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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름다운 삶

가족사랑으로 유방암 이긴 후 호스피스로 활동하는 장수산나

“한쪽 가슴 잃었지만 대신 ‘더불어 삶’을 살게 해주는 제3의 가슴 얻었어요”

■ 글·박윤희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3.08.08 16:40:00

39세 때 유방암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장수산나씨.
요즘 그는 ‘장님이 눈뜬’ 기분으로 세상을 새롭게 보며 말기암 환자 호스피스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유방암 투병일기 ‘밥풀이와 눈비비고 이야기’를 펴내기도 한 그의 따뜻한 이야기.
가족사랑으로 유방암 이긴 후 호스피스로 활동하는 장수산나

“젖가슴 둘인 여자들이 부럽죠. 길 가다가도 젊은 여자들의 탐스런 젖가슴을 보면 ‘어쩜 저렇게 예쁘지?’ 하고 한참 쳐다봐요. 그렇다고 이미 잘려나간 제 한쪽 젖가슴을 복원수술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왠지 도마뱀 꼬리나 잘린 손톱처럼 제 왼쪽 젖가슴도 조금씩 조금씩 다시 자라지 않을까 하는 소망으로 살거든요.”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주부 장수산나씨(43)는 39세 되던 해 가을 왼쪽 젖가슴을 송두리째 잘라냈다. 가슴에 조그만 멍울이 만져져 ‘설마’ 하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유방암 선고를 내린 것. 그는 유방 절개 수술 후 곧바로 여섯 차례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모조리 빠져버리는 후유증을 앓기도 했다.
한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만큼 건강이 회복됐다. 최근 그는 자신의 ‘부활’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유방암 투병기를 담은 에세이 ‘밥풀이와 눈비비고 이야기’를 펴냈는데, 암투병기라고 해서 한숨과 눈물이 뒤섞인 내용만은 아니다. 평소 ‘명랑하고 씩씩한 아줌마’를 지향하는 저자의 밝고 따뜻한 이야기가 더 많다.
“죽도록 아파 보니까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생대박’이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마침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아들이 인터넷에 제 홈페이지를 만들어줬어요. 제 홈페이지에 투병일기를 올려놓았다가 이번에 묶어 책을 내게 되었지요.”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프면 가족사랑이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집에서 ‘밥풀이’라고 부르는 아들 정해운군(19)과 ‘눈비비고’라는 애칭을 가진 딸 정지윤양(15)이 아픈 엄마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제가 유방암 수술을 했을 때 퇴원을 하려고 해도 병원비가 없었어요. 남편의 사업이 망해 온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었거든요. 암담했죠. 밥풀이는 제가 암이란 소릴 듣고 급성위염에 걸려 보름을 앓았어요. 그래도 설거지며 빨래 같은 온갖 사소한 집안일을 모두 책임져주었죠.”
게다가 아들은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짓눌린 아빠의 건강까지 체크해주며 어른스럽게 굴었다.
“병원비가 없는 걸 눈치채고 밥풀이가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게임기를 인터넷을 통해 팔고는 병원비에 보태라며 제 손에 15만원을 쥐어주는 거예요. 그날 밤 저희 네 식구가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장씨의 아들 해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고뭉치였다. 덕분에 장씨는 학교 문턱이 닳도록 교무실로 불려 다녔다. 한번은 ‘처녀 선생님을 농락한 죄’로 장씨가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로 불려간 적도 있다.

가족사랑으로 유방암 이긴 후 호스피스로 활동하는 장수산나

아들 정해운군과 함께 자신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는 장수산나씨. 홈페이지엔 말기암 환자들과 나눈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미술시간에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는데 밥풀이가 ‘벌거벗고 달리는 남자’를 스케치북에 그려놓았어요. 처녀 미술교사가 자신을 놀렸다고 펄펄 뛰었죠. 그런데 밥풀이가 전혀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아,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거예요? 불이 나서 남자 옷이 홀랑 다 타서 그런 건데…. 내 맘대로 그림도 제대로 못 그리게 해!’ 하면서 도리어 화를 내더라고요.”
이런 말썽꾸러기가 엄마의 암투병을 도우면서 180도 달라졌다.
“어찌나 짓궂게 구는지 곤충을 잡으면 잘게 조각을 내서 화형식 한다고 불에 태우던 아이가 엄마를 잃을 뻔해서 그런지 이젠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어느날 비가 엄청 오는데 숲속에서 찻길로 기어나오는 달팽이 수십 마리를 일일이 손으로 집어서 제자리에 갖다놓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며 한참 눈물 흘렸어요.”
반면 장씨의 딸 지윤이는 좀더 곰살궂다.
“암환자들은 항암제 부작용으로 하루이틀 새에 머리털이 한 주먹씩 빠지잖아요. 저도 결국 대머리가 되었죠.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이 저를 보더니 ‘엄마는 빡빡머리가 참 잘 어울려요. 정말 예뻐요. 나도 엄마를 위해 함께 머릴 밀어버릴까요?’ 하는 거예요. 그때 빠진 머리카락을 보면서 마치 생명의 일부분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우울했는데 딸의 말을 듣는 순간 평생 머리카락 없이 지내도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딸 지윤이가 엄마를 울린 일은 또 있다. 장씨는 항암제 치료를 하던 어느날 뜬금 없이 깍두기가 먹고 싶어졌다. 왠지 시큼한 깍두기 국물을 먹으면 입맛이 돌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고 딸이 깍두기 담글 무와 쪽파를 사러 시장에 갔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까 딸이 제 몸보다 덩치가 더 큰 무단을 들고 오느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자 깍두기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저 멀리 달아나더라고요. 제가 미쳤죠. 엄마라는 인물은 무 한개도 들지 못하면서 어린 딸에게 무거운 짐이나 지우고….”
이날 속이 뒤집힌 장씨는 항암제 부작용으로 한바탕 구역질을 해대고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곤한 잠에 한참 빠져들었을 무렵, 그의 귓가에 칼질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전달되었다. 눈을 떠보니 아이들 둘이 깍두기를 담겠다고 부엌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엄마 앞에서 늠름한 모습을 보인 데 비해 의외로 남편 정원국씨(48)는 약한 모습을 장씨에게 자주 들켰다.
“술 취해 늦게 들어온 남편이 제가 자고 있는 줄 알고 머리카락이 다 빠진 제 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어줘요. 그 손바닥의 따뜻함에 스르르 잠이 들다가도 목젖으로 힘들게 삼키는 남편의 울음소리 때문에 다시 잠에서 깨죠. ‘나로 인해 저 남자가 너무 깊은 상처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럴 때 제 가슴은 울음을 참느라 멍멍하게 아프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깊이 잠이 든 척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곤 했지요.”
울보 남편의 주특기는 ‘립(Lip)서비스’로 입으로 하는 서비스에는 그를 따를 자가 없다고 한다.
“가슴 수술을 한 후 한동안 샤워할 때 거울을 못 봤어요. 젖가슴이 하나만 있는 게 너무나 이상했으니까요. 몸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완전하지 않아서 수술 후 1년 넘게 부부관계를 못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젖가슴이 둘인 여자를 보면 이상하다는 거예요. 원래 젖가슴 한개만 있는 게 정상인 것 같고, 자기는 젖가슴 한 개만 만져도 되니까 훨씬 편해서 좋다고 말을 해요(웃음).”
이렇듯 아내를, 엄마를 최고로 여기는 남편과 아이들 덕에 장씨는 다시 태어난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가족사랑으로 유방암 이긴 후 호스피스로 활동하는 장수산나

암투병 후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장수산나씨.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무렵 어떤 책에서 ‘암은 내게 또 다른 축복이었다’는 글을 읽고 ‘도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그랬는데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새록새록 깨달으며 살고 있어요. 장님이 눈을 떴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죠. 우선 삶의 기준이 바뀌었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무척 넓어졌어요.”
유방암을 발견하기 전 장씨는 미국, 일본으로 수출되는 애니메이션 원화 채색 작업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경험한 ‘축복’을 다른 암환자에게 나눠주기 위해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활동에 푹 빠져 있다. 비록 한쪽 젖가슴을 잃었지만 ‘더불어 삶’을 고민하는 제3의 가슴을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프기 전에는 ‘나만의 삶’에 치우쳤는데 아프고 나니까 ‘더불어 삶’의 기쁨을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호스피스 활동을 한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마치기 전에 미워하는 모든 것들과 화해할 필요는 있다고 느꼈어요.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 뭘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난 쓰레기통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환자들의 온갖 이야기를 다 들어주려고 노력해요.”
인터넷 시대이니만큼 병실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말기 암환자들과 만나고 있다. 장씨의 개인 홈페이지 ‘수산나의 행복한 이야기(www.susanna.wo.ro)’에서 호스피스 이야기 코너를 클릭하면 그가 암환자들과 주고받는 따뜻한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아직 골수검사 결과가 안 나왔습니다. 요새는 성당 가는 것이 너무나 좋아요.^^ 집에서 생각에 잠기다가두 성당에 가면 다 훌훌 털어버려요.’ (ID 요한)
‘우와∼ 드뎌 요한이가 아줌마홈에 흔적을 남기셨군.ㅋㅋㅋ. 자주 놀러와∼ 아침부터 가슴이 벌렁벌렁거린다. 결과가 오늘 나오잖아. 기도할게.’ (ID 장수산나)
‘아줌마. 오늘 효보랑 전화통화했는데 효보가 마니 불안해해요. 제가 도움이 되주어야 하는데.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저두 아팠을 때 힘들었는데. 힘내라~ 참아라~ 너무 생각 마니 하지마라~ 그런 말 밖에 해줄 말이 없어 넘 속상해요. 어떻게 해주어야 효보가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ID 엄상궁)
‘경미야~ 그래두 요한(효보)이가 누나를 많이 따르고 의지하는 것 같았어. 나는 경미, 니가 증말증말 자랑스러워. 경미, 알라뷰 *^^*’ (ID 장수산나)
대부분의 말기암 환자들은 처음 호스피스를 대할 때 마음의 문을닫아 놓고 상대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너희가 내 아픔을 알아?’ 하는 식의 반감이 크기 때문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장씨는 다른 호스피스들보다 활동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환자들은 처음에 호스피스를 거부하다가도 장씨가 ‘나도 예전에 암환자였다’고 말하면 금방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장씨를 언니처럼 따르고 자신들의 가족보다 더 의지하는 경우도 생긴다. 장씨가 돌본 환자 중에는 단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 버림받은 젊은 주부가 있었는데 이때 장씨는 그 주부를 동생처럼 돌봐주고 아이들도 잠시 맡아주었다. 얼마전 33세의 나이인 그를 떠나 보낸 장씨는 그런 죽음에서 자신의 미래가 겹쳐 떠오르는 것 같아 우는 날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장수산나씨는 그런 우는 날 속에 ‘행복 끼워넣기’를 잊지 않으려고 부지런을 떨고 있는 명랑하고 씩씩한 아줌마다.
“아기를 낳아본 엄마들은 아마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진통중에도 잠깐씩 꿀맛 같은 ‘토끼잠’이 쏟아지잖아요. 그 토끼잠 때문에 아기를 낳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인데, 지금 삶의 진통이 너무 심하신 분들은 불행한 중에라도 토끼잠 같은 ‘행복 끼워넣기’를 부지런히 했으면 좋겠어요. 불행도, 행복도 모두 지나가는 시간들이니까요.”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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