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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다운증후군 딸과 살아가는 만화가 장차현실의 당당한 삶

“세상의 시선에 연연해하기보다 우리 모녀가 행복해지는 길을 먼저 생각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3.08.08 10:49:00

다운증후군 딸을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만화가 장차현실.
그가 자신의 체험을 재미있는 만화로 승화시킨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를 펴냈다. ‘이혼녀’와 ‘장애아’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가 솔직하게 들려준 생활 이야기.
이혼 후 다운증후군 딸과 살아가는 만화가 장차현실의 당당한 삶

만화가 장차현실씨(39)의 만화를 보고 있으면 입가에 실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어리숙하고 주책맞은 이혼녀 엄마와 엽기발랄한 말과 행동으로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의 소소한 일상이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웃음 뒤에 코끝을 시큰하게 하는 따뜻한 감동이 독자들로 하여금 ‘장차현실’이란 이름을 뇌리에 깊이 남게 한다. 지난해 출간된 ‘색녀열전’이 그렇고, 최근 출간된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가 그렇다.
97년, 그가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쭉 그의 만화를 보아온 기자의 머릿속엔 항상 ‘만화 속 장차현실’과 ‘실제 장차현실’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좀처럼 그 의문을 풀 기회를 얻지 못하다 그의 책이 새로 출간된 것을 핑계삼아 경기도 양수리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나무로 지은 전원주택들이 담장도 없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을에 있는 그의 집에 다다르자 문 앞에 있는 예쁜 노란 우체통과 커다란 개 두 마리가 먼저 기자를 반긴다.
“처음엔 개를 세 마리 길렀는데 나중엔 아홉 마리까지 늘더라고요. 그중엔 떠돌이 개도 있었어요. 우리집 개들과 친하게 지내더니 언젠가부터 아예 우리집 개 행세를 하는 거예요. 저를 보면 꼬리를 살랑거리고, 또 외부인이 오면 짖고…. 그래서 같이 키웠는데, 아홉 마리를 키우려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쓰레기봉투를 물어뜯고 말썽을 일으켰죠. 그래서 아는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지금은 두 마리만 남았어요. 가장 말썽을 많이 부렸던 떠돌이 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잡아먹었고요(웃음).”
개를 좋아하는 딸 은혜(13)가 충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힘들었던 것은 장씨 자신이었다고. 귀찮아하면서 정이 붙은 것일까, 한동안 허전함을 달랠 길 없어 힘들었다고 한다.
집안에 들어서니 은혜의 방안 책상 위에 지점토 인형들이 빼곡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이 만화를 그리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닌데 15년째 잡지 표지 일러스트를 그리고, 지점토 인형까지 만든다니 그는 천상 타고난 손재주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곳 양수리에 이사 온 건 재작년 12월. 98년 서울에서 경기도 덕소로 이사해서 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만큼이나 이웃들의 마음도 트여 있기 때문이다.
“점심때가 되면 동네 아줌마들이 밥 비벼 먹는다고 불러요. 그러면 가서 수다를 떨며 점심을 먹고, 저는 일을 하러 집으로 돌아오고 남은 분들은 ‘점 10원’ 하는 화투를 쳐요. 처음 이사 왔을 땐 남자도 없고, 아이도 좀 이상하다고 수군거렸는데 지금은 제가 만화를 그린다는 것도 알고 은혜도 예뻐해요.”

일반 학교 포기하고 홈스쿨링 하다 올해부터 대안학교 다니는 은혜
그는 지금 다시 서울에 가서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치열함이 덜하긴 하지만, 그게 삶에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엔 그냥 지나치던 것들도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고…. 왜 예전에 그렇게 미친 듯이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가 이곳까지 온 것은 딸 은혜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였다. 은혜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억척스런 엄마가 되었다.
“장애라는 것을 알고부터 특수교육프로그램을 시켰지만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는 보통 아이들이 다니는 곳으로 보냈어요. 흔히 장애아는 당연히 특수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장애아를 교육시키는 목적이 장애아들끼리 잘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잘살 수 있도록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반 학교에 보내 사회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혼 후 다운증후군 딸과 살아가는 만화가 장차현실의 당당한 삶

장차현실씨는 당당함과 유쾌함을 잃지 않는 게 매력이다.


그의 생각은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은혜의 장애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도 처음엔 담임교사의 노력으로 문제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은혜는 점점 아이들과 거리가 멀어져갔다. 그 무렵 그는 남편과 이혼을 했다.
“서울의 큰 학교에서는 도저히 은혜가 적응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은 학교로 보내기 위해 둘이서 경기도 덕소로 이사를 했어요.”
전학을 간 곳은 전교생이 1백명 정도인 작은 학교였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문제가 생겨 양수리에 있는 전교생이 34명뿐인 더 작은 학교로 옮겼다. 이곳은 한 학년이 5∼6명밖에 안돼 은혜와 아이들이 충분히 어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은혜가 거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걸 점점 견디기 힘들어했어요. 하루는 학교가 파한 후 집으로 데려오는데 차에 타자마자 ‘아 행복해’ 하는 거예요. ‘뭐가 행복해?’ 물으니까 ‘집에 가니까 행복하다’고 하더군요. ‘아, 얘가 정말 전투하러 학교에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했어요.”
은혜가 학교에 안 가니까 장씨의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학교에 보내놓고 ‘오늘은 또 은혜가 무슨 일을 겪을까’ 걱정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혜의 생각은 달랐다.
“어느날 갑자기 학교에 가고 싶대요.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놀고 싶대요. 이미 사회성을 갖추었다는 뜻이죠. 이제 더는 은혜에게 엄마가 모든 것을 대신해줄 수는 없구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다시 일반 학교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교육 공동체 모임에 참여해 대안학교 ‘푸른숲학교’를 만들어 올해부터 은혜를 그곳에 보내고 있다.
“대안학교라 하더라도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은혜를 이해하는 마음이 부족하죠. 하지만 전에 다니던 학교들보다는 훨씬 좋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요. 예를 들어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은혜가 바지에 똥을 쌌다며 저보고 와서 치우래요. 달려가 보니까 그때까지 아이를 방치해 두었더라고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반면 이곳에선 어떤 아이가 ‘은혜언니가 만진 것은 더러우니까 만지면 안된다’고 했대요. 그것 때문에 교장선생이 그아이 부모까지 불러 교육했을 정도로 교육 가치관이 달라요. 선생님들이 다르니까 아이들도 자연히 ‘더불어 삶’을 체득하겠죠.”
일반 학교를 포기하고 대안학교에 보낸 것은 결국 세상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우기보다 피해다닌 셈이다. 그답지 않은 선택이 아니냐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매 순간을 전쟁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요. 은혜를 힘든 상황에 놓아두고 싶지 않았죠. 싸운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 그보다는 우리 모녀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어요. 세상의 시선에 연연해하고 힘들어하기보다는 우리를 중심에 두고 세상 살기를 해보자고 생각한 거죠.”
만화에서는 눈물보다는 웃음을 주로 그리는 그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떨까 싶었다. 장애아를 키우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은혜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냐”고 묻자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 분노하고 어떻게 앙갚음 할까를 생각했다는 것. 하지만 은혜를 통해 그런 마음을 버렸다고 한다.
“은혜는 성질이 낙천적이고 관대해요. 미움에 대해서도 빨리 잊어요. 제가 은혜 같은 상황이면 벌써 싸우고 물어뜯었을 텐데, 은혜는 견디더라고요.”

은혜에게 장애 있지만 믿음과 기대 포기하지 않아
그는 은혜로 인해 슬펐을 때보다는 오히려 즐거운 일, 행복한 일이 더 많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하루라도 은혜랑 같이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하루는 은혜를 학교에 데려다주는데, 제가 전날 안 좋은 일이 있어 인상을 쓰면서 혼잣말로 ‘세상은 더러워. 이 세상 살아야 해 말아야 해’ 하고 궁시렁거렸어요. 그러자 은혜가 저를 빤히 보면서 ‘엄마 눈이 반짝반짝, 입술도 아름다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예쁘냐’ 하니까 ‘응’ 그러면서 ‘엄마 세상을 생각하며 씨익 웃어봐’ 하는 거예요.”
만화책에서나 장차현실씨에게 듣는 은혜의 모습은 다운증후군이라고 하지만 그리 중증장애인 같아 보이지 않을 정도다. 실제 기자가 본 은혜의 모습도 그랬다. 은혜는 현재 4학년 과정을 다니고 있다. 나이는 6학년이지만 2년 동안 홈스쿨링을 한데다 푸른숲학교가 4학년까지밖에 모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4학년 수업과정을 쫓아가는 것도 벅차지만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은혜가 이 정도가 되기까지는 장씨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은혜를 어릴 때부터 본 사람들은 저 정도로 좋아질 줄 꿈에도 몰랐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좋아질 줄 알았어요. 저는 아이에게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과 믿음을 계속 주었어요. 뭘 하겠다는 욕구를 갖게 하고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선택을 하게 했는데, 그게 은혜에게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많은 장애인 부모들이 ‘장애인이 뭘 하겠냐, 이만큼 하면 잘하는 거다’라고 스스로 한정을 짓는데 그게 아이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예요.”

이혼 후 다운증후군 딸과 살아가는 만화가 장차현실의 당당한 삶

지난해 한달 27편의 만화를 연재했다는 장차현실은 올해 연재를 3개로 줄이고 단행본에 치중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은혜에게 항상 “너는 장애인이다” 하고 말한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작은 장애가 있는 경우 부모들은 ‘네가 왜 장애인이야’라며 장애 자체를 부정해요. 하지만 학교에 가면 분명 다르거든요. 아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더 좋아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아요. 하지만 은혜는 그렇지 않았어요. 자기는 장애인이라 말도 잘 못하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고 천천히 말을 하겠대요. 그리고 얼굴도 이상하니까 머리 스타일을 예쁘게 하는 식으로 멋을 내겠대요.”
지난해 그는 설화와 민담에 나오는 여자들의 성 이야기만 골라 만화로 그린 ‘색녀열전’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만화책을 펴냈다. ‘색녀열전’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좀더 야하게 그릴 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럼 더 잘 팔렸을 텐데…. 안 야해서 안 팔렸나 봐요” 하며 웃었다.
“‘색녀열전’을 그리면서 누구보다도 제가 재미있었어요. 낄낄대면서 작업을 했죠.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저는 성에 대해 많이 닫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만화를 그리면서 성에 대한 의식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성은 은밀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게 아니에요. 여성들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고 성에 대한 욕구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죠.”



어디 가든 은혜를 데리고 다녀 남자 만나도 ‘작업’할 기회 없어
그런데 ‘색녀열전’이 다른 사람의 성 이야기를 그렸다고 한다면 이번 만화에선 아예 자신의 밝힘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목욕을 하는데 털이 숭숭난 남자가 등을 밀어주는 상상을 하는가 하면 외간남자와 카섹스를 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씩 난 암캐처럼 발정이 난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한다.
“숨기는 게 더 불편하더라고요. 그냥 제가 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려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말아라’ 하고 생각했어요. 전 제가 혼자 살고 있고 성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불편하다면 오히려 제가 더 불편하죠. 남편이 없어서 욕구를 풀 수 없으니까요(웃음). 저는 솔직하고 건강하게 드러내고 사는 게 살기에 편한 것 같아요. 숨기면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고 거짓말을 하면 계속 움추러 들어야 하고…. 그럼 자기의 세계가 점점 좁아지잖아요.”
이혼 후 다운증후군 딸과 살아가는 만화가 장차현실의 당당한 삶

장차현실의 만화 한토막


점입가경인 것은 만화책 맨 뒤에 김미경 ‘스카이라이프’ 편집장이 쓴 추천의 글인데, 그에 대해 ‘독신모로 살면서 늘 남자랑 자고 싶어 헉헉대고, 술만 마시면 옆에 앉은 남자한테 뽀뽀해대고…’라며 밝힘증 환자(?)처럼 묘사하고 있다.
추천의 글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그것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고 했다. 전에는 친하게 지내던 남자들이 책이 나온 후부터는 의심을 살까봐 연락도 안 하고 자기를 피해 손해가 크다는 것. 그에게 “솔직히 정말 그렇게 사느냐”고 묻자 무슨 소린가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안 그래요. 어떻게 그렇게 아무 남자에게 뽀뽀를 하고, 남자랑 자고 싶어 헉헉대겠어요(웃음). 그런데, 그런 욕구는 가끔씩 있죠. 섹스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그럴 기회가 있기는 했는데, 쉽지는 않잖아요.”
그는 “어디를 가든 은혜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작업’을 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다”며 농담을 던졌다. 그래서 가끔 은혜가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다가도 반대로 자신의 무절제를 제어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솔직히 외로움을 느낄 때는 별로 없어요. 늘 선후배와 동료들이 찾아와 북적거리니까요.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 불이 켜져 있으면 또 누가 왔어 할 정도예요. 제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어요. 그래서 남자랑 자고 싶어 허덕일 때가 가끔 있는데 그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인터뷰 내내 그는 참 솔직하고 당당했다. 그게 그의 매력이고 그의 만화가 사랑받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동아 2003년 8월 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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