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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여자의 삶

결혼생활 28년 만에 이혼하고 홀로서기에 나선 페미니스트 작가 이경자

“내 이혼은 쉰 여섯 살에 마저 찾은 절반의 성공”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박윤희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4.01.09 14:17:00

소설가 이경자가 초등학교 동창생 남편과의 28년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새출발을 선언했다.
최근 그가 쓴 ‘그 매듭은 누가 풀까’란 소설의 결론과 맞아떨어지는 선택이다. 막내딸과 단둘이 살며 오십대에 홀로서기에 나선 그를 만나보았다.
결혼생활 28년 만에 이혼하고 홀로서기에 나선 페미니스트 작가 이경자

“소설을 훨씬 먼저 탈고했는데 소설의 결말과 지금 이혼한 내 처지가 똑같아져버렸어요.”
페미니스트 작가 이경자씨(56)가 최근 장편소설 ‘그 매듭은 누가 풀까’를 세상에 내놓았다. 4년 동안 그의 살과 피를 마음껏 먹고 자라 ‘소설’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그의 아이. 자식에게 부모의 인생이 유전되는 것처럼, 불과 몇달 간격을 두고 그는 이번에 자신이 낳은 소설의 주인공 손하영과 닮은꼴 인생이 되어버렸다.
이혼의 전주곡은 지난 8월에 시작됐다. 지난 봄 그가 장편소설 ‘그 매듭은…’을 탈고하고 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남편으로부터 뜻밖의 소리가 날아왔다.
“네가 지긋지긋해!”
그와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28년간 결혼생활을 함께 해온 전남편은 지난 8월 어느 날 갑자기 ‘지긋지긋함’을 이유로 내걸고 이혼을 요구했다.
‘그 매듭은…’에 등장하는 주인공 손하영의 남편 정인호도 그랬다. ‘점점 하영이 지겨워졌다’는 이유로 무용가인 손하영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정작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정인호에게는 이미 동거중인 애인이 있었던 것. 하지만 정인호는 이 사실을 숨긴 채 ‘지긋지긋함’을 이혼의 정당성으로 내세운다. 더군다나 정인호는 손하영이 자신의 ‘아내’로 100% 예속되지 못하고 무용가로서 사회적 지평과 예술세계를 확장해온 것을 두고 ‘당신 같은 여자에게 가정이 무슨 소용이겠냐?’고 빈정거리기까지 한다. 결국 이들은 파경을 맞이하지만 손하영은 결혼이라는 ‘가파른 산등성이’를 지나 ‘나’라는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하면서 풀릴 것 같지 않았던 인생의 매듭을 스스로 풀게 된다는 내용이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나와 그가 막내딸과 단둘이 살고 있는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로 그를 찾아갔다. 그와는 두번째 만남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몇해 전 그가 산문집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를 출간했을 때였다. 그땐 그의 남편이 저녁 식탁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전혀 다른 장소, 전혀 다른 상황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예상을 했지만 새 책을 출간한 작가와 하는 인터뷰 치고는 침울한 대면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예전의 생기 넘치던 미소가 온데간데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충격에서 못 벗어났다”고 말하는 그는 한눈에 봐도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거실 벽에 붙어 있는 A4 용지 한장이 그의 상태를 짐작하게 했다.
‘내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삶이 필요할 것입니다. 내 마음을 볶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인지라 나를 소중히 여기면 내 몸도 주인인 나를 모시게 되지요.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내 마음을 분노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싹 야윈 그에게 “건강은 어떠세요?” 하고 말문을 열었다.
“좋은 상태는 아니에요. 아랫배가 좀 뭉쳐 있고 아파요. 한의사가 이대로 두면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해서 침도 맞고 뜸도 뜨면서 열심히 치료하고 있어요. 아직 풀리지 않은 전남편에 대한 화, 분노 이런 것 때문에 몸에 병이 난 것 같아요.”

결혼생활 28년 만에 이혼하고 홀로서기에 나선 페미니스트 작가 이경자

그는 “북한산이 나를 살렸다”고 말할 만큼 자주 북한산에 오르내린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육체를 지치게 해야 정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는 산을 오르다가도 남자 등산객이 지나치면 발걸음을 멈추고 숨도 쉬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 냄새조차 맡기 싫을 만큼 남성들에 대한 혐오가 그를 괴롭히는 듯했다.
“‘내가 그렇게 지긋지긋했을까?’ ‘그렇게 나하고 안 맞았나’ 이런저런 물음표를 던지다가 전남편이 이혼하자고 말한 지 3일 만에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어요. 위자료도 요구하지 않았어요. 전남편이 위자료를 받으려면 재판을 걸라고 했지만 굳이 그런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28년 동안 제가 이룬 과거에 돌팔매질하기 싫었기 때문이죠. 배신감은 느끼지만 한편으론 전남편이 먼저 이혼하자고 해줘서 고마운 마음도 있어요.”
그는 애써 참으려 했지만 ‘28년 동안’이란 말을 하는 대목에선 울음을 터뜨렸다. 미처 눈물을 수습하지 못한 채 “너무 허무해…” 하고 회한 서린 말을 혼자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의 이혼 결정에 힘을 실어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두 딸이다. 언론사 기자로 일하던 큰딸은 현재 미국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고,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막내딸은 그와 함께 살고 있다. 두 딸은 이구동성으로 엄마의 이혼을 종용했다고 한다. ‘제발 이혼하고 소설가로 살아달라’는 것이 딸들의 요구였다. 큰딸은 그 동안 직장생활하며 모아온 돈을 아파트 전세금에 보태 쓰라며 모두 주기도 했다.
“잠시 이혼을 망설이는 저에게 큰딸이 ‘비굴하다’고 그러더군요. 억지로 가정생활을 유지하려고 하는 제가 비굴해 보인대요. 엄마, 아빠 둘 다 좋은 사람이지만 둘이 있을 때 서로 행복하지 않으니까 이혼하는 게 좋겠다고…. 저도 그 말에 동의했어요.”
물론 ‘나쁜 사람’들이 이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필자가 만난 그의 전남편도 좋은 인상을 가진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긋지긋함’을 이유로 모든 부부가 가족을 해체시키지는 않는다. ‘사랑’의 외피를 두른 가족간의 가장 일상적인 감정은 ‘지긋지긋함’이 아닐까. 뭔가 결정적인 이혼사유가 있을 듯했다. 소설 속의 정인호처럼 그의 전남편에게도 애인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모르겠어요. 확인해보지 않아서…. 확인해보고 싶지도 않아요.”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매일 부부가 같이 산다고 해도 아내가 남편의 전체를 다 알지 못해요. 가정 안에 있는 어느 한 단면만 보는 것이죠. 오히려 아내보다 남편의 직장 여비서나 단골 카페 여주인이 그 실체를 훨씬 더 잘 알죠.”
그는 ‘절반의 실패’ ‘사랑과 상처’ 등 페미니즘에 입각한 많은 소설을 통해 남성우월주의가 극심한 가부장제 사회에 오랫동안 ‘짱돌’을 던져온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지극히 한국적인 가정의 안주인 자리를 ‘종양’처럼 지켜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한 심경이 여느 사람들과는 퍽 다를 듯했다.

결혼생활 28년 만에 이혼하고 홀로서기에 나선 페미니스트 작가 이경자

“저는 가부장제에 스며들지 못하는 여자였어요. 그런데도 따뜻한 가정에 대한 집착이 강해 28년 동안 ‘아내’ ‘종갓집 맏며느리’로 참고 살아왔죠. 이제 이혼하고 나니까…. 내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할까요? 태어날 때부터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원래의 나’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에요.”
그는 그 동안 ‘평범한 가정’에 대해 가졌던 지나친 집착에 대해서도 후회한다는 뜻을 비쳤다.
“이혼하고 나니까 결혼이나 가족의 실체가 훨씬 더 잘 보인다고 할까요. 제가 왜 일부일처제로 구성된 가족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딸과 단둘이 살아보니까 훨씬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가정이 되었어요. 삶의 ‘다양성’이 주는 편안함, 자유로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수가 획일적으로 사는 평범한 삶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거죠. 오히려 평범함에 집착해서 생기는 문제들이 지금에 와서 더 뚜렷이 보여요.”
그는 결혼생활 동안 현실과 비현실을 귀신처럼 왔다갔다하며 마치 주인집에 셋방살이하는 세입자의 심정으로 살았다고 한다.
“집에서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가도 남편이 오면 밥을 차리고 청소를 하죠. 저는 술, 담배도 안하고 결혼생활 동안 단 한번도 외박을 한 적이 없어요. 물론 여행할 때는 빼고요. 반대로 남자가 제 경우라면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를 받았겠죠. 독자들에게 ‘자아’니 ‘독립적인 삶’이니 하는 여성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말하면서 정작 저 자신은 가부장제 삶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끊임없이 ‘분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죠.”
그는 어쩌면 남녀의 만남은 끝내 화합할 수 없는 ‘물’과 ‘불’의 만남이고, 가부장제라는 사회적 조건 자체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제도 안에서 ‘정신적 고아’로 살면서 방황하고 있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집착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집착하면서 그 관계중독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려고 해요. 자기 인생의 주인은 바로 자신인데도 아들, 남편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정신적인 고아’나 다름이 없어요. 늘 ‘저 사람에게 뭘 해줄까’를 고민하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은 모르거든요.”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의 휴대전화를 열면 이름 대신 이런 문자가 액정화면에 뜬다. “큰딸이 제 이혼과정을 지켜보고 지난 9월에 미국으로 가면서 ‘누구에게 잘해줄 생각하지 말 것’ ‘엄마 자신한테만 잘할 것’이라고 신신당부했어요.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려고 휴대전화에 이 문장을 입력해놓고 틈나는 대로 되새겨봐요.”
그 동안 엄마, 아내로 살아온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서일까. 그는 온몸이 아파 쓰러질 지경인데도 새벽에 일어나 밥하고 요리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딸은 이런 그에게 “제발 그런 것 그만하고 자신을 위해 살아요!” 하고 신경질을 부리지만 오랫동안 체화된 습관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혼 후 막내딸과 단둘이 사는 데도 습관적으로 4인분의 음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습관이 무서운가 봐요. 남은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마다 ‘왜 음식이 남지?’하고 이상해했다니까요. 손의 기억이 이런데 평생 남을 위해 살라고 주입받아온 여성들의 굴종적인 의식이 금방 바뀌겠어요?”

결혼생활 28년 만에 이혼하고 홀로서기에 나선 페미니스트 작가 이경자

그는 익숙해진 습관처럼 자신의 의식이 스스로 몸을 ‘종’처럼 부리려고 할 때 재빠르게 휴대전화에 입력된 글귀를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이혼 전에는 남편을 보면 ‘저 사람에게 뭘 해줄까?’하는 궁리만 했는데 지금은 ‘이경자! 너를 사랑해야지’하고 최면을 걸고,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어도 ‘아프니까 참아야지. 이경자! 너를 아껴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해요. 남편이 없으니까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남는지 모르겠어요.”

이젠 모든 허영 걷어내고 ‘감자 파는 시골 할머니’로 돌아가고파
이혼 후 그는 전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괴로운 것 못지않게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때문에도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그 동안 왜 그렇게 비굴하게 살아왔을까’ 후회하면서 자학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가정을 완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나 비애감도 자신을 학대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허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깨닫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우리 사회에서 이혼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그만큼 결혼생활도 고통스럽다는 반증이겠죠. 결혼이 자유로운 것만큼 이혼도 자유로워야죠.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아닌 것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붙잡는 것은 크나큰 ‘허위의식’이에요. 다양한 형태의 가정, 가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이혼도 고통스럽지 않을 거예요.”
이것말고도 외관상으로 보이는 그의 이혼 전과 후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이혼 전엔 뛰어난 패션감각과 화려함을 자랑하던 그였지만 지금의 그는 소박한 모습이다.
“이제는 ‘감자 파는 시골 할머니’로 돌아가고 싶어요. 결혼생활을 할 때는 ‘나 이만큼 잘살고 있다’는, 그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허위의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 없어요. 화장기 없는 얼굴로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래요. 남을 의식한 ‘정신적 허세’를 걷어내고 나면 ‘불행’이라는 것도 우리 인생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요.”
실제 그는 이사를 하면서 대부분의 옷가지와 살림살이를 버렸다. 대신 시간과 자유를 얻었다. 소위 말하는 ‘안방’도 예전 집과는 달랐다. 집안에서 가장 큰 방을 ‘자신만의 방’으로 꾸몄다. 그 방에는 장롱이나 침대 대신 그가 아끼는 책과 책상이 있다. 방의 한가운데 노트북이 놓여 있고, 그는 주인다운 당당한 모습으로 그곳에 정좌하고 있다. 목욕탕도 예전 집과는 대조적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형형색색의 고급스런 수건이 수납장을 가득 메우는 대신 꼭 필요한 수건 두장만 단출하게 걸려 있다.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 ‘살림 잘하는 알뜰한 여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를 ‘종’처럼 부려먹었던 사물들이 드디어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가 쉰여섯살에 마저 찾은 성공의 전리품들은 다름 아닌 ‘자유’다.
작가 이경자는 이제 일상의 시간과 사물을 확실하게 장악한 삶의 추장으로, 또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이다. 그의 이혼이 ‘절반의 실패’가 아닌 ‘절반의 성공’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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