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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단독인터뷰

아들 도움으로 빚 갚고 출소한 안정환 어머니 안금향

“이제 아들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엄마가 돼야겠다는 마음뿐이에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4.01.09 13:45:00

도박빚 때문에 도피생활을 하다 2002년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던 안정환 어머니 안금향씨가 지난 12월5일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그가 본지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아들과의 갈등, 자서전 파문, 스님이 되겠다는 폭탄선언, 안정환 친부 소동 등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숱한 언론보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아들 도움으로 빚 갚고 출소한 안정환 어머니 안금향

축구스타 안정환(28·시미즈S펄스)의 어머니 안금향씨(48). 그는 지난 1년 웬만한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정치인 못지않게 언론과 세인들에게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미혼모의 몸으로 안정환을 훌륭하게 키운 그가 도박빚에 쫓겨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2002년 10월 사기·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수감된 후에 이어진 그에 대한 보도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넘어 짜증을 일으킬 정도였다. ‘자신의 빚을 갚아주지 않는 아들과 모자의 연을 끊겠다’ ‘빙의를 앓고 있다’ ‘자서전을 쓰겠다’ ‘머리 깎고 스님이 되겠다’ ‘안정환의 생부는 강씨다’ 등 좌충우돌하며 파문을 일으키는 안씨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언론에 굴절되지 않은 그의 솔직한 모습을 알기 위해 몇 차례 옥중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안씨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거절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 나온 나에 대한 기사는 내 뜻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중에 안씨가 구속 1년2개월 만인 지난해 12월5일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안정환의 도움으로 4억3천여만원에 이르는 사채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이 과정에서 안정환이 사채문제를 일찍 해결해주지 않자 모자간의 갈등을 부각시키는가 하면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어머니는 감옥에 있는데 자식은 명품을 입고 다닌다’며 안정환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던 안씨는 큰오빠 안광순씨가 가까이 다가가 “풀려나게 되었다”고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재판이 끝난 후 그는 법원 안에서 수의를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수감중에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묘심화 스님이 있는 자비정사로 향했다.
자비정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그는 다음날 적십자병원에 입원해 수감생활로 망가진 몸을 추스렸다. 그 과정에 부인과 질환이 발견돼 수술을 받기도 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 ‘절대 언론과는 만나지 않겠다’던 그가 마음을 바꿔 그동안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여성동아’를 통해 솔직하게 해명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병실에서 만난 그는 재판정에서 볼 때보다 얼굴이 많이 밝아 보였다. 기자가 병실에 들어서자 손님을 맞아야 한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세수를 하는 모습에서 그의 순박한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아들 도움으로 빚 갚고 출소한 안정환 어머니 안금향

안금향씨는 구치소에 있는 동안 안정환이 많이 야위어 보여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지금 심경이 어떠신가요?
“정환이에게 너무 미안하죠. 어미로서 사죄하고 싶고, 앞으로 아들의 명성에 먹칠하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에요. 죄를 짓지 않고 남들에게 봉사하며 성실하게 사는 것이 제 잘못을 조금이라도 뉘우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도피생활할 때는 잠잘 곳도 마땅치 않고, 생활이 말이 아니었을 텐데, 차라리 감옥에 있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하지 않았나요?
“그런 것도 있지만 일단 제가 짊어진 멍에를 다 내려놓고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했어요. 들어갈 때부터 제 죗값은 제가 치르고 싶었어요. 정환이가 해결해주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안정환 선수가 돈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를 표시했다는 보도가 종종 나왔었는데요.
“그 기사들은 전혀 제 생각이 아니에요. 전 처음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생각이 없었어요. 당연히 도와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도 없었고요. 정환이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아니까요. 그런데 언론에서 자꾸 이상한 기사들이 나와서 오히려 그게 마음이 아팠어요.”
-네티즌 사이에선 ‘그래도 안정환 선수가 면회 한번 오지 않은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언론에 나온 것과 달리 정환이는 변호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연락을 해왔고, 자기가 할 도리는 변호사를 통해 다 했어요. 만약 정환이가 면회를 온다고 해도 제가 안 만났을 거예요. 혜원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혜원이 마음을 잘 알죠. 오고 싶어도 정환이가 말려서 못 왔을 거예요. 정환이는 늘 저에게 ‘엄마는 철이 들어야 한다’고 했거든요. 제가 독하지 못해 피해를 당하곤 하니까 이번 기회에 독해지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재판과정에서 사기와 절도혐의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해왔는데요.
“처음엔 구치소 안에 있으면서 억울하고, 화가 나고, 그래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가 가라앉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가장 억울했던 게 도둑이라는 누명을 쓴 것이었는데, 법정에서 무죄로 밝혀져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이젠 그들을 용서했어요.”
-구치소 생활은 어땠나요?
“감옥 생활이 어떤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거잖아요. 그래도 전 교도관들이나 재소자들이 많이 도와주고 격려해줘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었어요. 방마다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어서 축구경기를 할 때면 밤늦게까지 시청할 수 있었죠. 그럴 때면 구치소 전체가 들썩거렸어요. 특히 정환이가 골을 넣은 날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저에게 축하인사를 건넸고, 저에게 출소하면 정환이 사인볼을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구치소 안에서 아들을 보는 심정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많이 슬펐죠. 정환이가 전보다 많이 야위어 보여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도 제가 도피생활을 할 때는 정환이가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제가 감옥에 들어가 있으니까 오히려 골도 많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 같아 기뻤어요.”
-퇴원 후 거취는 결정을 했나요?
“자비정사에 머물 생각이에요.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불자의 길을 가고 싶어요.”

아들 도움으로 빚 갚고 출소한 안정환 어머니 안금향

-그동안 계속해서 스님이 된다는 기사가 나왔었는데요. 처음엔 12월8일에 삭발식을 한다고 했다가, 12월14일로, 그 이후로 연기되고 있고요. 왜 그런 건가요?
“저도 궁금해요. 어떻게 해서 그 기사가 나왔는지…. 전 그 문제로 누구와도 인터뷰한 적이 없어요. 현재 제 생각은 삭발을 하는 건 아직 이르지 않나 싶어요.”
-그러면 스님의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인가요?
“불자의 길과 구도자의 길은 다르잖아요. 지금은 조용히 불자의 길을 걸으면서 공부를 하고 싶어요. 공부를 하다 결심이 서면 구도자의 길을 갈 수도 있겠지만, 벌써부터 단정해서 말하기는 이르죠. 지금은 무조건 절에 들어가 조용히 있고 싶어요. 제가 사회에 있으면 또다시 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 속세를 떠나서 불교 공부를 하겠다는 뜻을 전했는데, 그게 와전이 되어 스님이 되겠다는 기사가 나온 것 같아요.”
-출소 후에 안정환과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나요?
“정환이와 직접 통화한 적은 없어요. 며칠 전에 큰오빠가 전화통화를 했다고 해요. 그때 정환이가 ‘어머니가 수행생활을 하는 것은 좋게 생각하는데, 자꾸 언론에 노출돼 안타깝다’고 말했다더군요. 저도 조용히 사색하고 공부하는 게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언론에서 자꾸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가 안타까워요. 제가 그동안 아이를 너무 힘들게 해서 이제부터라도 속죄의 삶을 살려고 하는데, 그런 부분까지 언론에서 파헤치려고 하니까 힘들어요.”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먼저 연락을 할 생각은 없나요?
“앞으로 만날 기회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먼저 찾아가거나 연락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정환이는 정환이대로 자신의 일을 잘하고 가정을 잘 꾸렸으면 좋겠어요. 저도 속세를 잊고 불자의 길을 잘 걸어갈 거예요.”
-며느리 이혜원씨의 임신 소식을 이미 들었을 텐데, 처음 들었을 때의 심정이 어땠나요?
“기쁜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어느 날 꿈을 꿨어요. 아주 커다랗고 잘생긴 호랑이가 수하에 여러 마리를 거느리고 저에게 걸어오는 거예요. 신기한 꿈이어서 묘심화 스님에게 보낸 편지에 썼을 정도죠. 그런데 꿈을 꾼 지 사흘째 되는 날 신문에 혜원이 임신기사가 났더라고요. 그 기사를 보고 기뻐서 참 많이 울었어요. 스님도 태몽이라고 하시는데, 정환이를 가졌을 때의 태몽보다도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정환이 때는 불구덩이에서 커다란 용이 솟아올라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꿨거든요. 손자는 정환이보다도 더 나라에 이름을 날리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돈댁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말을 아끼고 싶어요. 그쪽 이야기는 전혀 안 썼으면 좋겠어요.”

속세 떠나 불교 공부하며 봉사활동 하고 싶어
-자서전을 쓴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지금은 출간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었나요?
“언론에서 저와 정환이에 대해 너무나도 왜곡해서 쓴 것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 오해를 풀기 위해 제 삶을 솔직하게 썼어요. 그런데 다 쓰고 나니까 지금은 책을 낼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제가 해놓은 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앞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다음에, 사회에 작게라도 공헌을 한 다음에 다시 생각해볼 거예요.”
-구체적으로 오해를 풀고 싶었던 내용이 뭔가요?
“우선 정환이가 감옥에 있는 엄마는 수의를 입고 있는데 자기네 부부는 명품만 입고 다닌다는 비난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전 아이의 마음을 알아요. 정환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아들 도움으로 빚 갚고 출소한 안정환 어머니 안금향

출소 직후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안금향씨.


-안씨에 대해서도 ‘자식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돌아다닌 철없는 엄마였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힘들었어요. 정환이와 함께 축구를 했던 선수들의 엄마나 선생님들은 다 알아요. 제가 정환이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돈을 벌기 위해 식당일을 하면서도 시합이 있거나 학부모 모임이 있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참석했어요. 나 즐기자고 자식을 내팽개친 엄마가 아니었어요(깊은 한숨). 그런데 저에 대해 너무나도 많이 왜곡되어 있더라고요.”
-도박에 왜 빠진 것인가요?
“제 말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그리웠어요. 평생 정환이만 바라보고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정환이가 스타가 되고 나니까 제가 할 일이 없어졌어요. 식당도 못하게 해서 시간은 많은데, 정환이는 늘 연습 때문에 바쁘고 일주일에 한두 번 경기장에서 보는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늘 외로웠어요.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우울증을 앓기도 했죠. 혼자 집에 있으면 뭔가에 짓눌리는 것 같아 항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던 중에 잠깐 그런 곳에 갔던 것이지 도박 자체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어요.”
-안정환의 생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는데요.
“기가 막힌 게 이미 98년에 정환이 생부는 중학교 수학선생님이었다고, 결혼을 앞두고 작고하는 바람에 혼자 키워야 했다고 방송에서 밝혔어요. 그런데 5년이나 지난 지금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심지어 어느 잡지에선 저를 옥중 인터뷰했다면서 제가 이야기하지 않은 말을 기사로 썼더라고요. 그땐 정말 죽을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요. 특히 그 일로 정환이와 혜원이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세우셨나요?
“여건이 허락된다면 티베트 같은 불교국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어요. 국내에 있으면 아무래도 언론에 노출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환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외국으로 나갔으면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무의탁노인을 거두어 함께 살고 싶어요. 감옥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정말 갈 데가 없고 배고파서 일부러 죄를 짓고 들어오는 노인들이 많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그런 분들 모시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언론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며 “이 인터뷰가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이길 바란다”는 간절한 바람을 피력했다. “이제 모든 과거를 잊고 새 인생을 설계하겠다”는 말에서 지금까지 그가 겪은 고통과 마음고생이 진하게 느껴졌다.

여성동아 2004년 1월 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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