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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최고 명랑 불륜 코미디 ‘앞집 여자’의 아줌마 작가 박은령

■ 글·조득진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3.09.04 17:46:00

‘앞집 여자’의 ‘지금,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십니까?’
불륜이라는 다소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경쾌하게 풀어내 인기를 얻은 드라마 ‘앞집 여자’.
뻔뻔한 아줌마 아저씨들의 ‘촌철살인’ 대사 뒤엔 우리 이웃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줌마 작가’가 있었다. 올해로 데뷔 2년차인 늦깎이 작가를 만났다.
인기 최고 명랑 불륜 코미디 ‘앞집 여자’의 아줌마 작가 박은령

아이들을 키우느라 늦게 데뷔한 박은령 작가. 덕분에 생활 속의 세세하고 진솔한 부분까지 잡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 밤 마지막 원고를 털었다는 그는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컴퓨터를 끄고도 새벽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불면증에 좋다는 허브차를 주문하고는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켰다.
“그동안 남성들 시각에서 외도를 다룬 드라마와 달리 여성의 시각에서 아줌마의 바람기와 성적 불만을 과감하게 드러낸 것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아요. 아줌마로 오랫동안 재야에 있다 보니 주변에 있는, 제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용케 잘 끄집어낸 것 같아요.”
강북 아파트에 사는 30대 부부 세 쌍의 결혼과 외도를 다룬 드라마 ‘앞집 여자’의 박은령(37) 작가. 드라마는 두 사람만 제외하고 네 사람 모두 바람을 피우는 내용을 담아 또 하나의 불륜 드라마라는 여론의 지탄을 받을 위험성을 띠었으나, 무거운 이야기를 경쾌하면서도 현실성 있게 전개해 평균 25%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복의 쾌감’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주부들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었다는 반응.
“드라마 안에는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요. 극중 진희경씨와 그 남편의 경우도 그동안 무가치한 일로 치부되어 온 전업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힘들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한 구도죠. 그런 이야기는 여자가 하면 재미없거든요.”
그는 이번 드라마의 흥행을 ‘배우들의 힘’으로 돌렸다. 모두들 베테랑인데다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감칠맛까지 연기했다는 것. 특히 집필 단계에서부터 염두에 두었던 탤런트 손현주는 아내 몰래 바람 피우는 남편의 모습을 작가 자신도 놀랄 만큼 리얼하게 표현했다고.
“허영란씨의 캐스팅에 있어선 약간의 잡음이 있었어요. 유부남의 아내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언니하고 사는 사람은 껍데기래요. 사랑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언니가 이혼해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는 흔하지 않잖아요. 원고를 쓰면서 그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밀어붙였죠.”
드라마 ‘앞집 여자’는 당초 미니시리즈로 기획된 작품이 아니었다. 그가 지난해 MBC 드라마극본공모에 당선된 후 매달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과제작 단막극에서 출발한 것. 애초의 대본은 ‘약간 싸하고 서늘한 분위기’였으나 각색을 거쳐 ‘백전고수 프로바람꾼 주부’라는 앞집 여자의 캐릭터가 탄생했다.
“원래는 코믹이 아닌 정극 스타일이었는데, 드라마 국장님이 코믹으로 만들어 보자고 하더군요. 기획의 승리라고 할 수 있죠. 신인작가에게 미니시리즈를 맡기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셔서 끝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해 서른 일곱의 그는 지난해에 방송작가로 데뷔한 신인이다. 데뷔전까지는 평범한 주부였다고. 대학 졸업 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10여년 동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논술과외를 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어요. 살림을 하면서도 늘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죠. 그러나 여느 전업주부처럼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지난 99년부터 2년 동안 작가교육원에서 공부를 했어요.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히 MBC 드라마 공모에 당선이 됐죠.”

인기 최고 명랑 불륜 코미디 ‘앞집 여자’의 아줌마 작가 박은령

히트한 드라마의 필수조건은 명대사들이 많다는 점. ‘앞집 여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섹스에 대한 솔직한 대사들이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극중 유호정 부부의 “자꾸 퉁기면 딴 데 가서 풀어버린다” “푸는 건 좋은데 걸리면 죽는다”는 대화, 진희경 부부의 “날이면 날마다 홍콩 보내주잖아” “홍콩은커녕 울릉도라도 가봤으면…” “김밥만 굵게 싸면 뭐하냐고” 등이 대표적.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홍콩 갔다 왔다 등은 사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지금껏 드라마에서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쇼킹한 거죠. 다들 자기가 해 본 말이 TV에서 나오니까 통쾌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능청맞은 배우들의 연기력도 한 몫 했고요.”

두 딸 둔 아줌마라 대사가 리얼했다
그가 꼽은 명대사는 유호정이 자신의 불륜 사실을 알고 따지는 남편에게 던진 “당신이 하면 실수고 내가 하면 바람이냐?”.
“저 또한 아줌마이기 때문에 그런 대사가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생활에서 체득한 표현이잖아요. 유호정씨와 김성택씨의 로맨스 장면에도 좋은 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그건 반응이 없어요. 주부들간의 농익은 대사처럼 몸으로 쓴 것이 아닌, 머릿속에서 뽑아낸 말이라 그런 것 같아요.”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팬들의 반응도 뜨겁다. 드라마 홈페이지엔 수천 건의 의견이 올라와 있다. 의견 중에는 “예방 주사엔 균이 들어있다. ‘앞집 여자’가 외도를 다루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점이 현실에서의 불륜을 줄일 수 있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잡은 고기에 떡밥 안주지만 이 드라마의 교훈은 잡은 고기에도 떡밥을 주자는 이야기다” 등 작가의 표현만큼이나 기막힌 의견도 있다.
“불륜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불륜은 유사이래 우리 주변에 늘 있어왔던 소재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늘 다루어왔죠. 요즘 드라마 중 불륜을 소재로 다루지 않은 것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니까요. 다만 그것을 음습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앞집 여자’의 주인공은 유호정도, 변정수도, 진희경도 아니에요. 바로 미장원에서, 목욕탕에서 만나는 주부들이 주인공이죠. 그들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방송작가 김정수처럼 인간미가 묻어나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그. “그동안 방송작가를 하면서 잘할 수 있을지 의심을 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그래도 쓸 수 있는 힘이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그는 드라마가 끝나면 한동안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귀띔했다.

여성동아 2003년 9월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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