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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반가운 얼굴

11년 만에 새 음반 들고 컴백한 ‘바람 바람 바람’의 가수 김범룡

“목소리가 잠기는 고통, 그러나 그마저도 노래에 대한 열정은 막지 못하더군요”

■ 글·조득진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12.10 17:18:00

80년대 후반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김범룡.
이후 결혼과 함께 제작자로 변신하며 팬들의 곁을 떠났던 그가 11년 만에 8집 음반을 들고 돌아왔다.
목소리와 열정은 한창 때 그대로. 그러나 그의 눈가에도 어느덧 잔주름이 자리잡았다.
무대 밖에서 살아온 세월의 이야기를 들었다.
11년 만에 새 음반 들고 컴백한 ‘바람 바람 바람’의 가수 김범룡

‘…내님은 바람이런가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오늘도 잠 못 이루고 어둠 속에 잠기네.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 날 울려놓고 가는 바람…’
지난 85년 봄, 팝송이 점령하고 있던 국내 가요계에 ‘바람 바람 바람’으로 새바람을 일으키며 데뷔한 이후 ‘겨울비는 내리고’ ‘그 순간’ ‘그대는 미운 사람’ ‘슬픔만 주고’ ‘현아’ ‘마지막 입맞춤’ 등을 연속 히트시키며 80년대 후반 가요계를 평정했던 가수 김범룡(43). 그러나 그 또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작곡가로, 그리고 제작자로 살아왔어요. 그러나 무대에서 멀어질수록 노래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지더군요. 오랜 외도 끝에 다시 가수의 길로 돌아온 셈이죠.”
아무리 다른 일을 해도 노래를 하고 싶고, 무대가 그리웠다고 한다. 그 열망을 누르지 못하고 11년 만에 8집 음반 ‘돈키호테‘를 내놓으며 팬들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가수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92년. 당시 발표한 7집 음반이 이렇다할 반응을 얻지 못하자 실의에 빠진 그는 90년 결혼한 재미동포 크리스 강씨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떠나며 무대를 등졌다.
“92년은 김종서, 박정운이 발라드로 한창 인기를 얻을 때죠. 그러다가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가요 시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내가 노래할 분위기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음악이야 작사나 작곡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요.”
당시 가수생활에 대한 짙은 회의도 활동을 접는 데 한몫했다. 매년 음반을 한장씩 내야 하는 만큼 창작력도 고갈됐고, 데뷔 후 6년간 인기에 대한 부담감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못했던 것. ‘이건 사는 게 아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가수 생활에 대한 짙은 회의로 가요계 떠나
미국으로 떠나면서 영영 국내 가요계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었다는 그. 그러나 그는 90년대 중반 작곡가 겸 제작자로 다시 국내 가요계를 흔들어놓았다.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 노사연의 ‘왜냐고 묻지 말아요’, 진시몬의 ‘둠바둠바’, 한혜진의 ‘마지막 연인’ 등을 작곡했고, 녹색지대와 진시몬 등을 인기 가수로 키워낸 것. 가수에서 제작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녹색지대를 데뷔시킬 당시에는 엄청난 양의 음반이 팔리며 연말 가요대상 시상식을 휩쓸기도 했어요. 그때 돈도 많이 벌었죠. 가수 김범룡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스스로 통쾌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IMF 이후 음반시장에 한파가 몰아치면서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손대는 음반마다 흥행에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결국 ‘돈을 위해’ 한쪽에 밀어놓았던 기타를 둘러메고 라이브 업소를 찾아나서야 했다.

11년 만에 새 음반 들고 컴백한 ‘바람 바람 바람’의 가수 김범룡

아무리 다른 일을 해도 그는 가수였다. 돈과 출세도 좋았지만 결국 가수에겐 팬들의 환호와 박수가 가장 큰 ‘존재 의미’였다고.


“데뷔 이후 단 한번도 돈을 벌기 위해 노래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땐 참 비참했어요. 업소에 나가면서도 사람들이 차라리 나를 못 알아보았으면 하고 바랐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단 한사람의 팬이라도 제 노래를 듣고 박수를 쳐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죠.”
그러나 고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너지려는 자신을 가까스로 지키며 노래를 하던 그에게 어느 날 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가수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는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잠겨버린 것.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이비인후과에 가봤지만 ‘목을 무리해서 썼으니 쉬는 것이 좋겠다’는 말만 할 뿐이었어요. 이후 한의원을 찾아 침 맞고 약도 지어 먹고, 또 생식 건식 반신욕 등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모두 허사였죠.”
한동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았다고 한다. 목 통증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많이 부렸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점점 멀리하게 됐다. 결국 우울증이 찾아왔다.
가슴속에 노래를 하고자 하는 열망이 컸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1년을 고생한 끝에 그는 우연히 만난 동료가수 남궁옥분에게서 단전호흡을 권유받았다.
“그분도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가 단전호흡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더군요.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보기로 하고 전문기관에 가서 배우기 시작했죠. 처음엔 별 효과를 모르겠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단전호흡 수련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우친 것은 자신에게 근본적인 마음의 병이 있다는 사실. 명상과 연단(기를 단전에 모아 심신을 수련하는 방법)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와 반성의 눈물을 흘렸고, 그럴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를 시커먼 덩어리를 토해냈다.
“문제는 목이 아닌 마음의 병이었죠. 수련기간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대한 욕심, 주변의 부담스러운 시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었어요. 10개월 정도 수련을 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목소리가 되돌아오더군요.”
그렇게 2년을 고생한 끝에 올해 6월 예전 목소리를 되찾았다. 요즘 방송에 나오는 그의 노래를 들은 팬들은 ‘20년 전의 목소리 그대로’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팬 사이트 발견하고 컴백 결심, 팬 위해 발라드 고집
목소리를 되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던 그가 가요계 컴백을 마음먹게 된 것은 인터넷에 있는 김범룡 팬 사이트를 본 후였다.
“그렇게 많은 팬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한창 때의 저를 기억하며 추억을 되살리는 팬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그동안 스스로 저를 지나치게 비하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고인이 된 김정호씨거든요. 그분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그는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있고, 또 목소리까지 되찾았으니 못할 게 무어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젠 인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제 팬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고 싶어요.”

11년 만에 새 음반 들고 컴백한 ‘바람 바람 바람’의 가수 김범룡

현재 30∼40대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가수 김범룡. 그가 11년 만에 침묵을 깨고 무대로 돌아왔다. 목소리는 그대로, 느낌은 더욱 깊어졌다.


그가 발표한 8집 음반의 타이틀곡은 ‘돈키호테’. 노래 ‘바람 바람 바람’을 연상시키는 목소리와 밝고 변화무쌍한 리듬이 매력인 이 곡에 대해 그는 “11년 만에 새 음반을 낸다는 사실이 돈키호테 같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돈키호테 같은 것 아니냐?”며 “예전엔 가수로서의 삶에 더 무게를 두었지만 이젠 개인의 인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한동안 무대를 떠났다가 컴백하는 가수들 대부분이 트로트를 선보이는 것과 달리 그는 이번 음반에서 ‘왜 날’ ‘사랑의 진실’ 등 애절하고 호소력 짙은 발라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발라드나 댄스곡을 젊은 가수들이 독점하고 있는 가운데 수요층이 확실한 트로트를 포기한다는 것은 그 나이대의 가수에게 모험이 아닐까?
“제작자 생활을 하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가요계를 뒤덮어버린 컴퓨터 음악에 회의를 느꼈어요. 지난날의 감성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런 음악은 좀처럼 나오지 않아 아쉬웠죠. 제가 발라드를 고집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에요. 팬들이 제 노래를 통해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무대에 돌아온 그는 요즘 ‘완전 생초보 신인 가수’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각종 매스컴의 인터뷰에 라디오 방송 출연, TV 쇼프로 출연 등으로 ‘행복하게 바쁘다’고. 내년 1월부터 전국 순회공연 계획도 갖고 있다.
“음반 한장 내고 마는 거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 활동할 겁니다. 오랜만에 낸 음반이라 자칫 묻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요.”
80년대 중반 데뷔해 최고 인기를 누리고, 90년대 중반 녹색지대의 작곡가 겸 제작자로 사업적 성공을 거두었던 그는 “내 인생은 10년을 주기로 상승 곡선을 탔다. 그 주기가 지금 오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여성동아 2003년 12월 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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