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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외식업체 꿈꾸는 (주)제너시스 대표 윤홍근씨의 성공 스토리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8.08 11:34:00

‘닭고기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하던 95년 ‘BBQ’를 내놓은 뒤 7년 만인 지난해 업계 선두로 올라선 (주)제너시스의 윤홍근 회장. 국내 1천6백개 가맹점을 확보하고, 이제 중국을 시작으로 세계로 뻗어가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그의 남다른 성공 스토리.
세계 최고의 외식업체 꿈꾸는 (주)제너시스 대표 윤홍근씨의 성공 스토리

‘매일 닭 한 마리를 먹는 남자.’ 지난해 전국 가맹점 1천4백개, 총매출 3천2백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1위로 우뚝 선 치킨전문 브랜드 ‘BBQ’를 운영하는 (주)제너시스 윤홍근 회장(48)을 일컫는 말이다. 윤회장은 지난 3월 ‘상공의 날’에 프랜차이즈업계 최초로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닭백숙, 닭찜, 닭튀김…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닭요리는 몇 가지 안돼요. 그런데 외국계 레스토랑에 가보세요. 닭을 재료로 한 요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광우병과 구제역 파동 이후 외국에서는 이미 대표적인 화이트 미트(White Meat)인 닭고기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이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닭고기로 승부해야 할 때죠.”
이러한 생각으로 ‘프라이드’ 아니면 ‘양념’, 둘로 나뉘던 치킨 프랜차이즈에 스모크 치킨, 디본바비큐치킨, 순살크래커치킨 등을 선보였고, 99년엔 닭을 숯불에 구워 먹는 ‘참숯닭불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닭익는 마을’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했다. 이중 윤회장이 유독 좋아하는 것은 프라이드치킨과 디본바비큐치킨. ‘내가 맛을 확신해야 고객에게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는 매일 닭 한 마리를 먹는다고 한다.
윤회장이 닭고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94년. 그가 10년째 몸담고 있던 (주)미원(현 대상그룹)이 닭고기 생산업체 마니커를 인수하자 그는 마니커의 영업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미원이 운영하는 사료공장의 총무과장으로 일하며 부임 3년 만에 판매량을 세배 증가시키는 등 영업실적, 생산성, 품질 면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린 그가 마니커의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된 것.
당시 마니커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1만마리가 채 안됐다. 그러나 그는 3개월 안에 5만마리, 3년 안에 20만마리 판매를 목표로 세웠다. 예상대로 6개월 만에 매출이 10배 증가하자 윤회장은 ‘3년 후 20만마리’라는 다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치킨 전문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침 미원도 외식사업에 관심을 보일 때였다. 그러나 회사가 원하는 것은 그룹 이미지에 맞는 대형 패스트푸드점 형태였고, 그가 원하는 건 기존의 치킨 프랜차이즈 형태의 소형점이었다. 결국 그는 미원의 브랜드를 이용하는 대신 마니커의 닭을 소비하는 조건으로 독립해 95년, BBQ 치킨을 탄생시켰다. 마침 그 무렵 늦둥이 아들이 태어나 제너시스와 나이를 같이하며 나란히 쑥쑥 커가고 있는 걸 보면 그와 BBQ의 인연은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미국에 맥도날드의 ‘햄버거대학’이 있다면 한국엔 제너시스의 ‘치킨대학’이 있다”
세계 최고의 외식업체 꿈꾸는 (주)제너시스 대표 윤홍근씨의 성공 스토리

제너시스가 오랜 준비끝에 내놓은 돈가스·우동 전문브랜드 ‘U9’ 매장.


그러나 치킨 프래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그에게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왜 하필 닭고기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치킨 프랜차이즈는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고 한다.
“기존의 치킨점은 치킨을 여러가지 술안주 중 하나로 취급하는 ‘호프집’ 형태가 대부분이었잖아요. 그런 호프집은 가족단위 고객이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치킨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아닙니까. 이런 이유로 기존의 치킨 프랜차이즈업체들과 차별화해 가족단위 고객을 겨냥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이른바 ‘틈새’를 발견했고, 그것이 ‘황금시장’이라고 확신한 것. 이러한 예상은 적중해 95년 설립 이후, 4년 만인 99년 10월에 국내 프랜차이즈 최초로 가맹점 1000호점을 돌파했고, 지난해 외국 브랜드를 제치고 업계 선두로 자리매김했다. 윤회장은 이제 중국시장을 시작으로 세계 최고의 외식업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외식업체 꿈꾸는 (주)제너시스 대표 윤홍근씨의 성공 스토리

윤회장이 매일 맛을 점검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세계 최고의 기업이 없지 않습니까. 대개 일류 기업이라고 하면 거대자본과 최첨단 기술을 떠올리는데 미국의 경우를 보면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등 무형의 자산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세계 외식산업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맥도날드와 비교할 때 제너시스의 성장속도는 맥도날드보다 몇배 정도 빠릅니다. 맥도날드가 50년에 걸쳐 이룬 전세계 5만개 가맹점 운영을 창립25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 달성하는 게 목표지요.”
그 첫 시도가 중국 진출. 현재까지 2호점을 오픈했고, 8월중에 6호점까지 오픈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세계 무대에 선보여도 손색이 없도록 품질과 맛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고, 맛을 표준화할 수 있는 ‘치킨대학’의 역할이 클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국내 유일의 치킨대학은 맥도날드의 ‘햄버거대학’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석·박사급 연구원 11명이 오로지 닭만을 연구하고 있다. 예비 가맹점주들이 점포 운영에 필요한 기술과 고객 서비스 방법에 대한 교육을 이수하는 곳이기도 하다.
윤회장이 지금의 제너시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충격과 감동을 준 아버지의 선물 때문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아버지께서 책가방과 운동화를 사오셨어요. 그때만 해도 허리춤에 찬 책보와 검정 고무신이 전부인 줄 알고 살 때였거든요. 아버지께 이런 걸 어디서 만드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무슨 ‘회사’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 회사라는 데가 가방만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이 필요로 하는 건 다 만들어내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고마운 곳이라면 나도 이 다음에 ‘기업의 회장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러나 꿈을 심어준 아버지는 그의 나이 19세 되던 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두 동생은 고스란히 그가 책임져야 할 몫으로 돌아왔다. 조선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에게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라고 말을 건네니 쑥스러워하며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으니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첫 사업 실패 후 월셋집 전전하면서도 불평 한번 안한 아내가 가장 든든한 버팀목
84년, 그가 미원에 입사했을 때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두 동생들이 뛸 듯이 기뻐한 것도 어려웠던 가정형편에 숨쉴 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가슴 한편에서 꿈틀대는 어릴 적 꿈을 완전히 접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얼마후 그는 결혼할 때 처가에서 마련해준 집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판촉물 관련 사업을 벌이고 말았다. 그는 여전히 직장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세부 경영은 동업자인 학사장교 동기생들이 맡았다. 그러나 결국 3년 만에 빚 2천만원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니 어리석었죠. 기업주가 최선을 다해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말이에요.”
사업 실패 이후 그는 경영자의 시각과 마인드를 갖고 일하는 것으로 어릴 적 꿈을 대신하기로 마음먹고, 늘 ‘내가 사장이라면’ 하는 생각으로 일했다고 한다.
“철저히 ‘사장’으로 훈련한 것이지요. 물론 실제 그런 훈련을 받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 끊임없이 가상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지금의 결과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사업 실패로 월급의 3분의 1은 고스란히 빚을 갚는 데 쏟아부어야 하고, 1년 중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던 가장을 가족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세계 최고의 외식업체 꿈꾸는 (주)제너시스 대표 윤홍근씨의 성공 스토리

얼마전 칠순잔치를 치른 어머니와 아내, 두딸과 늦둥이 아들에게 둘러싸인 윤홍근 회장.


“사실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두 딸이 어려서 저를 무척 따랐는데 그걸 받아줄 시간이 없었어요. 유일한 낙이라면 아내가 운전기사를 자청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올 때였어요. 제가 거래처를 방문하거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죠. 제가 일을 보는 동안 아이들은 차 안에서 숙제를 했고요. 일을 마치고 차로 돌아갔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차안에서 새우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어요. 결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히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아내는 결혼할 때 친정에서 마련해준 집을 잃었지만 한번도 그때의 실패를 꼬투리 잡은 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아직까지도 윤회장이 가정에서 아내에게 기대려고만 하는 걸 서운해할 뿐이라고.
“저는 아무래도 회사 일로 힘이 드니까 집에 가면 자꾸 기대려는 습관이 남아 있는데 집사람은 ‘이젠 당신이 좀 해줘야 할 때가 아니냐’고 이야기해요. 물론 저도 마음은 ‘그래야지’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웃음).”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하던 아내는 최근 일을 시작했다. 오랜 주부 생활의 노하우를 살려 제너시스가 운영하고 있는 식품공장을 책임지고 있는 것.
“저를 쭉 지켜봐서 그런지 경영에 관심도 많고, 섬세한 감각으로 조언을 해주기도 해요.”
성경의 창세기를 뜻하는 ‘제너시스’를 회사 간판으로 내걸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어려운 이웃과 나누겠다’고 다짐했다는 윤회장은 이를 지키기 위해 꾸준하게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청소년가장과 장애우를 위해 매월 일정 금액을 지원하고 있고, ‘닭익는 마을’과 ‘U9’ 가맹점의 개점 당일 수입을 백혈병 어린이를 위해 쓰고 있다. ‘U9’은 제너시스가 최근 새롭게 시작한 우동·돈가스 전문 브랜드. 일본보다 훨씬 맛있는 우동을 만들어 세계시장에서 겨루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그는 또 한국관광대학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직원들의 등록금을 대주는 등 적극 후원하고 있는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던 자신의 처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종가인 고향집에서 제사 때마다 음식을 넉넉히 마련해 동네 사람들 전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앞으로 복지재단을 설립해 음지에서 생활하는 분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윤회장을 보면서 어린 시절 가슴에 품었던 꿈과 따뜻했던 나눔의 정을 잊지 않고 간직했기에 오늘의 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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