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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숨은 사연

97년 피살된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부인 김종은 첫고백

‘남편 떠난 후 고통과 두려움, 공포에 떨며 지내야 했던 7년 세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시대정신 제공

입력 2004.04.09 16:49:00

김정일 처조카로 북한 최고의 로열패밀리라는 안정된 삶을 버리고 82년 남한으로 망명한 이한영씨. 김정일 가계의 사생활을 폭로한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을 펴내기도 했던 그는 97년 괴한들에 의해 피살되고 말았다. 그후 은둔생활을 해온 부인 김종은씨가 7년 만에 처음으로 털어놓은 ‘지난 세월의 고통’.
97년 피살된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부인 김종은 첫고백

97년 2월,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있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인 이한영씨(당시 37세)가 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것이다. 당시 이 사건은 많은 의혹을 남긴 채 흐지부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로부터 꼭 7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2월24일,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인을 추모하고 고인의 유작자서전 ‘김정일 로열패밀리’(원제 대동강 로열패밀리, 서울 잠행 14년) 재출판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 부인인 성혜림(2002년 작고)의 언니 성혜랑(67)의 아들로 북한에선 최고의 로열패밀리였던 이씨는 82년 남한으로 망명했다. 87년부터 KBS PD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96년 모스크바에 있던 어머니 성혜랑이 서방세계로 탈출하자 자서전을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김정일 가계의 실상을 폭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살고 있던 서울 시내의 아파트에서 피살되고 말았다.
이씨의 사망 후 가족들은 잠적했고, 지금까지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근 이씨의 자서전 재출간을 계기로 미망인 김종은씨(35)가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88년 서울올림픽 관련 행사를 준비하며 이한영씨와 알게 된 김종은씨는 그해 12월 결혼,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딸 하나를 두었다.
시대정신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씨는 병약한 모습이었다. 지난 1년동안 남편의 죽음과 관련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자서전 재출간 준비를 하느라 지친데다 최근 아이까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지 여부를 놓고 고민도 많았다고.
“지금도 두려움이 있어요. 우리 가족에게 또다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까요. 하지만 고인의 뜻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이렇게 나왔습니다.”
97년 피살된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부인 김종은 첫고백

그는 신변안전을 위해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사진촬영에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아이 이름과 사는 장소를 밝히지 않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남편에 대해 ‘단지 먹고 살기 위해’ ‘평양 오렌지족의 객기’로 자서전을 썼다는 왜곡된 시각이 있었어요. 통일을 준비하려 했던 남편의 뜻이 더 이상 그렇게 치부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은 황장엽씨도 인정했듯이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특권층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쓴 북한 이야기예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해야 통일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재출간을 결심한 거예요.”

조금만 이상한 느낌 들면 이사갈 정도로 불안한 생활
그는 남편에 대해 “통일된 조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그 꿈을 펴지 못한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는 것.
“이 책은 고향과 가족을 떠나 그토록 열망했던 자유로운 삶을 얻은 남편이 그 자유의 가치와 남한에서의 생활체험을 북녘의 동포들에게 들려주고, 남한 청년들에게는 북한의 실상을 숨김없이 보여줌으로써 통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었어요. 사람들이 단순한 흥밋거리로 읽기보다는 고인의 인생을 통해 진정한 통일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남편의 자서전 출간 이외에도 지난해 2월24일엔 남편의 명예회복과, 특수 신분인 그를 지켜주지 못한 국가에 대해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현재 서울지방법원에서 진행중이다.

97년 피살된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부인 김종은 첫고백

남편 이한영씨 묘에서 오열하는 김종은씨.


“처음엔 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살았어요. 경제적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누구도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변호사 한분을 찾아가 상담한 적이 있는데 소송할 엄두를 못 내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4년전쯤, 남편의 책을 읽고 사상이 바뀌었다는 분을 만났어요. 그분의 도움으로 3년 넘게 준비한 끝에 작년에 소송을 시작한 것이죠. 그분 말이 ‘책을 읽고 이 가족은 국가가 보호해야 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소송의 핵심은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과 이씨의 죽음에 국가의 과실이 명백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씨가 자서전을 쓰고 언론과 인터뷰하는 바람에 신분이 노출돼 위험해졌다는 국정원측의 주장에 대해, 김씨는 “괴한들이 그들의 집을 알아내는데 교도관, 경찰관이 개입한 사실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승소를 확신하고 있다. 김씨는 소송이 마무리되는 대로 남편의 묘를 통일의 상징인 임진각 쪽으로 이장할 생각이라고 했다.
생전의 이한영씨에 대해 김씨는 “북한에서 로열패밀리로 호화스럽게 살았다고 해서 그런 것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다. 오히려 회사 사람들과 포장마차에서 소주잔 기울이기를 좋아했다고.
“혼자여서 외로웠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직장 동료나 주위 사람들이 친절하게 배려를 해주면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꼭 보답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술을 마시면 꼭 술값을 자기가 냈어요. 절대 돈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자기와 술을 같이 마셔주는 것 자체가 고마워서 보답을 하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흔히 특권층 사람들은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에 비해 남편은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하고 정이 많고 예의가 발랐어요. 제가 남편을 좋아한 것도 그런 점 때문이었죠.”
남한 땅에서 외롭게 살아서일까, 이씨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새끼손가락이 닮았다고 좋아했을 정도였다는 것. 지금도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이에게 정성이었던 그의 모습을 이야기할 정도라고 한다.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은 김씨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이었을 것이다.
“모든 게 엉망이었어요. 특히 가장을 잃음으로써 단란했던 가정이 파괴되는 고통, 그런 일이 가족에게 또다시 닥쳐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상황에서 세상에 내몰린 공포…. 그런 심정을 지난 수년간 가슴에 묻고 살아왔습니다.”
그는 그동안 누구를 만나도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집안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고.
“누가 간첩인지 모르는 세상이잖아요.”
그런 그에게 정부에서는 신변안전을 위한 어떤 조치를 취하지도, 경제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국정원이 5백만원을 주면서 더이상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으며, 재판이나 언론에는 될 수 있는 대로 노출되지 말아달라는 주문만 했을 뿐 어떤 사과나 보상도 한 적이 없다는 것. 심지어 이씨의 죽음과 관련된 경찰관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검거된 부부간첩단의 진술로 북한에서 이씨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게 밝혀졌다는 사실도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았다고 한다.
“불안했죠. 그래서 신변이 노출되었다는 직감이 조금만 들어도 바로 짐을 싸서 거처를 옮겨야 했어요. 지금도 주민등록상의 주소와 실제 거주지가 달라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기에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근근이 살림을 꾸려왔죠. 아이를 보호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며 7년을 보냈어요.”
한때 이민을 꿈꿔보기도 했지만 남편이 묻혀 있는 한국을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97년 피살된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부인 김종은 첫고백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 김종은씨.


그는 힘들 때면 시어머니의 어깨에 기대 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한다. 시어머니 성혜랑씨는 96년 서방세계로 망명,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금까지 시어머니로부터 “세번 정도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처음엔 아이 생일 선물을 보내셨어요. 두번째는 아이 앞으로 편지를 보내셨고요. 편지엔 사춘기 때 생기게 마련인 이성에 대한 호기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충고가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때 필요한 것을 구입하라며 돈을 보내주셨어요.”
시어머니에게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냐고 묻자 “그러면 그분이 위험할 뿐이어서 안하고 있다”고 했다.
“연락처를 알려면 알 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먼저 연락을 하는 건 그분을 도와드리는 게 아니에요. 제가 잘되어서 그분을 도와드릴 수 있을 때 같이 있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아무것도 없잖아요. 물론 그분을 만나 함께 울 수는 있어요. 제가 마음 놓고 울면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 시어머니 한분밖에 없잖아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죠.”
이씨의 부재는 김씨뿐 아니라 아이도 감당해야 할 몫이다. 김씨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빠가 출장을 간 것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더이상 아빠가 없는 이유를 숨길 수 없어 지난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97년 피살된 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부인 김종은 첫고백

생전의 이한영씨가 딸아이와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


“아이라고 왜 생각이 없겠어요. 주말에 친구집에 놀러가면 친구의 아빠가 있잖아요.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빠 이야기가 나올 테고, 학교에서 가족사진을 가지고 오라고 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러니까 아이가 ‘아빠랑 엄마가 이혼해서 따로 사는 것이어서 지금은 아빠를 보지 못하지만 나중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더군요. 아빠가 죽은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을 하는데….”

물론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지는 못했다고 한다.
“크면서 책을 통해서든 다른 무엇을 통해서든 아이가 알게 되겠죠. 스스로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야죠. 이제 제게 남은 숙제는 아이가 아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마지막으로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제 자식의 아빠를 죽게 한 나라지만 그래도 저는 국가를 사랑하기에 앞으로 고통 받고 힘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정부도 국민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역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04년 4월 4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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