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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탈북자 돕다 체포돼 수감중인 최영훈씨 부인 김봉순씨의 눈물

“성경책 오려 보낸 편지 받고 눈물 흘리지만, 남편이 자랑스럽습니다”

■ 기획·조득진 기자 ■ 글·이윤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4.03.10 17:08:00

지난해 1월, 탈북자를 도와주다 중국공안에 체포돼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최영훈씨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무관심 속에 1년 넘게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내 김봉순씨. 최근 남편이 성경책을 오려 보낸 깨알 같은 편지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새삼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으로 면회를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구명운동에 나선 아내 김봉순씨가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
중국에서 탈북자 돕다 체포돼 수감중인 최영훈씨 부인 김봉순씨의 눈물

봉제공장에 다니며 어렵게 생계를 꾸리고 있는 김봉순씨. 그러나 먼 타국의 차가운 감방에 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이것도 호사’라며 가슴 아파했다.


“선희, 수지에게 약속하노니 아버지가 본향으로 돌아가면 너희와 함께 즐거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노라…. 아버지가 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너희가 나를 부끄러운 아버지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느니라.”
지난 1월25일, 김봉순씨(37)는 중국 감옥에 있는 남편 최영훈씨(41)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성경책의 깨알 같은 글씨를 오려붙여 2장의 편지지에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지난해 11월13일부터 하루 8시간씩 17일간 필요한 글자를 성경책에서 오려내 붙인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본인이 한 일에 대한 당당함이 가득 묻어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최영훈씨는 98년 중국 옌볜 등지에서 중장비 임대사업을 하던 중에 탈북자를 지속적으로 도와주다 지난해 1월18일에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징역 5년에 벌금 3만위엔(4백50만원)을 선고받고, 산둥성의 교도소에서 1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체포됨으로써 본인은 물론 남겨진 가족들이 당했을 고통과 어려움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남편을 그렇게 감옥에 두고 두 딸을 데리고 한국에 나올 때는 하도 기가 막혀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생계유지는커녕 당장 몸을 누일 단칸방 하나 없는 상황이 너무 막막했어요. 모두 살기 힘든 형편인데 어려운 살림 쪼개 도와주신 시어머님과 시동생에게 누를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늘 무겁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남편을 원망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김봉순씨는 이야기하는 내내 남편에 대한 자랑스러운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더 삼엄해진 감시 속에 마음껏 울지도 못한 면회
최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본디 성품이 온화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본격적으로 탈북자를 돕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다고. 한국전쟁 때 월남해 평생을 망향의 슬픔을 안고 살아온 최씨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아들에게 늘 “탈북자 중 혹시 잃어버린 가족이 있나 살펴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종교적인 신념과 아버지의 당부를 받들어 탈북자 돕기에 앞장선 것이다.
최근 최영훈씨와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들을 돕겠다는 손길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번 일에 고무되어 탈북자를 돕고 지원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고, 이같은 움직임이 최씨의 구명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김봉순씨는 내심 기대하고 있다. 처음 중국에 면회를 갈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의 NGO 단체(북조선 난민 구원단체)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2월11일. 국민일보가 주선하고 한국기독교총연맹의 후원을 받아서 그와 두 딸, 그리고 시어머니가 함께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3백79일 만에 만나는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 떠나기 전, 엄마와 두 딸은 몇날 며칠을 가슴 설레며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으로 거듭 되뇌는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게다가 감시가 더욱 삼엄해 마음놓고 안부조차 물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앞과 뒤, 양옆에 배치된 중국공안들은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보고 싶었다”는 말조차도 숨죽이며 해야 했다고 한다. 함께 갔던 노모는 수척해진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최씨는 두 딸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어려워도 나보다 불쌍한 사람을 늘 도와줘라. 늘 관심 가져라” 하는 말로 딸에 대한 사랑을 대신했다고 한다.
“아이들 아빠를 보고 와서 그런지 마음이 더 심란합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자꾸만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울던 남편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정말 안타까웠던 건 제대로 대화할 시간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엄마 옆에서 의젓하게 앉아 있던 맏딸 수지(15)는 “꼭 하고 싶은 말도 못 전했다”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 고생하는 엄마 옆에서 잘 도와드리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아빠 앞에서 꼭 하고 싶었던 수지는 대신 동생 선희(10)와 함께 매일 한통씩 편지를 쓰고 있다. 특히 공부를 잘하는 선희는 좋은 점수를 받은 시험지와 성적표를 모아서 아빠에게 보낼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다.

중국에서 탈북자 돕다 체포돼 수감중인 최영훈씨 부인 김봉순씨의 눈물

남편이 성경책 글자를 오려 보낸 편지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김봉순씨. 그러나 그는 지금 희망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아내 김씨의 마음을 무엇보다도 아프게 하는 것은 최씨의 건강이 악화됐다는 것. 지병인 당뇨와 천식이 요즘 부쩍 심해졌으며, 고혈압 증세까지 겹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4년 전에 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장을 12㎝ 정도 절단했는데 그때 수술한 부위를 잘 치료해주지 않았던 탓에 지금 통증이 심해졌나 봐요. 거기다 그 사람 시력이 안 좋아서 안경이 없으면 안 되는데…. 안경도 다 망가져서 불편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호사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요.”
남은 이야기들을 가슴에 묻고 돌아오면서 그는 문득 더욱 견고해진 중국공안의 감시가 ‘혹시 남편이 보낸 성경편지가 국내 언론에 소개된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한다. 그는 “너무 많이 일반에 노출되어 악영향을 끼친 것 같다”며 이번에는 가져온 남편의 물건을 공개하기 꺼려했다.
다행인 것은 1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최씨가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점. 수감된 사람들에게 성경공부를 시키는가 하면 함께 잡힌 탈북자 한 사람이 불안에 떨자 그에게 희망을 주는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고 있는 것. 그 탈북자가 다시 북으로 송환되지 않도록 구호단체에 도움을 청하라는 말을 아내에게 전했다고 한다.
최씨는 구치소에서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이제 막 교도소에 배치되어 이감된 상태. 이곳에서 중국어 학습 훈련을 받고 나면 중국 서쪽 지방에 있는 교도소로 다시 이감될 것이라고 한다.
남편을 면회한 후유증인지 요즘 부쩍 자주 앨범을 펼친다는 김씨는 단란했던 그 시절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가족사진과 부부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보였다.
“한동네 살다가 만나 연애했어요. 전 스물한살이었고 그 사람은 스물다섯살이었죠. 처음으로 제게 수줍게 내밀었던 연애편지가 생각나네요(웃음). 89년 봄에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기르다가 남편이 사업차 98년에 중국에 들어가고 저는 2002년 겨울에 들어갔어요. 제가 가고 2개월 있다가 그 사람이 잡힌 겁니다.”
천성이 온화하고 낙천적인 최영훈씨는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늘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을 보여줬다고 한다. 평범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강한 자에게 더욱 강한 사람이라고. 두 딸 수지, 선희도 늘 자상했던 아빠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싶구려. 당신에게 지나간 10년의 세월을 보상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요사이 당신이 보고 싶고, 아이들도 보고 싶어. 이곳에 온 지 20여일이 지나가는데 면회를 왜 안 올까, 한국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면회를 갔을 때 남편이 그의 손에 꼭 쥐어준 편지의 일부분이다. 아내에게 한통, 두 딸에게 각각 한통씩 쓴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가는 최씨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내와 아이들은 가장이 써 내려간 소중한 편지에 그나마 큰 위안을 얻는 듯했다.
김씨가 하루 13시간을 먼지 날리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밝은 얼굴로 살 수 있는 것도 이런 남편의 사랑과 구명될 것을 굳게 믿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닮아서일까? 의젓한 맏딸 수지에게 “아빠가 안 계셔서 어렵고 힘든 점이 뭐냐?”고 질문하자 주저 없이 “어려움은 없고 다만 엄마가 고생하시는 게 마음 아프다”는 대답을 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아무것도 없을 때 아이들은 남동생 집에, 저는 언니집에서 지내며 한달간 떨어져 있었어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하루 빨리 남편 일이 잘 해결돼 네 식구가 함께 사는 것뿐입니다.”

중국에서 탈북자 돕다 체포돼 수감중인 최영훈씨 부인 김봉순씨의 눈물

지난 99년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 아내는 하루빨리 네 식구가 함께 할 날을 꿈꾸고 있다.


중국을 다녀온 뒤 온 가족의 각오와 마음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 맏딸 수지는 아빠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어 구명운동에 힘을 쏟고 있고, 둘째 선희도 어린 나이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전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엄마 말씀을 잘 듣겠다는 것, 그리고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를 아는 일이라고 했다.
“저도 그동안 생계 때문에 미뤄뒀던 구명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칠 예정이에요. 그게 차디찬 감방에서 고생하는 남편에게 힘이 되고,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어요.”
국민일보가 주축이 돼서 최씨 구명운동을 시작했지만 현재 이렇다할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상태. 그래서 전과 다르게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중이라고 한다. 또한 김씨가 다니고 있는 일산 평안교회에서도 이번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평안교회측은 최씨가 수감됐던 초기에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그 이후에 일본의 NGO 단체에서도 이미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몇몇 언론의 소개와 서명운동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 아직까지 최씨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상태. 현재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선처를 구하기 위해 교섭을 하고는 있으나 아직은 중국이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씨는 수지가 만든 카페를 통해서 먼저 사람들에게 남편의 상황을 알리고 ‘사랑의 편지’ 운동을 펼칠 생각이다. 홀로 타국에서 힘겨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전에 ‘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 열렸던 촛불시위 같은 집회를 열고 싶어요. 아무래도 남편이나 저나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기독교인이 중심이 된 촛불집회가 되겠죠. 하지만 최영훈이라는 사람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랑의 편지 운동으로 더 크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국제우편이라 좀 부담스럽겠지만 그래도 편지를 많이 보내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윤동주의 시 ‘서시’를 보며 마음을 달랜다는 최영훈씨는 시 구절처럼 그렇게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복역하면서 구명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를 알기에 아내 김봉순씨의 마음은 더욱 안타깝고 조급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주님,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될 수 있도록 나의 가족들에게 길을 가르치고 가족으로 하여금 빛을 비추게 하소서. 주님, 우리에게 유익보다는 해를 끼치려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그리고 그들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가족들에게 가르쳐주소서.”
힘들 때마다 남편이 적어준 기도문을 보면서 기운을 차린다는 김씨는 언젠가 네 식구가 함께할 날을 기다리며 행복한 꿈을 꾸겠다고 했다.



♣수지가 만든 최영훈씨 카페 cafe.daum.net/cyh486♣최영훈씨에게 보낼 ‘사랑의 편지’ 주소中國 山東省 維坊三號 信箱01號 崔永勳편지 쓸 때 반드시 함께 써야 하는 것 001-86-531-5688214(산둥성 감옥 관리국), 261031(우편번호)

여성동아 2004년 3월 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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