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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야생마 같은 여자

기발한 상상력으로 디지털 화폭에 화투와 동심의 세계 담는화가 김점선

“오십견 때문에 그리기 시작한 화투 그림, 죽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담아요”

■ 글·박윤희 ■ 사진·지재만 기자

입력 2003.08.08 11:20:00

‘말’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김점선씨가 이번엔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디지털 화투 그림을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오십견으로 어깨를 쓸 수 없게 되자 붓 대신 컴퓨터 펜마우스를 들고 예술가의 집념을 관철시키고 있는 그의 독특한 그림세계만큼이나 남다른 인생.
기발한 상상력으로 디지털 화폭에 화투와 동심의 세계 담는화가 김점선

오는 8월23일까지 화투그림전이 열리는 강남구 스타타워갤러리로 화가 김점선씨(56)를 만나러 갔을 때, 탁자 앞에 앉은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자 중광’이란 별명에 걸맞게 혼자 가위질해서 자른 비죽비죽한 머리와 친구에게 얻어 입었다는 긴팔 반코트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남편이 입다 버린 외투를 걸쳐 입고 거리를 배회하다 노숙자로 몰리기 일쑤이고, 방송국이나 고층 건물을 찾을 땐 경비원으로부터 한번에 출입을 허가받는 일이 드물다. 그만큼 일반인들의 규범으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나는 그 여자처럼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아무도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 같은 여자가 김점선이다” 하고 말했을 정도다. 기자가 그에게 한여름 반코트 차림을 타박하자 “내 아들이 입던 고등학교 교복도 다려서 입고 다닌다”며 일갈을 가한다.
“옷이 뭐가 중요해요? 나이 들면 옷이 사람을 말해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정신이 겉으로 배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당당한 그의 어깨 너머로 벽에 걸린 화투 그림들이 보인다. 나름대로 변형한 화투 그림에 ‘청단 만세’ ‘하구말구’ ‘부귀영화’ ‘점선’ 등의 글귀를 큼직하게 집어넣은 것이 퍽 매력적이다. 가수 조영남이 붓으로 화투를 그린다면 그는 컴퓨터를 도구삼아 화투를 그리는데, 그는 화투를 치다가도 목단 청단 그림이 자신한테 오면 너무 예뻐서 내놓기가 싫다고 한다. 목단 청단의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비가 그의 눈에는 너무나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아들 통해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법 익혀
기발한 상상력으로 디지털 화폭에 화투와 동심의 세계 담는화가 김점선

김점선씨는 8월23일까지 강남구 스타타워갤러리에서 그림 전시회를 연다.


“화투는 잘 못쳐요. 저한테 화투 그림은 일종의 ‘반항’이죠. 세상에 대한 반항, 문화 엄숙주의를 향한 반항!”
그에게 ‘반항’은 ‘운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 같은 어휘’라고 하는데, 그의 화투 그림 속에는 이런 반골기질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끈질긴 ‘집념’과 ‘사랑’ 또한 스며들어 있다.
“팔로 그림을 못 그려서 컴퓨터로 그린 그림들이죠. 오십견 때문에 오른팔을 들어올릴 수조차 없었어요. 통증이 너무 심해서 한밤중에 깨어나 엉엉 울었어요. 물리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영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까봐 정신적인 고통이 훨씬 더 심했죠.”
2년전 가을, 그는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한 40일을 하루 16시간 동안 죽기살기로 그림을 그리다가 어깨에 탈이 났다. 어느날 그림을 그리는데 붓을 든 팔이 갑자기 푹 꺾이더라는 것. 몸이 주의하라고 신호를 보냈는데도 그는 “그런다고 내가 쉴 줄 알아” 하면서 오기로 그림을 그렸다.
“4개월 넘게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너무 우울해지더군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그때만 해도 컴맹이었는데 컴퓨터라도 해서 정신을 빼앗겨야 살 것 같았어요. 손가락과 손목만 움직여도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는 별 지장이 없으니까요.”
그때 외아들 김상욱씨(22)가 엄마의 결정에 찬성하며 노트북을 사다줬다. 그러면서 글자 연습만 하지 말고 그림도 그려보라는 주문을 했다.
“아들의 도움을 받아 마우스로 오리, 말, 고양이 등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림을 보던 아들이 ‘화가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면서 무척 좋아하더군요. 나중에 포토샵 프로그램을 설치해주고 펜마우스도 사다줬어요. 손목만 움직여도 다양한 크기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으니까 아픈 중에도 마음껏 그림을 그렸죠. 몸에 병이 든다는 것도 때로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나봐요.”
컴퓨터에 눈을 뜬 그는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병든 팔을 움직여 새로운 그림을 그려댔다. 해가 뜨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켜고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디지털 화폭에 그의 예술혼을 쏟아부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손가락 관절 여기저기에 파스와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디지털 화폭에 화투와 동심의 세계 담는화가 김점선

김점선씨가 컴퓨터를 이용해 그린 화투 그림들.


“누군가에게 보여준다기보다는 컴퓨터라는 매체를 통해서 내 자신에게로 몰입해가는 성실하고 진솔한 하나의 과정이었어요. 무엇보다 아들 덕에 컴퓨터 초보가 그림들을 집(zip)으로 압축하고 보내는 일을 할 수 있었죠. 아들은 제 그림을 완성시켜주는 최고의 기술고문이에요.”
학교에서 아들 별명은 ‘백남준.’ 이미 초등학교 때 텔레비전, 컴퓨터, 캠코더, 스틸 카메라를 연결해 온갖 작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첨단기기에 강했다. 그의 실험적인 육아가 아들을 첨단기기에 민감하도록 만들었는데 그는 새로운 컴퓨터게임과 음반이 나오면 곧장 용산전자상가를 다 뒤져 아들 손에 쥐어주었다. 심지어 고3 때도 온갖 컴퓨터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새로 나온 게임 CD를 아들에게 선물한 별종 엄마다.
“만일 서태지 음반이 오늘 나온다고 하면 음반매장에 가서 하루 종일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다줬어요. 아마 제 아들은 음반이나 컴퓨터게임 CD 박물관을 차려도 될 걸요. 컴퓨터도 발전 단계마다 사준 게 수십대가 넘어요. 최첨단 문화의 선두에 서라는 뜻에서 그렇게 했죠. 아들이 머리를 염색하면 왜 하나만 하냐 수십 가지로 더 염색해봐라 그러면서 다양한 색깔의 염색약을 사다주었죠. 아들이 무엇을 하건 간에 한번도 꾸짖어본 적이 없어요. 부모는 자식의 문화 향유를 돕는 ‘종’이니까요.”
몇해 전 폐암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혼자 살고 있다. 아들은 대학교 4학년 때 분가를 시켰다.
“아직 아들은 결혼을 안했지만 미리 내쫓았어요. 결혼하고 분가시키면 ‘쟤가 나랑 살던 놈인데 며느리가 빼앗아갔다’는 생각이 들어 며느리를 미워할 게 뻔하잖아요. 인간이 원래 고독한 동물인데 미리 훈련을 해야죠.”

남편 노래하는 모습 보고 첫눈에 반해 먼저 ‘동거하자’ 프러포즈
그가 아들을 분가시키고 나자 모자간의 대화내용도 달라졌다.
“생선 비늘을 다듬는 요령, 파를 무르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 빨래할 때 마지막 헹구는 요령까지 각자의 노하우를 자랑하죠. 요리나 빨래는 ‘체험’이지 여자만의 일이 아니잖아요. 아들도 그런 일을 해봐야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각자 따로 사는 탓에 그가 컴퓨터 조작과 인터넷 사용에 관한 기술고문의 조언이 필요할 때는 인터넷 메신저로 교신한다.
‘상욱아. 그림파일 보냈으니까 70%로 줄여줘’
‘우쒸~ 지금 바쁜데. 알았어. 지금 축소해서 보내줄게’
‘고맙다^^’
그의 아들은 컴퓨터 실력만 엄마를 앞지른 것이 아니다.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해 애인처럼 그의 정서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그를 ‘관리’해준다.
“어느날 둘이 메신저로 대화하는데 아들이 대뜸 ‘나 자살하고 싶어’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래? 그럼 해라. 네가 죽어도 나는 안 죽어. 나는 너 때문에 살지 않고 나 때문에 살아!’ 이렇게 말했더니 며칠 뒤에 아들이 메일로 ‘이제 됐다’며 안심이 된다고 그러더군요.”
그는 이런 ‘아들 덕’도 결국은 ‘남편 덕’이라고 한다. 만일 남편이 없었으면 그의 분신인 아들이 이렇게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남편은 완전히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우주 저 끝 어딘가에서 아들을 원격조종해 그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서른한살 때 남편을 만났어요. 카페에서 통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처음 봤는데 그 모습에 반해서 만난 첫날 ‘야! 너 나랑 결혼하자’고 제가 먼저 청혼했죠.”
그가 이화여대 교육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홍익대 미술대학원에 다닌 엘리트인데 비해 세살 연하인 남편은 이혼까지 한 사람이었고 돈도 직업도 학벌도 아무런 배경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세속적인 조건을 무시한 채 배우자를 선택하기엔 서른한살이라는 그의 나이테가 결코 적지 않았는데도 그는 망설임이나 갈등조차 없었다.
“인생을 살면서 노래 하나 잘하는 것도 어디예요? 노래 하나 잘하면 됐지 다른 게 뭐가 필요해요?”
결혼할 때 배우자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절반은 드러난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는 무모한 면도 있지만 순수한 사람이다.
“당시 남편을 사랑했다기보다 진정한 예술을 하겠다는 욕심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죠. 나름대로 엘리트 의식이 강해서 친구들과 방방 떠서 다녔는데 한 교수님께서 ‘느낌을 쏘기만 하면 예술이냐? 가난한 남자랑 결혼을 해서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 진정한 예술가가 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부터 가난한 남자를 찾아다니다 한달 만에 남편이 딱 걸린 거죠. 가난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망설임 없이 곧장 동거에 들어갔고 친정부모님께 인사하러 갔다. 분명히 결혼을 반대할 것이라 생각하고 어렵게 부모님을 찾았는데 의외로 부모님이 쌍수 들고 환영을 했다.
“제가 성질이 더러워서 결혼도 못할 줄 알았나봐요. 아버지랑 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쟤가 분명히 사기를 쳐서 남자를 꼬셨을 거야’ 하더군요. 나중에 알았는데 이날 아버지가 남편을 살짝 불러내 ‘매질’을 해서라도 제 성질을 꺾고 살라고 당부하셨나봐요. 친정에 다녀온 이후부터 호된 매질이 시작되었죠.”
그는 방탕이 아닌 진지한 예술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 동거라는 선택을 했지만 남편은 달랐다. ‘네가 싫으면 날 떠날 테지’ 하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고 직업도 갖지 않았다. 사소한 말다툼에도 남편의 주먹과 발길질이 날아왔고, 급기야 어느날은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그가 심상한 말투로 ‘왜 이렇게 늦었어?’하고 말을 건네자 상상을 초월하는 주먹질이 날아왔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디지털 화폭에 화투와 동심의 세계 담는화가 김점선

소설가 박완서는 김점선씨를 ‘아무도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 같은 여자’라고 평한다.


“그날 얼굴이 찢어져서 50바늘도 넘게 꿰맸어요. 어찌나 아프던지 10분 정도만 지나면 곧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죠.”
그런 지경에서 왜 이혼하지 않았냐고 하자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이 돌아왔다.
“5년 정도 그렇게 맞고 살았는데 ‘고난이 심할수록 지금이 내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았어요. 생명체가 다 느끼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니까 얕은 욕구에 흔들리지 않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 예술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처럼 느껴졌어요.”
이렇게 맞고 살던 어느날 그들의 관계에 ‘반전’이 일어났다.
“친정엄마랑 무슨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제가 남편에게 심하게 맞은 다음날 친정 부모님이 찾아오셨어요. 얼굴에 난 상처가 너무 심해 부모님께 제 얼굴을 보이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남의 집에 뭐 하러 왔어?’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까 부모님이 ‘다시는 안 온다’며 그 길로 나가셨죠.”
그는 그렇게 부모님을 내쫓고 남의 집 담벼락에 숨어서 뿌연 눈으로 부모님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친정엄마가 고개를 홱 돌려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내렸다. 직감적으로 사위의 매질을 눈치챈 친정 부모님은 곧장 남편에게로 달려가 욕설을 퍼부었다.



“혼자서 심심하게 살아야 진짜 나를 만나게 돼요”
“아버지가 남편한테 ‘내가 때려도 된다고 그랬지만 어떻게 이렇게 심하게 때릴 수가 있는가?’라고 소리치시는 것을 보고 그때 처음 남편이 폭군으로 변한 이유를 알게 되었죠. 제가 남편을 나무라는 부모님께 ‘남의 부부문제에 간섭하지 말아!’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부모님이 뒤도 안 돌아보고 그 길로 나가셨어요.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남편이 제 진심을 알아줬고 매질도 사라졌어요.”
19개월간 폐암 투병을 하던 남편은 죽음의 문턱이 점점 가까워 오자 그에게 “정말 고마워!” “정말 미안해!” 하는 말을 자주 건넸다고 한다. 세속적인 조건을 무시한 그의 사랑이 고맙고 그의 깊은 진정을 몰랐던 자신의 아둔함이 미안했던 것이리라.
이런 생의 굴곡이 뚜렷한데도 그의 화폭에 담긴 그림들은 너무나 밝고 천진난만해 보인다. ‘하늘의 도에 이르면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아진다’는 이치처럼 그의 내면세계도 우주의 궁극과 닮아 있기 때문일까. 동심의 세계가 그려진 오리, 토끼, 강아지, 말 등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의 찡한 것이 어떤 ‘징한 것’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온다. 이런 감정의 변화가 그의 디지털 그림들이 던져주는 묘미인데, 디지털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서 기계적인 냄새가 안 나고 따뜻한 이유는 그의 화폭에 예술가의 집념뿐 아니라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천진난만해 보이는 오리, 강아지, 코끼리 등의 귀여운 동물은 남편의 ‘환생’이기도 하다.
“유치원생이 같은 유치원생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어린아이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소꿉친구를 어느날 갑자기 잃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제 마음이 그런 마음이에요.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요.”
그는 동물과 화투 그림은 그려도 절대 인물화를 그리지 않는 고집이 있는데 유일하게 그리는 인물 그림은 자화상이다. 무채색에 무표정으로 존재하는 ‘디지털 김점선’은 추장처럼 야생적이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한편으론 고독해 보인다.
“편안할 때, 눈앞에 펼쳐지는 진리의 향연을 지나쳐버리기 쉬워요. 혼자서 심심하게 살아야 생각이 맑아지고 그림을 그리게 되죠. 무지 심심해야 진짜 나를 만나게 되고 심심해서 몸이 비틀려야 그림이나 그려볼까 하고 새로운 생각에 잠기게 되거든요.”
그는 ‘외롭다’ ‘고독하다’는 말을 ‘심심하다’고 표현하는 독특한 언어습관을 가진 모양인데 ‘사자의 심장’을 가진 야생마 김점선씨의 질주가 앞으로도 디지털 화폭에 계속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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