 좋은 공부가 된다. 둘째 주목이는 어느 날, 서너 시간 말 한마디 없이 앉아 가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아이들의 흩어진 마음이 바느질에 모아지면서 끈기와 집중력이 길러져 다른 공부나 일도 잘하게 된다고 한다.
생일맞이도 좋은 공부의 기회로 삼는다. 선목이가 열두 번째 생일을 맞은 때에 일주일 동안 선이골에 아버지와 선목이만 남겨졌다. 혼자 밥 짓고 집안일을 하면서 ‘사람은 왜 태어났는지, 왜 병이 들고 늙고 죽는지’ 등을 깊게 고민해보는 기회를 선물로 준 것이다.
제도와 규율,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과감하게 자유를 선언하고, 자신들에게 맞는 삶을 용기 있게 선택한 이들의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웰빙’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삶이 아닐까? 아침을 찬양 속에 맞고, 낮에는 땀흘려 일하고, 밤이면 공부하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보면 이런 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발에는 흙을/손에는 연장을/눈에는 꽃을/귀에는 새소리를/코에는 풀냄새를/입에는 미소를/가슴에는 노래를/피부에는 땀을/마음에는 바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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