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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슴 아픈 고백

외아들 잃은 슬픔 처음으로 털어놓고 목 놓아 울어버린 박원숙

“이혼하고 재혼하고 그 난리 치며 데리고 다녔으니 아들에게 미안한 게 너무 많아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08.02 17:19:00

지난해 11월, 중견탤런트 박원숙의 외아들 서범구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이 발생했다. 사고 후 슬픔을 잊기 위해 연기와 신앙생활에만 몰두했던 그가 8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동안의 힘겨웠던 시간들을 털어놓았다.
외아들 잃은 슬픔 처음으로 털어놓고 목 놓아 울어버린 박원숙

8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11월3일 외아들 서범구씨를 교통사고로 잃은 후 연기와 신앙생활에만 몰두했던 중견탤런트 박원숙(55)이 자신의 입으로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하기까지는.
잘알려져 있듯이 박원숙은 두 번 이혼하고, 전 남편이 남긴 엄청난 부채 때문에 재작년까지도 방송국 출연료까지 차압당하는 등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외아들 서씨는 희망이자 그의 전부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생이별을 했으니 그 충격과 고통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들을 에돌아 흐르는 북한강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내려다 보이는 박원숙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만나면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까’ ‘어떻게 물어야 마음에 상처가 덧나지 않을까’…. 남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그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아주 중대한 발표를 하려고 오시라고 했어요. 저 재혼해요. 아니지, 벌써 두 번 이혼을 했으니까 결혼하면 재재혼이 되는 건가?” 하고 농담을 건넸다. 이렇듯 말하는 걸 보며 ‘시청자들이 박원숙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솔직함과 넉넉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일을 많이 했어요. 사고 당시 SBS ‘흥부네 박 터졌네’와 ‘폭풍속으로’, KBS ‘진주목걸이’를 한꺼번에 찍고 있던 때라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울며불며 이를 악물고 촬영을 했죠. 드라마들이 5월말에 들어서야 모두 끝나 잠깐 쉬었어요. 지금은 SBS ‘형수님은 열아홉’ 한 작품만 하며 내 시간을 갖고 있어요.”
그는 쉬면서 8일 동안 유럽 3개국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한다. 비행기로 스위스 취리히에 내려 버스로 이탈리아 밀라노와 베네치아, 피렌체를 구경한 후 다시 비행기로 프랑스 파리에 가서 2박3일을 머물다 돌아오는 일정이었다는 것.
외아들 잃은 슬픔 처음으로 털어놓고 목 놓아 울어버린 박원숙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니까 비행기로 이동할 때와는 느낌이 다르더군요. 스위스는 역시 조용하고 깨끗했어요. 이탈리아는 스위스에 비해 조금은 무질서하지만 정감이 느껴지고…. 파리는 95년에 드라마 ‘이 여자가 사는 법’을 찍으면서 20일 정도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구석구석 정감이 느껴지더군요. 그런데 여행은 젊었을 때 해야 한다는 걸 이번에 실감했어요. 비행기 오래 타는 게 이젠 힘들더라고요(웃음).”

‘지금 무슨 촬영을 하고 있는 건가’ 아들 시신 보고도 실감나지 않아
함께 여행한 관광객들과 친해져 돌아온 후 그의 집에서 다시 모여 놀기도 했다는 그는 여행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많이 씻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행을 통해 훌훌 털어버렸냐”고 하자 “이별 여행을 한 것도 아닌데, 뭘” 하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곤 한동안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 ‘아침마당’에 아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보니까 사고 현장을 보여주는데 아스팔트에 핏자국이 있고…, 죽겠더라고요. 그걸 보기 전까지는 아들의 죽음이 선명하게 와 닿지 않았어요. 애써 모른 척했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폭탄처럼 터지는 위험한 물건이 주머니 속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서워서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서 전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를 몰랐어요.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제가 아는 줄 알고 ‘언덕길이 어떻고’ 하면 가슴이 덜컹 무너져 내렸어요.”
그는 처음에 병원에서 의사가 “사인이 어떻고…” 할 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아들의 죽음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게, 사고가 나기 바로 전날 아들 식구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제가 ‘너도 나도 이제 살을 빼야 한다’고 해서 쌈밥집에서 밥을 먹고,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있다가 보냈어요. 그때만 해도 차에 타면 딸에게 안전벨트를 해주고, 집에 와서는 무동을 태우고 놀았는데….”
다음날 ‘흥부네 박 터졌네’ 촬영을 위해 머리를 손질한 후 여의도의 한 빵집에서 스태프들에게 줄 빵을 사들고 나오는데, 아들 직장 상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외아들 잃은 슬픔 처음으로 털어놓고 목 놓아 울어버린 박원숙

박원숙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연기와 신앙으로 견뎌내고 있다.


“‘어디 가는 중이냐’고 물어 촬영간다고 했더니 ‘지금 범구가 차에 조금 부딪쳤다’며 잠깐 병원에 왔다가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가볍게 이야기를 해서 전 아들이 그렇게 되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촬영을 해야 하니까 이따 가보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일단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거예요. 마침 병원이 여의도에서 가까워서 잠깐 갔다와도 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갔는데, 가면서도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안했어요.”
그런데 응급실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응급실 앞에서 사람들이 울고 있는데, 그들 중엔 아는 얼굴도 있었다. 아들 회사 사람들이었다.
“그때까지도 죽음은 상상도 안했어요. 사람들이 울길래 ‘많이 다친 건가’ 걱정하면서 응급실로 들어섰는데, 응급실이 텅 비어있고, 아이 몸 위로 시트가 덮여 있는 거예요. 옆에서 의사가 죽었다는 말을 하는데…, ‘내가 지금 무슨 촬영을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이브의 모든 것’에서 한재석이 꼭 그렇게 죽은 채로 있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그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아들의 몸을 만지니까 몸이 점점 식어가고….”
그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너무 기가 막혀가지고…. 어디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일단 오미연에게 전화를 하는데, 단축다이얼만 누르면 되는데도 손이 떨려 계속 잘못 눌러 연결이 안되고, 동생에게 해도 전화를 안 받고…. 그때는 정말 죽겠더라고요.”
당시 기자들이 서범구씨의 빈소를 찾았을 때 그는 눈물마저 마른 채 멍 하니 아들의 영정만 바라보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었다.
“참 신기한 게, 그런 일을 겪으면 다른 엄마들은 엉엉 목 놓아 울던데, 전 그 울음이 안 나오는 거예요. 가슴이 꽉 막혀 ‘꺼억 꺼억’ 하는 소리만 나와요. 정말 슬프니까 울음소리도 안 나와요. 차라리 확 목 놓아 울어버리면 속이 시원하기라도 할 텐데….”
당시 그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지 닷새 만에 드라마 촬영을 강행했다. 드라마 성격상 코믹연기를 해야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냈다.
“이미 시작한 드라마는 빠질 수가 없죠. 하지만 진짜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PD에게 말을 했더니 절대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일수록 일을 해야 견딜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PD의 말처럼 그렇게 밤낮으로 일을 했으니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길을 가다 아들과 비슷한 사람 보면 깜짝깜짝 놀라
일을 하며 아들을 잃은 고통과 그리움을 견뎠다고 하지만 문득문득 아들의 부재가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집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전에는 잘 때 문을 다 닫고 잤는데 이젠 열고 자요. 문을 다 닫으면 답답하면서 눌리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어제는 외국인들이 장기투숙을 하는 호텔이란 곳을 가보았어요. 그곳에서 작은 방을 얻어 지낼까도 생각하고 있어요.”
아들이 가장 생각날 때가 언제냐고 묻자 컴퓨터가 말썽을 부릴 때라고 한다.
“아들이 컴퓨터를 잘했어요.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와서 고쳐주곤 했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주겠다고 하는데도, 가장 먼저 생각이 나요.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람이 냉장고에 먹을 게 가득 있으면서도 안 먹는 것하고 하나도 없어서 못 먹는 것하고 다르잖아요.”
그는 길을 가다가 혼자 깜짝깜짝 놀라 멈춰 설 때가 많다고 한다. 아들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아서다. 물론 다시 보면 전혀 다르지만 아들과 몸집만 비슷해도, 머리 모양만 비슷해도 아들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우면 꿈에 나타나지 않냐고 하자 “생각은 애절한데 꿈에는 잘 안 나타난다”며 “사고 후 2~3달쯤 지났을 무렵 딱 한 번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돌이켜 보면 아들에게 미안한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외아들 잃은 슬픔 처음으로 털어놓고 목 놓아 울어버린 박원숙

“사고 후 저를 가장 괴롭힌 생각이 ‘겨우 이렇게 될 것을 이혼하고 재혼하고 그 난리를 치면서 아이를 데리고 다녔나’ 하는 것이었어요. 훌륭하게 잘해주었어도 그렇게 가면 기가 막힐 텐데, 전 너무 해준 게 없으니까 더 미안해요. 오죽했으면 아들이 결혼해서 절대로 이혼은 안한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었겠어요.”
그에게 서범구씨는 모자지간 그 이상이었다. 그 스스로도 “아들과는 애인 같은 사이였다”고 한다. 둘 사이엔 어떤 말도 할 수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아들은 결혼 전 자기 여자친구들 이야기를, 저는 제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서로에게 다 했어요. 아들은 저를 많이 이해해주었죠. 정말 속이 깊은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때도 이사를 자주 다녀서 6년 동안 6번이나 이사를 했는데도, 2학기가 되면 꼭 부반장을 했어요. 그것도 미안해요. 엄마가 해준 것도 없는데 잘 커주어서.”
그에겐 이제 가장 소중한 물건이 하나 생겼다. 아들의 반코트다. 며느리에게 부탁해 서씨의 유품 중에서 반코트 두 벌을 챙긴 그는 지난 겨울 촬영을 하며 틈틈이 입곤 했는데 지금까지 세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의 체취를 그렇게라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아침에 일어나 “아빠가 마음에 편지를 써보냈다”며 우는 손녀
서씨의 죽음은 박원숙에게도 고통이지만 누구보다 손녀딸에게 큰 상처일 것이다. 이제 여섯 살인 손녀가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소년소녀 가장이 어른스럽잖아요. 전 그게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되면 어른스럽게 되나봐요. 아이가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아요. 표현하는 게 너무너무 어른스러워요.”
그는 금요일이면 손녀를 집으로 데려와 일요일까지 같이 지내다 저녁 때 며느리에게 보낸다고 했다.
“하루는 같이 자는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빠 생각이 난 모양이에요. 갑자기 ‘아빠가 출장 갔다 왔어. 출장을 가면 편지를 썼는데 편지가 없어. 근데 생각해보니까 마음에 편지를 쓴 거였어’ 그러는 거예요. 놀라서 ‘얘가 왜 이러나’ 하고 쳐다봤더니 눈에 눈물이 가득해요. 제가 눈물을 닦아주니까 절 위로하려고 그랬는지 ‘난 왜 하품을 하면 눈물이 나오지’ 그러는 거예요. 그런 아이를 보니 가슴이 북받쳐 오르는데, 내가 울면 걔 마음이 어떨까 싶어 울지도 못하고….”
하루는 갑자기 아들 생각에 설움이 북받쳐 울려고 하니까 아이가 “아빠 때문에 그러지” 하더니 침대 머리에 놓인 아빠 사진을 보면서 ‘바보 바보 바보, 잘 보고 가지’ 하더란다. 아이도 나름대로 고통을 견디며 씩씩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제가 아픈 거는 ‘살면서 진짜 내가 별걸 다 겪는구나’ 하면서 살겠는데, 손녀가 걱정이에요. 정말 상처받지 않고 잘 자라주면 좋겠어요.”
영안실에서 본 손녀는 아빠를 꼭 닮았다. 붕어빵처럼 꼭 닮았다고 하자 “아빠를 너무 닮았어. 어쩜 나쁜 것만 닮았는지, 코 올라간 것까지 똑같아요”하며 웃었다.
그는 요즘 들어 신경이 많이 예민해져 있다고 한다. 예전엔 그냥 지나가던 것들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저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신앙의 힘으로 고통을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발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운동을 하려고요.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겠어요.”
이젠 그도 아픔을 훌훌 털고 새출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에는 ‘앞으로의 계획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 거예요’ 그랬는데 이젠 사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느껴요.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가을쯤 드라마를 하나 더 시작할 생각이고, 지금은 당분간 한 작품만 하며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냐고 하자 잠깐 생각을 하더니 “지금 내 상황이 꼬질꼬질하니까 탈피하고 싶다. ‘별은 내 가슴에’에서 했던 것처럼 화려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마음에 각오를 한 듯 아들 이야기를 한숨, 눈물과 함께 털어놓은 박원숙. 무엇보다 큰 인생의 아픔을 겪은 그에게 앞으로 따사로운 날들이 펼쳐지기를, 평안한 날들이 그의 깊은 상처를 감싸주기를 기원해본다.

외아들 잃은 슬픔 처음으로 털어놓고 목 놓아 울어버린 박원숙

1 펜션 전경. 하루 한 팀만 사용할 수 있어 호젓하게 쉴 수 있다.
2 클래식한 분위기로 꾸며진 1층 안방 침실.
3 아라비아풍으로 꾸며진 2층 침실.


청평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오롯이 자리한 박원숙의 펜션은 유럽의 예쁜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소담스럽게 꾸민 정원에는 파라솔과 선탠 베드, 나무 벤치가 놓여 있고, 밤에는 바비큐 파티와 캠프파이어를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이 갖춰져 있다. 정문에서 마당으로 올라가는 오솔길도 아기자기하다.
실내에 들어서면 고급 호텔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층은 침실과 주방, 거실로 나뉘어졌고 2층은 서재와 침실 2개, 드레스룸, 발코니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구와 소품은 그동안 박원숙이 틈틈이 모아온 것으로 클래식한 스타일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널찍한 1층 거실엔 벽난로가 있어 운치를 더하고, 2층 발코니에서 밖을 바라보면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 된다. 또한 2층에 컴퓨터와 플레이스테이션2를 설치해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박원숙이 이 집을 지은 것은 2001년. 처음엔 가까운 지인들이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빌려 주다가 지난해 4월부터 일반인들에게도 문을 열었다. 다른 펜션과 달리 애초 전원주택 용도로 지었기 때문에 손님을 하루 한 팀씩만 받아 가족이나 연인끼리 와서 호젓하게 쉬었다 갈 수 있다. 특히 최고 15명까지 사용할 수 있어 대가족이 이용하기에 좋다.
외아들 잃은 슬픔 처음으로 털어놓고 목 놓아 울어버린 박원숙

4 넓은 거실에 있는 벽난로가 운치를 자아낸다.


외아들 잃은 슬픔 처음으로 털어놓고 목 놓아 울어버린 박원숙

5 실내를 박원숙이 틈틈이 모은 고풍스러운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6 펜션 정원에서 내려다 보는 북한강이 아름답다.
7 정문에서 마당으로 올라가는 아기자기한 오솔길.


문의 www.wonsook.com, 010-3019-3392

여성동아 2004년 8월 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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