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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당당해서 자랑스런 그녀

호주제 폐지 앞장서며 슬픈 가족사 고백한 개그우먼 김미화

“내 진짜 이름은 박미화, 아버지 세상 뜬 후 어머니 성으로 바꿔야 했던 숨은 이유 이제야 밝혀요”

■ 글·조득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7.01 17:41:00

개그우먼 김미화가 “나는 김씨가 아니라 박씨, 박미화였다”고 밝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씨인 친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씨로 성을 바꿨다는 것.
호주제 폐지 등 시민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그의 가슴 아픈 가족사를 들어보았다.
호주제 폐지 앞장서며 슬픈 가족사 고백한 개그우먼 김미화

때이른 장마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서울 인사동 입구, 한 여성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고 있었다. “호주제 폐지는 이제 더 이상 여성들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지서명을 부탁드립니다.” 행사장을 둘러싼 사람들 너머로 작은 키의 개그우먼 김미화(41)가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지난 6월15일 오후 2시 인사동 문화마당 앞 야외무대에서 열린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선언.’ 한국여성단체연합 주도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김미화, 권해효, 홍석천, 문소리 등의 문화·연예인들이 참석, 서명작업과 호주제 폐지를 위한 길거리 토론회를 가졌다.
그는 길거리 토론회에서 호주제의 폐단에 대해 역설하다가 “나도 어릴 때 아버지와 호적상 어머니 등 두분이 돌아가신 뒤 생모가 살아 있음에도 호적상 고아 신세가 됐다”며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놀림을 받고 한동안 방황했다”고 깜짝 고백,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어머니 성을 쓰고 있는 것은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는 떳떳한 사안”이라면서도 “하지만 매스컴에 부각되면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며 인터뷰를 망설이는 그를 행사가 끝난 후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호주제 폐지 운동에 동참하는 건 내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다. 호주제 때문에 마음고생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문을 연 그는 자신이 사실혼 관계였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입을 열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원래 성은 김(金)씨가 아닌 박(朴)씨라고 고백했는데 어떻게 된 사연인가요.
“어머니가 박씨 성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한 후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관공서에 갔더니 이미 아버지는 결혼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집안의 반대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어떤 여성과 혼인신고를 했던 모양이에요. 아버지와 우리 어머니는 사실혼 관계였지만 호적상의 어머니는 따로 있었던 셈이죠.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호적에 박미화로 등재돼 있었어요.”

‘아비 없는 자식’ 소리에 한때 방황
- 그렇다면 어떻게 김씨로 성을 바꾼 것인가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호적상 부모가 돌아가신 후 저와 여동생은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었어요. 당연히 어머니가 저희를 당신의 호적에 올렸죠. 당시나 지금이나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았을 경우 어머니 호적에 자신의 성으로 아이를 입적할 수 있어요. 처녀가 아이를 낳은 경우가 바로 이런 것인데, 당시 어머니는 벌금을 내고 늦게 출생 신고한 것처럼 처리해 호적에 올렸다고 들었어요.”
- 아버지가 혼인신고 사실을 숨긴 채 어머니를 만났는데.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한 적은 없어요. 아버지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호적상 어머니가 본처로 등재된 상태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끝내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 호적에 오르지 못했어요.”
- 어려서부터 남다른 아픔도 있었을 텐데….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초등학교 때는 놀리는 친구를 때려 선생님한테 혼이 난 후 방황하기도 했죠. 아이들을 만나는 게 싫어 학교에 가지 않고 미아리 길음시장 일대를 떠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학교 끝날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곤 했죠.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은 어머니에게 혼쭐난 후엔 매일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등교했다는 사인을 받아가기도 했고요.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아버지 없는 티 안 내려고 하다 보니 ‘까불이’가 됐죠.”
- 결혼할 때 문제가 됐을 텐데…. 남편에겐 미리 이야기를 했나요.
“사실 결혼을 앞두고 가장 고민이 많았어요. 서류를 떼보면 모든 것이 나오니까요. 하지만 남편에게 이야기하자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었어요. 이후 시댁에서도 다 알게 됐지만 아무 말씀도 없으셨죠. 아이가 안 생길 때도 ‘없으면 어떠냐. 둘이 재밌게 살아라’ 하실 정도로 고마우신 분들이니까요.”

- 보도가 나가면 아무래도 어머니에겐 고통스러울 일이 될 텐데….
호주제 폐지 앞장서며 슬픈 가족사 고백한 개그우먼 김미화

어머니 성을 쓰면서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렸던 사실을 최초로 밝힌 김미화. 민감한 개인문제를 털어놓은 것은 호주제 폐지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겠다는 용기 있는 고백이었다.


“저희 자매를 키우면서 늘 마음고생이 심했던 분이세요. 이번 일로 놀라지 마시라고 귀띔은 해드렸어요.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지난해에 췌장암 수술을 하셨거든요.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이 돼요.”
- 중학시절 어머니께서 재혼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지금의 아버지와 재혼을 하셨어요. 처음엔 반대를 많이 했어요. 아버지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으면서도 어머니의 재혼을 반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죠. 하지만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결국 인정을 했어요. 그런데 새아버지 쪽도 자식들이 많고 집안이 복잡해 어머니를 호적에 올리지 못했어요. 결국 어머니는 한번도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셈이 됐죠. 다행히 이번에 모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며 어머니에게 면사포를 씌워준다고 하더군요.”
-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사실 전 피눈물 흘릴 만큼 큰 고통을 겪지는 않았어요. 나름대로 청소년 시기를 잘 버텼던 거죠. 하지만 요즘 같이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성이 다른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자라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호주제의 불합리한 사례를 접하다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더군요. 특히 이혼한 여성의 경우 재혼하더라도 자녀들을 전남편 성의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요?”
- 호주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요.
“자녀들은 부모의 피를 반반씩 받아서 태어나는데 현재 호주제는 일방적으로 부계 쪽에 치우쳐 있어요. 외국의 경우 부모가 이혼할 경우 자녀에게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고 해요.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본적도 바뀌는 등 여성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려요. 결국 호주제는 남아 선호사상을 조장할 뿐 아니라 낙태율을 높이는 결과를 낳죠.”

연예인이란 좋은 일을 하도록 운명지어진 사람
호주제 폐지 앞장서며 슬픈 가족사 고백한 개그우먼 김미화

그는 현재 20여개의 시민단체에서 활동중이다. 시민운동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공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우리 가족은 평화롭고 행복하다. 하지만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상처받는 아이들과 그들의 엄마들이 많다”며 “이런 내 과거사를 털어놓은 것은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호주제가 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혼란스러웠지만 커가면서 엄마의 기구한 운명을 이해하게 됐어요. 지금도 친정어머니는 제 생부와 생부의 호적상 아내, 두 분의 제사를 함께 지내주고 계시죠. 저도 새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제사를 지낼 거예요.”
김미화는 여성운동연합 외에도 유니세프와 참여연대, 녹색연합 등 20여개의 NGO에 참여해 ‘준 사회운동가’로 불리기도 한다. 때문에 요즘 웬만한 시위현장에는 그가 빠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연예인 최초로 방송사 시청자위원회 위원(MBC)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원래부터 사회봉사 활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유명인이 됐고 개그우먼으로 어느 정도 성취도 했고, 더욱 봉사와 사회참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예인이란 좋은 일을 하면서 살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이라고 믿어요.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니까요.”
코미디가 활성화되더라도 결국 냉소나 조롱으로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한다는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다.
“알려진 사람으로서 나이 들고 인기가 떨어졌을 때,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이 무얼까 고민했어요. 공인으로서 그간 받은 사랑을 사회에 되갚을 방법도 생각했고요. 박사과정까지 공부해서 사회복지재단을 세울 생각이에요.”
‘잔다르크’ 같은 투사의 이미지를 갖고 활동하기보다 ‘가랑비에 속옷 젖듯’ 그렇게 한걸음씩 사회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그. 자신의 아픈 가족사를 털어놓을 만큼 당당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여성동아 2003년 7월 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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