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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최고의 조연배우로 떠오른 성지루의 인생역정

“아이들이 ‘TV에 아빠 나왔다’고 환호성 지를 때 살맛이 나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장윤선 ■ 사진·홍상표

입력 2003.10.13 10:07:00

최근 한국영화는 ‘성지루가 출연한 영화와 출연하지 않은 영화로 나눌 수 있다’고 할 만큼 최고의 조연배우로 인기를 얻고 있는 성지루. 보수적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판에 뛰어든 그가 인정받는 배우가 되기까지 인생역정 솔직고백.
한국영화 최고의 조연배우로 떠오른 성지루의 인생역정

“아니, 어떻게…, 식사들은 하셨어요?” 오전 11시에 만났는데, 영화배우 성지루(36)는 밥부터 걱정했다. 마치 시골부모가 자식의 끼니를 걱정하듯 그렇게 물었다. 수많은 연예인들을 만나봤지만 첫대면에 밥부터 걱정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짐작대로 성지루는 따끈한 ‘한사발의 숭늉’ 같은 사람이었다. 그 역시 386세대라 그런가? 뭔가 ‘코드가 맞는 사람’인 것 같았다.
‘가문의 영광’ ‘선생 김봉두’ ‘불어라 봄바람’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같은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관객의 배꼽을 쥐고 흔드는 배역이었다. 그래서 간혹 사람들은 그를 ‘코믹배우’로 인식한다. ‘성지루’라는 이름 석자는 아직 낯설어도 그가 출연한 영화의 캐릭터를 설명하면 대부분 ‘아, 그 사람’ 하고 무릎을 친다. 인터넷 다음카페엔 팬클럽도 생겼다. 지루찌루(cafe.daum. net/ggiru)엔 성지루의 각종 스틸사진과 자료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오늘은 아직까지 발각(?)되지 않은 성지루의 숨은 매력을 찾겠노라 마음먹고 그의 차에 동승했다. 그리고 통기타와 라이브 음악으로 유명한 구일산 백마로 향했다.
“이 집이 피자도 팔고, 분위기도 좋아서 인터뷰하기에는 딱이에요. 아, 맞다. 아침에 피자는 좀 그렇죠? 그래도 어쩌지. 여기 말고는 문을 연 데가….”

학창시절 약한 친구 괴롭히는 악동에겐 도시락에 모래 뿌려서라도 복수

필자가 고민할 걸 그가 대신하고 있었다. 하긴 스케줄이 비는 날이면 영화배우 설경구와 ‘카프리 선’ 오렌지주스에 빨대를 꽂아 마시면서 동네 놀이터에 앉아 수다를 떨고, 가끔 차승원 이원종 안재욱과 어울려 술 한잔 기울이며 인생과 연기를 논하고, 촬영장에서는 스태프들이 나르는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눠 지는 배우이니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3년반 동안 무려 12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가 영화판에서 ‘진국’이라고 손꼽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건 아닐지.
무엇보다 잘나간다고 거들먹거리는 배우들과 달리, 있는 듯 없는 듯 주연을 받쳐주면서 본인의 캐릭터를 묘하게 살려내는 성지루는 아마도 13년간 연극무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 덕에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건지 모른다. 더 넓게 본다면, 어릴 때부터 받은 가정교육이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섬세하고 작은 배역부터 날카롭고 드센 역할까지 척척 소화해내는 게 아닐까.
“아버지는 서울대를 졸업하셨어요. 그리고 고급 공무원을 지내셨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아저씨가 어느날 ○○시장에 뽑히고 그랬으니까 우리집이 별볼일 없는 집안은 아니에요. 그러니 집안이 얼마나 엄했겠어요. 연극의 ‘ㅇ’자만 꺼내도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어요. 아버지는 제가 사관학교에 가서 군인이 되거나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죠. 그런데 전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제 인생의 진로를 정했어요. 누가 뭐라 해도 배우가 되겠다고 말이에요.”
‘말썽꾸러기.’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는 피식 웃으며 허공에 대고 그가 던진 말이다. 고교시절의 성지루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개구쟁이’ 이거란다. 어찌 들으면 귀엽고, 반대로 들으면 ‘제임스 딘 같은 반항아’였나? 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한국영화 최고의 조연배우로 떠오른 성지루의 인생역정

영화에서 코믹한 이미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성지루.


“학창시절 응원단장, 행사 진행은 제가 도맡아했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지금 다시 생각만 해도 즐겁다∼. 왜 거, 학교에서 학생들을 분류할 때 쉽게 세 가지로 나누잖아요. 공부 잘하는 애, 쌈질하는 애, 있으나마나한 놈(웃음). 소풍 갈 때 전 항상 엄마한테 김밥 좀 넉넉히 싸달라고 해서 있으나마나한 놈들과 같이 어울렸어요. 우리 때만 해도 시절이 어려워서 소풍 갈 때 김밥 대신 흰 쌀밥에 달걀 프라이 하나 덮어오거나 맥심 병에 깍두기 담아오는 애들도 있었거든요. 그럼 그거 다같이 펼쳐놓고 먹는 거예요. 그 친구들 자존심 상하지 않게 ‘목 메는 데 김치 잘 싸왔다’ ‘야외에서 먹는 쌀밥은 어떤 맛일까’ 하면서 애들을 웃겼어요. 처음엔 4∼5명이 낄낄대고 웃다 보면 어느새 우리 반 애들이 다 모여요. 그럼 전체 오락시간이 되고, 그때부터는 제 독무대가 펼쳐지는 겁니다. 제가 사회를 많이 봤으니까요.”
그렇게 어울린 친구들이 교실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성지루에게 정이 담긴 도시락을 건네기도 했다.
“배고프니까 수업시간에 도시락 까먹잖아요. 선생님 안 보실 때 얼른 찬밥 한덩이 입안으로 쑤욱 밀어넣으면 ‘있으나마나’한 놈 중 하나가 소시지 반찬을 쑥 내밀어요. 그럼 둘이 그거 먹으면서 씩 웃고 마는 거죠.”
그뿐 아니라, 성지루는 학교에서 힘 없고 약한 아이들 괴롭히는 양아치 같은 녀석들을 골탕먹이는 데도 선수였다.
“싸워서 이길 것 같으면 싸우고, 내가 힘이 좀 달릴 것 같으면 교실에 몰래 들어가서 도시락에 모래를 확 뿌려요.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렇게 분풀이라도 해야지. 전 착한 사람이 나쁜 놈한테 당하는 꼴은 죽어도 못봐요.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누군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으면 꼭 끼어들어 해결을 보려는 경향이 있어요. 집사람은 제발 그런 성질 좀 버리라고 하죠. 그래서인지 학창시절 친구들은 저더러 정의파라고 많이들 얘기해요. 크리스마스 때는 음악카드도 선물받고 그랬다니까요!”
학교생활은 생기발랄했지만 집에서는 내성적이었다. 형 하나와 여동생 둘이 있었는데 집에서는 별로 말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너무 엄한 게 싫어 밖으로 돌기도 했고 가출한 적도 있다.
“요즘도 저희 집은 무조건 큰절을 합니다. 물론 아버님도 의관을 제대로 갖추시고 인사를 받으시죠. 친구네 가도 마찬가지예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큰절을 올리지 않으면 기분이 영 이상해요. 촬영장이든 어디든 찬물 한잔이라도 어른부터 드리고, 챙기는 게 버릇처럼 제 몸에 배어 있어요. 학창시절엔 그런 권위주의가 참 싫었는데, 나이를 먹고 이제 아이들이 생기니까 그때 아버지가 왜 그렇게 가르치셨는지 좀 이해가 돼요. 오히려 아버지 영향으로 좀더 올바르고 대쪽 같은 삶을 지향하게 된 것 같아요. 선비정신이랄까, 뭐 그런 게 제 피에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예대 연극학과에 입학했을 때 진정한 배우의 길을 가겠노라 마음먹었고, 대학 1학년 때부터 극단 목화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풀통을 들고 다니며 포스터 붙이러 발품 판 것은 일도 아니고, 당장 차비가 없어서 걸어다닐 지경이라도 연극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연극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돈으로 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한국영화 최고의 조연배우로 떠오른 성지루의 인생역정

성지루는 ‘배우는 한 색깔이어서는 안된다’는 연기론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저희 연습장이 강남에 있었는데, 그때 제가 섬유센터 지하식당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음식 나르는 일을 했어요. 그 이후엔 연극 연습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느날인가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 밥을 먹고 있어요. 고등학교 동창 중 하나가 그 회사에 다녔던 거예요. 그런데 서로 아는 척 안했어요. ‘나는 원래 연극하는데, 이거 알바야’ 이렇게 말하기도 쑥스러웠고 그 친구 또한 굉장히 당황하는 거예요. 연극한다더니 식당에서 일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죠, 뭐. 그 후로 그 식당에서 단 한번도 그 친구를 만난 일이 없어요. 걔도 절 피한 거겠죠.”
그와의 얘기가 깊어질수록 ‘이 남자, 참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걸어온 길과 생각하는 바가 일치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세상인데, 그는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한눈팔지 않고 일단 시작한 일을 차분히 해내는 모습 속에 장인정신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배고프고 가난한 직업’인 연극에 대한 열정 하나로 세상의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20대에는 발성연습을 하다 목을 다쳐 편도선을 아예 다 떼어내기도 했다. 이 또한 연기를 잘하기 위한 그의 노력 중 하나였다.
이처럼 연기는 자기 인생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생명수 같은 것이었다. 한평생 연기를 하며 살고 싶었지만, 성지루는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 보험맨을 병행하게 된다. 모 보험회사에서 보험세일즈를 했는데, 딱한 사정을 안 연극배우 윤석화가 보험을 몇개씩 들어주는 등 지인들의 도움 덕에 잘나가는 보험맨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고객들도 철두철미하게 관리했다.
이렇게 보험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성지루는 어느날 ‘안락한 보험의자’에 앉아 인생을 흘려보낼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돈 잘 벌고 고객관리 잘하는 보험맨의 유혹을 떨치고 가난하고 배고픈 연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인생의 방향키를 다시 연기자로 돌린 것이다.
보험세일즈를 정리하고 연기에 전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임상수 감독이 영화 ‘눈물’을 찍자고 제안했다. 임감독이 성지루가 출연한 연극을 직접 보고 손짓한 것이였다. 그렇게 영화연기의 출발선을 끊으니 여기저기서 짤막한 단역이지만 출연요청이 쇄도했다. 조연을 조연답게 잘 소화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감칠맛을 위해서는 배우 성지루가 조미료처럼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동안 성지루가 출연한 작품 중에는 ‘의리’나 ‘보은’ 때문에 출연한 게 많았다. 13년간 연극과 보험 영업을 하며 신세를 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 고마운 이들에게 기꺼이 자신이 가진 장기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카메오, 우정출연 등 몇 컷 잡히지 않는 배역이지만, 모든 배역을 성실히 해냈다. 3년 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진 빚을 이젠 다 갚았다. 그래서 앞으론 성지루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직접 찾아 연기에 몰입할 생각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한편의 영화에서 출연하는 장면이 얼마 안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간혹 촬영 스케줄이 주연배우 위주로 가게 돼 조연들이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피해를 볼 때도 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아예 차에 침대와 옷가지들을 넣어 갖고 다닌다. 예전에는 고상하게 책도 읽었는데 이제는 촬영장에 가면 으레 잘 자리를 펴놓고 다음 장면을 기다리거나 대본을 읽으며 씨름한다. 어떻게 하면 더 인상적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고.
그가 연기에 푹 빠져 있을 때, 그의 가족은 어떤 심사였을까. 성지루의 부인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후배다. 나이는 70년 개띠인데 학번은 96학번으로 늦깎이 대학생이었던 셈이다. 아내도 보통 여자는 아니라고 혀를 내두른다. 회사 얌전히 잘 다니다 때려치우고 연극을 하겠다고 극단에 들어갔다가 다시 대학에 들어와 공부를 했으니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녀와 결혼한 결정적 계기는 형의 교통사고와 관계가 있다. 아내와 한창 데이트를 즐길 무렵 형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병수발을 아내가 많이 도와준 것. 김밥을 직접 싸오기도 했고, 사골국물을 끓여오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잘하는 여자라면 배우자로는 그만이라고 생각해 웨딩마치를 울렸다. 슬하에 다섯 살배기와 세살배기가 있는데,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며 머쓱하게 웃는다.



한국영화 최고의 조연배우로 떠오른 성지루의 인생역정

성지루가 출연한 ‘불어라 봄바람’의 한장면.


성지루가 연기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은 아버지는 결혼 후 지금은 별 말씀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집안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지금까지 견뎌낸 고통은 사실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처럼 ‘빛나는 조연’배우로 살 수 있는 건 언제나 등 뒤에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다. 성지루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성지루에게 고난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손수 편지를 써 보내서 그를 위로하고 지지했다.
“엄마는 항상 네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이런 어머니 편지를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닌 적이 많다. 한때는 구겨버린 적도 있지만 그만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겉돌거나 비뚤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연거푸 12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기록 세워

이제 성지루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연기 이외에 본인이 가진 숨은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시나리오를 찾고 있다. 좀더 나은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그는 “꼭 주인공이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제가 가진 A코드 B코드 C코드 모두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한정된 역할에 치중했는데 앞으로는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하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성지루의 지론은 “배우가 한 색깔이어서는 안된다”는 것. 배우는 그야말로 총천연 빛깔을 갖고 있으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색을 꺼내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TV를 보면서 “아빠 나왔다”고 환호성을 지를 때, 정말 살맛 나고, 극장에 걸린 간판을 보면서 우리 아빠는 영화배우라고 으쓱대는 큰아들을 보면 기운이 난다고 한다. 그간 12편의 영화를 찍느라 제대로 쉬지 못해 최근엔 잠시 일을 접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는 그는 언제든 새롭게 변신해 무대에 설 수 있다고 장담한다.
성지루의 아버지는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시간이 너무 지루해 이름을 ‘지루’라고 지었다고 하지만, 인터뷰 3시간 동안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아침 7시에 달리기를 하기로 했으면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셨어도 영락없이 그 시간이 되면 뛰러 간다. 그런 성지루에 대해 최근 영화계에서 떠도는 ‘근거 있는’ 소문이 하나 있다. 바로, “성지루가 하면, 뜬다!”

여성동아 2003년 10월 4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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