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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이혼 아픔 딛고 ‘초의선사’ 평전 펴낸 소설가 곽의진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난 초의선사 통해 무욕의 삶 깨달았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07.12 11:35:00

중견소설가 곽의진씨가 우리 다도문화를 바로 세운 ‘초의선사’의 삶과 사상을 담은 책을 펴냈다.
가정폭력과 이혼의 상처를 가진 그가 초의선사를 통해 새 삶을 찾기까지의 가슴 찡한 사연.
가정폭력·이혼 아픔 딛고 ‘초의선사’ 평전 펴낸 소설가 곽의진

우리나라 다도문화를 바로 세운 ‘초의선사’. 그는 다도의 성인으로 불릴 뿐 아니라 유교와 도교를 통달하고 시화와 서화에 능해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힌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의선사의 삶과 사상을 처음으로 소개한 이가 있다. 최근 ‘초의선사’ 평전을 펴낸 소설가 곽의진씨(56)다.
그가 초의선사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한 일간지에 ‘꿈이로다, 화연일세’라는 소설을 연재하면서였다. 진도가 낳은 대표적 화가인 소치 허유의 삶과 예술을 그린 이 소설을 쓰다가 소치의 스승인 초의선사를 알게 된 것.
“소설의 주인공인 소치보다 초의가 더 강하게 다가왔어요. 소치가 초의선사에 대해 쓴 ‘몽연록’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정적에 잠긴 작은 난간에 기대어 하냥 새소리를 듣다가도 깊숙한 오솔길을 따라 객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슬며시 초암 뒤 소나무 그늘에 숨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다가도 정작 사람이 올라오면 숨어버리는, 간절히 원하면서도 자제한다는 게 너무 멋있지 않아요?”
이런 초의선사의 삶은 그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대학 2학년이던 68년, 사랑하는 사람 하나만 믿고 결혼하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3남매를 키우며 열심히 가정을 꾸려나가던 어느 날, 남편의 배신을 알게 되면서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신문사 기자였던 남편이 회사 옆에다 집을 얻어 딴 살림을 차렸던 것. 남편은 6년 동안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그를 학대했다.
한번은 그가 남편에게 맞는 것을 보다 못한 큰아들이 말리다가 팔이 부러졌다. 그 후론 밤새 맞아도 소리 한번 안 내고 꾹 참았다고 한다. 자신은 어떻게 되더라도 자식들만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를 못하겠어요. 다 참을 수 있었어요.”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든 고통을 감내한 그는 남편의 외도와 끔찍한 학대에도 자식들을 위해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정 식구들의 설득으로 결국 결혼 11년 만인 79년 남편과 헤어져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그는 별거를 한 채 이혼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그의 오기였고, 자식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5년 전 딸이 결혼을 한 뒤 정식으로 이혼을 했다.
그는 90년대 초에 전재산을 모아 출판사를 차렸지만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살던 집도 팔고 오피스텔을 월세로 얻어서 당시 대학 1학년이었던 막내아들과 살았다. 하지만 2학기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만 했다.
“남편과 헤어진데다 재산까지 다 잃었을 땐 정말 죽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그때 한 신문사에서 역사소설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소치 허유의 삶을 그린 ‘꿈이로다, 화연일세’를 응모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채택되었다. 그렇게 해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게 되었고, 그는 소치의 숨결을 보다 잘 느끼면서 소설을 쓰기 위해 96년 1월 진도로 내려갔다.

삶의 벼랑 끝에서 만난 초의선사에 빠져
그는 남편에게 배신을 당한 후로 남자를 믿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배신했는데 당신은 나를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겠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 자신이 얼마나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초의선사를 만나면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가정폭력·이혼 아픔 딛고 ‘초의선사’ 평전 펴낸 소설가 곽의진

“‘아, 내가 사람이 그리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동안 제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얼마나 나 자신을 묶어놓고 살았는지 깨달았죠. 이젠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초의처럼 모든 걸 초월하고 해탈한 삶을 살고 싶어요. 인생은 본래 자기 혼자인 것이고, 그래서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이것이 내 여생의 길잡이가 될 거예요.”
초의선사는 1786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5세 때 출가한 후로 여러 절을 돌아다니다 19세 때 대흥사로 들어왔다. 그리고 39세에 대흥사 꼭대기에 일지암이란 암자를 짓고 81세로 입적할 때까지 줄곧 그곳에 머물렀다.
‘뱁새는 항상 한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나무 한 가지만 있어도 편하다.’ 초의선사는 일지암 주변에 차나무를 키워 날마다 차를 우려 마시며 선을 하고 경을 읽고 시를 썼다. 소박하게 살다 간 것이다.
“초의선사는 세상의 먼지와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슬한 승려이자 동시에 멋쟁이 풍류 승려였어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초의선사에 빠진 이후 불경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불교 신자가 되었다. 비록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지는 않더라도 초의선사를 따라 구도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그래서 처음엔 좋아하는 고기와 술도 안 먹었지만 그런 외형적인 것들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그저 스스로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면해좌선(面海坐禪)을 한다. 그러면 모든 집착과 욕심, 욕망이 사라진다는 것.
“서울에서 살 땐 무엇인가에 대해 집착하고 욕심내고 했어요. 그래서 힘들었죠. 그런데 요즘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마음이 너무 평안해요.”
그의 토방 툇마루는 바다 쪽으로 나 있어 툇마루에 앉으면 바로 바다가 펼쳐진다고 한다. 바다를 마주 보며 좌선을 한 뒤에 한잔의 차를 앞에 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그는 또 자신의 집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을 자랑했다. 바다에서 뜨는 해가 창을 비추고 바다로 지는 해가 또 그 창을 비춘다는 것.
“뜨는 해보다 지는 해가 더 아름답다는 거 아세요? 제 방에서 창을 통해 보는 일몰은 그야말로 굉장해요. 그걸 보면서 생각해요. 사람도 태어날 때보다 죽을 때 더 아름다워야 하는데, 내가 죽을 때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고요.”
애초엔 소설을 끝내면 다시 서울로 올라올 생각에 소설을 쓰는 동안 남의 빈 집에서 지냈지만 그는 초의선사에게 빠진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일지암에서 홀로 글을 쓰고 차를 마시던 초의선사의 모습을 흉내내고 싶어서 소설을 끝내고도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
진도에서 살기로 작정한 뒤 그는 우선 진도 남쪽 바닷가 여귀산 아래에 작은 흙집을 지었다. 그곳에서 그는 초의선사를 닮아가고자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의 집 근처 풍경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대전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글을 쓰느라 정신이 없던 그로선 사람들을 대접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쫓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안에 있지만, 그러나 나는 안에 없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안에 있긴 하지만 없는 것처럼 여기면서 신경 쓰지 말고 그림 그리다 가라는 거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으면 초의 흉내를 내곤 했어요.”

가정폭력·이혼 아픔 딛고 ‘초의선사’ 평전 펴낸 소설가 곽의진

마을과도 한참을 떨어진 외진 곳에서 사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묻자 빙그레 웃는다. 귀신과 친구 사이인데 무엇이 무섭냐는 것이다.
“집 뒤에 무덤이 하나 있는데, 스물일곱 먹은 총각의 무덤이래요. 집을 지은 그해 가을밤에 서울을 갔다 오는데, 쪽마루에 어떤 남자가 앉아 있는 거예요. 그러다 저를 보더니 집 뒤로 돌아가버리데요. 그 무덤의 주인인 총각이 아니었을까 해서, 그 후론 가끔 무덤에 가서 그 친구랑 같이 술도 하고 그래요(웃음).”
그는 그렇게 귀신과 친구 되고, 집 주변에 가득한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과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문득 초의선사의 ‘산사에서’란 선시 일부분을 읊었다.
“산속에 노니며 그렁저렁 자연에 의지하는 것 / 나 일찍이 묘지음(妙指音) 터득 못했으나 / 터럭만큼 작은 것도 그 이치 캐다 보면 / 세속의 즐거움 잊을 것이리니.”
터럭만큼 작은 것이라도 자연 속에서 그 이치를 캐며 살다보면 세속의 즐거움을 잊고 정진할 수 있다는 이 시의 내용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지금 다산 정약용과 열애중이다. 다산을 소재로 해서 한창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그는 다산의 인간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쓰고 싶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소치와 초의에 이어 이번엔 다산까지,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들만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일까, “그들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바람도 쉬어 간다는 그의 토방에서 그와 함께 바다를 마주하고 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동아 2004년 7월 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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