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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맛있는 만남

한국적 음식에 한국 사람들의 희로애락 버무린 만화 ‘식객’ 연재중인 만화가 허영만의 ‘음식 이야기’

“집 나간 며느리도 냄새 맡고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의 맛을 아세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3.11.10 13:55:00

지난해 9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이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식객’이 신문 독자뿐 아니라 인터넷상에서도 일일 조회수 30만건이 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비결은 한국적인 음식에 한국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적절히 버무려 재미있게 그려내기 때문. 그를 만나 음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적 음식에 한국 사람들의 희로애락 버무린 만화 ‘식객’ 연재중인 만화가 허영만의 ‘음식  이야기’

광장동의 오피스텔에 있는 만화가 허영만씨(56)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문 앞에 붙여놓은 ‘개조심’이라는 경고문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커다란 개(리트리버 종) 한마리가 먼저 달려든다. 하지만 커다란 덩치와 달리 그렇게 순하고 귀여울 수가 없다. 이름도 재미있다. ‘처칠.’ 단지 영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엉뚱함은 이것만이 아니다. 휴대전화를 항상 차에 놓고 다니기 때문에 보통 때는 전혀 통화가 안되고 그가 운전을 하고 있을 때만 통화가 된다.
처칠의 뒤를 따라 개구쟁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띤 허영만이 나타났다. 훤하게 벗겨진 그의 머리에서 순간 세월의 연륜이 느껴졌다. 문득 “몇달 전 ‘식객’을 연재하다 과로로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건강을 관리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해치면서 산다”며 웃는다.
“술을 너무 좋아하니까요. 거의 매일 술 약속이에요. 어제는 밤에 11시에 집에 들어가는데 휴대전화로 술 먹자는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또 12시를 넘기고…, 그래서 휴대전화는 나쁜 거예요(웃음).”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는 그의 건강비결은 등산과 규칙적인 생활. 등산은 6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요즘도 한달에 두번은 꼭 짬을 내어 아내와 함께 2박3일씩 백두대간을 다녀온다고 한다. 그는 히말라야 K2봉 5000m 지점까지 오르기도 했다.
“저녁에 술 약속이 없을 땐 운동을 해요. 나이가 드니까 등산을 할 때 힘들더라고요. 우리는 산에 가도 빨리 안 가요. ‘우보산행’이라고 해서 가다가 힘들면 안 간다는 주의죠. 산을 마라톤 뛰듯이 가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돼요.”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침 8시쯤 화실에 나와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 그리고 오후에 매일 20분씩 보약 같은 낮잠을 잔다. 작업은 주로 낮에 4∼5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하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밤샘작업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가 또 걸작이다. 옛날에 몇번 해보았는데 밤엔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다 끝나 만화를 그리는 일 외엔 할 게 없어 심심하다는 것.
그가 ‘식객’을 구상한 것은 4년 전. 일본만화 ‘맛의 달인’ ‘미스터 초밥왕’ 등이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한국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김치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려고 했어요. 김치 종류만 해도 1백30종에 달하거든요. 일본 만화가들도 김치는 그릴 수 없을 테니까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김치는 반찬이라 그것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단조롭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음식과 술까지 범위를 확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취재를 시작했어요.”

한국적 음식에 한국 사람들의 희로애락 버무린 만화 ‘식객’ 연재중인 만화가 허영만의 ‘음식  이야기’

그는 2년여 동안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과 음식점들을 찾아다녔다. 음식의 비법을 알기 위해 주방장에게 꼬치꼬치 묻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영광굴비 말리는 공장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람 있는 일도 많았다. 쇠고기의 부위가 무려 80개가 넘는다는 것도, 우리나라 전통 술이 80여개에 이른다는 것도 취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궁중의 남자 전문요리사인 대령숙수에 대해 조사할 때였어요. 불과 1백년 전에도 존재했던 대령숙수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후손들을 찾을 수도 없고…. 겨우 대령숙수 같은 사람이 나오는 옛 그림 두장을 고려대에서 발견해 그걸 토대로 해서 그림을 그렸죠.”
이렇듯 ‘식객’을 만들기 위해 취재를 하며 정리한 자료만 A4용지 1만여장, 자료 사진도 라면박스로 3상자가 넘는다. 그리고 연재를 하고 있는 지금도 취재는 계속되고 있다.
음식을 만화로 그려내는 것도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민물고기 매운탕과 바닷고기 매운탕을 컬러 사진으로 보면 다르게 보이지만 흑백 그림으로 그리면 똑같아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만화 한 페이지를 그리는데 필요한 자료만 한 박스가 쌓일 때도 있어요. 사물 하나하나를 다 대조해가며 그려야 하니까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힘들었던 건 맛을 내는 비법을 만화에 담아내는 거였어요. 우리 전통음식의 맛은 손맛인데, 손맛을 숫자로 계량화하는 게 불가능하더라고요.”
‘식객’에 소개된 음식들은 올게쌀, 고추장굴비, 전어, 곰탕, 밥, 부대찌개, 김장김치, 생태매운탕, 보신탕, 고구마 등 가장 한국적인 것들이다. 일부에선 부대찌개가 어떻게 우리나라 전통음식이냐는 항의가 있기도 했지만 허영만은 “50년의 전통을 가진 우리 음식”이라며 “앞으로 자장면도 다룰 생각”이라고 했다.
최고의 맛, 최고의 음식을 만화로 그린다면 필경 미식가일 터. 따라서 입맛이 무척 까다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식가들은 원래 맛에 예민하지 않은가. 실제 그는 너무 멀지만 않다면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점이 있으면 꼭 발품을 팔아서라도 음식을 맛보러 가는 미식가다. 슬쩍 “아내에게 음식 타박을 많이 하는 편 아니냐”고 묻자 “집사람은 음식을 잘한다”며 웃는다.
“전 만드는 사람의 정성을 생각해서 열심히 먹어주는 편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간이 일정하지 않아요. 음식이 많이 짜졌어요. 여자가 나이가 들어가면 입맛이 변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통조림, 조미료, 인스턴트 식품 보면 인간이 사육당하고 있다는 느낌 들어
말은 그렇게 해도 그는 지금도 매일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집사람이 도시락을 싸주면 들고 오고, 귀찮다고 안 싸주면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적당히 해결하고 그러죠.”
그는 이 세상엔 무수히 많은 음식이 있지만 결국 가장 맛있는 음식은 어머니가 만든 음식이라고 한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11명이 한집에 살았으니까 밥 먹는 게 전쟁이었죠. 그래서 맛을 모르고 살다가 객지(서울)에 나와서 먹다 보니까 어머니 음식과 비교 되더라고요. 겨울이면 매생이, 여름에는 장어, 간식으로는 게를 삶아먹곤 했죠. 김을 좋아했는데 불기만 남은 아궁이에 한면만 살짝 구워서 먹었어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김에 기름을 발라 굽더군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김이 가장 맛있는데 말이에요.”

한국적 음식에 한국 사람들의 희로애락 버무린 만화 ‘식객’ 연재중인 만화가 허영만의 ‘음식  이야기’

올가을 허영만의 만화가 데뷔 30년을 기념해 만화가 최초로 평론집이 나온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들라고 하자 주저 없이 가을 전어를 꼽는다.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에 다시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라는 것.
“전어는 이름만 불러도 입에 침이 고여요. 전어는 숨어서 먹어야 하는데(웃음). 옛날엔 많이 나서 싸고 맛있는 생선이었는데 요즘은 많이 비싸졌어요. 그런데 이렇게 선전을 해서 값이 더 비싸지면 어쩌지요(웃음)?”
미식가들은 대개 요리도 잘한다. 그의 요리 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요리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자 칼을 잡은 지 오래되었다며 극구 사양한다.
“전에 어느 요리프로에 출연해서 광어회를 뜬 적이 있어요. 그후 한동안 ‘강남칼잡이’로 불렸죠(웃음). 전에는 집에서 직접 생선초밥도 만들고 그랬는데, 요즘은 통 할 기회가 없어요. 아이들이 커서 밖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네 식구가 모이기가 쉽지 않아요. 집사람하고 둘이서만 있는데 음식을 하기도 그렇고.”
그는 요즘 우리 사회가 맛을 잃어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특히 맞벌이 부부들이 슈퍼에서 인스턴트 밥을 사다먹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옷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 음식에 신경을 안 써요. 그래서 꼭 눈에 보이지 않는 틀에 갇혀 사육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조림이나 인스턴트 밥, 패스트푸드, 조미료처럼 공장에서 만든 음식들을 먹고 사는 것을 보면 닭이나 돼지, 소만 사육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인간의 손에 사육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우리가 뭘 하기 위해 사는 건지 다시 한번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음식을 먹는 것도 여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유란 기다림과도 통하는 말이죠.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전 여수에서 자라 생선회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영 예전의 맛이 안 나요. 쫀득쫀득하던 생선살이 요즘은 푸석푸석해요. 양식을 해서 그래요. 채소도 마찬가지예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들이라 맛이 덜해요. 양식을 하고 하우스 재배를 하면 아무때나 쉽게 먹을 수 있어 좋을지는 모르지만 대신 우린 맛을 잃었어요. 제철에 나는 음식 맛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다음 철까지 기다리는 마음도 함께 잃어버린 것이죠.”
앞으로 1년 동안 동아일보에 ‘식객’을 연재할 예정이라는 그는 취재하며 들렀던 음식점들 중에서 좋은 곳을 골라 소개하는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했다.


여성동아 2003년 11월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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