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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투병하다 세상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 담은 시집 펴낸 김홍신

“애써 밝은 표정 짓다가도 힘들어 하는 아이들 보면 왈칵 가슴이 북받쳐 올라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08.10 14:50:00

소설가인 김홍신 전 국회의원이 4개월 전 세상을 떠난 부인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과 홀로된 심경을 담은 시집을 출간했다. 그가 시집에도 차마 담지 못한 아내에 대한 추억과 못 다한 사랑, 사별 후 가족이 겪는 아픔을 힘겹게 털어놓았다.
10년간 투병하다 세상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 담은 시집 펴낸 김홍신

17대 국회의원 총선 기간이던 지난 3월20일, ‘인간시장’의 작가이자 15대,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홍신 전 의원(57)의 부인 이화영씨(56)가 오랜 투병 끝에 작고했다. 당시 서울 종로에 출마했던 김 전의원은 슬픔을 딛고 선거운동에 나섰지만 근소한 표차로 낙선,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7월 중순, 김 전의원이 세상을 떠난 부인을 그리는 마음과 홀로된 심경을 담은 시집을 펴냈다. 부인이 투병생활을 할 때부터 사별 후까지 틈틈이 쓴 시들을 모은 ‘한 잎의 사랑’이 그것.
서초동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을 때 김 전의원은 아내의 부재와 낙선으로 인한 마음고생으로 얼굴에 그늘이 짙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비교적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잔잔한 미소 뒤에 묻어나는 쓸쓸한 표정에서 아직도 아내를 잃은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느껴졌다.
“그냥 쉬고 있어요. 모처럼 늦잠도 자고, 인터넷에 들어가 젊은 사람들의 생각도 읽고, 독서도 하고…. 특히 명상에 관심이 있어 관련 책도 읽고, 직접 명상도 하고 있어요. 명상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벌써부터 보궐선거에 그가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현재로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우선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에요. 장기 해외여행을 할까도 생각해보고, 새로운 소설을 구상해보기도 하고, 괜찮은 방송 프로그램 진행 제안이 오면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느 것도 결정한 것은 없어요.”
조심스럽게 시집 이야기를 꺼냈다. 소설가인 그가 늦깎이 시인이 되어 시집을 펴냈다는 게 의외다.
“시는 문학청년 시절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을 쓰면서 시도 같이 습작을 했죠. 소설가로 등단한 후 한동안 시를 안 썼는데, 국회의원 생활을 하다 보니 소설을 쓸 시간이 없더라고요. 소설은 호흡이 길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갈증이 커져 틈틈이 시를 쓰며 갈증을 풀곤 했는데, 처음엔 부끄러워 발표를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용기를 내서 한 문예지에 발표했는데, 유안진 선생이 아주 좋게 평을 해주셨어요. 거기에 자신감을 갖고 계속 시를 썼죠(웃음).”
그는 시를 쓴 게 글에 대한 갈증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갈증을 불러일으킨 것은 죽음을 앞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아니었을까.
‘내 목숨 반을 잘라/ 님에게 주렵니다/(중략)/ 반으로 접은 내 인생 위에/ 죽어서는 안될 님을 얹어/ 나란히 사라지게 하소서/ 그것이 두 목숨을 살리는 길이니’ (‘기도’ 중에서)
‘천년 사랑도 원하는 게 아니다/ 백년의 정붙임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십년만 더 목소리를 듣게 해달란 거’(‘사랑은 무죄’ 중에서)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홀로 남은 고통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켰다.
‘오마 하고 온 사랑은 아니지만/ 가마 하고 가는 사람/ 잡을 길 없다// 가는 사람 그림자 부여잡고/ 통절한들 무슨 소용 있나/(중략)/ 그대여/ 살아남은 자의 애절한 고독을 아는가’ (‘살아남은 자의 고독’ 중에서)
‘네가 떠난 뒤/ 그리움에 북받쳐/ 네가 세상에 없는 줄 알면서/ 그냥 걸어봤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그래 너 없는 세상/ 난 어쩌란 말이냐’ (‘지금 거신 전화는’ 전문)

10년간 투병하다 세상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 담은 시집 펴낸 김홍신

생전의 아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


그에 따르면 아내 이씨는 선천적으로 천식을 앓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병이 기관지 확장으로 진행되더니 폐, 심장, 신장, 소화기 계통까지 망가졌다고. 그는 “차라리 암처럼 조기에 발견돼 수술로 치료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천식은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많이 안 좋아진 것은 10년쯤 전부터였어요. 한 달씩 병원에 입원을 하다 퇴원하고 다시 입원하기를 반복했죠. 2년 전부터는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하더니 지난해 여름부터는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의 아내는 몇 년 전부터는 누우면 숨을 쉬기 곤란해 이불을 쌓아놓고 비스듬히 기대앉은 상태에서 잠을 자며 고통스런 생활을 했다고 한다.
“옆에 있으면 힘든 숨소리가 들렸어요. 집에 있을 때도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어야 할 때가 많았고요. 병원에 갈 때나 이동할 때는 이동용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데, 가는 도중에 산소가 떨어져 큰 고생을 한 적도 있어요.”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몇 해 전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필리핀으로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산소호흡기까지 챙겨 비행기를 탔음에도 호흡곤란으로 너무 고생을 해서 다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씨의 사망소식이 알려지기 전까지 투병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김 전의원이 한번도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병 같으면 소문을 내서 치료방법을 찾았겠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가 꺼려졌어요. 아내도 그걸 원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마음 한켠으로 답답함이 있었죠.”
하지만 김 전의원은 아내가 투병 생활을 하는 10년 동안 소설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폈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병실을 찾았다. 아픈 사람도 힘들지만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힘들게 마련. 언제 가장 힘들었냐고 묻자 영정사진을 만들 때였다고 한다.
“의사로부터 마음에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고 영정사진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찾는데, 아픈 사람은 대개 사진을 안 찍잖아요. 그래서 사진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아내에게 말할 수도 없고…. 아내가 후원회에 참석했다 찍은 단체사진이 한장 있어 그걸 확대해 영정사진을 만들었는데, 그걸 만든다는 게 참 기가 막히더라고요.”
지난해 12월 비례대표 의원직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한 그는 처음엔 17대 총선 출마를 망설였다고 한다. 아내의 병세가 깊어 남은 시간만이라도 옆에서 간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총선 출마를 강력히 권했다.
“당시 아내는 정신을 잃었다 찾았다를 반복하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의식이 돌아오면 저에게 자꾸 일을 하라고 했죠. 제가 궁상스럽게 앉아 있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게 좋다고요. 아내는 전에도 그랬어요. 제가 글을 쓰느라 며칠 동안 집에 틀어박혀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그게 그렇게 답답해 보였나봐요. 친구들에게 전화라도 오면 나가서 술이라도 마시고 오라고 할 정도였어요.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갇혀 지내냐는 것이었죠. 친구들에게도 농담처럼 ‘우리 남편에게 예쁜 여자 좀 소개시켜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너는 참 좋겠다. 우리들은 바람을 필까봐 감시를 받으며 사는데 너는 오히려 나가서 예쁜 여자를 만나라고 하니까’ 하면서 웃은 적이 있어요.”
김 전의원이 아내를 만난 것은 대학교 때 같은 하숙집에서 하숙을 하면서였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친한 선후배 사이일 뿐이었다고 한다.

10년간 투병하다 세상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 담은 시집 펴낸 김홍신

딸 예슬이와 함께. 예슬이는 어머니가 세상을 뜬 후 학교를 휴학하고 마음을 추스리는 중이라고 한다.


“아내가 문학을 좋아해 저를 ‘오빠오빠’ 하며 많이 따랐어요. 그래서 제가 속해 있던 문학회 사람들하고도 친했죠. 하지만 그때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어요. 졸업 후 한참 있다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동생이 아니라 여자로 보이더라고요.”
그의 시 가운데 ‘죽거들랑 추억은 대신 간직해요/ 꺼내는 추억마다 그림자가 되고/ 산하가 온통 그대 이름인 걸/ 내 영혼이 그대의 추억이다’(‘사랑은 무죄’ 중에서)라는 구절이 있다. “아내와의 추억을 들려달라”고 하자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추억은 누구나 다 있죠. 그런데 있을 때는 몰라요. 사람이 없어진 다음에 잘 보이죠. 우리가 숨을 쉬어야 살잖아요. 숨을 쉰다는 게 고마운 거지만 평소엔 잘 인식하지 못하잖아요. 추억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아직 아내의 부재를 객관화시키기엔 시간이 이른 모양이다. 그는 아내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을 힘들어 했다. 대신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가 죽고 난 뒤에 보니까 아이들이 겉으로는 표를 안 내는데 참 힘든가봐요. 딸아이는 휴학을 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볼 때 가장 힘들어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하다가도 문득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왈칵 가슴이 북받쳐 오르고….”
화제를 돌려야 했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가장 의정활동을 열심히 한 의원으로 꼽힌다. 지금 보건복지부가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꼽는 최저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도 그가 처음 발의한 것이다. 또한 시설 장애인들을 강제로 불임수술시키고 고아원 원생들을 대상으로 백신실험을 하는 인권침해 현장을 파헤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시민단체에서 선정한 ‘일 잘하는 의원’에 연속 1등을 차지했다.
“처음에 그런 평가를 받았을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생각해 보면 일 잘하는 의원이란 게 간단한 거예요.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면 되는 거죠.”
그가 하루빨리 아내를 잃은 아픔을 털고 자신의 말처럼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성동아 2004년 8월 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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