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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중강연 통해 삶의 지혜 일깨워준 법정스님

“이웃과 경쟁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삶이 아닌 공존공생하는 지혜를 깨치세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3.11.10 13:41:00

10년 넘게 강원도 산골에서 무소유의 생활을 하고 있는 법정스님이 오랜만에 대중강연에 나섰다.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노스님이 들려주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혜의 말씀을 요약 정리했다.
오랜만에 대중강연 통해 삶의 지혜 일깨워준 법정스님

93년 수필집 ‘버리고 떠나기’를 쓴 후 10년째 강원도 정선군 산골의 한 오두막에서 기거하며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법정스님(71)이 오랜만에 대중강연에 나섰다. 93년 8월 그가 직접 만든 순수 시민 봉사단체인 ‘맑고 향기롭게’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9월말부터 10월 초까지 지부가 있는 광주, 경남 창원, 부산, 대구에서 전국 순회 강연회를 연 것.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따르는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인간의 마음과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며 살자는 취지로 만든 순수 시민단체. 현재 서울, 부산, 광주, 대구, 경남, 대전 등 6곳에 9천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동안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과 환경보호운동을 활발하게 펼쳐왔다.
사실 이번 순회강연은 의외였다. 스님은 그동안 자신이 회주로 있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두달에 한번 정도 법문을 하는 것 외엔 대중 앞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상좌인 덕조스님에 따르면 “스님이 90년대 중·후반에 두어 차례 지방강연을 한 적은 있지만 이렇듯 전국을 순회하는 강연회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스님이 순회강연을 한 것은 그동안 스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기회가 없었던 ‘맑고 향기롭게’ 지방 회원들의 간곡한 청원이 이어져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법정스님은 현재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골에서 화전민이 버리고 간 오두막에 기거하고 있는데, 스님을 모시는 상좌들도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한다. 전기, 전화, 수도 등 문명 시설이 전혀 없는 그곳에서 스님 혼자 생활하고 있다.
스님은 길상사 회보에 쓴 글에서 “오염되지 않은 물 많이 마시고, 많이 걷습니다. 혼자서 변변찮은 푸성귀 먹고 살지만 우주의 에너지를 받아선지 좋습니다”고 근황을 소개하면서 “처음엔 전기가 없어 불편했는데, 전기 들어오면 냉장고, TV도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온갖 세상 이야기, 기계에서 나는 잡소리 다 듣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라디오를 듣는데 기상예보 듣고 끕니다. 정치인들 얼마 먹었네 하는 이야기 들으면서 그런 상처까지 산속에 불러들이기 싫습니다. (소리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고 중생들에게 충고하기도 했다.
스님은 10월2일 부산에서 강연을 시작하기 전,‘맑고 향기롭게’ 관계자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지난 추석 땐 비 때문에 돌 굴러가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집에서 10m쯤 내려가면 폭이 15m 되는 개울이 있는데 큰 바위로 된 징검다리가 사라지고 웅덩이가 패어 열흘쯤 갇혀 나오지 못했다. 그곳에서 산 지 10년이 됐는데 올해 가장 심했다고 했다”며 산속 생활의 근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대중강연 통해 삶의 지혜 일깨워준 법정스님

법정스님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은 55년 경남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스님 밑으로 입산 출가했다. 지리산 쌍계사와 가야산 해인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한 그는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역임하였고 94년에 순수 시민운동인 ‘맑고 향기롭게’를 창립해 이끌고 있다. 또한 97년 12월에는 길상사를 창건하였다.
저서로는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이 있다.


스님의 부산강연은 부산롯데호텔 3층 대강연장에서 오후 1시부터 열렸다. 오전 9시경부터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해 오후 1시경이 되자 2천5백여 좌석이 모자라 수백명이 맨바닥에 앉아야 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심지어 옆 강연장 2개를 더 빌려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 대강연장 안에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방송을 통해서라도 강연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주부, 학생, 스님, 직장인 등 총 5천명 이상의 청중이 모여 스님의 높은 인기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강연회는 오후 1시부터 시작되었는데, 부산 불교라디오방송 지은아 아나운서의 사회로 범어사 합창단의 찬불가, 경성대 최은희 교수의 전통무용, 무형문화재 박종숙 등 3인의 남도창 공연이 1시간 동안 식전행사로 펼쳐졌다. 이어 2시부터 ‘맑고 향기롭게’ 이사로 있는 이계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스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여러분들 그동안 잘 사셨습니까?” 하는 스님의 물음에 청중이 “예”하고 대답하자 “잘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하고 반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스님은 1시간 동안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고 인생을 사는데 지혜가 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스님은 군더더기 없는 쉬운 표현과 착착 감기는 비유로 청중에게 툭툭 화두를 던져주었다. 희망을 잃어가는 세상, 메마르고 거칠어진 민심을 헤아렸기 때문일까, 이날 스님이 청중과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진 강연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다음은 스님의 부산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남보다 앞서간다고, 남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졌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먼저 수해를 당하신 분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수해뿐 아니라 많은 재난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천상이나 극락이 아니라 사바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사바세계란 뜻은 ‘겨우 참고 견딜 만한 세상’이란 뜻입니다. 겨우 참고 견딜 만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한 인생을 이루고 혹은 한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왜 천재지변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천재지변은 자연의 현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 개인이 재난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현상은 인간 한명 한명의 삶의 메아리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저질러놓은 환경오염이 메아리가 되어 자연현상의 재난이 옵니다.
현대 올림픽 표어 아시죠?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심한 저항을 느낍니다. 근대 과학의 좌우명은 속도였습니다. ‘빠르게 더 빠르게 좀더 빠르게’란 표어처럼.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가 합쳐서 콩코드라는 초음속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공중폭발했습니다. 이것은 고도의 기술과학을 과시하던 우리 현대문명의 하나의 상징입니다. ‘빠르게 더 빠르게 좀더 빠르게’의 결과가 공중폭발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빠르게 더 빠르게 좀더 빠르게’ 살아야 합니까?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남보다 앞서간다고 해서 행복합니까? 남이 가지지 않은 것을 내가 가졌다고 해서 행복합니까? 남보다 빨리 산다고 해서 행복합니까?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빠르게 산다고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한때 어느 기업에서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표어를 내걸었습니다. 일류가 아니더라도 살아남습니다. 이류 삼류라도 다 살아남지 않습니까. 아이를 학교에서 일등하도록 내몰지 마세요. 일등 하는 아이는 이제 아래로 떨어지는 일만 남았기 때문에 늘 초초하고, 외로울 수 있습니다. 명문대학일수록 예비 정신질환자가 많다는 보도가 있는데, 초조하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대중강연 통해 삶의 지혜 일깨워준 법정스님

이건 엄마들의 탓도 있어요. 일류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일등은 외롭고 고독한 것입니다. 남보다 앞선다고 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경쟁심리는 고독하고 비인간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자기 자신이고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저도 자동차를 운전할 때 흔히 이런 실수를 범하곤 하는데, 종착지를 미리 생각해서 몇시까지 거기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목적지 도착만 생각하다 보니 과속을 하게 되고, 과정을 무시하게 됩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소홀히 하는 것은 옳은 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하고,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가 소중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뜸이 들 시간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열매를 맺고 하는 4계절의 순환질서가 있듯이 느긋하게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데, 현대인은 빨리 수확하려고만 합니다. 참고 기다릴 줄 몰라요. 하지만 바로 꽃피고 열매 맺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말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그리움이 생깁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립고 아쉬울 때 있는 것입니다.
가을엔 시를 읽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를 읽는 사람은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인간이 성숙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움켜쥐지만 말고 쓰다듬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삶이란 목표를 향해 곧장 달리기보다는 산골짜기 물처럼 여유를 가지고 구불구불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선조들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전경을 만들고, 예쁜 돌도 만들어냅니다. 문명은 직선이고 자연은 곡선입니다. 곡선엔 조화와 균형, 삶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조상들의 여유 있고 유유자적함을 다시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루 한가지라도 착한 일을 행하면 그날은 잘 산 것입니다”

우리는 천천히 돌아가고 쉬기도 하고, 길을 잃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걸 익히는 게 삶의 기술이고 지혜입니다. 고속도로 달릴 때는 앞만 보게 되지만, 국도나 지방도를 갈 때는 둘레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까. 시간을 즐기는 사람은 영혼의 밭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간에 쫓기면 죽으러 가는 것이고, 곡선으로 가는 사람은 삶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과정을 즐겨야 합니다. 삶의 기쁨은 순간 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유용하게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주고받으며 조화 속에 살아갑니다.



오랜만에 대중강연 통해 삶의 지혜 일깨워준 법정스님

법정스님은 93년부터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를 이끌고 있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관계를 떠나선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엔 많은 생물이 서로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다 필요해서 있는 것입니다. 파리, 모기도 생태계에서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환경은 어떻습니까. 미래를 예측한 어떤 보고서를 보니 지구 환경 위기를 시계로 계산하면 12시가 종말이라고 할 때 지금이 밤 9시15분이라고 합니다. 종말까지 2시간45분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전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이 지구온난화현상의 주범인 아황산가스를 전세계 배출량의 28%나 배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식 대량 생산·소비·폐기 생활패턴을 안 바꾸면 지구가 몇개라도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북한산에 길을 뚫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국립공원을 한번 파괴하면 전례가 돼 앞으로 국립공원이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은 큰 생명체입니다. 몸뚱이와 지체를 토막내면 그 결과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경제는 어렵다가도 좋아질 수 있지만 자연은 회복·복원할 길이 없습니다. 앞으로 인류가 기댈 곳은 자연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업(業)이라 합니다. 업은 마음에 씨를 심는 것같이 마음에 흐름과 파장을 줍니다. 우리는 업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새로운 선업을 쌓아야 합니다. 친자연적인 생명의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공생공존해야 합니다. 이웃을 생각하고 이웃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절로 몸에 배어야 합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반성해봅니다.
덕(德)은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도움을 줄 때 싹이 틉니다. 혼자 해낼 수 없는 이웃에게 선뜻 나서서 도움을 줄 때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 사람의 업이고, 남의 일이고, 내일이 아닙니다. 내 덕이 손상되지는 않습니다.
인과응보는 업의 파장이고 자식에게까지 미칩니다. 인과관계는 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만난 사람은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좋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은 우리 정신에 열매를 맺고 우주공간에서 업의 파동으로 진동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업만 남아서 따라갑니다. 하루 한가지라도 착한 이야기를 듣고 행할 때 그날은 잘 산 것입니다.
늘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닫고 살면 괴롭습니다. 쌓인 앙금은 풀어버리십시오. 하루하루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먼저 풀어버리십시오. 그러면 메아리로 상대에게 전달됩니다.


여성동아 2003년 11월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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