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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영어강사 정인석의 이색 영어교육법

“발성연습으로 우리 몸을 영어에 맞추면 귀가 절로 뚫리고 말도 술술 나와요”

■ 글·구미화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01.09 15:16:00

본격적인 겨울방학이다. 아이들이 놀 궁리를 하기도 전에 수많은 영어학원과 캠프, 단기 해외 어학연수 등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괴짜’라는 별명이 붙은 영어강사 정인석씨는‘발성법’을 하지 않고는 이 모든 방법이 무용지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를 만나 독특한 영어교육법을 들어봤다.
‘언어는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영어강사 정인석의 이색 영어교육법

“아∼아∼아∼” “이∼이∼이∼” 서울 광화문에 있는 ‘정인석영어문화원’의 초등학생 강의실에 들어서자 ‘여기가 영어학원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먼저 고개를 든다. 책상 위에 교재는커녕 필기도구 하나 없이 언뜻 보기에도 학년이 각기 다른 초등학생 10여명이 강사의 지도에 따라 ‘아(a)∼’와 ‘이(i)∼’ 두 가지 발음을 큰소리로 반복한다. 과장됐다 싶을 정도로 입을 좌우로 크게 벌리고 힘주어 같은 발음을 수없이 반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문장을 막힘 없이 따라 말한다.
단순해 보이는 이러한 방식의 수업이 한달 이상 계속된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가르쳐주는 일반 어린이 영어학원과는 사뭇 다르다. 강의실에서 나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기자에게 정인석 원장(46)은 “이렇게 ‘발성연습’을 한달 반 정도 하면 아이들의 영어 청취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다. 여러 번 따라 읽은 문장의 의미는 딱 한번만 가르쳐주면 아이들이 애써 암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장과 의미가 기억이 난다” 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아’와 ‘이’를 반복하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영어 듣기 능력이 좋아지고, 의미만 한번 가르쳐준, 칠판에 써주지도 않은 문장을 술술 말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영어의 ‘아’와 우리말의 ‘아’는 근본적으로 달라영어는 알파벳보다 말하기 듣기가 먼저

정원장이 그 효과를 확신하는 ‘발성법’은 우리가 한국말을 배우는 과정과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 동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갓난아기가 말을 하기 전에 어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엄마’ ‘맘마’ 하며 말문이 트인 뒤에 ‘ㄱ ㄴ ㄷ ㄹ…’ ‘가갸거겨…’를 가르치면 쉽게 익히듯 영어도 귀가 뚫리면 말문이 저절로 트인다는 것. 그 다음에 글자를 배우면 문법을 따로 ‘암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고 영어로 술술 말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논리다. 중요한 건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갓난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영어는 우리말과 근본적으로 ‘음질’이 다른데 우리 몸은 이미 한국말에 가장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다는 점이 그가 ‘발성연습’을 고집하는 이유다.
‘언어는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영어강사 정인석의 이색 영어교육법

“우리말은 공명하지 않는 단음이라 소리가 입안에서 밖으로 퍼져나가는 반면 영어는 뱃속 깊숙한 데서 나오는, 울림이 많은 굴절음이에요. 우리말의 ‘아’와 영어의 ‘아’는 본질적으로 다른 소리라는 얘기죠. 입모양도 우리말은 상하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는 좌우로 움직일 때가 더 많아요. 이 때문에 미국인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대화도 잘 안 되는 겁니다.”
정원장은 “따라서 우리말과 근본적으로 소리가 다른 영어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에 익숙해진 우리 몸을 영어에 적합한 신경체계와 구강구조로 바꾸는 일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심지어 “언어는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태극전사들과 축구의 강호 남미의 선수들의 타고난 체격조건이 근본적으로 달라, 이를 혹독한 훈련으로 보완하듯 영어도 마찬가지라는 것. 어린이들이 강의실에서 허리와 가슴을 쫙 펴고 앉아 배에 힘을 준 상태에서 배에서부터 소리를 끌어당겨 ‘아∼’ ‘이∼’ 하며 발성을 계속하는 건 우리말과 영어 발성법의 차이를 보완하기 위한 훈련인 것이다.

‘언어는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영어강사 정인석의 이색 영어교육법

정인석 원장이 초등학생들에게 입모양을 강조하며 발성법을 지도하고 있다.


발성훈련은 ‘아∼’ ‘이∼’에서 점차 복잡한 모음으로 발전하고, 모음 발음이 완성되면 ‘분철음’ 훈련에 들어간다. 분철음은 모음을 발음할 때와 마찬가지로 배에서 소리를 끌어올린 뒤 모음 앞에 자음만 갖다붙이며 각각 발음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have’라는 단어를 ‘ㅎ-애(브)’ 하는 식이다.
정원장은 이런 발성훈련을 수개월 계속해 그동안 쓰지 않았던 신경조직이 자극을 받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구조로 맞춰지면 발음이 교정되는 것은 물론 과거에는 알아듣지 못했던 발음들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주장한다.
“라디오 방송을 들을 때 주파수를 잘 맞추면 ‘지지직’ 하는 잡음이 사라지고 방송이 잘 들리잖아요. 우리 몸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몸을 영어에 맞게 단련하면 어느새 귀가 뚫리고, 굳이 단어나 문장을 암기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할 수 있어요.”
중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중학교 때 체험 바탕으로 발성법 만들어
정원장이 이토록 ‘발성법’을 확신하는 건 그가 직접 몸으로 발성법의 효과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정원장의 최종 학력은 놀랍게도 중학교 졸업. 중학교 때 발성법을 터득한 그는 정규교육을 더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경남 마산의 한 화교 소학교 교장의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입주 가정교사가 됐다. 그리고 뒤늦게 그 집안의 도움으로 부산에 있는 화교 고등학교에 입학, 두달에 한번씩 월반해 6개월 만에 화교학교를 졸업했다. 군대 생활 중 용산 8군사령부 내에 있는 텍사스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제대한 뒤 미국 텍사스주립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6개월 공부했으나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유창한 영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중학교 때 이미 교장선생님의 눈에 띄어 외국인이 학교를 방문하면 통역을 맡았고,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팀스피리트 훈련 때 미군 장성들의 통역요원으로 활약했다.
정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영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네 형들을 쫓아다니며 영어 철자법을 익히고, 고등학생이던 외삼촌에게 영어사전 찾는 법과 발음기호를 배웠다. 중학생이 된 뒤에는 거리에서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면 붙들고 발음을 교정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던 중 그는 영어 문장의 음을 하나하나 끊어서 발음할 때 미국인의 발음과 비슷해진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친구의 라디오를 빌려다가 AFKN을 듣고, 일요일이면 외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하루 종일 반복해 보며 발음을 따라 한 결과라고.
나름대로 방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한 그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하루 19시간씩 거의 쉬지 않고 집중적으로 발성연습을 했다. 미국인 발음을 흉내내 하나씩 끊어서 읽고, 조금 빨리 읽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얼마나 혹독하게 했는지 입술이 부르트고, 혓바늘이 돋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한달 정도 발성연습을 하고 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전에 한번이라도 말해봤거나 읽어본 영어 문장이 모조리 기억이 나더군요. 그 뒤로 남들처럼 외우지 않아도, 영어문장을 분철해서 정확하게 발음하면 저절로 머릿속에 기억되더라고요.”
그의 표현대로 하면 영어 발성법을 ‘체득’한 것이다. 당시 경험한 것을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충한 것이 지금의 발성법이다.
정원장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에 나와 영어강사로 활동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99년, 그의 이론을 정리해 ‘발성훈련 6개월이면 영어가 저절로 터진다’는 부제를 단 ‘괴짜 강사 정인석의 영어 한풀이’(동아일보사)를 펴냈을 때도 각종 매스컴에서 앞다퉈 그의 독특한 교수법을 소개해 한동안 수백명의 수강생이 몰렸지만 결국 그의 발성훈련을 끝까지 따라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언어는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영어강사 정인석의 이색 영어교육법

정인석 원장은 아무런 준비 없이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것은 부모의 과시욕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6개월 코스 중 5개월 동안 발성훈련만 시켰어요.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며칠씩 똑같은 발성법만 가르치니 사람들이 버텨내질 못하더라고요.”
결국 10명 중 1∼2명만이 발성법을 완성하는 정도였다. 그의 독특한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귀가 솔깃하지만 발성법을 체득하기란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얘기다. 정원장은 99년, 발성법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뒤 지난 3∼4년간 겪은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자신의 교수법을 다듬었다고 한다.
“예전엔 학생들이 제 말을 따르지 못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했어요. 요즘은 발성훈련이나 호흡법에 음악을 이용하고, 발성훈련을 하면서 스피킹과 듣기로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가며 ‘스텝 바이 스텝’으로 진도를 나가고 있죠. 그 결과 지금은 10명 중 1∼2명만이 중도에 포기하는 정도죠. 과거의 거품이 확 걷혔어요.”

어른보다 신경조직 유연한 초등학생들은 발성법 효과 훨씬 빨라
그에 따르면 어릴수록 발성법을 터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신경조직이 덜 굳은 데다 어른들처럼 조급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처음엔 아이들이 ‘학원에서 아∼, 이∼ 하며 소리내는 것만 했다’고 하니까 부모들이 걱정을 해요. ‘동네 영어학원에 보내면 영어로 연극도 하고 노래도 하는데…’ 하면서 말이죠. 발성훈련이 처음엔 지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서너달 지나면 부모들이 아이들의 영어 청취력이 월등히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먼저 와서 합니다. 최근엔 한 학부형이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발성훈련을 몇달 한 뒤 가르쳐준 적이 없는 팝송 ‘Let It Be’를 따라 불렀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정원장의 독특한 영어교육법이 입소문이 나면서 멀리서 수개월째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직접 강의를 듣고 그 효과를 확인하고는 캐나다로 어학연수 보냈던 아이를 불러들여 두달동안 발성훈련을 시킨 뒤 다시 내보낸 아버지도 있다고.
“무작정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것은 부모의 과시욕에 지나지 않아요. 부모들 역시 그 비효율성을 알지만 외국인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아이들을 내보낸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아이가 영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먼저 만드는 게 우선이죠.”
정원장은 “발성법으로 체질을 바꾸기 전에는 다른 영어학습을 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을 뛰어다니면서 발성법을 알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지금으로선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라는 정원장의 자신감과 그의 강의를 들은 일부 수강생들을 통해서만 발성법의 효과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영어 교수법과, 경제적 풍요로움을 앞세운 고액 과외 등으로 왜곡된 영어 교육 환경에 그의 주장과 고집이 자극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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