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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뜻밖의 고백

시집에서 내쫓기고 남편 의처증에 시달렸던 아픈 과거 털어놓은 정덕희

“인생의 역경에서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죠. 그걸 감싸주는 게 바로 가족입니다”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이영래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4.07.12 10:35:00

“행복하소서”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일약 스타 강사로 떠오른 정덕희 교수가 최근 자신의 지난했던 개인사를 털어놓아 화제다. 시집에서 내쫓겨 창고방에서 딸과 함께 웅크려 지냈던 나날들과 남편의 의처증에 시달려 이혼 직전까지 갔던 위기의 순간 등 성공의 베일에 감춰져 있던 그의 슬픈 개인사를 직접 들어보았다.
시집에서 내쫓기고 남편 의처증에 시달렸던 아픈 과거 털어놓은 정덕희

독특한 억양과 강한 힘이 묻어나는 소프라노 톤으로 “인생 신나고 재미있게 삽시다! 행복하소서∼”를 외치는 정덕희 교수(51·명지대 사회교육원).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람들 앞에서 ‘푼수’를 떨고 때론 스스로 한 농담에 자지러지기도 하는 그를 보면 인생이 정말 행복해서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 같다.
그런 그가 자신의 힘겨웠던 과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가 스타 강사로 성공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졌지만 가족간에 있었던 갈등까지 밝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열두 남매 중 열한번째로 태어났어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만 해도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고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선 학업도 포기해야 했어요.”
고3, 10월의 마지막 밤 그는 장항선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가정형편상 더 이상 학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던 것. 그는 출판사를 거쳐 한 화장품 회사 상담원으로 취직했다. 회사 근처의 자취방에서 늙은 어머니와 막내동생과 함께 살았던 그는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그렇게 2년여가 지났을 때 남편 이영덕씨(58)를 만났다. 같은 회사 동료였던 남편은 그보다 일곱살이나 위였으나 고시 공부를 하다 뒤늦게 직장생활을 시작한 터라 사회생활 경험은 그보다 적었다. 명문대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2백 평이 넘는 대저택에서 사는 부잣집 아들인 이씨가 그에게 관심을 표하자 그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부잣집에 시집가는 게 꿈이었으니 드디어 성공했구나 싶었죠. 예단을 준비할 형편이 못되니까 시어머님이 따로 돈을 쥐어주셨어요.”
사회생활 원만히 해내지 못하는 남편 대신해 생업에 나섰다 스타 강사 돼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처음엔 아무런 마찰이 없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시부모가 부부 갈등 끝에 황혼이혼을 한 것.
“황혼이혼을 하게 되자 시어머니는 그 스트레스를 저하고 제 딸에게 풀기 시작했어요. 저한테 그러는 건 괜찮았는데 어린 딸에게 ‘계집아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우리 집안 꼴이 이렇게 됐다’며 화풀이를 하실 때는…. 그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하지만 그는 시어머니를 이해한다고 했다. 노년에 남편과 이혼한데다 투자를 잘못해 경제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 상황에서 딴살림을 내보냈던 아들 부부가 다시 본가로 들어오자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그들 부부는 시부모가 마련해준 집을 판 돈으로 봉천동에 조그만 선물가게를 연 참이었다.
“그때가 결혼 8년째 되던 해였어요. 가르칠 만큼 가르친 아들이 제 밥벌이도 못하고 또 얹혀살겠다고 식구들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오니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나봐요. 그 화를 식구들 중 가장 만만한 저한테 푸신 거죠.”
하지만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너 같은 며느리는 필요없다. 우리집에서 나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그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추운 겨울, 마땅히 갈 데가 없어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한없이 울고 있던 그를 찾아 남편이 달려왔다. 그날부터 그는 선물가게의 창고로 쓰는 한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딸과 함께 웅크리고 잠을 잤다. 두어 달 후 남편도 아들과 함께 본가에서 나왔고 네 식구가 지하 월세방을 얻어 생활했다.
“깊은 지하 방이라 햇빛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도 참고 살려고 했는데 여름에 수해를 입고 말았어요. 물을 퍼내고, 장롱 등 세간들을 닦다 보니 설움이 북받치더라고요.”

시집에서 내쫓기고 남편 의처증에 시달렸던 아픈 과거 털어놓은 정덕희

그는 그때 비장한 각오를 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리라. 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한 것. 88년이었다.

“그때 남편에게 ‘당신은 온실에서 자랐으니 그냥 온실에 있어요. 나는 잡초 출신이니까 내가 할게요’ 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 거예요. 근데 막상 나서니 할 일이 있어야죠. 그래서 시작한 게 여성잡지 판매원이었어요.”
남편은 너무 귀하게 자란 탓인지 사회생활을 원만히 해내지 못했다. 때문에 선물가게도 1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고. 반면 세일즈맨으로 나선 그는 입사한 지 한달 반 만에 과장이 됐고 곧 외국계 보험회사에 스카우트 됐다.
그러던 중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유의 말솜씨로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는 그에게 주위에서 강연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강연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그는 동국대 교육대학원 연구과정을 수강하고 직접 만든 강연 팸플릿 5백장을 기업체에 돌린 결과 세 군데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는 어느새 이곳 저곳에 불려 다니는 유명 강사가 됐다.
“초창기에 영양사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맡게 됐어요. 저한텐 놓칠 수 없는 기회라 부랴부랴 달려가다 그만 덤프트럭에 치였어요. 자동차가 찌그러졌으니 제 몸도 말이 아니었죠. 그런데 그 상태로 강단에 올랐어요. 말이 헛나오고 오락가락하다가 50분 만에 쓰러졌는데 청중이 기립박수를 쳐주더군요.”

사회적으로 성공할수록 남편 의처증 심해져 한때 이혼 위기 겪기도
사회생활에선 승승장구했지만 가정은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부부싸움 한 번 안 했던 금실 좋은 부부였건만 불화가 시작됐다. 남편은 처음엔 “오늘은 어디 가서 웃음을 팔고 다녔냐”고 빈정대더니 언제부터인가 그의 일과를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보험 외판원으로 나가 제법 돈을 벌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제가 유명해져 차를 몰고 다니고, 비서까지 두게 되니까 더 심해지더군요. 외출했다 돌아오면 어디를 갔었는지 일일이 보고해야 했어요. 어떤 날은 제가 다녔던 곳을 남편과 함께 다시 한번 확인하며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도 했고요. ‘네가 웃음 팔아 번 돈으로 먹고 살고 싶지 않다’며 억지로 토하기도 했어요. 그럴 땐 정말 미워죽겠더라고요. 매일같이 그랬으면 벌써 이혼했겠죠. 그러다가 잠잠해지고, 또 다시 터지는 식이었어요.”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남편은 가난한 집 딸인 나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준 남자다. 남편은 그렇게 나에게 자신의 인생을 저축했다. 지금은 내가 남편에게 저축할 때다. 남편이 성공하면 이혼하자. 그때까지는 버티자’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다행히 남편은 종교를 갖기 시작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그 또한 지난 2000년 연극 ‘이혼하지 않는 여자’를 통해 마음 속에 묻어뒀던 남편에 대한 미움을 다 게워냈다고 한다. ‘이혼하지 않는 여자’는 그가 자비 1억원을 들여 시작한 연극으로 그는 무대에서 남편과 자신이 그동안 겪은 일을 모노드라마로 그리며 ‘마음의 푸닥거리’를 한 덕분에 지난날의 고통을 모두 털어낼 수 있었다고.

시집에서 내쫓기고 남편 의처증에 시달렸던 아픈 과거 털어놓은 정덕희

“좋을 때가 있으면 싫을 때도 있는 거고. 그렇게 끈적끈적하게 맺어지는 게 가족인 거죠. 자살과 이혼…. 사람들은 힘들다고 생각될 때 너무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해버려요. 그래서 하느님이 저를 통해 보여주시려는 것 같아요. 저 밑바닥까지 갔다가도 참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요. 남편은 이제 저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해요. 너무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하면 안 돼요. 인생의 역경에선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거든요. 우리 딸이 이번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면서 남편에게 편지를 썼더라고요. 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아빠는 아버지의 존재로 그 자리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올곧게 만들었습니다.’ 아빠란 그런 존재죠. 그런 아버지를 아이들에게서 뺏을 수 있나요?”
이제까지 8권의 책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정덕희 교수는 최근 ‘정덕희의 설, 수다, 토크’라는 또 한권의 책을 펴냈다. 가정형편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아픔을 겪었던 그는 현재 모교인 예산여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고, 안성에 마련한 전원주택은 ‘여성 쉼터’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성동아 2004년 7월 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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