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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재결합해 라이브 공연 펼치는 형제 듀엣 유심초

■ 기획·이한경 기자 ■ 글·조희숙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06.11 10:38:00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로 시작되는 노래 ‘사랑이여’를 부른 형제 듀엣 유심초가 팀 해체 후 13년 만에 재결성했다.
세월은 갔어도 아름다운 하모니는 여전한 중년의 유심초를 경치 좋은 미사리에서 만났다.
13년 만에 재결합해 라이브 공연 펼치는 형제 듀엣 유심초

“이럴 줄 알았으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오는 건데….”
동생 유의형씨가 안타까워하자 형 유시형씨도 “배를 좀더 집어넣어야 하니 하나, 둘, 셋을 세어달라”며 사진기자에게 농을 건넨다. 살짝 나온 아랫배만큼이나 여유로운 중년이 된 가수 유심초. 이들은 얼마 전부터 다시 무대 위에 서고 있다.
유심초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활동했던 대표적인 포크가수. 친형제인 이들은 준수한 외모와 감미로운 하모니로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포크음악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형 시형씨가 미국 이민을 떠나면서 해체되었던 유심초가 다시 뭉쳐 활동을 재개한 것은 지난 2월.
“다시 유심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미국으로 떠나면서 음악세계에서도 완전히 떠난다고 생각했거든요. 주변에서 ‘언제 복귀하냐’고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그 쪽에서 하던 사업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음악을 할 형편이 아니었어요. 이번에도 동생이 아니었으면 결정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시형씨의 말처럼 유심초의 재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동생 의형씨다. 두 사람은 해체 후 모두 가수가 아닌 생활인으로 살아왔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시형씨나 국내에 남은 의형씨 모두 사업에 몰두하느라 노래와는 담을 쌓고 지낸 것.
유심초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된 것은 다름아닌 팬들의 뜨거운 요청 때문이다. 경기도 미사리 일대 라이브 카페가 활성화되면서 유심초의 히트곡을 신청하는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 결국 의형씨는 미국에 있는 형 시형씨를 대신할 기타리스트를 영입해 2001년부터 유심초라는 이름으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라디오나 라이브 카페에서 우리가 불렀던 ‘사랑하는 그대에게’라는 노래가 계속 신청곡으로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어요. 우리가 활동을 접었는데도 팬들이 계속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도 됐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노래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형도 불러들인 거고요.”
올해 2월 의형씨의 끈질긴 권유로 형 시형씨는 미국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귀국했다. 순전히 유심초로 다시 활동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유심초는 미사리 라이브 카페 바고와 2년 계약을 맺고 재결성 첫 무대에 섰다. 두 사람 중에서도 어렵게 유심초에 합류한 형 시형씨에게 첫 무대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있을 때 사무실에서 우리가 불렀던 노래를 우연히 들을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면 정말 내가 부른 노래가 맞나 싶기도 하고 한창 활동하던 때가 아득한 꿈처럼 느껴지곤 했죠. 같이 활동했던 가수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기도 했고요. 2월20일에 처음으로 무대에 섰는데 너무 떨려서 가사를 바꿔 부르는 실수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어요.”

13년 만에 재결합해 라이브 공연 펼치는 형제 듀엣 유심초

동생 의형씨(오른쪽)가 먼저 활동을 재개한 뒤 미국에 있던 형 시형씨를 불러들였다.


유심초는 지난 75년 가수로 데뷔했다. 두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너무 쉽게’ 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대학가와 다운타운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후 앨범을 낸 독특한 케이스. ‘발품’을 파는 수고도 없이 먼저 찾아온 음반기획자의 제안으로 음반을 냈다고 한다. 가수보다 노래가 더 유명한 ‘너와 나의 석별’을 비롯해 가수 이종영의 노래로 더 잘 알려진 ‘너’라는 곡도 알고 보니 유심초의 노래.
음반을 낼 당시 시형씨는 한국외대에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어와 무역학을, 의형씨는 한양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 당시 대학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시형씨는 의형씨가 대학에 입학하자 듀엣을 결성했고 이들은 각 대학축제를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형 방하고 제 방이 바로 옆에 붙어있었어요. 대학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형이 친구들과 방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다가 나가면 몰래 그 방에 들어가서 형이 부르던 트윈폴리오 노래나 팝송을 흉내내곤 했죠.”
첫 앨범의 수록곡 ‘너와 나의 석별’이 히트한 후 두 사람은 각각 학업과 군입대를 이유로 중간중간 공백기를 가지며 간헐적으로 활동했다.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든 것은 81년. 그해 발표한 앨범에서 ‘사랑이여’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히트하면서다.
“그때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고요? 어떻게 우리 입으로 말해요. 하하. 길거리를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였어요. 지방공연을 가면 팬들이 우리가 탄 차에 올라타려고 해서 백미러도 여러 번 망가졌죠. 그래도 그때 팬들은 지금처럼 좋아하는 내색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했어요.”(유시형)
유심초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3집에 수록된 ‘사랑하는 그대에게’다. 사실 유심초는 3집 앨범을 내고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포크음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포크가수들이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 하지만 유심초가 해체된 후 라이브 카페 붐이 일면서 뒤늦게 ‘사랑하는 그대에게’가 라이브 카페 최고의 인기곡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우리를 좋아했던 팬들은 아마 지금 40대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카페에 찾아와서 우리 노래를 듣는 팬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죠. 노부부가 와서 조용히 사인을 부탁하기도 하고 젊은 커플이 라디오에서 노래를 들었다며 반가워하기도 해요.”(유의형)
형 시형씨와 동생 의형씨는 슬하에 각각 남매와 두 딸을 두고 있다. 미국에 아내와 남매를 두고 혼자 귀국한 시형씨는 분당에 집을 마련해 살고 있다. 가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탓일까. 자녀들도 노래에 재주가 많은 모양이다. 시형씨가 “딸아이가 자기도 가수가 되게 해달라고 조른다”며 은근히 뿌듯해하자 동생 의형씨도 “작은딸이 대학에서 그룹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마디 거든다.
요즘은 유심초와 같은 중견 가수들이 속속 가요계로 복귀하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가요계에서 유심초와 같은 중장년층을 위한 가수들이 살아남기란 결코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음반 구매율이 가장 낮고 공연 관람률도 저조한 이른바 ‘움직이지 않는 팬’들이 바로 중장년층이기 때문.
“가장 움직이지 않는 팬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노래를 들으러 먼 곳까지 찾아오는 분들도 적지 않아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신곡을 발표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유의형)
올하반기에 새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라는 유심초는 앞으로 콘서트 위주로 활동할 생각이라고 한다. 나이를 묻자 두 손을 내젓는 유심초 형제. 대답 대신 감미로운 하모니로 ‘사랑하는 그대에게’를 들려주는 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가인(歌人)의 향기가 묻어났다.

여성동아 2003년 6월 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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