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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의 근로복지 담당 이사로 활동하다 귀국한 변호사 정민교

■ 글·구미화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3.11.10 14:31:00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고 변호사로 활동해온 정민교씨. 지난 5월, 국내 기업에 스카우트된 남편과 함께 귀국한 그는 회사측의 배려로 당분간 육아에 전념할 계획이다.
미국 내 기업의 근로복지 담당 이사로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로서 그가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육아 문제에 대해 한마디했다.
미국 기업의 근로복지 담당 이사로 활동하다 귀국한 변호사 정민교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귀국한 정민교씨(35)는 요즘 부쩍 아이를 돌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그는 지난 5월 국내 기업에 스카우트된 남편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두돌이 지난 아들 상무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그는 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95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번 한국행은 남편의 직장 문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도 마침 아들이 한국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던 차였다고 한다.
“아이가 잘 자라려면 궁극적으로 뿌리 의식을 제대로 가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이를 올바로 키우려면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죠.”
30년 넘게 미국에서 생활한 남편도 이 부분에 대해서 같은 생각이다.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 ‘훗날 한국말과 한국의 역사 등 자신의 뿌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 많은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마저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생각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어린 아들에게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혼란을 주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한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아이에게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한국에 대한 기억을 심어주는 게 그의 과제로 남게 된 것.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당분간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가 일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노사관계 및 근로복지 등 노동법 관련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해온 그는 여전히 미국의 IT기업 사이베이스(Sybase)사의 일원이다. 올해말까지 휴직을 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측에서는 필요하다면 더 오랜 기간 휴직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이를 ‘일하는 엄마’에 대한 회사측의 배려라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사람으로는 드물게 미국에서 법학박사(J.D. Judicial Doctorate)코스를 밟았다. 미국에서 외국인은 단기간에 미국 로스쿨의 석사학위(LLM)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미국인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시험을 보고 통과해 미네소타 주립대학의 로스쿨(J.D., 3년 과정)에 들어갔다. 쉬운 길이 있는데도 그가 3년이나 더 배워야 하는 로스쿨에 들어간 건 실무 중심 교육방식 때문이라고 한다. 현직 판사나 변호사가 직접 코치를 하는 수업이 있는가 하면 재판장과 배심원에게 설득력 있게 보이기 위해 배우가 직접 호흡법과 몸 동작을 지도하기도 한다고.

“육아 환경 개선하지 않으면 유능한 여성 인력 놓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그는 캘리포니아주와 미네소타주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법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해야 하는 실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는 초등학교 때 4년을 영국에서 보냈지만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한 것은 대학 때부터라고 한다.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해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친구들의 유창한 영어실력과 빠른 독해능력에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는 것은 물론, 영자 신문을 스크랩했고, 방학 동안엔 매일 영문으로 된 책을 한권씩 독파했다. 그의 독특한 영어 공부법이라면 단어가 아닌 문장을 통째로 암기한다는 점이다. 변호사 자격시험(Bar Exam)을 준비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기업의 근로복지 담당 이사로 활동하다 귀국한 변호사 정민교

“영어든 법이든 문장을 통째로 암기했어요. 변호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강의들이 있었는데 강의를 완전히 이해한 뒤 요약해 제 것으로 만든 다음에는 강의를 녹음한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면서 거의 외우다시피 했죠.”
그는 언변이 중요한 변호사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변호할 내용까지도 줄줄 암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무경험을 쌓기 위해 방학 때도 로펌과 기업에서 노사관계를 분석하는 일을 했다.
변호사 자격시험에 통과한 뒤에 로펌을 거쳐 기업체의 일원으로 노동 조건과 근로복지 관련 업무를 맡아온 그는 한국에 돌아와 가정생활과 육아를 배려하지 않는 한국의 직장 문화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유학시절, 같은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교사로 활동한 남편과 결혼해 늘 ‘남편은 나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왔다. 평소 집안일을 잘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먹을거리 같은 ‘인풋(input)’은 모두 그가 맡고, 기저귀 갈기 등 ‘아웃풋(output)’은 남편의 몫이었다고. 그런데 한국에 온 뒤로는 집안일을 도와주기는커녕 남편의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로 회사일로 정신이 없다고 한다. 주말은 물론, 퇴근 후에도 다시 회사로 불려가는 일이 부지기수. 그러나 그가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 남편의 여자 동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남편이 한국에 온 뒤로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여자 동료들이라고 다르지 않대요. 그렇게 되면 육아에서 완전히 손떼야 하는 거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 대한 배려 없이 누구나 똑같은 조건에서 일해야 한다는 건 육아를 누군가가 대신하지 않는 한은 힘들죠. 제가 한국의 사정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것도 이런 육아문제 때문이 아니겠어요? 제가 다닌 직장의 1층에는 탁아소(Day Care Center)가 있어 직원들은 출근하면서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수시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었어요. 수유도 가능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해내기가 힘들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이 유능한 인력을 많이 놓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이라고 해서 육아 부담을 가진 직원에 대한 처우가 획일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국내에도 이보다 좋은 조건을 갖춘 기업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회 제도나 분위기가 일하는 엄마들에 대한 배려가 많고, 남자 동료들 역시 손해를 본다는 피해의식이 없는 것은 배울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일하는 여성들이 사회에 공헌하는 바를 높이 사고 있다는 것. 그는 “앞으로는 남성 인력만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며 “사회가 변하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여성동아 2003년 11월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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