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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통일 책 ‘참 좋다! 통일세상’ 펴낸 임수경

“이혼 후 아빠 없이 자라는 아들 보며 느끼는 애틋한 심정 & 자녀교육법 첫 공개”

■ 글·최숙영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10.02 12:01:00

임수경이 최근 어린이를 위한 통일 책 ‘참 좋다! 통일세상’을 출간했다.
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한 대표로 참석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로, 대학강사로, 통일운동가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혼 후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임수경의 근황과 자녀교육법 첫 공개.
어린이를 위한 통일 책 ‘참 좋다! 통일세상’ 펴낸 임수경

평양에서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던 89년 여름, 임수경(36)은 ‘단발머리 대학생’으로 세상에 기억되었다. 당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한 대표로 참가한 그는 45일 동안 북한에 머물다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건너왔다. 남과 북에 모두 ‘쇼크’를 주었던 그 사건 이후로 세상은 ‘임수경’이란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이제는 그도 어느덧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학부형이 됐다. 한 아이의 엄마로, 대학강사로, 그리고 통일운동가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최근 어린이들을 위한 통일 책 ‘참 좋다! 통일세상’을 펴냈다.
“89년 평양의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이후 감옥에서 세월을 보내고 93년 석방 됐을 때 지인들이 임수경 석방 환영회를 해주었어요. 벌써 10년이 흘렀는데 그동안 제 이름을 걸고 한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책을 낸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그래서 더욱 기쁩니다.”
지난 9월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임수경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표정도 약간 상기돼 있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그의 책에 그림을 그린 박재동 화백을 비롯해서 한완상, 이부영, 권영길, 임종석 등 많은 정치인과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임수경의 아들(8)이었다. “저는 상명부속초등학교 1학년 매반 최재형입니다”라고 씩씩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최군은, 꾸벅 인사를 하더니 “많이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귀여운 멘트까지 날렸다. 출판기념회장은 순간 웃음바다로 변했다.
임수경은 그런 아들을 대견한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며칠 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을 때도 자리에 앉자마자 아들 얘기부터 꺼냈다. “재형이도 이 책을 읽었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벌써 두번째 보고 있는데요” 하며 웃었다.
“재형이는 임수경의 팬이에요. 일방적으로 엄마를 지지하는 아이죠. 강연회가 있을 때마다 가끔씩 데리고 가는데 그때도 제가 하는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집에 와서는 따라 하곤 해요. 출판기념회 날도 보니까 몇몇 아는 이들한테 사인을 해주고는 그 밑에다가 ‘빨리 통일세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글도 썼더라고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워요.”

어린이를 위한 통일 책 ‘참 좋다! 통일세상’ 펴낸 임수경

초등학년 1학년인 아들 재형이를 데리고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임수경.


수다스럽게 아들 자랑을 하는 모습을 보니 출판기념회장에서 보던 것하고는 또 달랐다. 출판기념회장에서의 모습은 그야말로 통일운동가의 모습이었다. 강단 있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기자와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아들 얘기가 나왔을 때, 그는 영락없는 한국의 어머니였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그렇다면 임수경은 자녀교육을 어떻게 시키고 있을까. 더구나 99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은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부모의 이혼으로 재형이가 아빠 없이 자란다는 거예요. 물론 아빠를 만나고 싶어할 땐 만나게 해주지만 다른 집하고는 달리 아빠와 함께 살지는 않으니까 혹시 재형이가 어둡고 우울한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해요. 친정엄마, 아버지께서 사랑을 많이 베풀어주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재형이를 예뻐하지만, 재형이도 아이라서 말을 안할 뿐, 상처가 있을 거예요. 형제가 많은 집을 부러워하고 ‘나도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안쓰럽기도 해요. 엄마로서 마음이 아프죠.”
아빠 없이 자란 아이답지 않게 밝고 명랑한 아들 원하는 것은 다 해주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

주말에 놀이동산을 가더라도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다른 집 아이들을 볼 때면 ‘저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럴 때마다 재형이를 의식하게 된다. ‘내 마음도 이런데 하물며 재형이는 오죽할까…’ 싶어서다.
“다행스러운 건 아빠 없이 자란 아이답지 않게 재형이가 밝고 명랑해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저는 혼자 아이를 키우지만 재형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주려고 해요. 생일날에도 가수 안치환을 좋아하는 걸 알고는 안치환 콘서트에 데리고 갔더니 좋아하더라고요.”
요즘 젊은 엄마들처럼 극성맞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임수경은 아이가 뭘 원하고 흥미있어하는지를 빨리 알아내서 적극 지원해준다.
다른 집 아이들보다 일찍 컴퓨터를 사준 것도 이 때문인데, 그 바람에 재형이는 ‘컴퓨터 도사’가 됐다. 워드경진대회에서 금상을 타오는가 하면 인터넷은 물론 채팅도 잘한다.
“올해 처음으로 피아노 학원에 보냈는데 배운 지 얼마 안되는데도 피아노도 잘 치더라고요. 음감이 있나 봐요. 암기력도 뛰어나서 서울 지하철 노선은 물론이고 지난번 미국과 일본에 데리고 갔을 땐 뉴욕 지하철 노선과 도쿄 지하철 노선까지 줄줄 외우더라고요. 지난해 월드컵대회가 열렸을 때도 각 나라의 국기와 32개국의 대진표까지 외워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어요. 요즘에는 한자에도 관심이 많아서 초등학교 1학년인데 벌써 4학년이 배우는 한자를 익히고 있으니 재형이는 대단한 아이 같아요. 제 아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장차 어떤 인물이 될지 정말 기대가 돼요(웃음).”

어린이를 위한 통일 책 ‘참 좋다! 통일세상’ 펴낸 임수경

이혼 후 남편의 빈 자리를 대신하여 재형이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친정부모에게 임수경은 늘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 여름방학 때 그는 재형이를 데리고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 지난 7월20일 방학하자마자 인천공항을 출발, 태국에서 며칠 보내다가 네팔의 카투만두, 룸비니, 포카라를 거쳐 해발 4130m에 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올라갔고, 돌아올 때는 캄보디아를 들렀다 왔다.
33일간의 긴 여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재형이는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안나푸르나를 등반할 때도 오히려 같이 갔던 일행들이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왔는 데 반해 재형이는 꿋꿋하게 “난 가야겠다”고 말해, 임수경도 포기하지 않고 아들을 따라간 것이라고 한다. “아들이 극성맞아서 제가 고생을 많이 했다니까요” 하는 말 속에 은근히 아들 자랑이 배어 있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게 많아요. 솔직히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는 여행 한번 변변하게 못했어요. 이번 여행도 마침 박사과정(외국어대 신문방송학 언론법제전공)이 끝나서 갈 수 있었던 건데, 너무 빡빡하게 일정을 잡아서 힘들긴 했지만 참 좋았어요. 재형이도 갔다와서는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범생이 스타일이라서 전에도 잔소리를 할 일이 없었지만, 여행을 갔다와서는 어떤 일이건 혼자 해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졌어요. 지난해 월드컵대회 때는 축구에 빠진 나머지 어른이 되면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하더니 요즘엔 산악인이 되겠대요. 요즘 매일 읽는 책도 산에 관한 책이에요. 히말라야에 필이 꽂혔나 봐요(웃음). 어쨌든 이제부턴 여행을 자주 가려고 해요. 아이한테도 교육적으로 좋고 나도 일상에서 탈출하게 되니까 삶의 활기가 되는 것 같아요.”
“재혼할 생각은 없냐”고 물으니까 “누구하고 해요” 하고 시니컬하게 반문했다. 가끔씩 외로움도 느끼지만, 외롭다고 해서 다시 재혼할 생각은 없다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외롭고 심심하더라도 재형이를 키우면서 혼자 살 생각이라고 한다.
“친구들은 ‘그럼 연애라도 하라’고 하는데 남자를 만나는 것도 귀찮게 여겨져요. 연애를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전화를 해야 되고 또 바쁘더라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줘야 하잖아요. 게다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매일매일 나의 일상사를 말해줘야 하고, 그리고 더 귀찮은 건 상대방의 일상사도 알아야 하잖아요. 그 생각하면 연애하는 것도 싫어요. 조금 외롭더라도, 외로움을 즐기면서 혼자 살죠, 뭐….”

어린이를 위한 통일 책 ‘참 좋다! 통일세상’ 펴낸 임수경

지난 9월8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임종석 국회의원,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 박재동 화백 등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참석했다.


임수경은 요즘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통일 책도 출간했고 박사과정도 끝났고, 이제는 논문 쓰는 일만 남았다. 논문이 끝나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자신의 속내를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재형이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처럼 밝고 명랑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거예요. 또래 아이들보다 너무 어른스러워서 가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잘 자라줄 거라고 믿어요. 저 역시 재형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 말과 함께 밝게 웃어 보이는 임수경. 이제는 단발머리 대학생이 아닌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형으로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이혼의 아픔을 겪었지만, 그 아픔을 딛고 아들 재형이를 밝고 건강하게 키우는 모습은, 또 한번 세상에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여성동아 2003년 10월 4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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