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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진솔한 고백

국내 최초로 미스 트렌스젠더 선발대회 열어 화제 모은 ‘제2의 하리수’ 박예린

“음지에 숨어 있는 트렌스젠더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싶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11.10 15:58:00

하리수가 인기를 끈 이후에도 여전히 트렌스젠더들은 우리 사회의 음지에 머물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미스 트렌스젠더 선발대회를 열고, 영화에도 출연하며 우리 사회의 트렌스젠더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고 있는 여성이 있다. 당당한 트렌스젠더 박예린을 만났다.
국내 최초로 미스 트렌스젠더 선발대회 열어 화제 모은 ‘제2의 하리수’ 박예린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이색적인 미인선발대회가 열렸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 트렌스젠더들을 대상으로 미인선발대회를 연 것.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사람을 일컫는 ‘트렌스젠더’는 2001년 하리수의 등장으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후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음지에 머물고 있다.
사회적인 편견이 여전한 현실에서 비록 인터넷상에서이긴 하지만 트렌스젠더들이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트렌스젠더 박예린(26, 예명 소라)을 부산에서 만났다.
부산 광안리에 있는 트렌스젠더 바 ‘좋아좋아’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이미 인터넷상에서는 하리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다. 그의 인터넷 카페 ‘소라의 선택’(cafe.daum.net/yes101)엔 4천여명의 트렌스젠더를 비롯해 3만여명의 팬들이 가입해 활동을 하고 있다.
“대중매체에 하리수가 등장한 것을 보고 용기를 내 같은해 인터넷에 제 카페를 만들었어요. 트렌스젠더 중에는 처음이었죠. 당시엔 ‘섹시소라’라는 이름이었는데, ‘섹시’란 단어가 금지어로 묶여 카페가 폐쇄 당하는 바람에 2002년 4월 ‘소라의 선택’이란 이름으로 다시 만든 거예요.”
그는 이곳에 자신의 사진·동영상과 함께 트렌스젠더의 고민과 삶을 진솔하게 담은 글을 올려 같은 트렌스젠더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또한 일반인들이 트렌스젠더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궁금증과 그 해답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도록 해 서로 이해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미스 트렌스젠더 선발대회를 구상한 건 3년 전부터였어요. 해마다 태국에 갔다오는데, 그곳엔 트렌스젠더가 많아서인지 그런 행사가 많아요. 우리나라는 대회는커녕 공개적인 모임조차 없거든요.”
지난 6월초, 그는 자신의 카페에 직접 찍은 동료 트렌스젠더들의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트렌스젠더들도 참가하겠다며 스스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60여명이 참가를 하게 되었고, 카페 회원들의 투표로 9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그리고 다시 카페 회원들의 투표로 지난 9월 중순 제1회 미스 트렌스젠더로 김수현씨(27)가 선발되었다.
흔히 미스 ○○선발대회 하면 미인대회를 떠올리지만 그는 그런 의도로 이 대회를 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트렌스젠더’ 하면 하리수를 떠올려요. 그래서 트렌스젠더는 머리가 길고, 외모가 섹시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여자들도 여러 얼굴이 있잖아요. 예쁜 얼굴, 귀여운 얼굴, 섹시한 얼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섹시함만이 트렌스젠더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우리도 여러 모습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고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들과 똑같다는 걸.”
그는 또한 그동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보기는커녕 모임 한번 가져보지 못한 채 제각각 흩어져 있는 트렌스젠더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행사를 연 것이라고 했다. 이번엔 비록 인터넷상에서 행사가 이루어졌지만 다음엔 오프라인에서 열어 트렌스젠더들의 축제의 장이 되도록 하겠다는 희망을 피력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미스 트렌스젠더 선발대회 열어 화제 모은 ‘제2의 하리수’ 박예린

“게이나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들은 전체 모임이 있어서 자기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우리들은 지금 트렌스젠더가 정확히 몇명인지조차 파악이 안돼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끼리 ‘우리도 모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말이 쉽지 행동으로는 잘 안되잖아요. 한국 사회는 아직 그런 분위기가 아니고, 그래서 두려움이 많아요. 부끄러움도 있고…. 제가 인터넷 카페를 만든 것도 그런 취지였어요.”

처음엔 눈도 안 마주치던 정웅인 쫑파티 땐 같이 술잔 돌릴 정도로 친해져
그는 최근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11월 개봉하는 영화 ‘아빠하고 나하고’에 트렌스젠더로 출연한 것. ‘아빠하고…’는 트렌스젠더를 소재로 한 휴먼코미디 영화인데, 지난 6월 제작사인 기획시대로부터 출연제의를 받고 트렌스젠더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깨지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흔쾌히 출연 승낙을 했다고 한다.
“트렌스젠더의 쇼를 흔히 오카마쇼라고 하는데, 정웅인 오빠가 오카마쇼의 사회자로 나와요. 임호 오빠가 트렌스젠더들의 마담언니로 나오고요. 임호 오빠가 정웅인 오빠를 좋아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인데, 저는 임호 언니 밑에 있는 트렌스젠더 쇼걸이에요.”
밤무대에서 춤과 노래를 하는 그지만 영화를 찍기 위해 두달 동안 집중적으로 춤과 노래훈련을 받았다. 특히 춤은 클론의 구준엽과 방송안무가 홍영주에게 배웠다.
“촬영하는 내내 즐거웠어요. 사람들이 트렌스젠더라고 하면 꺼려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어요. 특히 임호 오빠가 잘해주었어요. 한번은 모르고 임호 오빠 앞에서 옷을 갈아입었어요. 항상 촬영을 할 때 임호 오빠가 여장을 하고 있어서 순간적으로 같은 여자로 생각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갈아입었는데, 오빠가 ‘너희는 내가 남자로 생각이 안드냐’며 피하더라고요(웃음). 우린 그냥 편하게 생각했는데 그 오빠는 우리를 여자로 생각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다정다감하게 잘해주었던 임호와 달리 정웅인은 처음엔 트렌스젠더들과 눈도 안 마주칠 정도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촬영을 마치고 ‘쫑파티’를 할 때는 먼저 다가와 함께 술을 마시고 술잔을 돌릴 정도로 친해졌다고 한다. 정웅인의 편견이 깨어진 것이다.
“트렌스젠더하고는 찜찜하다며 물컵도 같이 안 쓰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당연히 술잔도 안 돌리죠. 정웅인 오빠도 처음 인사할 땐 저희를 경계하듯 쳐다보았는데, 나중엔 농담도 잘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성 정체성에 눈떠
그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라고 한다.
“우리 반 남자들이 모두 좋아할 정도로 제 짝이 정말 예뻤거든요. 그런데 전 제 짝이 이성적으로 끌리는 게 아니라 ‘나도 쟤처럼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학생들이 이성이 아닌 동성으로 느껴졌고요. ‘난 왜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땐 ‘내가 어려서 그런 생각을 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걸음걸이에서부터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여성스러운 그를 친구들은 ‘호모’라며 놀렸다. 다른 남자들처럼 되기 위해 태권도장도 다니고 격한 운동도 해보았지만 여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바꿀 수가 없었다.
“체육선생님을 이성적으로 좋아했어요. 심지어 자위행위를 할 때도 다른 아이들은 여자를 상상하며 하지만 전 근육질의 남자를 상상하며 했으니까요(웃음).”

국내 최초로 미스 트렌스젠더 선발대회 열어 화제 모은 ‘제2의 하리수’ 박예린

성전환 수술 후 여성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사는 박예린. 그는 인터넷에 자신의 카페 ‘소라의 선택’을 갖고 있다.


그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본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였다. 동성애자의 세계를 다룬 이 프로에서 트렌스젠더라는 존재를 알게 된 그는 트렌스젠더들이 많이 있다는 부산 완월동을 찾아가 직접 그들의 세계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건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삶이었다.
“처음엔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 성 정체성을 숨긴 채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하는 것보다 작은 일을 하더라도 여자가 되어 자기만족을 하면서 사는 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내 삶을 살기 위해선 남자의 모습뿐 아니라 집안도 친구들도 다 버려야 하기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어요. 한달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내 삶의 만족을 위해 사는 거지 평생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다’였어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와 완월동으로 갔다. 밤에 술을 따라야 하는 게 낯설었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여자로 대접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곳에서 그는 선배들로부터 몸을 완전한 여자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
“물론 우리들을 사람 취급 안하는 이상한 손님들도 많아요. 하지만 그냥 사회생활을 해도 저를 계집애 같다고 놀리는 사람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그래도 이곳은 저를 여자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바깥 사회보다는 많으니까 좋죠. 물론 막 대하는 사람이 있을 땐 서러워서 울기도 하고, 그럴 땐 엄마 생각도 나고 하지만.”
그는 밤업소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2000년, 남성의 성기를 여성의 성기로 바꾸는 수술을 했다. 그러기까지 고난도 많았다. 일하던 곳에서 월급을 떼이기 일쑤였고, 여자로 살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돈도 많았기 때문이다.
아끼고 아껴 겨우 수술비를 마련할 때쯤 사귀던 남자로부터 사기를 당해 수술비를 떼이기도 했다. 그런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불법영업 단속에 걸려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라고 한다.
“업소에 있다 잡혀와서 하이힐에 홀복을 입고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쪼그린 채 토끼뜀을 뛰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남자 놈들이 할 짓이 없어 이러냐’는 식으로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데, 지금도 그 굴욕감은 잊을 수가 없어요.”
한살 연하의 애인과 교제중수술 후 일반 여성과 똑같이 오르가슴 느껴

수술 전엔 남자들이 그가 여자인 줄 알고 접근해오는 것도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고 한다.
“차마 제가 이렇다고 직접 말할 용기가 없어 간접적으로 알게 만들었어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사귀던 남자가 계속 관계를 요구하더라고요. 물론 계속 피했지만 너무 불안하고 괴로웠어요. 그러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했어요. 그래서 그 남자에게 업혀 여관에 갔는데, 제 몸을 더듬었나봐요. 문까지 열어놓고 허겁지겁 뛰어나가더라고요. 다음날 아침에 전화를 해서 욕을 하는데, 정말 그땐 죽고 싶었어요.”
문득 성전환 수술을 한 후의 성생활이 어떤지 궁금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국내 최초로 미스 트렌스젠더 선발대회 열어 화제 모은 ‘제2의 하리수’ 박예린

박예린은 11월 개봉하는 영화 ‘아빠하고 나하고’에 트렌스젠더로 출연했다. 사진 아래 오른쪽이 박예린.


“성전환 수술을 하기 전에는 돈을 벌기 위해 2차도 나갔어요. 하지만 수술을 한 후에는 2차는 안 나가요. 어렵게 얻은 여자의 몸이니까 아끼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자고 싶거든요.”
그는 현재 한살 연하의 애인을 사귀고 있고, 정기적으로 정상적인 섹스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흔히 ‘너희들도 섹스를 할 때 흥분이 되냐’고 물어요. 당연히 흥분이 되죠. 질 속의 신경이 다 살아 있으니까요. 물론 제가 처음부터 여성이 아니었으니까 여자들이 느끼는 오르가슴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제가 남자였을 때 사정을 할 때의 그 찌릿찌릿한 느낌을 알잖아요. 그런 게 느껴져요. 그리고 남자 친구가 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면 느낌이 와요.”
그는 남자친구도 성관계를 가질 때의 느낌을 물어보면 “다른 여자랑 할 때와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다”고 대답한다고 했다. 남자의 성기가 질 안에 들어왔을 때 수축하는 것조차 똑같다는 것.
“여성의 성기를 만드는 수술은 크게 두 가지, 남성의 성기를 이용해 만드는 수술과 내장을 이용해 하는 수술이 있어요. 남성의 성기를 이용해 수술을 하면 가끔씩 질의 길이가 짧은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성관계를 할 때 남성의 성기가 완전히 삽입되지 않는 경우도 있죠.”
최근 트렌스젠더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꿔달라는 신청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바꾸는 게 아무 소용이 없다며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주민등록번호 첫째자리가 1에서 2로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호적을 떼어보면 ‘성전환자’라고 표시가 되어 있으니까, 트렌스젠더라는 게 금세 들통이 나죠.”
물론 주민등록증에는 성전환자라는 표시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을 하려면 당연히 호적을 떼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하려고 해도 호적을 제출해야 한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기형아가 있다고 해요. 그 상태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기는 힘들잖아요. 수술을 해서 정상인처럼 될 수 있다면 수술을 해야죠. 저희도 마찬가지로 정신은 여자인데 몸이 남자일 뿐이에요. 그래서 몸을 정신에 맞추기 위해 수술을 하는 거예요. 남자의 몸 그대로 사는 건 평생 기형을 안고 불행하게 사는 것일 뿐이에요. 그걸 인정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03년 11월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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