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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제작자로 나선 영화배우 정준호

“새로운 인생 시작하는 나의 사랑과 야망”

■ 글·최숙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9.04 17:24:00

인기 배우 정준호가 영화 제작자로 나섰다.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에 출연함과 동시에 제작자로 겸업을 선언, 제2의 인생를 맞고 있다.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정준호가 털어놓는 일과 사랑, 프라이버시.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제작자로 나선 영화배우 정준호

지난 8월13일, 한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는 강원도 망상해수욕장. 해변 한쪽에선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촬영이 한창 진행중이다. 극중에서 형사 역을 맡은 박철과 박상우는 촌스런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트장 한쪽에 마련된, 파라솔 의자에 한 남자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는 그는, 바로 영화배우 정준호(34)였다.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에 출연함과 동시에 제작자로 나섰기 때문일까.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이 영화의 제작자로 나서서 투자를 하긴 했지만 배우로서 더 충실하려고 해요. 배우가 제작을 한다는 게, 할리우드에선 흔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경우라서 민감한 문제이기도 한데, 고민도 많이 하고 선후배들의 조언도 들으면서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에요. 당장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하고 싶은 걸 못하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아직 결혼을 안했으니까, 총각일 때 ‘하고 싶은 걸 하자’고 생각했죠. 결혼하면 책임져야 할 와이프도 있고…. 아무래도 마음의 부담감이 커져 하고 싶은 일도 잘 못할 것 아니에요.”
영화 제작에 뛰어든 이유를 밝히는 정준호,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인터뷰를 할 때도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말을 골라서 하고 표정도 더 여유가 있어졌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로 나서기까지 그에겐 오랜 준비기간이 있었다. 지난 5월엔 영화사 ‘주머니 필름’도 설립했다. 그동안 개그맨 서세원 이경규 심형래 등이 영화사를 설립한 전례가 있지만 인기 배우가 직접 영화사를 설립한 건 그가 처음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영화사 샘과 함께 공동제작을 하면서 제작비 투자 유치에도 발벗고 나섰다. 그 결과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무명의 설움 딛고 톱스타가 되기까지 그의 뒤엔 늘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정준호는 겸손해한다. 어깨에 힘을 주고 으스대지도 않고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도 않는다. “나의 직업은 ‘영화 제작자’보다는 ‘배우’가 더 우선이고 사람들한테도 연기 잘하는 배우로 알려지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영화 제작도) 배우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예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버린 두 북한 병사의 남한 탈출기를 코믹하게 그린 영화인데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감탄스러웠어요. 그래서 아낌없이 투자한 건데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성원해주셨어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영화를 만들 생각이에요.”
이런 겸손함이 오늘의 정준호를 만든 것일까. 95년 MBC 2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몇년 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연기자가 되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제작자로 나선 영화배우 정준호

연극이 하고 싶어서 낮에는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연극계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포스터를 붙이다가 감독의 눈에 띄어 CF를 찍게 됐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모델생활을 하다 연기자로 데뷔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첫 작품은 ‘동기간’이었으며, 처음부터 주역을 따내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인생은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출발은 좋았지만 곧 슬럼프에 빠졌다. 97년 출연했던 드라마 ‘동기간’이 ‘비정상적인 애정관계를 다뤘다’는 여론에 밀려 조기 종영 됐기 때문이다.
당시 출연하던 드라마가 뜻하지 않게 조기 종영되자 그는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한강에 가서 소주를 마시며 울기도 하고, 마음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부모님과 누나가 용기와 희망을 주었어요. ‘넌 우리 집안의 장남이고 장손이지만 정 힘들면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이 일을 포기하면 결국 너 자신을 포기하는 셈이 되는데 그러면 네가 힘들지 않겠냐’고 말이죠. 그 말에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뜻대로 일이 안되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들의 말에 혼란스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정준호. 그러던 차에 MBC ‘왕초’에 출연하게 됐고 이후 ‘안녕 내 사랑’을 통해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유머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낚시하며 인생을 생각하는 멋진 남자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이 제게 결정권을 많이 주셨어요. 3남1녀 중 장남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면 제가 결정을 하도록 배려를 해주었죠. 덕분에 최악의 상황에 부딪혀도 어려움을 이겨낼 자신이 있어요. 또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강했고요.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인기 배우인 그가 영화 제작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내고야 마는 강인한 성격, 고집,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허허거리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그에게서 인생의 자신감 같은 것이 언뜻 엿보였다.
정준호는 연기를 할 때나 일을 할 때, 스트레스가 쌓이면 남을 웃기거나 웃으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고 한다. 이번 영화를 촬영할 때도 웃다가 NG를 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구나 한번 웃음이 터지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언제 웃음이 터져나올지 영화를 찍으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한두 번 웃다가 NG를 내면 스태프들도 그냥 애교로 웃어넘기지만 네번, 다섯번씩 웃다가 계속 NG를 내면 덩달아서 촬영장의 분위기도 썰렁해진다고 했다.
“왜 안 그렇겠어요. 날씨가 좀 덥습니까. 당연히 짜증이 나죠. 더구나 피서철에 촬영을 하다 보니까 여행객들이 오며 가며 너무 많이 구경을 하시는 거예요. 그통에 동시녹음을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또 동해쪽은 통제하는 구역도 많아서 안타깝게도 촬영을 할 수 없는 곳도 많아요.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닌데 그나마 다행인 건 홍보는 잘될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구경을 하셨으니까요. 하하하.”
홍보 운운하는 걸 보면 역시 달라졌다. 배우로서 연기만 하는 것이 아닌, 아무래도 영화 제작자로 투자까지 하다 보니까 ‘흥행’에 염두를 안 둘 수가 없는 모양이다.
정준호는 낚시를 좋아해서 마음이 울적할 때면 자주 낚시터를 찾아간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 한적한 강가에서 소주를 마시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으면 그동안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마음도 정리가 된다고 했던가.
요즘도 그런지 궁금했지만, 많은 영화에 출연하다 보니 낚시터를 가고 싶어도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다작(多作)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더니 정준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제작자로 나선 영화배우 정준호

“배우는 화면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CF로 몸값을 올리고 영화는 1년에 한편 정도밖에 안 찍는 배우들도 있지만, 저는 그걸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는 연기로 승부를 해야지, 이미지로 승부하는 직업이 아니거든요. 또 제 성격상 친한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면도 있어요. 감독이 직접 찾아와서 ‘작품에 출연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에잇, 그래 하자’ 하고 승낙을 하거든요.”
물론 아쉬움은 있다. 많은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자신의 연기에 100% 만족을 못할 때도 있는데 그것 가지고 속을 끓이지는 않는다. 그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면 됐지, 평가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기로, 언제부터인가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친구같이 편안한 여자와 2~3년 안에 결혼하는 게 희망사항
그런데 그는 왜 아직까지 결혼을 안했을까.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해야죠. 2~3년 안에 하고 싶어요” 하고 말했다.
이어서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냐?”고 이상형을 물었더니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하고 잘 어울리고 친구 같이 편안한 여자가 좋다”고 한다. “저는 얼굴이나 외모는 잘 안 따지는 편이에요” 하는 말도 덧붙였다.
“만일 제가 사랑에 빠진다면, 무책임한 사랑보다는 책임 있는 사랑을 하겠죠. 20대 때하고는 또 틀리지 않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사랑도 그런 것 같아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사랑이 더 무르익어가잖아요. 한 여자와 사랑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자기희생과 믿음이 따라야 한다는 얘기겠죠. 지금 내 나이에 사랑을 한다면 책임 있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고, 또 그런 상대를 만나고 싶고, 내가 그동안 주고 싶었던 것들을 많이 주고 싶어요.”
정준호는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갔다. 남북관계가 냉전 상태로 바뀐 현재의 상황에서 북한 병사의 탈출기를 그린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제작한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데다 이 영화로 인해 남북관계가 다시 화해무드가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영화 속의 대사가 북한 말이기 때문에 탈북한 사람을 초청해서 억양이나 말투 등을 배웠어요. 고맙게도 그분이 잘 가르쳐줘서 연기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죠. 그에 따르면 실제 북한에선 서울말이 유행하고 있대요. 은어도 쓴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올 12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그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코믹영화”라면서 “영화 제작자로 나서니까 흥행에 대한 부담감도 따르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연기자로 데뷔한 지 8년 만에 톱스타로, 영화 제작자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정준호.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 배우들의 연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강렬한 여름 태양에 구릿빛으로 그을린 그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여성동아 2003년 9월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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