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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10억 만들기 생생사례

‘묻지마 투자’로 6억원 손해 본 후 24억원 모은 조인환 주식투자 노하우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최은성 ■ 사진·김형우 기자

2004. 04. 07

개미 투자자들의 꿈은 고수가 돼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 그 꿈을 이룬 사람이 조인환씨다. 98년 주식투자에 발을 들여놓은 후 처음에는 수억원을 잃기도 했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투자기법을 개발해 2년3개월 만에 24억원을 벌어들였다. 그가 말하는 주식투자 노하우.

‘묻지마 투자’로 6억원 손해 본 후 24억원 모은 조인환 주식투자 노하우

개인 투자자가 주식으로 큰돈을 벌기란 무척 어렵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24억원을 벌어들이며 ‘투자의 고수’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아홍성’이란 필명으로 유명한 조인환씨(48). 하지만 대개의 주식 고수들이 그러하듯 조씨도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았다. 20대에 시작한 사업이 망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고, 주식투자에 발을 들여놓은 후에는 수억원을 날리는 아픔도 겪었다.
그가 주식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92년부터. 하지만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사이버 트레이딩이 시작된 98년이고, 실제 수익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그때부터 각종 주식투자 수익률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휩쓸며 14연승을 올렸고, 2년4개월 동안 24억원을 벌어들였다.
“고수가 된 것은 불과 3년밖에 안돼요. 그 전에 10년은 하수로 살았죠. 하지만 실패의 쓴 잔이 지금의 성공을 이루는 데 큰 토대가 됐어요.”
조씨가 처음 돈을 벌기 위해 관심을 가진 것은 주식이 아닌 사업이었다. 전남 나주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광주에서 다닌 그는 군 제대 후 결혼하면서 경기도 성남에 자리를 잡아 핸드백 하청공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28세의 초보 사업가에게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고, 그 충격으로 음독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낙향해 배추나 생선 등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파는 행상을 시작했다.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전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의 인생은 제 것이 아니라 아내와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2백50만원을 2푼 이자의 사채로 빌려 시작한 트럭 행상은 1년 만에 이자와 빚을 갚고도 남을 만큼 잘됐다. 성공요인은 동네에 맞게 품목을 선택한 데 있었다. 같은 광주시지만 서석동에서는 야채가 잘 팔리고, 내방동에서는 생선이 잘 나간다는 식으로 지역별로 고객들의 기호를 잘 읽었던 것이다. 트럭행상으로 번 돈으로 주차장 사업을 했고, 여기서 또 돈을 벌어 주방기구 유통업을 했다. 그렇게 사업을 벌여가면서 92년에는 10억원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주식으로 처음 돈 잃었을 때는 식음을 전폐하기도
성공한 청년사업가로 자리 잡으면서 조씨는 주식투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종목을 사고 팔며 때로는 손해도 보고 때로는 운좋게 벌기도 하는 ‘묻지마’ 개인 투자자에 불과했다.
“98년 어느날, 증권회사 지점장인 대학 동창의 권유로 펀드상품에 2억원을 투자했어요. 결과는 반토막도 안되는 7천만원밖에 남지 않았죠. 다시 2억원을 만들어 다른 펀드 매니저에게 맡겨보았지만 역시 잔고가 7천만원밖에 남지 않았어요. 앉아서 2억6천만원을 날린 것이죠.”
‘도대체 주식이 뭐길래’ 하는 오기가 생긴 조씨는 이듬해인 99년, 아예 사업을 정리하고 주식 개인 투자자로 전업을 선언했다. 전화기 1대, 컴퓨터 2대를 놓고 주식과 보이지 않는 승부를 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주식에 대한 기본기를 닦기 위해 유명한 주식 고수들이 쓴 책 수십권을 사서 책장이 손때로 얼룩질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또 인터넷을 통해 홈트레이딩 시스템(Home Trading System)으로 거래하는 법을 배웠다.

‘묻지마 투자’로 6억원 손해 본 후 24억원 모은 조인환 주식투자 노하우

조씨의 주식투자 성공 비결은 분산투자와 철저한 손절매에 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고 판단한 조씨는 투자금 2억원을 세 계좌로 나누어 입금하고, 홈트레이딩 거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종합주가지수 850선을 기록하던 99년 여름이었다. 당시는 액면분할을 하거나 IT 분야로 업종변경 공시만 하면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하고, 무조건 코스닥 시장에 투자하면 떼돈을 번다는 시절이다. 그러나 연말 결산을 해보니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이 4천만원에 불과했다.
손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1년 9·11 테러 사건 때는 사흘 만에 1억5천만원의 손해를 봤다. 주식으로 잃은 손실액이 총 5억7천만원에 달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손해 보며 뒷북을 치는 개미 투자자의 길을 갔던 것이다. 조씨는 손해 본 주식 생각에 밥도 안 먹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더 잃지 않으려면 이대로 포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남은 돈으로 작은 패스트푸드점이라도 열까, 고민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주식투자에 재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자신이 써온 매매일지를 하나하나 분석했다. 그 결과 ‘잃을 때 왕창 잃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종목에 올인하는 ‘묻지마’ 투자가 화를 불러왔던 것이다. 결론은 간단했다. 손절매로 손실폭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는 단기 투자는 1∼2%, 중장기 투자는 3∼5% 이상의 손해가 나면 무조건 주식을 파는 손절매 원칙을 세웠다.
또한 투자 종목 선정에 기준이 없음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종목을 발굴했다. 실적에 비해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저평가 종목, 최근 급등주, 주가가 횡보하는 주, 법정 관리주 등 리스크(위험도)가 높은 종목을 제외하는 방법으로 매월 20개 정도의 종목을 선정했다. 이중에서 미국 증시 및 언론보도, 증권사 자료 등을 반영해 8∼10개 종목을 골라 투자에 나섰다.
그는 1억원은 우량주보다 2∼3개의 가치성장주에 중기 투자했다. 나머지 1억원은 5천만원씩 나누어 한 계좌는 철저히 단타 위주의 데이트레이딩으로 운영하고, 다른 계좌는 2∼3일의 상승을 노리고 들어가는 스윙매매를 했다. 목표수익률은 단기 종목은 5%, 중장기 종목은 30%를 기준으로 정해 이에 도달하면 미련없이 팔아 수익을 남겼다.
“특히 거래가 중지되었다가 다시 이루어지는 매매 재개 종목이 5분 안에 상한가로 진입하면 이를 중점 매입했어요. 이런 종목은 며칠 동안 연속해서 가격제한폭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실제 2002년 11월, 매매 재개 종목인 남선알미늄을 주당 2천원씩에 사서 14일 후 9천5백원에 팔아 475%의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어요.”
그는 수익이 생기면 3∼4일 주기로 빼내 부동산과 저축, 보험에 투자했다. 현재 부동산 가치는 광주의 아파트와 토지, 상가 등을 포함해 12억원에 달한다. 1백여개의 통장에 들어 있는 보험료와 저축액도 12억원 정도. 주식에서 거둔 수익을 다른 곳에 투자한 것은 과거 수익금을 주식에 전액 재투자했다가 크게 손해 본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성공한 개미 투자자로 인정받으며 전경련 소속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주식 강의까지 하고 있는 조씨의 꿈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주식강좌를 개설해 투자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신이 뼈아픈 좌절 뒤에 성공을 체험했기 때문에 주식투자에 실패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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