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사람들은 건강을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권봉화씨(49·경찰공무원)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 2000년 3월 대장암 수술을 받으며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요즘 특이한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다.
충남 서천군 마서면 죽산리. 해송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닷가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권씨는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고, 부인 김안순씨(48)는 텃밭에서 웃자란 채소를 솎아내고 있었다. 오리, 오골계, 기러기, 타조, 염소들에 둘러싸여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권씨에게선 환자 같지 않은 건강함이 넘쳐났다.
“요즘 오골계가 알을 품고 있는데 모이 줄 때가 되면 어떻게 아는지 귀신같이 나와서 먹어요. 아주 영리해요. 그런데 타조는 덩치는 크지만 좀 미련한 편이에요. 주인도 잘 못 알아봐요.”
가축들의 습성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는 그는 영락없는 농장주의 모습이었다. 그가 모이를 주는 사이 부인 김씨는 텃밭에서 상추, 배추, 열무, 쑥갓, 신선초, 돌나물, 선학초, 레드 치커리 등 각종 싱싱한 유기농 채소들을 소쿠리 한가득 담아들었다.
언제부터 가축들을 키우고 20여 가지에 가까운 유기농 채소들을 길러 먹게 됐느냐고 묻자 권씨는 “아픈 것도 복인 것 같아요. 만약 안 아팠다면 이런 생활도 모른 채 여전히 콘크리트에 갇혀 살았겠죠” 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는 병이 나기 전에는 군산의 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런데 대장암 수술을 받고 난 후 건강에 좋은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며 근 한달여를 찾아 헤맨 끝에 서천 바닷가에 있는 이곳을 발견했다.
“회복기 환자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공기 맑은 곳이 최고인데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은 곳은 왠지 억세고 무서워 마음의 부담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산이 낮고 평평한 지형을 보러 다녔고, 거기다 탁 트인 바다와 소나무숲이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사방을 둘러봐도 산의 높낮이가 비스듬해서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어 전원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도 적응하기 쉬운 곳”이라며 그는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마당 한켠에 축사를 만들어 닭과 오리를 키우고, 텃밭에는 채소를 기르고, 식사 후에는 소나무숲을 거닐며 산책을 하고 있어요. 집 뒤엔 바로 서해안과 연결되는 갯벌이 있어 심심하면 장화 신고 갯벌에 나가 조개를 줍고 꽃게도 잡고요.”
99년 치질인 줄 알았다가 대장암 판정
새로운 생활의 재미에 듬뿍 빠진 권씨의 예전 생활은 어떠했을까? 부인 김씨는 “한마디로 고기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지나가다 푸줏간을 보면 ‘저걸 사 가지고 가야 하는데…’ 하며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정도였다는 것.
“고기 좀 그만 먹으라는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 직업상 회식이 잦은 편인데 집에서 안 주면 나가서라도 꼭 먹었죠(웃음).”
이에 대해 권씨는 삼겹살에 소주는 누구나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변명을 한다.
“삼겹살을 구워 먹고 난 후 돼지기름에 콩나물, 송송 썬 김치 넣고 밥을 볶아 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는데요. 자주 먹을 땐 매일도 먹고, 적어도 이삼일에 한번은 그렇게 먹었죠.”
자신감에 넘쳐 암 따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권씨였다. 그러다 이상 징후를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99년 봄.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찌뿌둥하고 개운하지가 않았다. 예전과 다르게 무기력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피로가 쌓였나 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겨울로 접어든 어느 날 혈변이 나왔다. 변 보기가 쉽지 않았던 터라 치질이겠거니 생각하고 휴가를 내 동네의원으로 치질수술을 하러 갔다.
권봉화씨 부부는 텃밭에서 유기농 채소를 기르고, 가축을 직접 키우고 있다.
“레이저로 수술을 하기 때문에 수술 후 바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암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안하고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갔어요. 그런데 마취에서 깨어난 후 의사가 ‘아무래도 큰 병원 가서 검진을 받아야겠다’고 하는 거예요. 치질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군요.”
지방의 한 대학병원으로 가서 조직검사를 한 결과 대장암 3기 판정이 나왔다. 의사는 “진작 병원에 오지 왜 이리 늦게 왔느냐”며 “생존 확률 50%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권씨는 서러움이 북받쳤다고 한다.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졌나, 세상을 살면서 남에게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난가?’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나 병원 앞 벤치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그날 따라 흰 눈이 펑펑 내렸어요. 온통 천지가 하얀데 제 눈에는 세상이 그냥 까맣게 보이더군요.”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권씨는 아내에게도 자신의 그런 감정을 보이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썼다. 차라리 하늘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열심히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수술에 앞서 10여회 방사선을 쪼여서 종양의 크기를 최대한 줄인 후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곧장 입원을 해서 방사선 치료부터 받았다.
“방사선 치료를 할 때 처음에는 입원을 했지만 나중에는 며칠에 한번씩 가서 통원 치료를 받았어요. 병원에 가서 방사선 치료를 하는 시간은 약 5분 정도이지만 병원에 왔다갔다 하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몸이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방사선실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엄청 났지요. 그리고 직장에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야 하고…. 그때까지 직장에다 암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회식자리가 생기면 집에 일이 있어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빠지는 등 이중생활을 했지요.”
암 수술하며 아내의 사랑 확인해
2000년 3월, 서울 원자력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 남편의 병 수발을 위해 김씨는 아예 한달 동안 원자력 병원 근처에 방을 얻었다. 방사선 치료는 힘들지 않게 넘겼던 권씨였지만,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힘들어했다.
“항암제를 맞으면서부터는 입맛도 없고 입안이 다 헐었어요. 맵지 않은 음식을 먹어도 맵고 이상하게도 입안에서 뻘 냄새가 나는 듯했어요. 그러니 음식을 먹으면 구토만 나오고 음식을 통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음식을 먹지 못하자 10kg 이상 체중이 줄었다. 김씨는 남편의 입맛을 살리고자 매일 아침 시장에 나가 오렌지, 토마토, 사과 등을 사서 숟가락으로 긁어서라도 억지로 먹였다.
“남편도 만감이 교차했겠지만, 저도 마찬가지였지요. 남편은 작은오빠 친구로 열아홉에 만난 제 첫사랑이었어요. 남편이라기보다는 작은오빠처럼, 친구처럼 살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싶었지요. 남편이 아프자 잘못한 일만 떠오르고 이럴 줄 알았으면 스트레스 덜 받게 해줄 걸, 더 잘해줄 걸, 막 후회가 됐어요.”
불안하고 힘들 때 아내가 손을 꼭 잡아주며 “당신은 틀림없이 나을 거야” 위로를 해주면 어디선가 숨어 있던 용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나온다는 권씨. 눈물이 나게 아파서 괴롭다가도 아내 얼굴만 보면 ‘언제 아팠나’ 싶게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요. 주변이 다 암환자잖아요. 수술을 하러 들어갔는데 속을 열어보니 너무 퍼져 있어서 항암제만 뿌려주고 봉합한 후 환자에게는 ‘수술이 잘 됐다’고 하고 가족들만 따로 불러 ‘준비를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 3일 전에 입원한 환자가 안 보여서 물어보면 영안실로 갔다는 이야기 등. 그런 말들을 들으면 혹시 나도 그런 상태인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엄청 불안하지요.”
한방수육을 먹을 때는 반드시 6~7가지 유기농 채소와 함께 먹는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과일 사러 시장에 가는 것만 빼놓고는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 있으며 간호를 해주는 아내는 권씨에게 그야말로 구원의 여신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는 것도 부실하고, 24시간 환자에게 신경을 써주다 보니 김씨도 5kg이 훌쩍 빠져버렸다. 그런 아내를 보며 권씨는 정말 아내에게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보면 환자들이 집에서 어떻게 살다 왔는지 다 보여요. 자나깨나 배우자 걱정을 하며 환자 옆에 붙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환자가 천장만 보고 누워서 짜증을 내면 성질이 나서 집으로 가버리는 배우자도 있고, 로비를 돌아다니며 드라마를 보다가 환자가 잠들면 그때서야 병실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부부는 정말 평소에 잘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아플 때 짐짝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뼈 있는 충고였다.
드디어 퇴원을 해도 좋다는 허락이 내려졌다. 집으로 돌아온 권씨는 ‘죽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숨이 내쉬어지며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반면 김씨는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암환자 주변에는 유혹이 넘쳐나요. 생명이 담보로 잡혀 있기 때문에 몸에 좋다는 갖가지 건강법들이 주위에서 난립을 합니다. 그걸 따라 하다간 한달에 거의 몇백만원이 들어요. 하지만 그 내용물을 어떻게 믿겠어요. 그래서 남편이 퇴원해서 집에 가면 제가 직접 만들어 먹여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김씨는 우선 서점부터 찾았다. 암 관련 서적과 자연건강법에 관한 책들을 찾아 돈이 있으면 사고 돈이 없으면 몇 시간이고 서서 메모를 했다. 그렇게 사들인 암 관련 책이 김씨의 책상 위에 가득하다. 인터넷도 뒤지고 길을 가다가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항암’소리만 나오면 걸음을 멈추고 들었다. 어찌나 김씨가 열심이었는지 서점주인이 “강의 준비하세요?” 하고 물었을 정도.
마늘잼과 콩보약은 아내가 개발한 건강식
자신보다 더 배운 사람들이 쓴 것이니 얻을 것이 있겠다 싶어 열심히 메모하고 공부를 한 김씨는 서천으로 이사를 와서 공부한 대로 텃밭과 주변에 채소나 나무들을 모두 옮겨 심었다.
“여기 있는 가막사리는 폐를 맑게 하고, 독을 풀어줘요. 골담초는 신경에 좋고, 구릿대는 피를 잘 돌게 합니다. 까마중은 강장약으로 피로회복에 좋고, 돌나물은 열을 내려주고 독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어요. 짚신나무는 각종 암에 좋은 약재로 쓰이고요.”
줄줄줄 막힘 없이 대답할 정도로 김씨는 박사가 다 되었다. 다른 암도 마찬가지지만 대장암은 특히 식습관과 관련이 깊다. 불에 직접 구운 고기나 생선을 오랫동안 많이 먹을 경우 연기와 고기(생선)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암 유발 물질이 생성되기 때문에 가급적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붉은살 육류를 과잉섭취하면 대장에 좋지 않기에 1주일에 1근 이하로 줄여 섭취를 해야 한다. 또 물은 매일 8잔 이상 마시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매끼 섭취해야 하는 것이 기본.
권씨가 매일 아침 섭취하는 마늘잼과 콩보약(왼쪽사진). 그가 직접 기른 마른 약재와 나물들.
“한번 형성된 식성은 쉽사리 고쳐지지가 않나 봐요. 남편은 지금도 고기를 먹고 싶어해요. 그래서 남편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땐 수육을 만들어요. 수육은 고기를 삶는 과정에서 동물성 지방이 녹아 빠지기 때문에 포화지방을 덜 섭취할 수 있거든요. 저는 돼지고기를 삶을 때 각종 약재를 함께 넣어서 삶아요. 한방수육을 먹을 때도 원칙이 있어요. 반드시 6∼7가지 종류의 채소를 고기에 싸서 먹는 것이지요.”
김씨는 남편의 아침식사로는 자신이 직접 재료들을 선별하고 손질해 방앗간에 가서 빻은 선식과 마늘잼 3스푼(밥숟갈 크기), 콩보약 1스푼, 토마토 2∼3개, 집에서 만든 요구르트를 준비한다. 점심은 직장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따로 챙기지는 않고, 가급적 한식을 먹으라고 권한다. 저녁은 잡곡밥에 청국장이나 된장찌개, 시래깃국 등을 기본으로 하고 나물 2∼3가지, 겉절이, 멸치볶음이나 게볶음, 장아찌류 1∼2가지를 바꿔가며 올려놓는다. 물은 오갈피와 인삼, 대추, 감잎, 뽕잎 등을 넣고 달여 그 물을 차처럼 수시로 마시게 한다.
아내의 지극 정성 덕에 수술한 지 3년8개월이 지난 지금 권씨는 옛날 체중을 회복하고 체력도 아주 좋아졌다.
“작년엔 야간대학에 입학했어요. 나이가 조금 더 들면 다니기 어려울 것 같고 만에 하나 몸이 더 아프면 공부하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 결심을 했지요. 주 5일 강의를 들으러 가는데 힘은 들어도 보람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권씨 곁에 암의 그림자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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