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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몸져누웠다가 회복해 신작 전시회 연 화백 김흥수·장수현

“‘내가 젊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위로하며 병수발 한 아내 덕분에 붓 다시 잡았어요 ”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장옥경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4.06.10 14:29:00

92년, 73세 나이로 43세 연하의 제자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던 김흥수 화백.
지난 2년간 척추질환 후유증으로 세 차례나 수술을 받으며 극심한 병마에 시달렸던 그가 부인 장수현씨의 극진한 간호로 몸을 회복하고 85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동거기간까지 20년을 함께 살아온 김흥수 화백과 부인 장수현씨의 독특한 사랑법을 들어봤다.
2년간 몸져누웠다가 회복해 신작 전시회 연 화백 김흥수·장수현

서울 평창동에 있는 김흥수미술관을 찾았을 때 김흥수 화백(85)은 지하 아틀리에에서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흰색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큼지막한 목걸이와 앞치마를 두른 차림으로 붓질을 하고 있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병마에 시달렸던 사람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다.
“이제 휠체어나 지팡이 없이도 거동할 수 있어요. 채 5분도 못 앉아 있었는데 이제는 제법 작업시간도 길어졌고요.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정신적 고통이 훨씬 컸어요.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눈을 뜨고 있어도 꼭 저승에 있는 것만 같더군요.”
다시 붓을 잡으니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라는 김화백은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노란색이 강렬한 느낌을 주는 누드화였다.
“이 그림의 제목이 ‘나를 찾아온 천사’예요. 전 가장 강한 색깔이 노란색이라고 생각해요. 노란색은 자신을 잘 드러내면서도 다른 색들과 조화를 맞추기가 쉽거든요.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냥 앉아 있는 것과는 다르게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죠. 처음엔 5분도 안 되던 작업시간이 20분이 되고, 1시간 되고…. 이 그림을 그리면서 차츰 오래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자신감과 활력도 찾았어요. 그래서 제목을 ‘나를 찾아온 천사’로 지었죠.”
자신을 다시 화가로 존재하게 해준 작품을 설명하는 김화백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가 손님 앞에서 정말 귀중하게 여기는 보물들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등산하다 미끄러진 뒤 세 차례 척추 수술하고 2년 동안 몸져 누워
“작년과 재작년에 수술을 세번이나 받았어요. 집사람과 산에 갔다가 돌부리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런데 통증이 계속돼서 병원에 갔더니 척추에 문제가 생겼다고 그러더군요.”
2년간 몸져누웠다가 회복해 신작 전시회 연 화백 김흥수·장수현

김화백은 2002년 첫번째 수술을 받은 뒤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여기저기 볼일을 보러 다녔더니 허리가 더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급기야 아내가 외출하고 없는 사이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혼자서 기다시피 해 밖으로 나와 병원에 갔더니 수술 부위에 균이 들어갔다며 재수술을 권했다. 두번째 수술 후 회복이 더뎌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일본 히로시마 방송국에서 신작 그리는 모습을 촬영하자고 해서 겨우 작품을 하나 만들다 병세가 악화돼 세번째 수술을 받게 됐다고. 그간의 투병생활을 이야기하던 김화백은 “나이 여든이 넘어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아 역기를 번쩍 들어올릴 정도로 건강 하나는 자신이 있었는데 세월 앞에는 당할 장사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며 씁쓸해했다.
김화백의 체력은 실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부터 야구, 럭비, 권투 등으로 체력을 단련했고, 노후에도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지난 92년 73세의 나이로 30세의 제자 장수현씨(42)와 결혼을 할 당시에도 “실제 나이보다 건강 나이가 중요하다”며 하객들 앞에서 당당하게 큰소리를 쳤다. 부인 장수현씨는 “70대까지만 해도 팔씨름을 해서 져본 적이 없고, 한 팔에 나를 매달고도 끄떡없었다. 결혼한 뒤에도 밤을 새며 창작활동을 할 만큼 건강을 자랑했다”며 김화백의 정정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한번 작품에 몰입하면 식사하는 것도 잊을 정도로 집중력이 대단하셨어요. 아프기 전에는 하루 3∼4시간을 주무시고도 피곤한 줄 몰랐어요. 상대적으로 저는 잠이 많아서 만날 게으름뱅이라고 놀렸지요(웃음).”

장수현씨는 결혼할 당시 남편이 이미 고령이었지만, 워낙 건강해 특별히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최근 2∼3년 동안 병마와 싸우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남편은 물론 자신도 이제는 건강에 대해 신경을 쓰고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2년간 몸져누웠다가 회복해 신작 전시회 연 화백 김흥수·장수현

김흥수 화백은 요즘도 새벽까지 붓을 놓지 않는다.


김화백은 ‘스태미나 김’이라 불리던 자신이 병마 앞에서 맥을 못 추게 된 것은 김흥수미술관을 건립하며 너무 마음고생을 한 탓이라고 했다. 김흥수미술관은 2000년 1월 첫 삽을 뜬 이래 우여곡절을 거치며 2년여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어렵게 완공됐다.
“미술관을 세우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항의가 심했어요. 너무 욕을 먹어서 아내나 저나 그때만큼 속을 끓였던 적이 없을 거예요.”
자금난에도 시달렸다. 김화백은 작품 6점을 은행과 경매회사에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아 어렵게 미술관을 개관했다고 한다. 더욱이 마무리 공사를 앞두고 김화백이 몸져눕는 바람에 장씨가 나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했다. 김화백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내를 밖에 내놓고 나는 누워 있어야 하는 처지가 너무 비겁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초 김흥수미술관 건립을 추진한 사람은 부인 장씨였다. 장씨는 남편을 위하는 마음으로 미술관 건립을 계획했는데 미술관을 짓고 운영하기까지 온갖 풍파를 다 겪어 한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처세술도 생겼다”며 웃는다.
“당시 집사람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물혹 제거수술까지 받았어요. 배에 물혹이 자라 어른 주먹만하게 커졌는데도 경황이 없어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병원에 가보질 못했어요.”
김흥수미술관은 지하 2층, 지상 2층으로 지어졌다. 지하 2층은 김화백의 작품을 전시 및 보관하는 곳이고, 지하 1층은 김화백의 작업실이다. 지상 2층은 초대작가를 위한 공간이고, 지상 1층은 영재미술교실로 활용하며 어린이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부인 장씨가 김흥수미술관 건립을 결심하게 된 건 사실 영재미술교실 때문이었다. 김흥수 화백이 처음 영재미술교실을 운영한 건 지난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김포군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미술을 지도해줄 수 없겠느냐고. 아프지 않을 때라 기꺼이 수락을 했는데 4백명 넘게 몰려든 거예요. 두 반으로 나눠 지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 이듬해 예술의 전당에서 유치원생과 3학년 이하의 초등학생들을 모집해 꿈나무교실을 열었어요.”
98년 5월부터 봄, 가을 학기로 나눠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99년 계단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중단됐다. 장씨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남편이 그토록 어린이 미술교육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몸이 불편해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출퇴근을 하지 않고도 꿈나무교실을 계속할 방도가 없을까’ 고민한 것. 그리고 생각해낸 것이 미술관 건립이었다.
“남편 생전에 당신 작품을 모아놓을 수 있고, 후계자 양성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과잉내조’가 아니었나 싶어요.”
어렵게 개관한 후 장씨는 혼자 힘으로 김흥수미술관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매달 수천만원씩 들어가는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지난해 8월부터 부득이하게 휴관한 상태다.
그러나 영재미술교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주말마다 휠체어에 거의 눕다시피 한 상태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쳤을 만큼 김화백이 아이들에게 쏟는 열의는 대단하다.

남편 병수발 하느라 프랑스 유학 포기했지만 후회 없어
김화백과 부인 장수현씨는 올해로 결혼한 지 12년째지만, 동거한 기간까지 합하면 모두 20년을 함께 살았다.
“아내에게 참 미안해요. 결국 나를 만나서 청춘을 다 바친 꼴이 됐어요.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한 것이 94년에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가 97년에 제가 혀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는 바람에 아내가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거예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인데 제 뒷바라지하느라 공부를 중단하고, 졸업도 못했어요.”
김화백은 96년에 만든 틀니가 잇몸에 잘 맞지 않아 고생을 하던 중 오른쪽 이가 자꾸 혀를 깨물어 상처가 생겼는데 이를 방치하다 수술까지 하게 됐다. 프랑스에 머물던 장씨는 그 소식을 듣고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귀국했다. 그러나 장씨는 자신만큼 김흥수 화백의 감각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거라며 남편의 작품활동에 눈과 귀가 되고자 한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2년간 몸져누웠다가 회복해 신작 전시회 연 화백 김흥수·장수현

장수현씨는 김흥수 화백의 작품 활동에 눈과 귀가 되기로 한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한다.


“전 후회 안 해요. 그때 공부를 끝까지 마쳤더라면 화가로서 약간의 명성은 얻었겠죠. 하지만 전 젊고, 나중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 일을 하면서 남편을 내조한다는 게 두가지 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공부를 접었어요.”
2002년, 김화백이 척추를 다쳐 몸져누웠을 때는 24시간 김화백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2년간 혼자 힘으로 병수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장씨는 오히려 김화백의 강한 의지력을 칭찬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못 일어났을 거예요. 누군가가 옆에서 24시간 대기하고 있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힘든 상태까지 갔지만 결국 의지력으로 회복했어요. 정신력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건 결혼하기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아프고 나서 남편을 다시 보게 됐어요.”
아내의 칭찬에 김화백은 “모든 수발을 다 들면서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젊어서 정말 다행이다. 만일 둘 다 늙었다면 어떻게 간호를 했겠냐’며 위안을 해준 아내가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이른 아침마다 생수를 마시고 녹차를 즐겨온 김화백은 요즘도 식사는 가리지 않고 잘 하는 편이라고 한다.
“어떤 음식이든 잘 드세요. 술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아예 입에 대지 않았고, 담배도 서른살이 넘어서부터 피우지 않으셨대요.”
김화백은 평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림작업을 시작하는데 새벽 1, 2시까지 작업을 하고도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4개씩이나 챙겨 본다고. 장씨는 “돋보기까지 쓰고 깨알 같은 글씨를 읽는 것이 귀찮을 것 같은데 남편은 몸져누워있는 동안에도 신문을 꼭 챙겨 봤다”며 웃었다.
남편 병수발을 하고, 미술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면서 부인 장씨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미술관을 짓기 전까지 제가 남편에게 한 건 일방적인 내조였어요. 이제는 미술관 운영도 재개해야 하니 새로운 변화가 올 것 같아요. 과거에는 남편 스케줄에 제 모든 것을 맞췄어요. 잠자는 시간까지도. 이제는 남편의 작품활동을 내조하는 단계를 넘어서 남편의 작품세계를 사회와 나누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다시 파리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고, 국내에 남아 그런 일들을 해볼 생각이에요.”
올초 김화백의 건강이 호전되자 장씨는 김화백과 의논한 끝에 홍익대 대학원 예술기획행정과 1학기에 등록했다.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던 장씨가 학교에 나가기 시작하자 김화백으로서는 아무래도 생활에 불편한 점들이 많아졌지만 그동안 묵혀둔 창의력을 한껏 발휘하며 혼자 있는 시간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김화백은 몸을 회복한 뒤로 새로 작업한 그림들을 모아 지난 5월18일부터 31일까지 인사동 윤갤러리에서 신작 소품전을 열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 역시 부인 장씨가 기획했는데 그는 “나이가 들어 몸이 말을 안 들어도 뭐든지 완벽하게 하려는 남편을 보며 정신력의 위대함을 배웠다. 남편의 카리스마를 살려주면서 나이에 맞는 창작욕을 불태울 수 있도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내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4년 6월 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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