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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도자기‘프라우나’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도자기 전무 김영목

■ 글·구미화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2004. 03. 10

크리스찬디올 캘빈클라인 랄프로렌 등 명품 브랜드의 OEM 업체로 일찍이 세계시장에서 그 기량을 인정받은 한국도자기가 마침내 독자적인 브랜드로 세계시장에 진출했다. 도예 전문가이자 해외 마케팅 전문가로 알려진 김영목 전무가 ‘프라우나’를 탄생시킨 주인공. 세계 제일의 도자기 생산국을 꿈꾸는 그의 야무진 포부를 들어봤다.

명품 도자기‘프라우나’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도자기 전무 김영목

지난 2월17일, 한국도자기 김영목 전무(40)는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2월2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활용품전, ‘프랑크푸르트 쇼’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식기, 홈 인테리어용품 등 세계적인 생활용품을 전시하는 프랑크푸르트 쇼에 국내 도자기업체가 참가하는 건 한국도자기의 ‘프라우나’가 최초입니다. 로열덜튼, 크리스찬디올, 랄프로렌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세계 명품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어요.”
지난해 세계 명품 브랜드들과 경쟁할 목적으로 ‘프라우나’를 출시한 한국도자기 김영목 전무는 불혹의 나이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해맑게 웃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도자기 김동수 회장의 둘째아들로 형 김영신 부사장과 함께 할아버지인 고 김종호 회장이 뿌리를 내린 가업을 3대째 이어가고 있는 그는 오랫동안 미뤄뒀던 숙제를 끝낸 기분이라고 했다.
한국도자기는 수십년간 세계 50여 개국에 식기를 수출하면서도 대부분 남의 이름을 내걸어야 했다. 독자적인 브랜드 없이 레녹스 빌레로이앤보흐 로열덜튼 크리스찬디올 캘빈클라인 등의 OEM 업체로 생산만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도자기 생산 기술은 일찍이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한국도자기를 알아주는 고객은 흔치 않았다. 마침내 지난해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프라우나를 출시한 김전무는 국내는 물론 해외의 반응이 뜨겁다며 프라우나의 성공적인 출발을 자랑했다.
“지난해 가을, 이탈리아 ‘마체프 쇼’에 나가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도자기의 카르티에’라는 찬사를 받았거든요. 이미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세번째 주문을 받았고, 중동 지역으로도 수출할 계획이에요. 그래서 물건이 달릴 때도 있어요. 이번 프랑크푸르트 쇼는 마체프 쇼보다 훨씬 규모가 커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과 겨뤄 결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해외시장에서 먼저 주목받기 시작한 프라우나는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예술성과 실생활에 쓰일 때 전혀 불편함이 없는 실용성을 겸비한 도자기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그릇이나 찻잔 등 기존에 나와 있는 것들을 변형하는 것만으로는 세계적인 톱 브랜드들과 경쟁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식기의 뚜껑이다.

“영부인이 도자기의 본고장 영국의 여왕에게 선물로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설탕 그릇을 보고 밋밋한 손잡이 모양에 의문을 갖게 됐어요. 사람들이 그릇은 그릇대로 구입하고, 예쁜 조각품들을 따로 구입해 수집하는 것을 보고 그릇과 조각을 합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결국 그는 볼록 튀어나와 손에 잡히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했던 손잡이를 사슴과 백조 모양의 아름다운 조각품들로 변신시켰다. 잔 위에 올려진 뚜껑이 마치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조각 작품처럼 화려하다. “여태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 국제화하겠다”는 그의 취지를 듣고 마음을 움직인 영국인 디자이너 5명이 프라우나 디자인을 맡았다. 또한 재료와 기계, 심지어 포장까지 모든 면에서 최고만을 고집했다고 자부한다.

명품 도자기‘프라우나’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도자기 전무 김영목

김영목 전무는 프라우나가 갤러리에 전시해도 손색이 없을만한 예술성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라우나는 가장 작은 에스프레소 1인 세트가 10만원대, 주전자가 27만∼35만원, 주전자, 설탕·프림 그릇, 찻잔 세트가 76만∼108만원 정도로 영국의 웨지우드나 로열덜튼, 일본의 노리다케 등 이름난 수입 브랜드들의 값을 웃도는 고가다. 김전무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고가의 고급 브랜드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기왕 붙을 거면 ‘짱’하고 붙어야지 행동대원하고 붙어서는 결판이 안 나잖아요(웃음). 세계적인 도자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가진 브랜드는 전세계에 고작 10여개에 불과해요. 그들과 경쟁하면 꼴찌를 해도 11등이잖아요. 일단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목표고, 그 다음 목표는 그들을 능가하는 거죠.”
김전무가 최고들과 겨뤄 당당히 ‘짱’이 되기 위해 어떤 시련이 와도 도전을 거듭하겠다고 포부를 다지는 건 프라우나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김전무는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예술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아 업계에서 도예 전문가이자 해외 마케팅 전문가로 통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대를 이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오너 일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늘 자신의 위치와 실력을 저울질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늘 ‘과연 실력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인가’ ‘오너가 바뀌어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자신에게 던졌다고.
“저는 어른들이 어느 정도 이뤄놓은 상태에서 중간에 끼어든 셈이잖아요. 그래서 제 순수한 능력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어요. 프라우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매달린 것도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한국도자기의 독자적인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보고 싶었던 열망 때문이에요.”
다행히 프라우나를 성공적으로 탄생시켜 제 역할을 해낸 것 같다는 그는 미국 유학 당시 도예를 전공하며 외국인들과 창의력 경쟁을 했던 게 지금까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김전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김동수 회장의 바람대로 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으나 예술적인 기질을 누르지 못하고 틈틈이 미술 강의를 들었다. 결국 부친을 설득해 전공을 도예로 바꾸고 뉴욕대학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그림으로는 못 벌어먹는다고 어른들이 반대하셨는데 끝내 미술을 하고 말았다”며 웃었다.
“전 일주일 내내 갤러리나 박물관에 있으라고 해도 즐겁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미술을 전공한 게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미술이 그림을 그리는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자기만의 독특함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표현력을 배우거든요. 그게 바로 마케팅의 핵심이죠.”
그는 프라우나로 한국도자기의 미래를 책임지고, 그야말로 가문을 빛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한 도자기 생산에 있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영국의 여왕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영부인이 선물로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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